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당신과 연대하기 위해 – 박해윤 필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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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
박해윤 전문필진을 만났다. 그녀의 글을 읽고 느꼈던 감정과 인터뷰를 마친 후의 생각을 종합해보면 박해윤 필진은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인 것 같다. 글이라는 방식을 사용해서 사람에 대해 더 많이 보여주고 더 많이 이해하며 타인과 함께하려는 사람이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내가 왜 박해윤 필진을 만나고 싶어 했는지 명확해졌다. 상처를 감내해내며 어른이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타인을 향한 마음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소중하고 또 어려운 것인가. 그녀는 그런 마음이 묻어나는 글을 써내려가고 있었고, 그렇게 살고자 애쓰고 있어보였다. 그녀의 글이 빛나는 이유다.
나는 낯을 가리면서도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좋아하는 모순된 성격의 소유자다. 그래서 이 만남이 예정된 후에 오래 기대했고, 기뻤지만 걱정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는 인터뷰를 청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하며 소설을 쓴다고 밝힌 바 있는 박해윤 필진에게 글과 소설은 무엇인지, 그리고 좋아하는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오랫동안 나눌 수 있어 즐거웠다.
이 만남은 아트인사이트 600번째 문화초대 ‘Project 당신‘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서면으로 적어준 답변 내용을 기반으로 실제 대화 내용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박해윤 필진님이 소개해준 작품들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다.
내가 박해윤 필진님을 만나보고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글의 링크를 함께 올려둔다. 그녀에 대해 더 알고싶다면 이 글들을 참고하길 바란다. ‘평등과 분리는 함께 갈 수 있는가?’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향한 고민이 묻어있는 글이고, ‘소년만화인 가담항설(웹툰)에서의 여성 캐릭터 활용에 대한 고찰’은 문화예술이라는 방식을 통해 연대하고 더 나은 사회를 꿈꾸려는 글이다. ‘휴학하고 소설 100페이지 쓰기’에서는 글에 대한 그녀의 애정과 노력이 드러난다.
2. 진실을 쫓는 걸 포기하지 않으면서, 약자들과 연대하기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스스로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 사람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소개되고 싶은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자신의 창작의 주요한 주제와 생각, 함께 소개되고 싶은 작품을 종합적으로)
진실을 쫓는 걸 포기하지 않으면서, 약자들과 연대하는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게 목표이다. 스스로 별명을 붙여줄 수 있다면 과일 ‘오렌지’로 하고싶다. 오렌지의 색감을 좋아한다. 붉은 색이랑 비슷해서 열정적이지만 그게 남에게 부담이 될 만큼 과하지 않고, 노랑색과도 가까워서 따스한 색감을 가진 것 같다. 또 오렌지는 향기를 숨길 수 없는 과일이니까. 열정적이면서도 사람에게 따스한 사람, 내면에서 나오는 향기를 숨길 수 없는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중이다.
<박해윤 필진이 분신이라 여기며 아끼는 캐릭터>
창작의 주요한 주제는 언제나 ‘타인’이다. 함께 소개되고 싶은 작품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인 소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인데, 말해야 할 사회주제를 담으면서 긴 서사를 통해 비판해야 할 대상을 정확히 보여주고 그럼에도 사랑을 놓지 않는 글이다. 나도 그런 글을 쓰는 게 목표다. 진심으로 <천개의 찬란한 태양>같은 작품을 쓸 수 있다면 단명해도 좋을 것 같다.
Q. 아트인사이트에서 글을 쓰게 된 계기와 이유, 기대하는 것이 있을까요?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매우 단순하다. 일주일에 한번은 강제로 글을 써야한다는 게 좋았다. 강제성이 가진 힘을 믿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게 되는 게 나에게 어떤 새로운 시작점이 될 것이고, 큰 자산이 될거라는 것을 바로 알았다.
그리고 아트인사이트에 들어가 봤을 때 ‘설리를 겨눴던 악플의 정체’와, ‘ "퀸덤" 전쟁의 의미를 전복시킨 나무들의 외침’ 이 두 글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읽었다. 나는 생각만 하고 표현할 생각을 못했는데 이 플랫폼에서는 저런 이야기를 쓰는 게 가능하다는게 좋았다. 아트인사이트라는 플랫폼에 신뢰가 생겼고 나도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가슴이 뛰게 된 경험이었다.
기대하는 것은 일단 소통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어준다는 걸 지표로 본 적이 있었고 에디터와 컬쳐리스트, 전문필진 사이에서도 활발히 글을 읽어줄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 분들의 치열한 사유를 읽으면서 성장할 수 있다는 것과 내 생각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오늘 인터뷰하게 된 것처럼 누군가는 내 글을 알아보고 궁금해할 수 있을것같다. 사유하고 글을 쓰는 사람끼리의 새로운 만남도 기대한다.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세요?
소수자를 타자화하지 않는 글. 권력구도를 전복시키거나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글. 희망과 선의 가치를 옹호하고 그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글. 마지막으로 필력을 담아, 글만이 해낼 수 있는 역할에 충실한 글. 그런 글을 쓰고 싶다.
Q. 박해윤 필진에게 문화예술이란 무엇인가요? 그 중에서도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야기는 나에게 생존과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연재하고 있는 에세이에도 나오는데, 어린 시절의 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 뒤로는 어린 동생들이 태어나면서 그들과 먼 길을 함께 가야할 때, 또는 그들이 악몽으로 잠들기 무서워할 때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줬다.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그런 이야기를 듣고 말하는 원동력은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또 소설은 나에게 삶이다. 소설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이해한다. 그리고 사랑을 한다. 글을, 타인을 세상을 그리고 나를. 평상시에 뭘 봐도 이게 소설 소재거리가 될까 많이 생각한다.
<박해윤 필진의 손 때 묻은 키보드>
Q. 휴학하고 100페이지 썼다던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쓰셨나요?
아무래도 판타지 장르문학이다 보니 소재는 너무 부끄러워서 말을 못해주겠다. 대신에 쓰고 싶었던 주제만 이야기를 해보겠다.
일단 첫 번째로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동등하지 않은 위치에서 사랑이 가능한가?’였다. 그 당시 내 친구들이 남자친구로부터 가스라이팅과 데이트 폭력을 겪는 일들이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같았다. 널 사랑하니까. 누군가에겐 폭력인 행위가 그들에겐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걸 보고 사회적으로 이미 권력관계가 뚜렷한 상황에서 동등한 사랑을 하는 것은 가능할까 궁금해졌다. 내 소설에도 판타지적 설정에서 계급이 나온다.
두 번째로 던지고 싶었던 주제는 운명의 힘에 대한 것이었다. 이야기에서 운명이란 너무 거대해서 거스르는 게 불가능한 힘인 동시에 아주 로맨틱한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나는 운명이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설정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신의 뜻으로 이뤄지는 것 중에는, 신의 언어라기엔 소수자들을 타자화하거나 그들을 배제하는 메시지가 많다. 하지만 추종자들은 신의 말씀이기 때문에 어떤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소설에는 운명을 믿는 남자 주인공이 진리라 믿었던 운명에 질문을 하게 되는 연출이 나온다.
Q. 소설을 쓰는 사람, 이야기를 쓰는 사람, 나아가 글을 쓰는 사람(작가)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신가요?
<박해윤 필진이 좋아하는 사진 - 사과라는 한 품종에도 이렇게 색과 모양이 다양하다>
타자/ 미지성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고 싶다. 옛날 이야기를 보면 마녀와 계모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그 이야기가 만들어질 중세 무렵에 노인 여성, 과부여성이 사회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하는 소수자들이고 타자화 되기 쉬운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쉽게 악마화(마녀화)가 이뤄질 수 있었다. 또한 악역으로 등장하는 계모는 그 당시 모성신화의 믿음을 극대화하기 위해 쓰였고, 마녀는 수동적인 여성인 공주가 긍정적으로 그려지기 위한 반대 역할로서 쓰였다. 나는 이것이 결국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시스템의 비주류, 이방인, 타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두려움은 미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를 바탕으로 미워하기는 쉽다. 하지만 작가라면 소외된 존재들을 궁금해하고 알아봐준 뒤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미지성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어차피 나도 나를 모르고 이 세상엔 다 불완전것 투성이고 다 아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작가라면 그 미지성을 평생을 쫓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한 것을 전복시키거나 그에 대한 질문을 해봐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전달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 개인적인 바람을 더하자면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진실을 말하는 것을 덜 두려워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충실하게 사랑하는 마음 따뜻한 작가가 되고 싶다.
3. 박해윤 필진의 Pick!
<소설>
앞에서 말한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가장 좋아한다. 어두운 사회문제에 침묵하지 않는 소설이면서, 그 메시지를 강요하기보다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힘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 마음속에 스며들게 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그 소설을 읽으면 긴 서사가 발휘하는 힘이 어떤 건지 느낄 수 있다.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에 대한 묘사였다. 이야기에서 남자 아이가 가부장적 시스템을 등에 업고 자신의 어머니와 누나를 곤란에 빠트리게 하는 짓을 한다. 하지만 소설은 ‘아이’를 단죄하지 않고 비판해야 할 대상을 정확히 보여주도록 묘사에 공을 들였다. 독자가 아이-개인을 미워하게 만들기가 더 쉬웠을 텐데 말이다. 절망에 빠질 정도로 소설 안의 상황이 처참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을 사랑하는 걸 멈추지 못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천개의 태양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그런 소설이라고 느꼈다.
<영화>
위플래쉬, 예술가라면 한번쯤은 고민해 봤을 주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 대중들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강렬한 서사를 몰아붙이는 그 힘에 감탄해서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영화이다.
어스,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질 때 그걸 위해 사용한 소재가 굉장히 기발하고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극대화시키는 연출에 감탄했다. 그리고 개연성 없는 부분도 존재하지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걸 표현하기 위해 그걸 밀고 나가는 뚝심이 좋았다.
라라랜드, 좋아하는 이유가 많은데 딱 하나만 꼽자면 감독이 하고 싶은 걸 다한 게 보이는 영화라서 사실 부럽다. 오프닝 시퀀스를 보면 굉장히 환상적이라 영화에 앉아서 처음 볼 때 느낀 기분이 지금도 다 기억이 난다. 오프닝이 끝나고 감독이 벌써부터 부러웠다. 하고 싶은 걸 자신의 역량을 다 쏟아부어 해낸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웹툰>
가담항설. 인물에 부여하는 서사가 좋았다. 말과 감정의 가치를 믿는 것이나, 악역에 대한 태도도 놀라웠다. 특히 악역의 서사에도 맥락을 담아낼 수 있도록 공을 들이는데, 결국 그렇게 공들인 서사를 반박하고 희망과 선을 말하고자 한다.
[김인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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