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프라인 쇼핑이여, 잠시만 안녕 [사람]

오프라인이 낯설다.
글 입력 2020.06.07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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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과 다르게 온라인 쇼핑을 많이 하게 되면서 오프라인 쇼핑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얼마 전 더워지는 여름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재킷을 포기할 수 없던 나는 퇴근 후, 가까운 쇼핑몰을 향했다. 5월이 끝나감에도 아침저녁으로 쌀쌀했고, 일교차가 심했던 탓에 언제쯤 여름이 올까 했는데 불과 1~2주 만에 더운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숨을 쉴 때마다 훅훅 찌는 찜통 같은 열기에 당황스러워 마스크를 집어 던지고 본의 아니게 에티켓을 잠시 멀리한 채 거래처를 향했다.

 

더이상 봄재킷을 입을 수 없겠다는 판단하에 한여름에도 입기 좋은 얇은 재킷을 사고자 다급하게 쇼핑몰을 향했고,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저질 체력에 얼른 쇼핑하고 집에 가고자 했다. 여성의류 코너를 몇 바퀴 돌았을 때, 마음에 드는 재킷을 몇 가지로 추릴 수 있었다. 매장에 들어가 찜 해두었던 재킷을 입어보았고, 쇼핑몰 특유의 주황 불빛 아래 내가 사고자 하는 재킷의 색깔이 회색인지, 카키색인지를 헷갈려 할 때 점원의 회심섞인 한마디에 나는 카드를 내밀었다.

 

“고객님, 카키색이 무척 잘 어울리시네요~”

 

곁에 함께 진열되어 있던 베이지색 재킷도 여러 번 걸쳐보고 함께 구매를 하게 되었다. 베이지색 재킷은 원체 기본컬러이기도 하고 별 고민 없이 구매를 하게 되었지만, 점원의 카키색이라던 재킷은 내가 보기엔 살짝 은빛이 도는 회색계열의 애매한 색이었다. 구매를 하고 나서도 좀 찝찝해서 주황 불빛이 아닌 정상적인 흰 불빛을 찾아 옷을 꺼내어 비추어보았지만, 쇼핑몰 자체는 원래 정상적인 본연의 불빛을 찾을 수 없기에 구입을 하고도 여전히 찝찝했다.

 

한편으론 내가 이렇게 쇼핑을 못했었나? 싶은 어이없는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론 회색이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재킷 중 회색은 없으니까, 그냥 입자라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였다. 두세 시간을 돌아다닌 탓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 집으로 돌아와 내가 구매한 재킷을 꺼내놓았다. 그런데 아뿔싸, 점원이 카키색이라 했던 재킷은 집에서 제대로 된 불빛 아래 자신의 진짜 본연의 컬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은갈치색처럼 번쩍번쩍 빛나는, 불빛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이 입는 그러한 불그레 죽죽 한 회색의 재킷이었다. 대체 이게 왜, 어딜 봐서 카키색 재킷이란 말이지???? 재킷을 꺼내 들고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한참을 깔깔거리며 웃었다. 내 웃음소리에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시던 부모님께서 내 방으로 오셨다. 주저앉아 재킷을 부여잡고 웃고 있는 딸자식을 보고 있자니, 부모님도 어이가 없으셨던지, 얼른 씻고 자라며 혀를 끌끌 차셨다. 나와 좋아하는 성향이 정반대인 엄마는 거실로 되돌아가시며 내게 이 한마디를 남기셨다.

 

“어디서 줘도 안 입을 그런 희한한 옷을 사왔어. 쯧쯧쯧”

“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 이 옷은 나도 싫어! 불빛에 내가 속아서 샀어.”

 

라고 큰소리로 외쳤지만, 엄마의 대답은 없다. 아, 이건 진짜 내 잘못이다. 이젠 오프라인 쇼핑은 그만 접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르고 고른 내 재킷이, 여러 번 피팅했던 옷 중에 가장 마음에 들어서 구매한 옷인데 은갈치색 재킷이라니. 맙소사. 나 스스로 무척 어이없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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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가만히 보고 있자니 오래전, <무한도전> 초창기의 단벌신사 정형돈의 은갈치 양복이 불현듯 떠올랐다. 오우 내가 고른 재킷이지만 정말 더 싫어진다. 정말 많이 피곤했구나.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았구나. 그래도 너무 심했다 싶다. 내일 빨리 환불해야겠다는 생각에 영수증과 재킷을 다시 종이백에 챙겨서 넣어두고 씻으러 욕실로 가는 길에 아빠가 한 말씀 하신다.

 

“상표 안 뗐지? 있잖아, 좀 노티 나더라. 그냥 환불해.”

 

평소 내게 부정적인 말씀을 절대 하지 않는 분이신데 아빠도 어르신들이 입은 번쩍이는 색깔 변하는 회색 재킷을 떠올리셨나 보다. 당장 환불해야지. 내게 카키색이라고 판매한 점원이 어이없기도 하고, 그렇다고 색깔도 구별못하고 잘어울린다는 그 한마디에 구매한 나 자신도 어이가 없고, 여러모로 어이없는 쇼핑이었다. 나름 패션쪽에 오랫동안 종사하고 있는 당사자인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를 만들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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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오프라인에서 쇼핑을 오랫동안 하지 않았다. 거의 SPA 브랜드 온라인 쇼핑몰을 즐겨 애용하곤 했으니까. 주문해서 배송이 오면 입어본 뒤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어울리지 않으면 손쉽게 반품을 하면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온라인 쇼핑몰에서 내게 꼭 맞는 사이즈와 스타일을 잘 고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잘 어울리는 제품을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온라인 쇼핑을 너무 오래 해서인지, 주황색 조명에 속아서인지 이번 일을 계기로 이젠 오프라인에서의 쇼핑이 더 낯설고 어려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체력적으로 이젠 쇼핑을 의욕적으로 못하겠다. 나에게는 이제 온라인 쇼핑이 더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실패율도 현저히 적다. 무엇보다도 편하다. 고로 앞으로 나는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쇼핑을 더 많이 애용할 것이다.

 

나의 은갈치색 회색 재킷은? 다음날 바로 환불 처리했다. 나에게 그 옷을 판매한 점원에게 이건 카키색이 아니라 빛나는 회색이라고 알려주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 점원은 자리에 없었다. 환불을 하고 매장을 나오면서 쇼핑몰 천장에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주황색 불빛을 올려다보았다.

 

다 네 덕분이구나. 너의 현란한 부추김에 많이들 속는구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 자연스레 휴대폰 속 내가 자주 찾는 온라인 쇼핑몰 앱을 켠다. 이토록 간편하고 좋은 쇼핑법을 놔두고 잠깐이었지만 번거롭고 힘들었던 오프라인 쇼핑에 작별을 고한다. 한동안 난 오프라인 쇼핑은 하지 않을 예정이다. 세상 편한 온라인 쇼핑몰이 0.1초 만에 내 손안에 펼쳐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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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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