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

이 책을 읽고 마음 한구석에 나를 위로해주는 토끼 한 마리가 자리하게 되었다.
글 입력 2020.05.17 10:2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사본 -1511.jpg


 

대학교에서 돈 내고 공부하는 느낌이 들어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그림책을 읽었다. 글이 조금 적겠지, 귀여운 토끼 그림이 나를 위로해주겠지 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는데 글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넌 왜 여기 있니?”


 

다른 책과 다름없이 가득 자리하고 있는 글을 봤을 때 처음 뱉은 말이었다. 토끼는 목차에 잠시 등장해 자신이 책의 주인공임을 알렸고 그 후에는 글이 주가 되었다.


그러나 속으로 실망하면서 첫 장을 펼쳤던 그때,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한 마음에 책을 끌어안았다.

 


“한때 그림책의 주인이었던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순간 어린 시절의 그림책과의 추억이 스쳐 지나갔고 그림책을 읽을 때의 모습이 얼마나 순수했는지 생각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울음이 나왔다. 곧 마음을 가다듬고 책상에 바로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세 개의 대단원으로 구성된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은 그 내용까지도 표지의 토끼처럼 사랑스럽다. 그 제목은 각각 ‘1. 제 코가 빨개지면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에요. 2. 마당 가득 보라색 빗방울이 내렸다. 3.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기억하는 것들은’으로 따스한 위로를 담았다.

 

1단원에서 첫 번째 소주제는 ‘영혼은 안다, 자신이 주인을 잃어버렸다는 것을’이다. 나는 바쁜 현대 사회에서 이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강남이나 서울의 주요 회사가 위치한 곳을 가보면 사람들은 핸드폰을 손에 쥔 채 급하게 달리고 있다. 그 사람의 눈에는 초점이 없고 영혼도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영혼을 잃어버린 채로 뛰어가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르기에 영혼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영혼은 자신이 주인을 잃어버렸음을 안다. 그래서 주인의 속도를 따라가려 애쓴다.

 

이 생각은 19페이지에 그대로 나와 있다.

 


‘누군가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본다면 세상은 땀 흘리고 지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그리고 그들을 놓친 영혼들로 가득 차 보일 거예요. 영혼은 주인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으니까요.’

 

나는 작가가 이 주제를 통해 독자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 영혼을 놓치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일 줄 알았지만, 이 생각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이 작가는 바로 다음 부분에서 그림책 ‘잃어버린 영혼’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제시한다.

 


‘생각건대, 영혼을 기다리는 동안 남자는 긴 책을 썼을 것이다. 다와다 요코가 큰 여행에 대한 이야기는 영혼이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진다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 영혼이 오고 있는 동안에 그러니까 영혼을 잃어버린 그때가 영혼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때이므로.’


 

작가는 영혼을 잃어버렸다고 느낀 사람에게 위로를 건넨다. 영혼이 올 동안 당신이 달려오고 있을 영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다음 소주제 ‘따뜻한 햇볕을 놓치지 않아서 다행이야’는 그림책 ‘나 하나로는 부족해’의 주인공 ‘레오’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한다.

 

이 그림책은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일이 너무 많아 힘든 레오가 ‘나 하나로는 부족해’를 외치며 여러 명의 레오를 만든다. 그러나 갈수록 여러 명의 레오가 해야 할 일은 많아지고 본래의 레오가 힘들어 쉬고 있을 때면 다른 아홉 명의 레오가 쳐다보며 할 일이 많다고 재촉한다.

 

그때 레오가 문득 떠올린 생각은 이 그림책의 진수이기도 하다.

 


“어쩌면 혼자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렇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할 일을 끝내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기보다는 햇볕을 느낄 수 있는 행복, 걸어 다니며 저녁을 느낄 수 있는 하루의 행복 등을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길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어떨까.

 

혼자로서, 자기 자신으로서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며 자신에게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레오’는 그림책을 통해 짧지만 강렬하게 전달한다.

 

사실, 다른 단원의 내용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2단원이 정말 와 닿았다. 그중에서도 소주제 ‘친구란, 각자로 살아온 시간이 마주 보고 손을 잡는 것.’이 제일 좋았는데 친구 관계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준 글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함께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몸이 멀어지고 자연스레 마음도 멀어진 친구들이 많았고, 그 친구와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억지로 약속을 잡았고 모르는 새에 내 마음은 병들었다.

 

143페이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헤어져도 다시 만나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그런 친구 관계를 다룬 말이다. 물론 지금은 이런 친구가 있지만, 그전에 이 구절을 읽었다면 부러워하며 이 부분을 한참이나 들여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되새긴다. 그동안 친구 따위는 없다는 듯 잊고 살았다가도 만났을 때는 마치 아침에 나갔다가 오후에 들어온 식구들처럼 무심하게 이어지는 일상을 다룬다.’

 

항상 내가 힘들어 결국 일방적으로 되어 버린 그 관계를 놓아버렸고 고등학교 때까지 멀어져도 다시 만났을 때 아무렇지 않게 인사할 수 있는 위 구절과 같은 친구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신기한 친구 한 명을 만났다. 웃기고 조금은 엉뚱한 면이 있는 그 친구는 지금 나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지만 일학년 때는 나랑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첫인상에 (나는 그 당시 매우 소극적인 사람이었다) 그 친구를 웃긴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자연스럽게 방과 후 수업을 같이 듣고 여러 가지가 겹치면서 그 친구와 밥을 먹고 놀고 친해졌다.

 

놀랄 정도로 비슷한 점이 많았고 그 친구와 지내면서 우울한 면이 있던 나는 몰라보게 밝아졌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웃음으로 다른 친구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그 친구를 볼 때마다 행복했다.

 

우리는 만났을 때부터 졸업 때까지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고 서로를 존중해주었다. 나는 그 친구가 없었더라면 고등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현재 우리는 다른 대학교에 다니는 상황에도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또는 서로의 바쁜 일상으로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책의 구절처럼 가끔 시간을 내어 만나면 방금까지 계속 이야기하던 친구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처음 만났을 때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들었고 헤어지며 다음 만남을 기약하는 순간조차 자연스러운 그런 친구가 생기니 이 구절이 와 닿았다.

 

144페이지에는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나온다. 이 주제를 읽고 내용이 너무 좋아 내 목소리로 녹음까지 해놓고는 그 녹음을 들으며 이 구절을 다시 읽어보았다.

 


‘곧 다시 만나자고 답을 보냈지만 하고 싶고 듣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넘치도록 주고받았으며 냉장고 속 고추장이 맛이 들 때까지는 서로를 까맣게 잊고 지내리라는 걸, 마치 각자 다른 별에 사는 이들처럼 지내리라는 걸, 그러다가 계절이 한 차례 바뀌면 매일 건네는 안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 하고 서로의 문을 두드릴 것도 이미 안다.’

 

3단원에도 이렇게 따스한 이야기가 많다. 대학교 때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얻은 감정 그리고 ‘떠나는 여행에서 향하는 여행’을 배운 작가의 경험담도 있고 어머니와의 추억과 기억 그리고 현재 엄마로서 느끼는 감정을 따스하고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이야기도 있다. 독자마다 기억에 남는 주제는 다를 것이므로 여기서부터는 독자의 읽기에 남겨두고 싶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어렸을 적 할머니나 어머니가 무릎베개를 해주시며 편하게 잠들라고 해주신 이야기처럼 포근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또한, 이 책은 그림책의 소중함을 잊어버리지 말아 달라고 당신의 시절을 기억하고 자신을 있는 힘을 다해 따뜻이 안아주라고 말한다.

 

나는 이제 그림책이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때로는 산문집, 소설집보다 훨씬 가치 있는 무언가를 가져다줄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끔 등장하는 토끼는 책 읽는 나를 따스하게 감싸주고 가끔 읽다가 공감이 되어 눈물을 훔칠 때면 옆에 와서 조용히 울음소리를 들어준다.

 

이제 책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 와 주었으면’의 마지막을 읽고 있는 내 마음 한구석에는 나를 위로해주는 토끼 한 마리가 자리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다른 독자의 가슴에도 역시 각기 다른 토끼 한 마리가 자리할 것이다. 그 토끼는 우리의 인생에서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포근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든든한 친구이며 나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이다.


 

사본 -가끔은 내게도 토끼가_입체표지.jpg



[책 소개]


“느끼는 대로 살고 있나요?”

 

이유 없이 좋은 것이 제일 좋은 것

쓸모 없는 일에 시간을 써도 불안해하지 않는 힘이 그림책 안에 있습니다!

 

날 서고 까칠해진 마음을 부드럽고 순하게 만들어주는 책

답답하고 무거웠던 마음이 홀가분하고 맑아지는 책

국내 대표 에세이스트 라문숙 작가의 네 번째 신작

 


[저자 소개]

 

라문숙(필명: 단어벌레)

 

읽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단어벌레’라는 필명으로 네이버 블로그와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쓴다. 갑옷처럼 걸친 표정과 감정을 걷어내고 몸에 새겨진 것들을 글로 풀어놓으며 삶이 명징해지는 걸 경험하는 중이다. 읽고 마음에 새긴 것들이 어느 순간 자신을 드러내 삶을 환하게 비추듯, 자신의 글 또한 누군가의 마음에 빛으로 가닿기를 바란다. 일기처럼 써 내려간 글을 모아 『안녕하세요』, 『전업주부입니다만』, 『깊이에 눈뜨는 시간』을 냈다. 오래 읽으며 매일 쓰고 많이 웃고 싶다.

 

 



[김정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