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랑의 양면성 : 결혼 이야기 [영화]

이혼 또한 결혼의 과정일 뿐.
글 입력 2020.05.19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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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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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이 어떠한 이유에서든 혼인신고를 맺고 한 가정을 이루는 행위이다. 결혼 관계가 온전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오직 서로만을 바라보며 배려하고 희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신뢰를 저버리고 다른 이에게 감정을 느꼈다거나 혹은 한쪽의 치중된 희생으로 불균형한 관계가 되어버리는 순간 영원한 사랑의 맹세는 금이 가게 된다.

 

나는 사실 결혼을 비관적으로 보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 의식의 기저에는 한쪽의 치중된 희생을 보며 자란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이 존재한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기반으로 공평한 희생이 이루어지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가까운 관계일수록 이런 균형을 맞추기란 더 어려워진다. 더불어 대개 희생은 가족에게 관습화 되어 공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일상다반사이다.

 

'결혼하고 안 맞으면 이혼하면 되지 뭐. 굳이 비혼 주의를 자처할 필요는 없지 않니'

 

결혼에 대한 비관적인 시선에 누군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던진 적이 있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의미로 전한 말임에도 썩 기분이 좋진 않았다. 아이가 없는 경우 결혼과 이혼은 그저 시작과 끝일 수 있겠지만 아이가 있다면 상황은 다르다. 양육권 문제로 다퉈야 할 뿐 아니라 아이 때문에도 지속적인 연락을 해야 한다.

 

노아 바움 벡 감독의 영화 <결혼 이야기>는 결혼부터 이혼까지의 여정을 생생하게 137분가량의 시간 동안 담아낸 영화이다. 서로 사랑해서 결혼했고 아이라는 결실을 맺었지만 어느 순간 서로에게 가장 상처주는 존재가 되었다. 내재되어 있던 부부의 응축된 감정들을 담담하고 현실감 있게 풀어낸 이 영화는 많은 결혼한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왔고, '사랑'의 결실로 여겨졌던 결혼에 과정에는 헤어짐이란 이혼의 과정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전해주었다.


 

 

사랑의 양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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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 아내였는데

내 행복에도 신경 썼어야지."

 

"당신도 행복했잖아.

괜히 이제 와서 불평하는거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할리우드 삼류 배우이며 찰리(아담 드라이버) 연극 연출가다. 둘은 우연한 기회로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니콜은 배우로서 할리우드가 자신의 꿈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장소였지만 사랑하는 남편 찰리를 따라 뉴욕에서 거주하게 된다. 그곳에서 아들 헨리(아지 로버트슨)도 키우며 나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듯하다. 연극감독과 연극배우인 부부는 그렇게 뉴욕에서 약 십여 년의 무명생활을 견디며 점점 인정받기 시작한다.

 

부부는 성공의 기도에 향해가고 있지만 어쩐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둘의 사이가 소원해지기 시작한다. 니콜은 점점 찰리와의 잠자리를 거부 시작하였고 찰리는 다른 여자랑 밤을 보냈다. 큰 배신감에 분개한 니콜은 이혼소송을 신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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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이혼 조정관 앞에서 서로의 장점을 글로 써 보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서로 존중하고 아이를 보호하며 원만하게 이혼하려 했지만 양육권 분쟁에 돌입하며 둘은 전쟁을 치르게 된다. 법정에선 아주 사소한 것도 커다란 결격사유가 되기에 니콜 와 찰리의 변호사는 작은 흠을 찾으려 한다. 니콜과 찰리는 결혼생활 중에 느꼈던 불만들을 각자의 변호사에게 털어놓기 시작한다.

 
소송에서 이기는 것이 목표인 변호사들은 작은 흠을 크게 부풀린다. 니콜이 가끔 자기 전에 와인을 즐겨 마신 일은 알코올 중독의 증상으로 의심받았고 찰리는 실수로 어린이용 카시트 설치를 하지 못해 아버지로서 자식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무책임한 부모가 되었다. 법정에서 서로의 생각을 알아버린 이들은 더욱 상처를 받게 되어 점점 더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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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쭐했었어요.

찰리 같은 사람이 내 아이디어를

존중해주고 내 의견을 중시해 줘서요."


  

한 때는 정말 목숨을 다 바쳐 사랑했었던 이에게 어떻게 한 없이 가혹해질 수 있을까. 사실 둘은 잘 맞는 사이는 아니었다. 할리우드에서 배우로서 성공하고 싶었던 니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연극을 성공시키고 싶었던 찰리. 서로 원하는 삶의 방향은 분명 달랐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이 사람과 함께라면 행복할 거 같다'라는 확신에 둘은 결혼을 결심했었다. 각자 자신만의 길을 걷던 둘은 행선지를 정해야 한다. 니콜의 꿈을 위해 LA로 갈지 찰리의 꿈을 위해 뉴욕으로 갈지 말이다.

 

당시에 좀 더 사랑해서였을까. 니콜은 자신의 꿈을 잠시 접어두고 찰리를 응원하기로 결심한다. 당시에 니콜의 눈에 찰리는 실력 있는 연극감독이었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던 니콜에게 찰리의 존중은 그녀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어떤 것이었다.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메꿔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서로에게 영감이 되고 삶의 의미를 좀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둘은 그런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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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의 만남은 서로에게 모든 걸 채워주진 못한다. 공허감은 인간의 근원적인 부분이기에 혼자 자신의 빈 부분을 채울 수 없듯 상대도 채워주지 못한다. 타오르던 사랑이 어느새 쟃더미에 빛을 잃어 갈 때쯤 우리는 깨닫는다.

 

'완전한 소울 메이트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영화는 이혼의 과정을 주로 담고 있지만 제목은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이다. 그 이유는 이혼 또한 결혼의 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만나 서로의 사소한 습관들을 공유하고 사랑을 속삭이던 동시에 장점으로 보였던 것들이 단점으로 보이며 사소한 언쟁에서 점점 서로에게 메꿀 수 없는 상처를 내어준다. 사랑과 미움의 그 경계의 애증관계가 결혼 생활의 주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이렇듯 양면적이다. 극 중 찰리가 부른 being alive의 가사에도 이를 표현하고 있다. '지옥을 경험케 함과 동시에 나를 이겨나가게 하는 사람.' 이 이상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더 좋은 구절이 뭐가 있을까?

 

 

너무 꼭 안는 사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내 자리를 뺏고

단잠을 방해하는 사람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


살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


날 너무 꼭 안는 사람

깊은 상처를 주는 사람

내 자리를 뺏고

단잠을 방해하는 사람

그리고 살아간다는 걸

알아차리게 하지


살아가는 것


날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날 너무 잘 아는 사람

충격으로 날 마비시키고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

그리고 살아가도록

날 도와주지


내가 살아가게 하지

내가 살아가게 하지

날 헷갈리게 해

찬사로 날 가지고 놀고

날 이용하지

내 삶을 변화 시켜


하지만 혼자는

혼자일 뿐

살아가는 게 아니야


넘치는 사랑을 주는 사람

관심을 요구하는 사람

내가 이겨나가게 해 주는 사람

난 늘 그 자리에 있을 거야

너만큼 겁은 나지만

같이 살아가야지


살아가자

살아가자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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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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