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유럽 여행 되감기 마지막 [여행]

스페인를 끝으로 플레이가 멈추다.
글 입력 2020.05.29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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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행지, 스페인의 첫 도시는 세비야였다.


리스본에서 세비야로 가는 주간 버스를 타러 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려 9시간을 도로 위에 버려야 해서 주간 버스에는 사람이 적었다. 버스 아래 널찍한 트렁크 안으로 한국인으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들어갔다. 유럽의 소매치기는 급이 달라서 트렁크가 열려 있을 때 캐리어를 통째로 훔쳐 가기도 한단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나에게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예방법은 둘 중 하나였다. 묶어두거나 정차할 때마다 트렁크 쪽을 살펴보거나. 나는 당연히 전자를 택했다. 캐리어를 넣고, 주섬주섬 자전거 자물쇠를 꺼내 묶어둘 기둥을 찾았다. 의외로 마땅치 않았다. 딱 좋은 자리는 아까 함께 들어온 사람이 선점했다. 한참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점점 주위가 어두워졌다. 트렁크 문이 닫히고 있었다.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 그런 장면을 숱하게 보지 않았는가. 횡단보도를 걷던 주인공. 이때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강하게 주인공을 비추며, 미친 듯이 주인공에게 돌진한다. 주인공의 놀란 표정과 경음기 소리가 겹쳐지며 엔딩. 그렇게 커다란 트럭이 달려드는데 얼음! 상태로 멈춰있다니. 과장된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실제에 기반한, 아주 과학적인 심리묘사였다. 닫히는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빠르게 닫히지도, 나갈 틈이 없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냥 쳐다만 보다 암흑 속에 갇혔다.


뒤늦게 놀랐다. 신기함이 진하게 섞인 놀람이었다. 살다 살다 트렁크에 갇히는 경험을 할 줄이야. 만반의 준비를 해서 실수할 일이 전혀 없던 내게도 친구들에게 들려줄 에피소드가 하나 생겨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웅크려 앉아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승객이 없어서 트렁크 문을 열 일이 없다면? 이대로 출발한다면? 아니, 어차피 중간에 여러 번 정차하니까 상관없겠다. 아니, 더더욱 상관있다. 트렁크를 열었는데 웬 사람 하나를 마주한다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나를 상상하니 골이 다 아팠다.


당장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스페인어로 말해야 할까? 그런데 기사는 포르투갈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바로 옆 나라이기 때문에 언어가 거의 유사하긴 하다. 문제는 아는 단어가 몇 없었다. 안녕하세요, 화장실 어디 있나요, 메뉴판 주세요, 영수증 주세요, 고맙습니다. 여행 필수 단어 책은 좀 바뀔 필요가 있다. 생존에 꼭 필요한 '살려주세요'가 없다니.


별수 없이 만국 공용어인 영어를 택했다. 첫 마디를 뭐라고 뗄까. 다짜고짜 '헬프 미!'부터 외치면 당황스럽지 않을까? 와중에 예의부터 차린 걸 보니 정말 겁이 안 났나 보다. 먼저 인사부터 했다. '헬로우?' 응답이 없었다. 트렁크 천장을 두들기며 인사했다. '헬로우!' 반응이 없자 자연스레 '헬프 미!'가 나왔다. 나는 버스 안의 말소리가 들리는데 사람들은 내가 내는 소리를 못 듣는다는 사실이 꽤 무서워졌다. 졸지에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을 재현했다. 다만 영화는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현실은 처절했다.


다행히 문이 열렸다. 빛과 함께 기사의 잔소리가 쏟아졌다. 안 나오고 뭐 했냐, 그렇게 안 해도 짐 안 털린다, 구시렁구시렁. 그럼 소매치기당한 사람들은 왜 생길까? 입으로는 '쏘리'를 외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버스에 들어서니 한국인 같았던 그분이 한국어로 괜찮냐고 물었다. 역시 한국인이 맞았다. 외국인이었으면 절대 트렁크를 기둥에 묶어두지 않았을 거다. 그분이 은인이었다. 사람 목소리가 바닥에서 들려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트렁크 모니터 속 나를 보고 기사에게 알려주었다고 한다.


버스에 나 말고 다른 한국인이 탄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좌석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대화는 여기서 끝났다. 도착하고 나니 하늘이 새까맸다. 포르투가 떠올랐다. 한밤에 공항버스를 기다리던 그 초조함이. 자물쇠를 풀며 아까 그분과 대화가 이어졌다. 얘기는 어디서 묵느냐로 이어졌다. 같은 숙소였다. 한국인들이 정말 많이 가는 숙소를 골랐으니 놀랍진 않았다. 택시는 선택지에 없었는데 동행이 생긴 덕에 편하게 도착했다. 다만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방도 다르고, 그분은 내일이면 떠날 예정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삼키며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인사했다.


*


세비야는 포르투처럼 골목길이 재밌는 도시였다. 여기저기 혼자 쏘다니다가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사람이 방에 있었다. 캐리어를 보아하니 금방 체크인 한 듯했다. 어색한 눈인사가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알게 된 사실. 나보다 두 살 어린 동생이었는데 모로코에서 오늘 세비야로 왔다는 것이다. 모로코, 그러니까 아프리카에서 왔다니. 더욱 놀란 것은 혼자서 3달 여행을 계획하고 비행기에 올라탔다는 점이었다. 어느새 유럽에서 보낸 시간이 두 달을 훌쩍 넘겨 귀국까지 열흘 정도 남았다는 말에 많은 감정이 보였다. 아쉬움, 안도, 즐거움, 여유로움. 그 애에게서 여러 에피소드를 들었다.


버스 타고 국경을 넘어가다가 캐리어를 소매치기당해서 짐을 몽땅 잃은 파리(자전거 자물쇠가 괜한 짓이 아니었다), 숙소로 가는 길에 남자들이 알 수 없는 언어로 자신을 쫓아다녀서 '지릴' 뻔한 모로코, 잘생긴 남자들이 많아 눈 호강 했다던 폴란드, 동행이 재밌어서 관광지보다 사람이 좋았다던 로마 등등. 유럽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었다. 괜히 겁먹어서 한 달 여행도 3주로 줄인 과거의 내가 살짝 후회스러웠다.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늘여놓았던 그 애는 저녁 먹으러 한식당에 같이 가자고 했다. 저녁을 먹고 들어온 과거의 내가 또 아쉬웠다. 뭐, 사실 그렇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었다. 세비야에 머문 내내 그 애와 함께 이곳저곳 다녔으니까.


아침 일찍 일어나 숙소에서 30분쯤 걸었다. 현지 시장을 구경하며 식사를 하려고 했건만, 스페인 사람들에겐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아주 한적했다. 주황빛 음료와 하몽 샌드위치를 먹었는데 웬걸, 입맛이 하나도 맞지 않았다. 그만 먹고 버려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그 애에게서 카톡이 왔다. 지금 깼는데 어디 갔냐고. 음식 사진을 보여주며 최악의 아침 식사를 마쳤다고 답했다. 그 애가 보낸 키읔이 채팅방을 가득 채웠다. 그러게 왜 혼자만 밥 먹으러 갔어? 핀잔 하나 얹고서.


유럽 여행 카페에서 동행 한 명을 구했다. 점심께가 되어 그 애가 점 찍어둔 레스토랑부터 갔다.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그 애가 구글 맵 가득 표시해 놓은 맛집 도장 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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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숙소 근처 감바스 집이 마음에 들어 두 밤 모두 찾아갔다. 올리브 오일을 잔뜩 두르고, 간을 한 후에 새우를 끓였을 뿐인데 어쩜 그리 맛있던지. 지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돈다. 맥주 한 잔과 감바스, 작은 말소리만 오가던 술집. 분위기가 참 좋았다. 그래서 예매해 둔 플라밍고 공연에 가지 않고, 그날 밤은 감바스를 먹으며 동행들과 보냈다지. 3만 원 남짓한 돈을 날리긴 했어도 그다지 후회스럽진 않다. 그만큼 좋은 식사였다.


세비야에서 그라나다, 바르셀로나를 거쳐 11월 초, 한국으로 돌아왔다.


*


공원과 미술관이 좋았던 런던, 강과 바다가 좋았던 포르투갈, 사람이 좋았던 스페인으로 여행기가 끝을 맞이했다. 어찌나 좋았던지 여행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여행을 계획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지만.


고작 3주 여행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찾을 수 없었다. 기간이 이보다 길었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겼으리라는 확신도 없다. 세상 어딜 가도 사람이 있는 곳은 결국 사람이 사는 곳이기에. 다르지만, 같다. 그렇다고 해서 얻은 게 전혀 없진 않다. 나는 나를 배웠다. 혼자 여행의 특장점이라고들 하는 부분이다. 하루를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다 보니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식을 알게 된다.


나는 시간에 맞춰서 칼같이 관광지를 찍고 다니는 여행과 전혀 맞지 않는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우디 건축물과 산 파우 병원을 쭉 둘러보려고 나름 거리와 관람 시간을 여유롭게 잡아서 티켓을 예매해놨다. 그런데 딱 정해진 스케줄에 나를 맞추려다 보니 하나의 압박처럼 느껴지는 거다. 그래서 산 파우 병원은 다음으로 미뤄두고, 그 시간에 숙소에서 뒹굴뒹굴하며 쉬었다. 이렇게 재충전해서 보러 갔던 사그리아 파밀리아 성당의 위압감은 지금도 생생하다. 쉬는 대신 다음 일정을 단행했다면 그 감정까지는 느끼지 못했을 것 같다. 몸이 피곤했을 테니까.


그리고 정리정돈을 좋아한다. 캐리어를 정리하고, 호스텔에서 배정받은 침대를 정리하고, 주변을 정리하고. 하루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에 늘 하던 일이었다. 새삼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구나, 알았다.


또 하나, 소심하지만 할 일은 한다. 사람 하나 없이 텅 빈 레스토랑에 쭈뼛대며 들어간다든지,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나누고 말을 붙여본다든지. 물론 후자의 상황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 때가 훨씬 많았지만, 스리슬쩍 배운 말을 써본 기억이 난다. 상대가 웃으며 반응해 줬을 때의 짜릿함이란. 그래서 영어 회화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넷플릭스를 시청하며 이것도 공부랍시고 위로 중이다.


이렇듯 여행을 통해 깨닫는 것은 아주 짧은 잠깐이다. 삶의 근본까지 영향을 끼치진 못한다. 한국은, 내 집은 너무 익숙하고 편한 곳이니까 습관처럼 안주한다. 간만에 여행 사진과 기록을 들춰보며 느꼈다. 이때를 기점으로 화장을 거의 안 하고 다녔구나. 캐리어에 들고 간 파우치를 다녀와서 통째로 버렸다. 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주위 시선에 얽매여 놓지 못한 것을 이제는 놓을 수 있었다. 아까 드라마틱 변화가 없다고 말했지만, 생각해 보니 하나 있었다.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 모든 것을 철저히 준비해서 떠난 여행이라 실수가 거의 없는 여행이었는데, 실수도 하나의 기회다. 여행뿐 아니라 인생에서의 실수도 그렇다. 경험이 생기고,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것들이 늘어나 예전에는 큰일이었던 것에도 무뎌지곤 한다. 더욱더 현명해져서 실수도 줄어든다. 그만큼 느낄 감정, 생각, 경험이 적어지는 셈이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이 이런 의미였을까. 지금 느낄 수 있는 것을 진득하게, 오래 느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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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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