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평등과 분리는 함께 갈 수 있는가? [문화 전반]

중앙일보가 공식 SNS에 노키즈관에 대한 설문조사를 올린 걸 보고
글 입력 2019.12.03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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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 대 퍼거슨 사건을 알고 있는가? 플래시 대 퍼거슨 사건은 플래시가 백인 열차 칸에 있다가 유색인종 열차 칸으로 옮겨가라는 차장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체포된 사건이다. 플래시는 인종차별을 금지한 수정헌법 13조와 14조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연방 대법원은 '분리하되 평등한' 시설이라면 인종을 분리해도 평등 조항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흑백 분리정책을 법적으로 정당화했고, 이 법적 논리는 58년의 긴 세월 동안 유지되었다.

 

지금 시선으로 보면 이 판결이 얼마나 위헌적이고, 인권 침해적인지 모를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판결이 내려졌던 걸 보면, 그 당시에는 저 ‘분리하되 평등하면’ 결국 ‘평등’하다는 생각이 사회에서 상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전부터 이 지점에 대해서 질문하고 싶었다. 분리하면서 평등하다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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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중앙일보에서 영화관에서도 노키즈관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저 설문조사에 응한 이들 중 70% 이상이 노키즈관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저 게시글을 보고 나는 저 질문을 다시 한번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출입 금지 대상이 된다는 것.


 

 

“토론 주제 중에 동성애자 찬반 이런 주제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존재 자체가 찬반의 문제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나는 여성에 찬성, 반대합니다. 나는 장애인에 찬성, 반대합니다로 바꿔보면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학창시절 교양 토론 수업에서 본격적으로 토론을 하기 전에 교수님이 주의사항으로 하셨던 말씀이었다. 존재 자체가 찬반의 주제가 될 수는 없다. 그 말이 오래도록 나의 마음에 남았다. 노키즈존은 ‘아이’라면 아예 출입이 금지된 장소이다. 아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성인이 될 수 있는 존재는 없는데 말이다.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는 지성과 예절을 겸비한 성인으로 짠! 하고 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아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나이로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데도 출입을 금지당하는 것이다.

   

노키즈존이 생겨야 한다는 근거 중 하나는 이것이다. 아이들이 너무 시끄럽고 예의 없게 행동에 주변에 민폐를 끼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 중에 예의 바르고 민폐를 끼치지 않는 아동은 없다. 아이는 본래 실수하기 쉽고, 주변 분위기를 읽는데 능하지 않고, 자신의 욕구가 이성보다 더 우선인 존재다. 특정 연령대의 출입을 아예 금지하는 것은, 그 대상이 그 대상 다운 모습으로 있기를 거부한다는 것이고 이는 결국 존재를 지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중앙일보는 ‘존재’에 대한 찬반 논의를 게시물로 올린 것이다. 이것에 대한 기사들을 찾아보다가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과 부교수의 주장에 공감하기에 그의 주장을 인용해왔다.

 

 

“노키즈존 문제를 이분법적으로 설치할지 여부로 접근하게 되면 프레임 자체가 설치하자는 쪽으로 답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찬성이냐, 반대냐'라고 묻는 질문은 이 문제에 대한 성찰 가능성을 빼앗아버리는 위험이 있다.”

 

 

   

 

노성인(청년,중년,노인)존은 없는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성


 

중앙일보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설문조사 결과를 보고 예상한 결과라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이 설문조사엔 아이들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일단 아이들이 페이스북 계정을 갖고 있을 리도 만무하고, 노키즈존의 정의부터 모를 가능성이 크다. 아이를 출입금지 할지 말지에 대한 논의에서, 그 직접적 대상이 되는 존재는 그 논의의 장에서 발언 하나 할 수 없다. 이 설문은 마치 백인들에게 흑인들을 출입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아닌가요?라고 물어본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제대로 항의할 수 없다. 아이는 당연히 투표권도 없고 그들의 말은 미숙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노키즈존을 만든 사람들은 아동을 출입 금지해도 그들은 항의할 수 없고 "아, 그래요?"하고 돌아나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자. 영화를 볼 때 속된 말로 관크를 하는 사람이 아이뿐인가? 필자의 경험으로는 핸드폰을 계속 확인하는 사람, 계속해서 대화하고 웃던 커플, 의자에 신발을 벗은 발을 올리는 관객 등 성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이런 소수의 사람이 존재한다고 노성인(청년, 중년, 노인)존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내면 사회에 더 받아들여지는 존재이면서 돈을 내는 소비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즉, 노키즈존은 약자들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역사상 흑인 전용 화장실은 있었지만 백인 전용 화장실이 없었던 이유와 같다. 분리를 하는 쪽은 항상 분리되는 상대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너희가 더러워서, 시끄러우니까, 미천한 존재니까. 홀로코스트 정책이 그랬고, 흑백 분리정책이 그랬다.

 

다시 한번 묻겠다. 평등과 분리는 함께 갈 수 있는가? 내 의견은 No다. 분리하는 쪽은 분리당하는 존재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그 존재를 소외시킴으로써 권력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건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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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차별을 통해 쾌적함을 추구하는 노키즈존이 당연시 여겨지는 사회에서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뭔가를 결정할 때가 올 거다. 그때 서로 불편을 감수해가며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가 아니라, 간편하게 불편을 제거하는 사회가 되지는 않을까.”

 

   

<페미니즘 리부트> 저자인 손희정 문화비평가가 한 말이다. 현재 우리들은 성인으로서 이 사회의 기득권이라고 해도, 다쳐서 신체의 한 부분이 기능을 못 할 수도 있고, 언젠가 노인이 되면 분명 몸도 약해질 것이다. 우리는 언제든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처지가 될 수 있다. 그때 우리의 존재가 쉽게 격리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일까. 노키즈존으로 손쉽게 불편을 제거하는 사회를 배운 아이들이 약해진 우리를 격리할 것이라 할 때 우리는 뭐라 항변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우리들 모두 어린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라면서 수많은 민폐를 끼쳤을 것이고, 그 동시에 그만큼 많은 주변의 도움을 받으며 성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노키즈존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개인적으로 내 마음이 아팠던 이유는 이 논의가 영화 ‘겨울 왕국’이 개봉하면서 활발해졌다는 것이었다. 이 영화는 명백히 아동을 타깃으로 한 영화이다.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한다는 디즈니 영화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들이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길, 공간을 나눠 쓰길 거부한다면 아이들은 대체 어디서 꿈과 희망을, 배려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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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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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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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ta
    • 평등과 분리는 함께 갈 수 있는가? 라는 물음에는... "함께 가야만 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며, 완전한 평등따윈 환상에 불과하죠. 분리가 평등을 저해하는 행위라면, 뉴스카테고리도 없애야 하고, 남여 화장실도 통합하고, 온세상 사람들이 다 한집에서 살아야 하며, 개인적인 정보는 일체 삭제해야겠지요. 우리모두가 하나이자 전체가 되면, 그때쯤에는 평등해 졌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평등과 분리는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게 어려운거지요. 분리와 평등이 함께 갈수 없다 단언하는 것은 너무 '간편하게 불편을 제거'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출입 금지 대상이 되는 것은... 이미 흔합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남탕에 여자 출입금지. 여자화장실에 남자 출입 금지. 관계자가 아니거나, 남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장소에 못 들어가는 겁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나쁜행동을 한다고 판단하기도 전에 출입금지를 당하는 겁니다. 왜?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죠. 이건 불평등일까요?
      (애초에 '동성애자 찬반'이라는 예시는 왜 끼워 넣은 것인지 의미 불명입니다. '아동 찬반'에 대한 예시라면 맞겠지만, '노키즈존'이라는 특정 구역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동성애자 찬반'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아동의 존재를 부정한다는 것과 왜 연결시키는 걸까요?)
      아이 중에는 예의바른 아이도 있고 아닌 아이도 있습니다. 실수하는 아이도 있고 아닌 아이도 있죠. 이 글은 아이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 것 같아 좀 씁쓸하네요. 뭐...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고, 노키즈존의 시작은 '아이를 배척하자'가 아니라 '엄마충','아빠충'을 배척하자 입니다. 아이는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부모가 그래서는 안되는 거지요.

      노성인존은 없습니다. 법과 규칙이 있기 때문이죠.
      법을 어기면 처벌을 받고, 규칙을 어기면 특정 구역에서 쫒거나기도 합니다. 권리가 있으며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있습니다. 반면 어린이들은?
      어린이들은 부모가 대신 책임을 집니다. 법정대리인으로서 말이죠. 그런데 ~충들은 책임을 지기 싫다고 하네요.
      네! 그래서 '노키즈존'이라는 것이 하나 둘 생겨났지요. 단어에 키즈가 들어갔을 뿐, 거절하는 것은 개념없는 부모쪽이지요. 그 수가 너무 많다보니, 영업을 하는 사람들이 노키즈존을 외치게 된 것이구요. 'no no성인 존'이라 하긴 이상하고, 'no엄마충 & no아빠충 존'이라 하기도 이상하니... 결국 순화한게 '노키즈존'이라는 겁니다. 뭐... 확실히 피해자는 키즈들이지요. 못난 부모들 덕분에 저런 단어가 생겼으니...

      페미니즘이 남성혐오의 대명사가 된 와중에, 관련 도서의 인용글이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습니다.
      필요할때만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를 외치는데, 무슨 설득력이 있을까요.
      더불어 이 글은 과연 서비스업종의 시선에서는 생각을 해 봤을까 의문이 드네요. 평등을 위해 특정 집단이 피해를 보는게 과연 진정한 평등인가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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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바다
    • 2019.12.05 03: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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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ta안녕하세요 tta님

      맞습니다. 세상은 원래 불평등하며, 완전한 평등은 환상에 가까운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이 세상에 평등을 추진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저희가 현재 행할 수 있는 수많은 권리들은 저희들에게 주어질 순서가 영영 오지 않았을 것일 테니까요. 이 글에서 말하는 분리가 없는 세상이란, 세상을 그래서 다 통합하자는 요지의 분리가 아닙니다. 모두가 함께 쓰기로 사회적으로 합의된 ‘공공장소’와 ‘시설’에서 특정 존재를 분리하는 것이 과연 평등한 것이냐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문에 버스와 열차에서 좌석이 분리되어 있고, 백인 칸에 앉았다는 이유로 내쫓겨야 했던 흑인의 사례로 글을 시작한 것입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출입금지가 되는 사례로 일단 화장실을 들어주셨는데, 명확히 해야 할 점은 화장실은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부터 여성/남성을 ‘분리’하기로 사회적으로 합의된 시설이었고(tta님이 예시로 들어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죠), 관계자 외 출입금지 시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위험하다는 이유나 보안이라는 타당한‘맥락’이 존재하고(노키즈존은 아이들이 시끄럽다는 맥락이 있지만 저는 아이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보기에 이 맥락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고, tta님도 말씀하셨기에 말 줄입니다.) 식당이나 시설이 만들어질 때부터 분리된 장소로서 사회적으로 합의되었기에 처음부터 그렇게 지어진 시설입니다. 그리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 장소는 식당이나 영화관과는 달리 그 곳에 못 들어가면 음식이나 영화 서비스를 대접받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노키즈존은 다릅니다. 본래 모두가 이용할 수 있기로 한 사회적 의미가 담긴 시설에 ‘아동’이라는 약자, 소수층을 배제하기로 후에 결정되고(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당연히 아동은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 뒤로부터 그들의 출입을 막는 것입니다. 관계자 출입금지 시설을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노키즈존에 아동이 들어가게 해달라는 요구와는 다른 무게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직원들이 일을 하기 위해 사용되기에 직원이 아닌 사람들은 그 ‘의무’(일)를 수행하기 위한 장소를 갈 일이 없습니다. 반면에 노키즈존은 주로 식당과 영화관인데 돈을 냈기에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음에도 ‘아동’이라는 이유만으로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대해 이게 불평등하지 않냐고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또한 그래서 존재에 대한 차별이라고 쓴 것입니다

      동성애자 찬반을 넣은 이유도 존재에 대한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에게 아이에 대한 선입견이 강한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씀하셨죠. 노키즈존은 아이를 배척하자가 아니라 ‘엄마충’ ‘아빠충’을 배척하자고 시작되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엄마충, 아빠충을 배척하자는 것의 전제는 결국 아이가 어떤 폐를 끼쳤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아이가 예의바르고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면 엄마충, 아빠충 워딩이 생길 일이 없었겠지요. 이 인과관계는 분명 명확합니다. 아이가 민폐가 아니라 단순히 성인 여성, 남성이 잘못했다면 ‘엄마’충, ‘아빠’충이라는 말이 아닌 다른 혐오표현이 대체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아이라는 맥락을 떼놓고 볼 수 없습니다.) 아이는 무조건 예의바르지 않다를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고 아이들 특성상 성인들이 원하는 예의범절 기준에 부합할 가능성이 낮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노엄마충아빠충 존 이라고 하기는 왜 어려울까요? 워딩이 긴 것도 분명 있을 테지만, 그런 공간을 만들고 저런 제목을 붙이면 이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들이 다 항의를 할 것입니다. ‘왜 일반화를 시키냐면서’ 말이죠. 국민청원이 올라올 수도 있고, 불매운동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 여파로 그 시설은 폐쇄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역으로 묻고 싶은 것입니다. 노‘키즈’존 이라고 할 때 tta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의바른 아이도 있고 아닌 아이도 있는데 왜 일반화를 하여 ‘키즈’(아동)이기만 하면 출입을 거부하는 건 가능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이들이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제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아이들은 국민청원을 올릴 수도 없고, 투표권도 없고, 자의로 불매운동을 일으키기 어려울 것입니다. 키즈존워딩을 순화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건 순화가 아니라, 차별하기를 더 쉬운 방법을 택하여 언어화를 한 것입니다. 노성인존(또는 tta님이 말씀하신대로 노엄마충아빠충존)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는 명백히 그들이 소비를 하는 주체이자,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노키즈존을 차별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약자를 향해서만 분리가 이루어지니까요.

      페미니즘이 남성혐오의 대명사라고 tta님께서는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저는 페미니즘이 이 사회에 나오게 된 맥락과 운동이 가지는 의의에 동의합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가치관이 너무 다를 것이라 생각해 말을 줄이겠습니다.) tta님께서 필요할 때만 함께 살아가는 존재입니다를 외치는데 무슨 설득력이 있냐고 하셨습니다. 그 부분을 읽고 tta님께서는 이 사회에서 혼자서 알아서 성장하신걸까? 조금 의아했습니다. tta님께서 이렇게 글을 읽고 사유하고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신 데에는 이 세계가 함께 살아가는 세계이기에 가능했습니다. 만약 각자 알아서, 사는 양육강식, 정글 같은 세계라면 권력과 부를 가진 자만이 글을 사유하고 쓸 수 있을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겁니다. 함께 살아가지 않는 세계였다면 귀족들은 저희와 학교 다니기를 거부했거나(마치 19세기에 백인들이 흑인들과 같은 대학교를 다닐 수 없다 한 것처럼), 소득 몇분위 이하의 사람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다 정책이 이미 존재할 것입니다.

      서비스업종의 시선도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글에서도 썼듯이 진상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런 소수의 진상들로 인해 성인들이 출입금지를 당하지 않듯이, 그 이유로 존재의 출입 자체를 금하고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하는 건 차별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등을 위해 특정 집단이 피해를 보는 게 과연 진정한 평등인가, 라고 말해주셨는데 이 논리가 성인들의 갑질로 인한 서비스업직종들이 피해를 볼 때 그러면 성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담론으로 이어지지는 않는지도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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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ta
    • 2019.12.05 14: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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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ta두서없이 쓴 글에 대해 정성껏 답글을 달아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기존에 아트인사이트 글에 댓글이 없다보니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피드백을 받을 수 있어 기쁩니다.

      일단 사회적 합의된 '공공장소'와 '시설'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저는 노키즈존에 해당되는 곳을 하나의 '영업장'으로 봤기 때문에 의견이 갈린 것 같습니다. 저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을 '공공시설물'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곳에서 '노키즈존'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공기업이 사람을 가려 받으면 국가적 차별이 되지요. 그러나 '노키즈존'이 설정되는 곳들은 엄연히 특정 사업자의 '영업장'입니다. 대한민국에는 엄연히 업무방해죄가 있으며,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훌륭한 업무방해이지요. 편의점에서 노숙자가 쫓겨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영화관, 음식점에서 다른 고객에게 피해를 주는 아이가 있다면? 법정대리인인 부모가 쫓겨나는게 같은 맥락입니다. 아이는 놓고 갈 수 없으니 같이 나가야 겠지요.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다 보니 업체는 이미지하락을 감수하고서라도 '노키즈존'을 만들고 있습니다. 흑인은 말 그대로 존재자체로서 부정당했다고 본다면, 노키즈존은 개념없는 부모가 직접 만들어낸 업체들의 생존 전략입니다.

      화장실은 처음에 만들어졌을 때부터 남/여를 분리하기로 합의된 시설이라 하기에는 다른 나라에는 공용화장실도 많으며, 성평등의 일환으로 일부러 남여공용으로 만드는 케이스도 있다고 합니다. 애초에 제가 예시를 잘못든 것 같군요. 죄송합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은 서비스를 받는 곳이 아니니 상관없다고 하시는데, 고객이 돈을 낸 만큼 받을 서비스를 특정인의 업무방해로 잃고 있는 상황에서 업주가 그 문제를 배제하는 것은 또 타당하지 않다고 하시니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아이들은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의 법정대리인이자 책임자입니다.

      '아이'를 배제하는 것은 약자이기 때문이라 하시는데, 반은 맞습니다. 아이는 약자이며, 그에 따라 책임과 법정결정권도 부모에게 위임됩니다. (책임을 지지 않는 게 아닙니다. 아이는 사람을 죽여도 무죄인가요?) 노키즈존에 아이의 의견이 반영 안된 것이 아니라 부모의 의견으로 대신 반영되고 있지요. 그들은 노키즈존에 분명 반대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몫까지 말이죠. 반틈 틀린 부분은 '아이'를 배제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계속 반복해서 쓰고 있지만, '노키즈존'은 '아이'가 문제라서 생긴 게 아니라 '부모'들 때문에 생긴 겁니다. 영업주에게 "어떻게 노키즈존을 만들 수 있냐! 아이를 차별하지마라"라고 할 문제가 아니라, 부모들에게 "어떻게 아이를 방치해서 노키즈존 같은 것이 생기게 만들었냐!"라고 할 문제인 겁니다. [멀쩡하게 잘 육아를 하고 있는 부모나, 일반 고객이나, 영업주들 vs ~충 부모들] 이런 구도에서, 노키즈존이 아이를 차별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충들을 아이를 방패삼아 보호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동성애자 찬반 역시 저에게 뜬금없이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충 부모들을 배제하는 것에 대해 찬성/반대하는 것이 어째서 아이들의 존재의 인정과 연결되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기에)

      '결국 아이가 어떤 폐를 끼쳤다는 것' 이것이 분명한 인과관계라고 하시는데, '아이는 그럴 수 있다'고 동의 하셨으면서 여기서는 책임의 시작은 아이에게 있다고 하는 것이 또 이상합니다. 도대체 어느 쪽 인가요? 저는 글쓴이분이 아이의 인권을 위하는 건지 아이를 비방하는 건지 갈피를 못잡겠습니다.

      '엄마충/아빠충 금지' 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좋은 지적이십니다. 이 부분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잘못된 행태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충/아빠충의 또다른 발광이 두려워, 약자인 '키즈'라는 단어를 쓰고 있는 것이겠지요. 이 부분은 반성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그러나 '엄마충/아빠충 금지'라고 한다 해서 모든 부모가 반발한다고 하시는 것은 왜일까요? 오히려 '키즈존'의 경우가 모든 부모가 반발하는게 아닐까요? 개인적 의견으로는 주변에 엄마충/아빠충의 단어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면 해당하는 행태가 왜 잘못인지 모르는 부모라 생각해도 된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들까지 평등하게 보호한다면, 공공질서를 지키게 하는 부모를 바보취급하는 것 같아 달갑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엄마충/아빠충은 일반화가 아닙니다. 예의없는 행위의 특정부모들을 지칭하는 말일뿐이죠.

      물음에 대한 답변을 다시 드리자면, '노키즈존'은 '아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몰상식한 부모 몇몇 때문에 멀쩡한 부모까지 출입이 제한되는 상황이며, 해결을 위해 특정 부모들의 예절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는 상태입니다. '키즈'라는 단어의 잘못된 사용일 뿐, 본질은 '노 엄마아빠충'일 뿐입니다. 어른들이 개선되어야 할 문제를 아이의 존재 인정까지 확대해서 커버치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노키즈존'은 좋지 않은 단어이며, 없는 것이 당연히 좋습니다. 그러나 그건 부모의 변화를 통해 이루어야 할 숙제이지, 아이의 존재를 방패삼아 어영부영 없애서는 안 될 일입니다.

      페미니즘에 동의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저 역시 가치관이 다르니 말을 줄이겠습니다.만은... 저는 '페미니즘이 필요할때만 함께 살아가자고 주장한다'라고 했지 제가 아무 도움 없이 살아왔다는 소리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자라났고, 주변 환경에 감사함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아니면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했었나요? 어째서 사람을 갑자기 혼자자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건지 조금은 화가 납니다. 당연하지만 정글이니 귀족이니 흑인이니 교육이니 하는 말들은 저도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성인들은 출입금지 당하지 않는다? 카공족을 금지한 카페는 아동대상일까요? 노숙자들은 모두 아동일까요? 일본인들 금지는 일본 아동금지일까요? 이것들이 옳고그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성인 역시 출입금지 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성인자체가 안되는 경우는 '청소년클럽'이라는 곳도 있다군요. 이건또 원래 그렇게 약속했으니 예외인가요? 그 약속은 누가 하는겁니까? 감히 서비스 업주가 특정 사람만 받다니 용서하지 못할 일이군요. 여성전용 숙박? 남성전용 모임? 자고 노는데 감히 남여차별을 하다니... 욕을 먹어도 싸지요.

      성인들의 갑질로 나오는 제한 담론은 카공족이든, 고객전화 욕설, '49세 이상 손님은 받지 않습니다','맘카페 손님 거부', '유튜브 촬영자 거부' 등등 널리고 널렸습니다. '아동'이 아닌 '성인'이란 이유로 알아서 하란 식으로 잘 주목받지 못할 뿐이지요. 성인들 대상으로 이상한 제한이 걸린 가게도 많지요. 남성은 음료가격의 ~% 더 받는다는 카페도 있고, 여성 목욕탕에는 수건을 채워넣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고... "성인은 아동매뉴 못시킴!"이런 건 의외로 역차별로 볼 수도 있겠네요.

      요약 : 노키즈존은 좋지 않은 문화이다. 그러나 없애라고 강요할 권리는 없다. 업주가 아닌 입장에서야 쉬워보이지 결코 간편하게 불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다. 업주는 많은 '멀쩡한' 부모아이 손님을 잃고, 이미지의 타격을 감수한다. 아이는 실수 할 수 있다. 나쁜 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부모이며, 이것은 성인 간의 문제이다. ('노키즈존'에 아이이가 들어오면, 아이부터 쫓아낼까? 부모를 먼저 찾을까?) "아이니까 괜찮아~"는 피해자가 할 소리이지, 피해를 주는 아이의 부모가 할 소리가 아니다. '키즈'라는 단어의 사용에 대해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사과해야 한다. 몰상식한 부모를 명확하게 지칭하여, 그들이 개선되도록 해야한다. '노키즈존'에 아이의 존재를 부정할 의도는 없다. 그러므로 흑인 차별문제, 동성애에 관한 교수의 당연하게 맞는 말, 페미니즘의 그럴듯한 한마디는 '노키즈존'문제와 관련이 없으며, 아이의 존재를 인정해 달라는 논의도 필요없다. (이건 태생적으로 아이를 싫어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할 논의이다.) 노키즈존에 문제의식을 가진다면, 용어의 변경 & 멀쩡한 부모와 부모충을 명확하게 나누어 업장에서 제한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ps. 댓글 수정을 하니 <br>이 들어가는 오류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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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바다
    • 2019.12.06 23: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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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ta안녕하세요 tta님.

      일단 에디터가 글을 피력했는데, 거기에 댓글을 달아주셨다면 당연히 답글을 달아야 한다는 게 저의 생각이었는데, 이거에 감사 인사를 받게 될 줄은 몰라서 놀랐습니다. 저도 답글 이후로 이렇게 긴 분량으로 답답글을 달아주신 tta님의 열정과 토론하고자 하는 지성인다운 면모에 놀랐습니다. 저는 그동안 해야 할 일이 있었어서, 지금 시간에서야 댓글을 확인하고 바로 답글을 답니다. 이렇게 열정적이고 긴 답글을 달아주셨는데 늦게 답을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이런 열정을 보여주신 만큼 저도 최대한 답글로 피력을 해보겠습니다.

      일단 영업방해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맞습니다. 업무방해를 하면 쫓겨납니다. 하지만 여기서 들어주신 예시부터 ‘노키즈관’과는 다른 차별점을 가집니다. 편의점에서 노숙자가 쫓겨나는 것이 노키즈관과 다른 이유는 노숙자가 쫓겨날 때는 노숙자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노키즈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동이기만 하면 ‘출입 자체부터’ 막히는 것입니다. 저는 현재 편의점 알바생을 하고 있는데 솔직히 진상의 90퍼센트는 술 취한 아저씨들인데도, 저는 중년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처음부터 출입을 막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노키즈관은 그런 일이 버젓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아주 큰 차이를 가집니다.

      그렇죠, 개념 없는 부모로 인해 다른 고객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는 일이 빈번하니 이런 논의가 나온 것이겠죠. 노키즈존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아마 대부분 “나도 돈을 냈고, 나는 조용한 환경에서 쾌적하게 영화를 볼 권리가 있다.”라는 의견을 표출하는 것으로 압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저는 아이들이란 존재는 실수를 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 아이들을 완벽히 컨트롤 하지 못하는 부모를 이해해줄 수 있지 않느냐, 관용을 종용하며(사실 무개념 부모는 분명 존재하기는 할 테지만, 그 정의의 기준도 너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맘충, 파파충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들은 애를 쓰고 있는지도 모르죠),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지 않냐 라는 주장한 것입니다.

      노키즈존이 만들어진 이유가, 아이 때문이 아니라 부모때문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걸 아동차별이라고 명백히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결국 출입이 막히는 건 ‘아동’이기 때문입니다. 노키즈존으로 인해 ‘무개념 부모들 때문에, 노키즈존이 나오지 않았느냐. 제발 아이들 잘 교육시켜라’ 라고 무개념 부모에게 반성을 촉구하는 건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아이들입니다. 저는 이 노키즈관이 생겨서 피해를 볼 아이들을 더 중시 여기는 것입니다. 노키즈관으로 인해 부모에게 반성을 촉구할지라도 그로 인해 그토록 기다리던 영화를 보러 가는데 출입이 막히는 아이들이 생긴다면, 아이들이 피해를 보는 방식은 피하고 다른 방식(캠페인이라든지)으로 반성을 촉구하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저보고 아이를 방패삼아 ~충들을 보호한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저는 tta님께서 ~충들을 비난하기 위해서, 아이들이 받는 피해를 눈감고 있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부모들의 반성을 촉구할 여러 다른 방식이 분명 있을 텐데 그냥 간단히 아이들의 출입을 막는 것, 그래서 제가 불편을 너무 손쉽게 제거하려는 것 같다 주장한 것입니다.
         
      아이들의 인권을 위한 것이냐, 아이들을 비방하는 것이냐는 tta님의 이 말씀만큼 노키즈관을 반대하는 글을 쓴 제 입장에서는 허무한 게 없군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마지막으로 설명하겠습니다.(이 설명을 읽으셔도 납득이 되지 않으신다면 그냥 저를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는 아이들이 폐를 끼친다는 전제는 저의 생각이 아니라, 노키즈존을 찬성하는 성인들의 관점에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그들을 반박하기 위해서, 너네 말대로 아이들이 폐를 끼칠 수 있는 존재지만(제 생각이 아니라 주장인용), 성인인 우리가 이해해 줘야한다 식의 주장을 하기 위한 것이죠) 물론 tta님께서는 노키즈존은 부모 때문에 생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만, 노키즈존 찬성 의견들을 보면 아이들의 소음을 전혀 참아주지 못하겠다는 다수의 진영도 존재합니다. 또한 tta님께서 상정하는 부모충은 이런 것일 거라 예상하는데 ➀영화관에서 아이가 자꾸 엄마/아빠한테 큰 소리로 말을 거는데, ➁ 엄마/아빠가 그걸 저지하지 않는다. 여기서 일단 아이가 자꾸 엄마/아빠한테 말을 걸었고, 그 다음 행동이 이어졌기에 엄마충 아빠충이라고 불리는 것 아닌가요. 1번 전제가 아니었으면 엄마아빠충은 입다물고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부부끼리 대화를 했으면 커플충이라고 했을 것이고요. 부모충이라는 ‘혐오 표현’엔 필연적으로 아이라는 맥락이 껴있다는 것입니다.(다시 말하지만 아이가 없으면 ‘부모’라는 워딩이 붙을 리 없습니다.)

      엄마충/아빠충 표현이 일반화라는 뜻이 아니고, 출입을 강제로 막을 때 사람들은 분명히 일반화를 당했다라며 반발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노키즈존은 아이들에게는 그 일반화를 하여 출입을 막죠. 다시 말씀드리지만, 키즈라는 언어를 썼으나 본질은 노엄마아빠충이라 할지라도, 결국 출입은 아이들이 막힙니다. 출입은 아이들이 막히는데, 본질이 아무리 노엄마아빠충이라고 주장한들 무슨 의미가 있나 싶습니다. 그 본질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출입이 막히는 현실이 먼저 눈앞에 보이는데 말이죠.

      그 말씀이 페미니즘에 대한 말씀이셨군요! 저는 페미니즘 인용까지만 이야기하시고, 그 뒷말(필요할때만~)은 다시 노키즈존의 논의로 돌아온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기분을 상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다만 이렇게 귀족이나, 정글이니, 흑인인, 교육에 대한 이야기는 동의하시는데, 페미니즘만은 필요할 때만 함께 살아가자고 주장한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은 유감스럽고 슬프네요.(하고 있던 논의는 이것이 아니었으니 말 줄이겠습니다)

      성인들의 갑질로 나오는 제한 담론 사례를 들어주셨는데, 이 사례들 역시 노키즈존과는 다른 무게를 가지고 있습니다. 카공족, 고객전화욕설, 유튜브 촬영자 거부 등은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서비스를 받고 싶다면 그 자리에서 카페에서 장시간 공부를 안 하고, 고객 전화할 때 욕설 안 하고, 먹방 유튜버가 식당에 들어가고 싶은데 그 식당이 유튜버 거부면 촬영장비를 밖에 두면 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키즈존은요? 그저 아이로 ‘존재’하는 아이는 뭘 버려야 들어갈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키즈’존이기에 아이인 것만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거든요. 어떤 행위를 안 함으로써 들어갈 수 있는 선택지가 아예 없습니다. 영화관 앞에서 아이와 부모가 우리 애는 정말 예의가 바릅니다, 저희는 예의 있게 아이들을 지도할 개념 있는 부모입니다를 증명할지라도, 그곳이 노‘키즈’관이면 그저 나이가 어린 상태라는 이유로 출입을 막는 것입니다. 이렇기에 제가 ‘존재’에 대한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요약 : 노키즈존의 본질은 노부모충이라 할지라도, 노키즈존의 존재로 인해 아이는 출입금지를 당하는 피해가 발생한다. 따라서 이는 명백히 아동차별이다. 부모충에게 경각심을 준 방식은 노키즈존이 아닌 다른 방식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노키즈존을 허락할 것이 아니라, 예절교육에 대한 부모님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다른 방식을 택해야 한다. 부모충을 설교하기 위해서 상관없는 아이들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는 것은 올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업무방해죄, 여러 성인 출입금지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업무방해죄 여러 성인금지 출입금지 담론은 어떤 잘못이 ‘먼저 발생하고’, 그 뒤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또는 업무 방해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붙으면 출입할 수 있다.(유튜버 카메라 끄고 들어가기) 하지만 노‘키즈’존은 아동이라는 존재라면, 출입부터 제한한다.(앞의 예시와 다르게 앞의 행위가 기준이 아니라 아동이라는 존재가 기준임) 따라서 노키즈존은 ‘존재’에 의한 차별임이 명확하다.

      사실 이렇게 작성을 하면서도, 아마 저와 tta님의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치관의 차이인 것이 어느 정도 보이니까요. 사실 저도 tta님의 댓글을 읽었지만 제 주장을 철회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이렇게 또 댓글을 쓰면서, tta님께서 댓글을 남겨주심에 감사드립니다. tta님의 댓글을 읽고, 저는 제 글을 쓴데서 마치는 것이 아니라 더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분명 앞으로 사회가 계속해서 소통하고 토론하여, 합의점을 이뤄야하는 문제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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