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보통 빨갛다고들 한다. 뜨겁고 강렬한 감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굳이 정의하려 들면 어떤 정의든 괜히 반기를 들고 싶어진다. 문화와 언어는 달라도 만국 공통인 사랑, 지구 인구가 70억 명 정도라면 70억 개의 사랑이 있을 텐데 뜨겁고 빨갛기만 하다면 우리는 곧 불타는 바다를 보게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떠오르는 직간접적인 경험 속 몇몇 장면들이나 그 안에서 기억해낸 여러 감각은 더 솔직한 표현들을 불러내기도 한다. 사랑이라는 것과 가깝다고 떠올렸던 감각들 중엔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각들만큼이나 어딘가 서늘하고 썩 좋지만은 않은 감각들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랑의 색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어도, 그저 빨갛기만 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안다.

흔히 ‘지나간’ 사랑이라 부르는 과거는 어쩌면 현재진행형일지도 모르겠다. ing형의 사랑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역사에서 그가 남긴 흔적은 내 세계의 견고한 일부가 되었다는 걸 종종 깨달을 때가 있다. 그럴 땐 내가 지나갔다 여겼던 건 사랑이 아닌 감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잦게 감정을 사랑으로 착각하기에. 불타는 감정에 취해 잠깐의 감정을 사랑이라 착각하기도 하고, 그를 좋아하는 나의 감정을 사랑하면서 너를 사랑한다 고백하기도 한다. 따라서 시간이 흘러 기억에서 사라져도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엔 감정만이 있을 뿐이며, 사랑은 지나가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의 흔적을 남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시간과 공간은 1850년대 러시아. 시각은 12시 30분, 저녁 식사를 마친 부자 손님들이 돌아가고 세 명만 남아 있다. 주인이 첫사랑 경험을 공유하자고 제안한다. 마흔 살 정도 된 주인공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는 말솜씨가 없다며 첫사랑의 추억을 공책에 적어올 테니 2주 후에 다시 보자고 한다.
그래서 ‘첫’이라는 접두사에 연연하게 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계획에도 없던 낯선 감정이 침투하면 곧 질서 있던 세계는 흔들리고, 그 첫 번째 감각은 몸이 기억한다. 블라디미르가 말솜씨가 없다는 이유로 첫사랑의 추억을 공책에 적어오는 데 2주를 달라고 한 건, 사실은 말솜씨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에 따르면 그동안의 나는 극단의 무거움파였다. 사랑에는 절대적인 무게라는 게 있다 여기며 살았다. 사랑마다의 경중을 따질 수는 없어도 어떤 사랑이든 지탱의 역할을 하는 마음의 절대적인 무게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뚝이 안에 든 철로 된 구슬 같은 것 말이다.
그 구슬은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만들어져서, 쉽게 흔들리거나 쉽게 쓰러지지 않도록 또 한편으로는 걷잡을 수 없이 굴러가지 않게 균형을 잡아주는 거라 생각했다. 사랑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것의 경중을 따지면서 무거움의 미학을 논했다.
어쨌든 그 누구도 사랑과 정치는 피할 수 없다. 사랑은 비정치적인 것 중에서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정치와 사랑의 공통분모는 독점과 희열, 불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