[Opinion] 관객은 전시와 하나되어 비로소 그것을 완성시킨다 - 전시 '페터팝스트' [시각예술]

자작나무와 잔디, 카네이션과 장미언덕이 있는 전시
글 입력 2020.06.1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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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오피니언에서는 학창시절 <문화예술체험>이라는 수업을 수강하던 때 교수님의 추천으로 향유했던, 워낙 새로운 방식의 전시여서 인상깊었던 전시회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이 전시회는 세계적인 무용수 피나 바우쉬와 협업했던 무대디자이너 페터 팝스타가 피나를 위해 기획했던 무대들을 ‘피크닉’이라는 전시 공간에 옮겨 놓은 형태였다. 관객 참여형으로 이루어져 관객들의 움직임이 곧 전시가 되는 이 공간은 피나가 무대 공간을 현실과 맞닿은 곳으로 만들고자 했던 바와 일맥상통 하기도 한다.

 

 

 

피나 바우쉬와 페터 팝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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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유명했던 독일의 표현주의 무용수 피나 바우쉬는 부퍼탈 예술감독이 된 후 기존의 무용이 가지고 있었던 관습을 깨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무대를 꾸몄다. 당시, 기존 무용에서 무대는 관객이 살고 있는 현실과는 다른 세상, 환상적인 그 무언가를 보여주는 곳으로 통하였지만, 피나는 오히려 음악ㆍ연극ㆍ미술ㆍ무용ㆍ영상을 모두 혼합해 탈장르적 작품을 무대위에 올렸으며, 이를 통해 관객이 무대를 보며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자각하고 의식하게끔 만들었다.

 

실제로 피나는 작품 안에서 남성 중심 사회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 인간의 폭력성과 정치적 모순 등 사회 비판적 이슈를 담아냈다. 카네이션으로 덮인 ‘넬켄’무대에서는 감시 사회를 바판하고, ‘매음굴’에서는 젠더 권력을, ‘봄의 제전’에서는 인간 본성의 잔인함을 비판하고자 했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부퍼탈의 다양한 국적과 연령의 무용수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풀어나가면서 완성될 수 있었다. 피나의 무대에서 무용수들은 무대 위 환상의 세계를 살아가는 대상이 아닌, 관객과 같은 공동체의 일원이며, 따라서 그들의 이야기는 관객의 현실 감각을 자극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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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피나의 의도가 효과적으로 발현되기 위해서, 무대 디자인 또한 매우 중요했는데, 그 역할을 해준 것이 바로 페터 팝스트였다. 그는 흙과 물, 잔디와 꽃, 살아있는 동물 등 실제 자연물을 무대위에 구현하였다.

 

기존의 무용극들이 ‘커튼’을 이용하여, 관객석과 무대와의 경계를 치고 무대를 환상의 세계로 만든 것과는 정반대로, 이러한 무대 디자인은 무대와 관객이 살아가고 있는 주변환경과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이는 곧 피나의 의도대로, 관객들이 무용수들의 무대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전시회는 그러한 페터 팝스트의 무대를 전시회장 안에 구현하고 있다.

 

지금부터는 전시회장의 구역별로 나누어 각각에 대한 감상을 몇자 적어보고자 한다.

 

 

 

White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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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페터 팝스트가 1991년 스페인 마드리드 시와 협력해 만든 <춤추는 저녁2>라는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다. 전시장 안에 실제 자작나무를 들여오고, 눈 덮인 풍경을 구현하기 위해 소금을 이용했다. 직접 덧신을 신고 눈으로 형상화된 소금을 밟아볼 수 있었는데, 소금을 두껍게 깔아서 그런지 실제로 부드러운 눈을 밟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넓은 면적을 가진 무대와는 다르게, 전시장 안은 상대적으로 협소했는데 이 부분은 벽면에 쭉 배치된 거울을 통해 해소할 수 있었다. 거울이 가상적인 공간을 확장해 주어 정말 광활한 겨울의 자작나무  숲 한가운데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바깥의 날씨는 살짝 더운 정도였지만, 이 공간에 들어서면서 눈앞에 펼쳐진 겨울의 이미지로 인해 쌀쌀하게 느껴 지기까지 했다.

 

이러한 자연물을 이용한 공간 전시는 내가 전시회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잊고 마치 실내가 아닌 바깥에 나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던것 같다. 기존의 그림 틀로 이루어진 전시가 아닌 이런 현실적인 전시 구성이 페터 팝스트의 무대 디자인의 의도와 상통하여 인상적이었다.

 

 

 

Red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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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피나 바우쉬가 세계 각국에 2주 이상 장기 체류하면서 그 곳에서 받은 영감을 바탕으로 작품을 제작한 국가/도시 시리즈 중 홍콩편에 해당하는 무대 <유리창 청소부>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페터 팝스트는 홍콩의 강렬하고 복잡한 이미지를 거대한 장미 언덕으로 형상화였는데, 전시장 안에도 이 장미 언덕이 구현되어 있었다. 약 5만 송이의 장미꽃 조화로 이루어진 이 언덕을 눈앞에 마주하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페터 팝스트는 관객들이 실제로 이 언덕에서 뛰어 놀며 즐기기를 바랐기 때문에 언덕을 푹신하게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관객이 직접 전시를 체험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피나의 의도와도 연결된다.

 

하지만, 아쉬웠던 점은 사람들이 이 언덕을 실제로 즐기기 보다는 줄을 서서 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 바빴다는 점이었다. 전시의 의도에 관객이 꼭 맞추어야할 필요는 없지만, 장미 언덕을 직접 체험해 보거나 가까이서 오랫동안 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을 텐데, 두 줄로 서서 일정 시간동안 사진을 찍고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무언의 질서 속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Peter for Pina 공간


 

이 공간은 부퍼탈 극단의 실제 공연 모습을 담은 사진 60장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전시회에서 가장 정적인 공간이었으나, 특이했던 점은 보통의 전시회장에서 그림이 벽에 고정되어 있는 것과 다르게 작품이 천정에 실로 매달려 회전하고 있고, 한 판넬에 앞 뒤로 작품이 프린트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작품이 회전하는 대로 이동하고, 뒤의 그림을 보기 위해 기웃거리고, 가끔 작품이 회전하도록 내 진로를 양보해주어야 하는 등,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며 보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러한 구성은 기존의 전시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생동감을 선사해주었다.

 

앞서 이야기 한 것 처럼, 이 전시회에서는 SNS 계정에 올리기 위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저작권 문제로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라 사진을 찍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더 오랫동안 작품을 관찰해도 눈치보이지 않아 좋았다.

 

60점의 사진 중 가장 인상이 깊은 것은 나무 가지에 머리카락이 문어발처럼 얽혀 있는 무용수의 모습이었는데, 보통 정적으로 느껴지는 머리카락이 또다른 자아를 가지고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된 모습이 인상깊었다.

 

 

 

Pink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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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1982년작 <카네이션> 무대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나는 이 공간이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고, 원작의 의도를 가장 잘 살린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나 바우쉬는 <카네이션>무대를 구성할 때, 실제로 무대에 카네이션을 배치하기를 원했다.

 

이는 무용수들이 꽃과 꽃사이의 좁은 면적으로 발을 내딛으면서 그들 만의 독창적인 안무를 구현하고,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진동하는 카네이션의 모습이 더해져 생동감 있는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 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피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의해 구부러진 꽃들을 바로 세우면서 꽃들을 ‘위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한 피나의 의도가 반영된 당시 무대처럼, 전시장의 pink 공간은 카네이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전시 공간에서 나는 무용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꽃 사이를 위태롭게 지나 다니고, 잘못 내디뎌 꽃이 구부러지면, 바로 세우기 위해 몸을 숙였다.

 

겉으로 보기엔 상당히 불안정한 이 과정에서 나는 아이러니 하게도 생동감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직접 체험해보면서 당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어땠을 지 상상해볼 수 있었고, 구부러진 꽃을 일으켜 세우며,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내가 위로 받을 수 있었다.

 

 

 

Green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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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은 팝스트와 피나의 첫 협력 작품인 <1980>을 재현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 피나는 무대가 유희의 장으로서 춤의 공간이기를 소망했다. 그래서 잔디가 깔린 놀이터를 무대위에 재현하고자 했던 것 같다. 페터 팝스트는 그러한 피나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무대 위에 실제 자연물을 끌어들였고, 전시장에서는 이를 루프탑 공간에 실제 흙과 잔디를 깔아 표현했다.

 

또한, 공중에 매달린 텍스트들은 팝스트의 작업방식, 피나와의 대화, 제작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아포리즘이 담긴 천이 정말 빨랫감처럼 널려 바람에 날리면서 자연스럽게 생동감 있는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는 잔디, 흙, 그날의 바람과 공기, 모든 것이 어우러져 이 작은 공간을 넒은 초원처럼 느껴지게 한다. 루프탑에서 보이는 풍경들은 기존의 전시와 다르게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없앰으로써 전시와 현실의 경계 또한 허물어 현실 세계를 자각하게 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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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는 내가 여태껏 보아온 전시회 중에 가장 움직임이 활발했던 전시였다. 작품 앞에 서서 그림을 들여다보는 정적인 전시회를 생각하고 갔던 터라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만큼 재미있기도 했다. 사실 전시를 보는 내내 작품에 대한 이렇다할 설명이 없어서 불편하다고 느꼈었는데 전시회를 감상하고 난 후 자료를 찾아보면서 거기에도 깊은 의미가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답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관객이 직접 만들어가는 전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 소금 눈길 위를 걷고, 장미 언덕에 누워도 보고,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사진을 따라 움직이고, 카네이션 길 위를 위태 위태 걸으며 만들어낸 내 나의 동작들과 움직임들이 비로소 이 전시를 완성할 수 있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시회는 피나 바우쉬의 의도를 정말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피나는 관객이 함께 소통하고 참여하며, 무대를 통해 현실 세계 속의 문제를 인식하기를 원했다. 나는 전시에서 별다른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며 스스로 상상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의도치 않게 몸을 움직이고 루프탑 공간을 구경하며 전시회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이렇듯 나는 다른 전시회에서와 달리 직접 몸으로 체험해보고, 실외에서나 볼 수 있는 자연물을 실내의 전시장에서 맞닥뜨리며 마치 전시와 한몸이 된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나는 그러한 현실적인 감각 속에서 움직이며 그로써 이 전시의 한 부분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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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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