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휴학하고 소설 100페이지 넘게 쓰기 [사람]

전문가가 되기까지 포기하지 않을 길
글 입력 2020.02.05 18:16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9페이지의 소설


 

[크기변환]20200205_180522.png

공백 제외 글자 14만3천6백자

200자 원고지 기준 1064장

A4 쪽 기준 139 페이지

 

 

2020년 1월 16일, 1년간 준비한 장편 소설을 완결 냈다. 소설 마지막 장에 찍혀있는 139페이지라는 숫자를 보며 나는 잠시 멍하니 앉아있었다. 작년 3월부터 시놉시스를 쓰고 5월부터 8월부터 중반까지 쓰다가, 9월부터 스터디를 시작해 1월까지 쓰고 갈아엎기를 반복했다. 2019년 3월부터 머릿속으로만 존재했던 결말을 2020년 1월에 보게 된 게 순간 실감이 나지 않았다.

 

 

[크기변환]KakaoTalk_20200205_181218016.jpg

 


공모전 마감일에 소설을 우편으로 부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내가 139페이지의 소설을 어떻게 완성시키는 게 가능했는지 기록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이다. 날 그렇게 쓰게 만든 게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내가 어떤 생각과 태도로 글을 임했는지 정리하고 싶었다. 그건 결과와 상관없이,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내가 배운 것들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2019년 3월의 나는 한번 장르문학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전부터 고민했던 주제와 소재들을 차차 정리해나가고 시놉시스를 따라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서 쓰려니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때 장르문학 공모전 공지를 보게 되었다. 그걸 본 나는 동기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고, 같이 공모전을 준비할 사람들을 모았다. 공모전에 도전하는 동기들을 중심으로 스터디가 만들어졌다. 스터디 멤버들끼리 단체톡방을 만들어 매일 글을 썼다는 걸 인증해야 한다는 규칙을 정했다. 그러자 나는 일주일에 한번 합평을 받는 날을 위해, 그전과는 달리 엄청난 분량의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를 무너뜨리고 다시 세워야 하는 괴로움


 

아마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알 텐데, 글을 쓰는 데에는 당연하게도 고통이 수반된다. 날 가장 힘들게 했던 때는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장면은 있는데, 그걸 써낼 역량이 내가 안 될 때였다. 극단적으로 비유하자면 내 머릿속 소설 장면에서는 천만 대군이 필요한데, 내가 그리는 사람의 형태는 졸라맨 수준인 상황인 것이다. 이 고통은 완결에 가까워질수록 크게 느꼈다. 완결이 가까워지니 전투신 같은 난이도 높은 장면들을 많이 써야 했다. 그걸 쓸 내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자, 내 손바닥에 땀이 가득 고이던 그때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글을 거의 새로 쓰는 수준으로 수정해야 할 때 느끼는 고통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쓰는 소설 안에 캐릭터가 너무 많아서 헷갈린다는 지적이 공통적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캐릭터를 줄이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 처음엔 부정하고 싶었지만 내 소설을 다시 읽을수록 그 피드백이 맞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주연급인 캐릭터 두 명을 삭제하고, 그들의 역할을 다른 캐릭터에게 주었다. 문제는 이렇게 수정하기 위해서는 그 비중 높은 캐릭터들의 분량을 다 삭제하고, 남아있는 캐릭터를 적재적소에 비치해야 했다. 그렇게 수정해서 아예 새로 쓴 페이지는 최소 30페이지다. 또한 내가 애정 하는 캐릭터 둘이 소설 완성도를 위해 아예 삭제한 것도 마음이 아픈 일이었다.

 

괴로운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스터디를 하면서 많이 상심하기도 했다. 스터디를 같이 하는 한 언니는 장르문학 쪽이 적성이 맞았는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나와 다른 동기 언니가 합평할 때마다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매주 부족한 점을 지적받았고, 그럴수록 잘 쓰는 동기 언니 옆에서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남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나도 한 주만이라도 비판을 안 받고 칭찬만 듬뿍 받아보고 싶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중에서 동기들로부터 가장 크게 받은 지적은 이것이었다. 첫째, 로맨스가 전혀 설레지도 않고 심지어 둘의 감정선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둘째, 전투신을 묘사하는데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 그래도 나름 열심히 써갔는데, ‘다시 쓰는 게 좋지 않겠니’라는 식의 피드백을 받으면 우울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스터디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 내내 마음 한구석이 휑했다.

 

[크기변환]photo-1562101532-515caad54d6a.jpg

 


장편 소설을 쓰면서 나는 글을 쓰는 일은 젠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라는 젠가에서 블록을 하나씩 빼서, 글이라는 새로운 탑을 쌓아야 했다. 하지만 내가 단단하지 못하고 블록이 많지 않으면, 글을 쓰기 위해 내 블록을 하나씩 뺄 때마다 내 존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이라는 젠가탑을 완성해서 사람들에게 보였는데, 그 공들인 탑을 무너트리라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새 탑을 쌓아야 했다. 우울함에 의욕이 꺾이려 할 때마다 나는 일부러 이렇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는 내가 부족한 점을 알면, 적어도 그게 나아지는 게 보일 때까지 계속 노력하는 사람이야. 다음 주에 만날 땐 훨씬 좋아졌다는 말을 꼭 듣고 말겠어.



[크기변환]KakaoTalk_20200205_175515296.jpg

 


애통해하고 허탈해하는데 시간을 쓰는 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내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그걸 메꾸기 위해 공부들을 시작했다. 로맨스 장르인 작품들을 추천받아 열심히 읽고 좋았던 장면이나,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어떻게 감정선을 나누는지 하나하나 기록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투신도 마찬가지로 여러 작품을 찾아보며 그런 식으로 공부했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수정에 들어가자, 나는 내가 만족할 정도의 완성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00205_180826283.jpg

최종_최종의최종_진짜최종

 

 

소설을 완결하면 후련할 줄 알았더니 웬걸, 퇴고라는 마지막 고통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퇴고는 글을 아예 새로 쓰는 일보다도 재미가 없는 일이었다. 이미 몇 번을 읽은 글을 또 읽고 오타나 비문을 점검하는 일은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공모전 끝난 뒤에 동기 언니들과 만나서 한 말이 이 짓(퇴고)을 두 번은 못하겠다,였다. 그런데 퇴고의 묘미가 있다. 바로 더 나은 글이 되어가는 게 실시간으로 내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분명 같은 사람인 내가 쓴 건데, 예전에 쓴 초반부부터 보면 문장이 부족한 게 확 보였다. 그래서 퇴고를 하면서 나는 안도할 수 있었다. 글을 고칠 수 있다는 건, 안목과 실력이 늘었다는 증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만약 공모전에서 떨어지더라도 미래의 내가 이 소설을 더 좋게 고쳐줄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나를 계속해서 쓰게 한 것들


 

나를 계속해서 쓰게 한 요인 중 첫 번째는 두 말할 것 없이 나와 함께 한 동기들이다. 피드백은 긍정적인 내용이든, 부정적인 내용이든 결국 모두 나에게 도움을 주었다. 긍정적인 피드백은 날 더 많은 분량을 의욕적으로 쓰게 했고, 부정적인 피드백은 더 좋은 퀄리티의 글을 쓰게 했다. 앞에선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상심했다고 썼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사실 그런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건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사람은 자신의 등을 못 본다. 언니들이 지적해주기 전까지 난 내 소설의 나쁜 점을 아예 몰랐다. 다 수정한 지금 되돌아보면 만약 피드백을 받지 못해, 그 퀄리티로 공모전에 냈을 걸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크기변환]KakaoTalk_20200205_182142687.jpg

 


그리고 단톡방에서 정해진 시간 안에 글을 쓴 걸 인증하지 않으면 지각비 · 결석비를 딱딱 걷었다. 그래서 더 부지런해지고, 그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카페에서 조각 케이크를 시켜 먹었다. 스터디가 끝나면 한주 동안 소설 쓰느라 고생했다며 주변 맛집을 꼭 다 같이 갔다. 스터디를 가는 게 단순히 스트레스가 아니었고, 기대되는 약속으로 변했다.


 

[크기변환]KakaoTalk_20200205_174703928_01.jpg

 

 

두 번째는 단단한 나의 일상이다. 나는 스터디를 시작한 9월부터, 글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전 알바를 끝내고 점심을 먹은 뒤엔 노트북을 들고 2-3시쯤 카페를 갔다. 그리고 카페 마감 시간인 밤 10시 반까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카페에서 짐을 두고 자리를 오래 비우는 건 폐가 되므로, 아예 저녁을 굶었다. 그렇게 2020년 1월까지 매일매일 카페에 가서 글을 썼다. 그게 습관이 되자 이런 일이 있었다.

 

완결이 코앞이었을 때, 나는 아마 글을 다 쓰는 날짜가 금요일이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목요일에 정신없이 쓰다 보니 그날 안에 에필로그까지 다 쓴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냥, 매일 쓰다 보니까 어느새 완결이 되어 있는 것이었다. 완결하고 나서 나는 내가 자만심에 취해 완전히 작품에 손을 놓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몸에 밴 일상은 날 그렇게 두지 않았다.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완결 후 일-이 주 동안은 퇴고를 위해 또 저절로 카페로 발걸음이 향해졌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안다는 것


 

내가 이 과정으로 가장 크게 얻은 자산은 나를 알게 된 것이다. 내가 글을 쓰는 걸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말로만 하는 사랑은 진정성이 없다. 사랑하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글에게 사랑한다는 표현을 행동으로 실천했다. 연인에게도 사랑 편지를 A4로 136페이지 쓰기는 힘들 텐데, 나는 일단 글에게 그런 표현을 했다고 생각한다.

 

공모전에서 수상하지 못할지라도 크게 상심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이미 내 인생에선 대상감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엔 이걸 뛰어넘는 소설을 또 써야겠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최선의 결과물을 제출했다. 이렇게까지 긴 시간과, 많은 노력을 쏟아 작품을 완성시켜 본 적이 없었다. 그걸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기로 했다. 그리고 이왕 쓰는 거 완결을 해서 제출하고 싶다는 스스로와의 약속도 지켰다. 작년 5월쯤 큰 플랫폼에서도 장르문학 공모전이 열렸었는데, 그때는 분량을 다 채우지 못해 아예 제출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엔 분량에 맞춰 소설을 제출했다. 그렇다면, 이제 그다음에는 만약 여기서 떨어지더라도 연재를 해볼 수도 있고 다른 공모전에 제출해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어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신춘문예에 소설을 투고하곤 했다. 하지만 심사평에 내 작품이 언급도 되지 않는 걸 보며, 나는 앞으로 정말 수많은 불합격을 만나겠구나 예감했다. 그래서 최근에 동기 언니와 식사하면서 ‘우리가 등단하여 작가는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대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장편 소설 쓰기를 하면서 나는 나도 몰랐던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대화 끝에 나는 주저 없이 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그런데 나는 언젠가는 분명 작가가 되어 있을 것 같아. 왜냐하면 나 내가 스스로 글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걸 위해 지금 또 얼마나 많이 쓰는지 알거든. 나는 내가 등단을 못해도, 여흔이 되든 아흔이 되든 계속 글을 쓰고 있을 게 그려져. 그렇게 계속해서 써간다면 꿈을 완전히 이루진 못해도 분명히 내가 바라는 모습에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크기변환]KakaoTalk_20200205_200415319.jpg

반질반질 손때가 묻은 나의 키보드

 

 

 

박해윤.jpg

 


[박해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응원하고 싶어요. 글 쓰다 지치는 나날이었는데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에 슬픔보다는 기쁨이 더 많길 바랄게요!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