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에 있어 사전이란 국어사전, 영한사전, 영영사전이 전부였던 내게 트라우마 사전이 추가되었다. 트라우마 사전.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작가를 위한 캐릭터 창조 가이드라고 하지만 그 창조 가이드가 트라우마에 관한 것이라니. 호기심 반, 걱정 반이 담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사전은 결론적으로 내게 조금은 무겁게 남게 되었다.
이 책은 '작가를 위한 캐릭터 창조 가이드'라는 타이틀답게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가질 수 있는, 혹은 사람이 겪을 수 있는 트라우마를 말 그대로 사전으로 만들어 놓았다. 배신, 범죄피해, 사회적 부정의와 개인적 고난, 실패와 실수 등 큰 범위를 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트라우마를 가나다 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언제고 작가 또는 독자가 찾고자 하는 트라우마를 바로 바로 찾을 수 있게끔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든 생각은 이 책은 사전임과 동시에 스포일러 사전이라는 것이다. 캐릭터를 창조해야하는 작가들을 돕기 위한 친절한 가이드 외에도 그와 동시에 콘텐츠를 즐길 때 트라우마를 마주한 주인공들을 보며 그 뒤의 이야기를 유추할 수 있는 스포일로가 담겨있다 생각 될 정도로 트라우마 하나당 구체적 상황, 훼손 당하는 욕구, 생길 수 있는 두려움, 가능한 반응과 결과들 등을 자세히 서술해 놓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작가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전임과 동시에 독자들에게는 트라우마를 가진 주인공들을 만난 순간 다음 이야기를 그려낼 수 있는 스포일러 사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으로는 작가들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라면 크고 작은 트라우마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본인이 자각하고 있을 수도, 아님 스스로도 모르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트라우마가 드러나는 순간, 인간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정과 낯선 스스로를 마주하곤 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원인을 모른채 현재 스스로에게 나타나는 반응과 생각 등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원인을 찾을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각 트라우마마다 기술되어 있는 '가질 수 있는 두려움' 부분은 이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게 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독자들이 자신이 가진 트라우마를 마주할 수 있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물론, 필자는 정신의학에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이 세상의 모든 트라우마가 책에 담긴 것이라 할 수 없기에 이러한 점이 모든 독자들에게 해당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혹여 자신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자 이 책을 마주한 사람이라면, 충분한 시간과 마음가짐을 가지고 책을 천천히 정독해보기를 바란다.
사실 이 책은 트라우마를 담고 있기에 마냥 기쁘게만은 읽을 수 없었다. 100페이지 분량의 서문을 제외한, 어쩌면 서문을 포함한 책의 모든 내용이 다양한 종류의 트라우마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 또는 캐릭터를 만들고 있는 작가들 모두 책의 저자가 제안한 '작가들을 위한 자기 관리법'을 실천했으면 한다.
마음이 편한 장소에서 이 책을 보고, 글을 쓴 다음에는 필요한 만큼 휴식을 취하며,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다. 이 모두를 함께하기가 어렵다면 첫 번째 방법인 마음이 편한 장소에서 감정을 개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필자도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지금 순간, 마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