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때의 '청춘'과 지금의 '청춘' [사람]

글 입력 2020.05.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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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른 여섯 번째 생일이 지났다. 불현듯 케이크에 꽂혀있는 촛불의 개수가 낯설고 어색했다. 도통 믿기질 않는 나이가 되었고 어느덧 나도 중년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요즘의 트렌드가 더는 나이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이라지만, 벌써 서른의 중반을 넘긴 내 나이가 나는 그저 낯설기만 하다.

 

여전히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의 축하에 많이 기쁘고 감사한 날이었지만 올해는 무언가 조금 쓸쓸했다. 내가 나이 들어간다는 건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간다는 것이고, 금수저가 아닌 지극히도 일반적인 수준의 나 스스로 그동안 이루어 놓은 것들에 대하여 생각해봤을 때, 그냥 조금은 허무한 마음도 있었다.

 

관계에서도 맺어짐과 끊어짐이 수도 없이 이루어져 지금 내 앞에 놓인 다양한 관계성에 피곤함과 아쉬움이 뒤따랐고, 마냥 잘해왔다고 100% 단언할 수 없다는 게 조금 슬프다. 이제는 누군가의 잘잘못도 생각나지 않는 그 순간들의 깨어짐에 진심으로 오랫동안 감정을 나누었던 인연이 끝이 나기도 했고, 언제고 평생을 함께하고자 했던 인연은 내가 아닌 또 다른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기도 했고, 복잡하고 어려운 관계에 환멸을 느껴 놓아버린 순간들이 문득 생각나는 요즘이다.

 

수많은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내용처럼 어릴 적, 그때의 ‘나’는 모든 게 서툴렀고 서투름에서 오는 실수와 결과에 마음도 다치고, 아파하며 울다 그 자리에서 서서히 성장했을 것이다. 많이 지치는 날은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녘, 별이 내리는 하늘을 쳐다보며 위안도 받았던 것 같다. 수없이 많은 날을 살아오며 지금이 아닌 언젠가를 더 많이 생각했던 날들이 있다. 이곳이 아닌 다른 어딘가를 그린 적도 많고 보이지도 않는 그 언젠가를 떠올리며 살아낸 날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 또한 소중한 내 삶의 일부분이기에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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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에 살았던 친구와 한동안 꽤 오랫동안 걸어 다녔던 기억이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여름밤 냄새가 일렁였던 해 질 녘, 캔맥주를 사 들고 향한 한강에는 영화에서나 볼법한 붉게 물든 저녁노을이 말도 안 되게 멋진 풍경으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가본 적도 없는 애틀랜타의 저녁노을 같다며 그 노을 아래서 그때의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스물아홉을 이야기하고 서른을 이야기했다.

 

상사에 대한 뒷담화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커리어우먼에 대한 삶을 이야기했고, 너무 먼 얘기 같았던 서로의 결혼식을 이야기하며 축사는 어떻게 할지, 촌스럽게 결혼식장에서 울지 말자고 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그땐 무슨 용기였는지 한강 난간으로 자리를 옮겨 우리가 좋아했던 인디밴드의 노래를 틀어놓고 같이 따라부르곤 했다.

 

우리의 노래를 따라온 곁에 모르는 이들과 맥주 캔을 부딪치며 함께 건배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순간들이었다. 어느덧 깜깜해진 뚝섬한강공원은 저마다의 빛나는 불빛들과 함께 수많은 추억거리를 담고 있는 사람들로 북적이곤 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상이기에 더욱이 그리운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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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클라우드 1집>

 

 

그때 한참 들었던 노래를 떠올려보면 언니네 이발관, 마이앤트메리, 자우림, 디어클라우드 같은 인디밴드의 노래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왠지 그땐 주류보다 비주류가 더 좋았다. 그리고 대중가요보다 그들의 노래 가삿말이 더 우리의 일상에 와 닿았다. 좋아하는 노래를 다운받아 핸드폰과 MP3에 넣어서 듣고 다녔던 그때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그립고 보고 싶다.

 

보고 싶다는 표현이 여기에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모든 것에 인색해져 가는 요즘의 시대상에 나는 예전의 내 기억과 추억들이 보고싶다. 그때의 나와 우리와 함께했던 선배들도 문득 떠오른다. 꽃다운 나이의 우리가 그저 예쁘다며 무얼 해도 예쁘다 하셨다. 어느덧 나도 그때의 선배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다. 그때의 선배들과 같은 나이가 되어 꽃다운 나이의 후배들을 지켜보곤 한다.

 

그땐, 그저 자체만으로도 예쁘고 좀 서툴러도 충분히 예뻤을 텐데 왜 그리도 잘하려 애썼을까.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됐었는데. 지금의 후배들에게 이야기한다. 너무 잘하려 애쓰지 말라고. 그때의 선배들이 내게 이야기해주었던 것처럼 나도 후배들에게 똑같이 얘기해준다. 아마 후배들은 그 의미를 그때의 우리처럼 잘 모를 것이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내 나이가 되었을 때, 그때야 그 단순하지만 중요한 의미를 깨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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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좋아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고 즐거워하고 설렌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건 좋아하는 일이고 기다리던 일이라도 회사라는 것에 함께 묶여버리면 괴로운 건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건 이 일을 시작한 십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똑같다. 평행이론처럼 이건 아마 죽을 때까지 어찌할 수 없는 풀리지 않는 문제일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회사라는 매개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괴로워야 한다. 세상에.

 

어느 인터뷰에서 한 회사에 17년 동안 근무한 한 마케터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대략적인 인터뷰의 내용은 자신이 17년동안 근무한 회사의 채용공고를 직접 홍보를 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그래도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가 썩 괜찮은 회사였구나. 기쁘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속한 업계에선 절대로 믿기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내 주변의 모든 이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일은 너무 좋은데 진짜 회사체계는 뭣 같다고. 이건 업계의 문제인 건가, 회사의 문제인 건가. 이 부분도 처음 이 일을 시작했던 어릴 적의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부분이기에 씁쓸한 감정이 든다.

 

나이와 경력이 쌓이면 좀 편해지고 숨이 트이고 여유로워져도 나쁠 것 없는 직종이 수없이 많다. 그러한 업계가 많지만 내가 속한 이 업계는 전혀 그렇지가 않기에 이 일을 좋아하면서도 가끔은 숨통이 조여오곤 한다. 경력이 쌓일수록, 더 큰 프로젝트를 맡을수록 시기와 경쟁은 심해진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만 괴롭다. 좋아함과 괴로움은 이 일을 끝내지 않는 이상 영원히 함께 끌어안고 가야 하는 감정이기에 마음이 가뿐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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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서툴러서 괴로웠던 어릴 적 ‘청춘’과 익숙해지고 숙달됐지만 변하지 않는 여건과 환경에 여전히 괴로운 지금의 ‘청춘’은 과연 어떻게 다른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던 그 시절을 지나 여전히 고민을 안고 있는 지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불행하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나이가 들었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괴롭고 힘들 때가 있고, 또 마냥 기쁜 날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유 없이 외로울 땐, 괴로워하며 울기도 한다. 바람이 불면 바보처럼 서서 흔들리기도 한다. 언젠가 또 멎을 것을 알기에 스스로 나를 받아들여야 지금을 오늘을 평온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완전한 어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철들지 않아도 괴로운 인생인데 철 든 인생은 얼마나 더 신경 쓸 게 많을까. 그냥 철 좀 덜 들어도 남에게 나 스스로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조금 덜 자란 어른이어도 괜찮을 거란 생각을 해본다.

 

나이가 들어도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지금보다 조금은 덜 했으면 좋겠다.


정답이 없어도 그 답을 찾는 여정은

다정하고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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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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