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게 소중했던 것 [사람]

타지생활을 통해 얻은 깨달음
글 입력 2020.05.11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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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다. 스물다섯의 일생 중 고작 해외에 있던 시간은 1년도 채 꽉 채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3개월, 6개월의 나날들은 그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내 머릿속에서 천천히 그리고 느릿하게 흘러가고 있다.


 

 

Manila, Philippines


 

스무 살의 끝자락. 누군가에겐 실패라고 여겨지는 내 무모한 도전이 끝난 후 제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지로 보내졌다. 이때의 기억은 전혀 대단하지 않다. 출국 2주 전에 통보 받은 덕에 가진 옷들도 무지 티셔츠 몇 벌, 남방 하나, 그리고 운동화 한 켤레. 너무나도 단출하게 꾸려진 캐리어로 처음으로 비행기에 혼자 탑승했다.


향한 곳은 필리핀의 유명 휴양지인 세부도 보라카이도 아닌 칙칙한 도시의 마닐라였다. 쌩쌩 빠르게 지나치는 오토바이들과 도심 특유의 바쁘고 정신 없는 느낌. 이를 피해 들어온 집에서도 방에 박혀 홀로 에너지를 채워 넣어야 하는 내가 처음으로 숙소생활을 시작하다니.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시작이었지만 그 모든 게 내 삶에 영향을 끼쳤다.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되면 반강제적으로 나의 모든 점을 보여주게 될 수밖에 없다. 실상 그것이 스스로 절대 공개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라도 결국엔 드러나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그 시절을 함께 한 사람들과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게 가까워지는 것 같다.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추억들 또한 그 장소에 대한 전부가 된다.


생일케이크 생크림을 서로 묻히며 온 집안을 뛰어다니고, 야밤에 풀장에서 놀다가 항의도 받고, 새벽에 타운을 몰래 빠져나와 바퀴벌레가 가득한 거리를 뚫고 유일하게 24시였던 맥도날드로 향해 맥너겟을 먹어댔다. 모두 잠옷 바람으로 집 밖으로 뛰쳐나와 사방에서 새로운 해를 맞아 터뜨리는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느꼈던 두려움, 경이로움, 벅차오름을 함께 공유했던 순간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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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또 다른 이름


 

태어난 이후로 으레 수정으로 불려왔던 이름조차 이곳에선 어색해진다. 내 새로운 이름에 익숙해진 것처럼, 타지의 모든 낯선 것들도 금세 적응되고 새로운 일상 루틴이 생겨버린다. 그리고 그 단조로움 속에 완연히 파고들기 시작한 순간, 비로소 주위를 둘러보고 감상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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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

 


종종 학원 끝나고 괜히 셔틀버스를 거부하고 언니와 함께 30분이 넘는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차를 타며 수없이 놓쳤을 저녁 하늘과 도시의 소음을 즐겼다. 주말마다 숙제하러 동네 스타벅스로 향한 결과, 파트너에게 내 이름의 스펠링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영어 실력 뿐이 아닌 많은 것을 배운 친구도 있었다. 당시 나와 10살 차이가 났던 선생님이었지만, 단순히 수업 방식이 아닌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어린 나이에 무엇이 그리 고민이었는지 일방적인 신세 한탄이었지만, 그를 통해 삶에서의 내 역할이 여러 가지로 분류되어 있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나는 공부하러 타지에 온 학생이기도, 무뚝뚝한 딸이면서도 동시에 친구에게는 다정한, 한 가지 면모로 나를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Sacramento, California


 

그렇게 어느새 스물셋이 되고 미국으로 향한다. 필리핀에선 다소 짧은 거주 기간이어서 그런지, 나이가 어려서 그랬던지 정말 그 세계에 푹 빠져들 수 있었지만, 미국에선 달랐다. 분명 한국과의 거리와 시차의 차이는 엄청난데 항상 생각의 끈은 연결된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의 생활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활발히 여기저기 다니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외국인 친구를 많이 사귀지 않으면 모두 헛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를 불안케 했다.


여행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꽤 많이 다녔다. 2주 내내 중부와 동부, 버스와 비행기 모두를 이용하며 꽉 차게 돌아다녔지만 남는 것은 정말 잠깐의 행복 뿐 금세 우울함이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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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ed States Capitol, Washington D.C


 

여행 도중, 조금 더 행복했던 기억을 되새겨 보자면 이와 같다. 뉴욕에서의 야경보다, 눈이 내렸던 3월을 기이하게 생각하며 모든 일정을 마치고 친구와 피자와 맥주를 즐기며 대화로 하루를 마무리했던 것. 친구는 여러 기념관을 돌 때, 나는 워싱턴 국회의사당 들판에 앉아 사람들과 기념비를 내내 바라보던 것, 그렇게 친구를 기다리며 국회의사당에 내려앉은 노을을 함께 맞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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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호로 들어갈 때,

매번 멈춰 사진을 찍게 만들던


 

이를 증명하듯이 종종 미국의 추억을 음미하고 싶을 때 보는 사진들은 몇천 장의 여행 사진보다 그 외의 것이었다. 말 그대로 그때의 일상. 312호라는 오픈된 공간에서 서로의 컴포트존을 무심히 침범하며 생긴 불쾌함을 뛰어넘어, 이제는 그 영역을 서로만은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이 생긴, 그렇기에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관계 또한 그때 시작됐다. 다시금 깨달았지만, 바닥부터 시작한 관계라 함은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게 아닌 그저 다른 유형일 뿐이었다.


백팩에 과제 더미들을 바리바리 싸와 학교 도서관에서 배달어플과 함께 밤을 새웠던 추억부터 아무도 없는 정류장에서 트램을 기다리며 춤을 추는 영상을 찍은 그런 소소한 일상들이 다소 암울했던 미국 생활을 상쇄시켜 준다.


누군가 나에게 너의 교환학생은 어땠냐고 물어보면, 쉽게 ‘좋았어’라는 대답은 나오지 않는다. 피부는 죄다 뒤집혔고, 공허함으로 건강하지 않게 살도 많이 쪘고, 생각보다 마음을 나눈 외국인 친구들도 몇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말 그런데도 소중한 기억들은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었기에.


*


살기 힘든 한국을 벗어나 해외로 이민을 하는 ‘탈조선’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고 있는 지금, 너무나도 익숙해진 곳을 떠나면 180도 새로운 나로 인생을 재정립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하지만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나는 여전히 나였다. 그곳에서도 나는 정신없이 뛰어노는 바깥생활보단 집안을, 더욱 진지하고도 깊은 관계를 좋아했다. 나를 웃고, 울게 하는 그 모든 자극제는 낯선 장소와 광경보다 금세 적응돼 일부가 되어버린 내 일상과 사람들이었다. 그 안에서 나의 스물, 스물셋은 채워졌고 오로지 나의 것이 되어갔다.

 


(삽입된 사진은 모두 직접 촬영하였습니다.)

 

 

 

에디터 박수정 tag.jpg

 


[박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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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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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인
    • 작가님 고마워요 태어나줘서, 존재해줘서 고마워요 . 그리고 오늘의.나를 채워주고 행복하게 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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