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프라인 쇼핑이여, 잠시만 안녕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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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다르게 온라인 쇼핑을 많이 하게 되면서 오프라인 쇼핑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얼마 전 더워지는 여름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재킷을 포기할 수 없던 나는 퇴근 후, 가까운 쇼핑몰을 향했다. 5월이 끝나감에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했고, 일교차가 심했던 탓에 언제쯤 여름이 올까 했는데 불과 1~2주 만에 더운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숨을 쉴 때마다 훅훅 찌는 찜통 같은 열기에 당황스러워 마스크를 집어 던지고 본의 아니게 에티켓을 잠시 멀리한 채 거래처를 향했다.
더이상 봄재킷을 입을 수 없겠다는 판단하에 한여름에도 입기 좋은 얇은 재킷을 사고자 다급하게 쇼핑몰을 향했고,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저질 체력에 얼른 쇼핑하고 집에 가고자 했다. 여성의류 코너를 몇 바퀴 돌았을 때, 마음에 드는 재킷을 몇 가지로 추릴 수 있었다. 매장에 들어가 찜 해두었던 재킷을 입어보았고, 쇼핑몰 특유의 주황 불빛 아래 내가 사고자 하는 재킷의 색깔이 회색인지, 카키색인지를 헷갈려 할 때 점원의 회심섞인 한마디에 나는 카드를 내밀었다.
“고객님, 카키색이 무척 잘 어울리시네요~”
곁에 함께 진열되어 있던 베이지색 재킷도 여러 번 걸쳐보고 함께 구매를 하게 되었다. 베이지색 재킷은 원체 기본컬러이기도 하고 별 고민 없이 구매를 하게 되었지만, 점원의 카키색이라던 재킷은 내가 보기엔 살짝 은빛이 도는 회색계열의 애매한 색이었다. 구매를 하고 나서도 좀 찝찝해서 주황 불빛이 아닌 정상적인 흰 불빛을 찾아 옷을 꺼내어 비추어보았지만, 쇼핑몰 자체는 원래 정상적인 본연의 불빛을 찾을 수 없기에 구입을 하고도 여전히 찝찝했다.
한편으론 내가 이렇게 쇼핑을 못했었나? 싶은 어이없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론 회색이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재킷 중 회색은 없으니까, 그냥 입자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였다. 두세 시간을 돌아다닌 탓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 집으로 돌아와 내가 구매한 재킷을 꺼내놓았다. 그런데 아뿔싸, 점원이 카키색이라 했던 재킷은 집에서 제대로 된 불빛 아래 자신의 진짜 본연의 컬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은갈치색처럼 번쩍번쩍 빛나는, 불빛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이 입는 그러한 불그레 죽죽 한 회색의 재킷이었다. 대체 이게 왜, 어딜 봐서 카키색 재킷이란 말이지???? 재킷을 꺼내 들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다. 내 웃음소리에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시던 부모님께서 내 방으로 오셨다. 주저앉아 재킷을 부여잡고 웃고 있는 딸자식을 보고 있자니, 부모님도 어이가 없으셨던지, 얼른 씻고 자라며 혀를 끌끌 차셨다. 나와 좋아하는 성향이 정반대인 엄마는 거실로 되돌아가시며 내게 이 한마디를 남기셨다.
“어디서 줘도 안 입을 그런 희한한 옷을 사왔어. 쯧쯧쯧”
“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 이 옷은 나도 싫어! 불빛에 내가 속아서 샀어.”
라고 큰소리로 외쳤지만, 엄마의 대답은 없다. 아, 이건 진짜 내 잘못이다. 이젠 오프라인 쇼핑은 그만 접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르고 고른 내 재킷이, 여러 번 피팅했던 옷 중에 가장 마음에 들어서 구매한 옷인데 은갈치색 재킷이라니. 맙소사. 나 스스로 무척 어이없는 순간이었다.
계속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오래전, <무한도전> 초창기의 단벌신사 정형돈의 은갈치 양복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우 내가 고른 재킷이지만 정말 더 싫어진다. 정말 많이 피곤했구나.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구나. 그래도 너무 심했다 싶다. 내일 빨리 환불해야겠다는 생각에 영수증과 재킷을 다시 종이백에 챙겨서 넣어두고 씻으러 욕실로 가는 길에 아빠가 한 말씀 하신다.
“상표 안 뗐지? 있잖아, 좀 노티 나더라. 그냥 환불해.”
평소 내게 부정적인 말씀을 절대 하지 않는 분이신데 아빠도 어르신들이 입은 번쩍이는 색깔 변하는 회색 재킷을 떠올리셨나 보다. 당장 환불해야지. 내게 카키색이라고 판매한 점원이 어이없기도 하고, 그렇다고 색깔도 구별못하고 잘어울린다는 그 한마디에 구매한 나 자신도 어이가 없고, 여러모로 어이없는 쇼핑이었다. 나름 패션쪽에 오랫동안 종사하고 있는 당사자인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를 만들줄이야.
한동안 오프라인에서 쇼핑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거의 SPA 브랜드 온라인 쇼핑몰을 즐겨 애용하곤 했으니까. 주문해서 배송이 오면 입어본 뒤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으면 손쉽게 반품을 하면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온라인 쇼핑몰에서 내게 꼭 맞는 사이즈와 스타일을 잘 고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잘 어울리는 제품을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쇼핑을 너무 오래 해서인지, 주황색 조명에 속아서인지 이번 일을 계기로 이젠 오프라인에서의 쇼핑이 더 낯설고 어려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체력적으로 이젠 쇼핑을 의욕적으로 못하겠다. 나에게는 이제 온라인 쇼핑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실패율도 현저히 적다. 무엇보다도 편하다. 고로 앞으로 나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쇼핑을 더 많이 애용할 것이다.
나의 은갈치색 회색 재킷은? 다음날 바로 환불 처리했다. 나에게 그 옷을 판매한 점원에게 이건 카키색이 아니라 빛나는 회색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 점원은 자리에 없었다. 환불을 하고 매장을 나오면서 쇼핑몰 천장에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주황색 불빛을 올려다보았다.
다 네 덕분이구나. 너의 현란한 부추김에 많이들 속는구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 자연스레 휴대폰 속 내가 자주 찾는 온라인 쇼핑몰 앱을 켠다. 이토록 간편하고 좋은 쇼핑법을 놔두고 잠깐이었지만 번거롭고 힘들었던 오프라인 쇼핑에 작별을 고한다. 한동안 난 오프라인 쇼핑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세상 편한 온라인 쇼핑몰이 0.1초 만에 내 손안에 펼쳐지니 말이다.
[정선희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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