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문학을 통해 자살을 이해하다 [도서]

글 입력 2020.05.08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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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나는 이 단어를 다루기 어렵다.

 

삶이 궁극적으로 희망과 행복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삶을 포기하는 선택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얼마나 지치는 삶이라면 그 선택을 할까. 그들의 선택을 오해하고, 마음  속으로 폄하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러던 중 임민경 저자의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를 만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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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자살을 모른다


 
내가 가장 가까운 마음으로 자살을 느낄 때는 유명 연예인의 자살 소식을 들을 때다. 지난해에도 우리는 안타까운 목숨을 잃지 않았는가. 비록 그들은 나를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을 알고 티브이 화면 속에서 수없이 봤기에 그들의 선택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환한 웃음이 잔상으로 남아 더 슬퍼진다. 자살 소식을 들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엄마는 안타까운 마음에 보태 어떤 종류의 말을 덧붙이곤 했다. 좀만 더 참지.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왜 그런 나약한 선택을 했을까. 엄마의 말들이 자살을 대하는 좋은 방식은 아니라고 어디서 주워들은 나는 그런 식으로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아플 거라고 작게 반박을 하곤 했지만 막상 나 또한 자살하는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자살을 나약한 선택으로 여기는 엄마나, 자살을 선택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나, 우리는 자살을 모르긴 매한가지였다.
 
자살 연구자이자 임상심리 전문가인 저자는 자살을 이해하기 위해 문학 속 주인공들을 데려온다. 『안나 카레니나』의 안나, 『인간 실격』의 오바 요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베르테르, 『벨 자』의 에스터 그린우드, 『댈러웨이 부인』의 셉티머스, 그리고 『리틀 라이프』의 주드까지. 이들은 모두 자살 생각이 있거나, 자살 시도를 했거나, 혹은 끊임없이 자해를 한다.
 
저자는 자살을 이해하는데 다양한 학문이 필요하지만 문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이유는 심리학이 설명해 주지 못하는 부분들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심리학이 실험과 관찰과 통계와 같은 양적인 요소들로 자살을 설명한다면 문학은 자살을 묘사라는 렌즈를 통해 현상 자체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은 심리학적 지식과 자살학 이론을 짚어가며 문학 속 등장인물의 심리를 분석하고 그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를 짚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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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학에서 자살을 읽다


책은 두 장으로 나뉘어있다. ‘죽음을 선택하는 마음들’이라 이름 붙여진 1장에서는 사람들이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죽음이라는 선택지를 품었는지 설명한다. ‘자살에 이르게 하는 마음의 질병들’이라 이름 붙여진 2장에서는 우울증, 양극성 장애, 비자살적 자해 등 어쩌면 자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는 정신장애들을 다룬다.
 
사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2장에 한 목차를 차지하고 있는 『리틀 라이프』 때문이었다. 어떤 책은 감정의 스펙트럼을 무한히 넓혀준다고 생각하는데 2020년의 5월까지 온 지금, 그 책은 단연 『리틀 라이프』이고 적어도 올해까지는 그 책이 『리틀 라이프』일 것이다. 유년기의 성적 학대나 심한 자해 묘사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함께 읽자고 권하기 미안하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기심으로 권하고픈 책이다. 내가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울었던 적이 있다면, 바로 『리틀 라이프』를 읽었을 때다. 주드의 세계에 푹 빠져 탈진할 만큼 울고 나면 범접할 수 없는 세계, 나의 삶의 궤적 바깥에 존재하는 존재를 향한 이해의 폭이 한 발자국 넓어졌음을 느낀다.
 
『리틀 라이프』의 주인공 주드는 작가 한야 야나기하라가 ‘절대 나아질 수 없는 인물’을 창조하고자 해서 설정된 인물이다. 그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을 모두 겪는다. 어린 시절의 성적 학대와 그로 인한 트라우마는 그의 몸에 깊게 새겨졌고 그로 하여금 자신을 끔찍이 혐오하게 만들었다. 또, 자신의 과거가 밝혀지면 사람들이 자신을 더럽게 여길 것이라 생각하여 과거에 대해 말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를 위해 곁을 내어주는데도 한사코 거부하는 주드를 보면서 이해가 가면서도 꼭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던 걸까 고민했다.
 
주드는 부모 없이 수도원에서 자랐고, 계속해서 성적 학대를 당했지만 좋은 친구들과 양부모를 만나고 가장 잘나가는 로펌의 변호사까지 된다. 이렇게 보면 그의 삶은 굉장히 달라진 것 같지만, 주드 본인은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적인 묘사가 x=x라는 등식의 공리를 주드가 되뇌는 장면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확고한 한계를 지으면서 결국 그는 ‘절대 나아질 수 없는 인물’이 된다.
 
심리적 지식과 마음의 질병을 통해 바라본 『리틀 라이프』는 또 새로웠다. 묘사를 통해 고통받는 인물의 심리에 공감하는 것과 의학적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측면이 있지만, 결국 문학의 묘사와 심리적 이론과 지식은 상호보완적으로 자살이라는 현상을 이해하게 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자기혐오로 몸을 떠는 주드를 꼭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살을 마주함에 있어 우리가 견지해야 할 태도를 고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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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 고통의 이면을 바라봐 줄 수 있다면”


소설 속 주인공들의 고통을 보면서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 우울증, 심리 장애는 잠시 치료가 되는 것 같아도 신체의 감각으로 남아있기에 언젠가 재발할지도 모르고, 실제로 인물들은 잠시 호전되는 것 같다가도 결국 죽음을 선택했다. 그럼 과연 자살을 연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나의 이런 갸우뚱함은 실비아 플래스의 소설 『벨 자』의 꼭지를 읽으며 점점 해소되기 시작했다. 이르고 갑작스러운 죽음은 때론 예술가를 유명하게 만들어준다. 시인 실비아 플래스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그녀의 죽음은 어쩌면 작품보다 유명한, 그녀의 삶에 있어서 빠지지 않는 주제다. 그래서 그녀의 죽음은 유명해지고 결국 자살로 사망한 시인으로만 언급이 된다. 하지만 실비아 플래스를 두고 말한 저자의 문장이 자살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자살에 대한 연구가 왜 필요한지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한 사람이 스스로 선택한 죽음의 방식에 아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도 부당하겠습니다만, 마지막 죽음의 순간만을 주안점으로 두고 그것으로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것 역시 몹시 부당한 일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저도 실비아 플래스의 우울증과 그녀의 자살에 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그녀의 삶에 대해 “결국 자살로 사망했다”고 쓰고 온점을 찍음으로써 글을 맺어서는 안 됩니다. 실비아 플래스가 사망한 후로 오십 년 이상 지난 시점을 살고 있는 우리는, 그녀가 첫 번째 자살 시도 이후 어느 정도는 증상이 회복되었던 바 있으며,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뛰어난 시와 『벨 자』가 세상에 나왔지요. 그녀는 스스로에게 십여 년이라는 시간을 벌어주었고, 그 시간 동안 분명히 의미 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어떻게 끝나든 간에 그전에 되도록 의미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 그것이 ‘치료’의 가장 큰 의미이자 역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95-96p)

 


자신이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기 위해 저지른 끊임없는 자해 시도나, 구조되기 위한 장치를 남겨두고 자살을 시도한 ‘치명적으로 불발된 구조 요청 신호’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결국 책은 자살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살에 대한 공포심을 심거나 터부시하는 게 아니라, 명확한 언어로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책은 말한다. 자살을 제대로 이해하고 오해하지 않기 위해. 자살이 나약한 선택이라고 비난하지 않기 위해 자살을 공부하는 것이리라.
 
자살이라는 실체에 ‘불을 밝히는’ 것으로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 결국 앞으로 발생할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내가 타인의 고통의 이면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나의 마음을 제대로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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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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