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Dear Mr. Blue -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도서]

글 입력 2020.05.0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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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보통 빨갛다고들 한다. 뜨겁고 강렬한 감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굳이 정의하려 들면 어떤 정의든 괜히 반기를 들고 싶어진다. 문화와 언어는 달라도 만국 공통인 사랑, 지구 인구가 70억 명 정도라면 70억 개의 사랑이 있을 텐데 뜨겁고 빨갛기만 하다면 우리는 곧 불타는 바다를 보게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떠오르는 직간접적인 경험 속 몇몇 장면들이나 그 안에서 기억해낸 여러 감각은 더 솔직한 표현들을 불러내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것과 가깝다고 떠올렸던 감각들 중엔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각들만큼이나 어딘가 서늘하고 썩 좋지만은 않은 감각들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색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저 빨갛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반 투르게네프,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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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지나간’ 사랑이라 부르는 과거는 어쩌면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겠다. ing형의 사랑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역사에서 그가 남긴 흔적은 내 세계의 견고한 일부가 되었다는 걸 종종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내가 지나갔다 여겼던 건 사랑이 아닌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잦게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기에. 불타는 감정에 취해 잠깐의 감정을 사랑이라 착각하기도 하고, 그를 좋아하는 나의 감정을 사랑하면서 너를 사랑한다 고백하기도 한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 기억에서 사라져도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엔 감정만이 있을 뿐이며, 사랑은 지나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의 흔적을 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는 ‘내가 사랑이 뭔지 안다면 그것은 당신 때문’이라 말했다. 사랑했던 당신은 그러한 방식으로 세계에 남는다. 블라디미르가 지나이다를 처음 본 순간, 지나이다는 블라디미르의 사랑세계 일원이 되었듯 내 세계에 발을 디딘 당신은 일원으로서 알게 모르게 나의 새로운 세계를 뚝딱거리는 데 일조한다.

당신을 따라하다 갖게 된 새로운 취미, 더는 먹지 못하게 된 카페 메뉴, 우리에게만 특수했던 사물이나 풍경 같은 것들 말이다. 매번의 사랑은 그러한 방식으로 세계를 넓혀 갔다.
 


시간과 공간은 1850년대 러시아. 시각은 12시 30분, 저녁 식사를 마친 부자 손님들이 돌아가고 세 명만 남아 있다. 주인이 첫사랑 경험을 공유하자고 제안한다. 마흔 살 정도 된 주인공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말솜씨가 없다며 첫사랑의 추억을 공책에 적어올 테니 2주 후에 다시 보자고 한다.

 


그래서 ‘첫’이라는 접두사에 연연하게 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계획에도 없던 낯선 감정이 침투하면 곧 질서 있던 세계는 흔들리고, 그 첫 번째 감각은 몸이 기억한다. 블라디미르가 말솜씨가 없다는 이유로 첫사랑의 추억을 공책에 적어오는 데 2주를 달라고 한 건, 사실은 말솜씨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긴긴 역사와 세계를 적기 위한 시간으로 2주가 필요했던 걸지도.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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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의 소설에 따르면 그동안의 나는 극단의 무거움파였다. 사랑에는 절대적인 무게라는 게 있다 여기며 살았다. 사랑마다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어도 어떤 사랑이든 지탱의 역할을 하는 마음의 절대적인 무게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뚝이 안에 든 철로 된 구슬 같은 것 말이다.


그 구슬은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만들어져서, 쉽게 흔들리거나 쉽게 쓰러지지 않도록 또 한편으로는 걷잡을 수 없이 굴러가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거라 생각했다. 사랑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것의 경중을 따지면서 무거움의 미학을 논했다.

 


어쨌든 그 누구도 사랑과 정치는 피할 수 없다. 사랑은 비정치적인 것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와 사랑의 공통분모는 독점과 희열, 불안이다.



사실은 무게를 지킨다는 이름의 날들은 알게 모르게 가벼운 것을 미천하다 여겼던 날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키려던 무거움의 미학이 과하게 무게를 키워나가는 바람에 곳곳에서 답답함을 호소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내게 밀란 쿤데라는 ‘한 번 일어난 것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라는 정반대의 입장을 슬쩍 펼쳐주곤 했다. 한 번 사는 것은 아예 태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는 문장, 즉 인생이 한 번뿐이라면 인생이나 사랑을 포함한 모든 것이 가벼울 거란, 아니 아예 무게가 없을 거라는 말.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가벼움의 극단에 있는 인물 토마시와 사비나, 무거움의 극단에 있는 인물 테레자와 프란츠를 통해 정치, 철학, 사랑, 섹스로 다원적인 논의를 전개한다. 그가 이로써 표현하고자 한 건 순응과 저항, 참여와 외면 중 하나만을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삶 속에서의 균형의 미학이다. 가벼움과 무거움, 중요함과 중요하지 않음, 반대되는 건 근본적으로 같다는 그의 주장은 현대에도 시사점을 남긴다.

어쩌면 무거움의 극단에서 다소 따분한 사람이 되어있었는지도 모르는 내게 밀란 쿤데라는 새로운 인식의 장을 열어주었다. 당신을 ‘평생’, ‘영원히’, ‘언제나’ ‘사랑한다’라는 말을 꺼내기 어려웠던 날들. 하지만 한 번 사는 인생이 무겁기만 한 게 아니라면, 경고와 의심으로 잔뜩 무장하고도 그 사이에 놓인 사소한 마음 하나를 따라 한참을 가봐도 괜찮지 않을까.

 
*

문학으로 사랑을 읽다
- 세상의 모든 사랑은 운명적이다 -


지은이 : 김환영

출판사 : 싱긋

분야
인문

규격
133*203mm 양장

쪽 수 : 296쪽

발행일
2020년 02월 14일

정가 : 15,000원

ISBN
979-11-90277-25-9 (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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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제목은 그룹 여자친구의 곡 Mr.Blue의 제목을, 요약글은 가사의 일부를 빌려 온 것임을 밝힙니다.
 
 
[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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