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당분간은 조금 ‘덜’ 열심히 살기로 했다

글 입력 2020.05.01 00:3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31.jpg

 

 

‘순간만을 위한 열정은 인생을 쉽게 지치게 한다.’

 

이것은 며칠 전, 지난 몇 개월을 돌아보며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야말로 숨가쁘게 달려온 몇 달이었다. 일을 했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일을 했고, 또 다시 밀린 집안일을 했다. 물론 여기에 곁들여, 마주하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인 계약이나 집 수리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기도 했다. 잠들기 전 머릿속으로 온통 내일에 대한 걱정과 해결해야 하는 일들을 곱씹기에 바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토록 바쁜 일상의 이유는 ‘잘 해내고 싶어서’. 오로지 그 하나였다.

 
졸업과 동시에 첫 사회생활과 자취를 시작했다. 꽤 급작스럽지만 순탄하게 모든 과정들을 밟아나가기 시작했다. 고즈넉한 물가를 매일 창 밖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오피스텔을 얻었고, 짐을 차근차근 싸고, 필요한 가구 몇 가지를 주문했다. 혼자만의 생활을 영위해보는 건 서른이 되기 전 반드시 해내고 싶었던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더할 나위 없이 설레고, 긴장되었다. 일이든, 생활이든 모든 것을 잘해내고 싶었다. 완벽하게 홀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는 다짐했던 것처럼 내재되어 있던 온갖 종류의 열정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원하던 직무와 맞아떨어지는 일은 아니었지만 몇 개월 전의 나에게 있어서 일 자체를 한다는 것은 매우 소중했다. 내 책임을 다해보는 경험, 내 성과를 인정받는 경험을 하루라도 빨리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조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에, 무리해서라도 일에 매진했다.

 
하지만 일을 열심히 하고, 그로 인해 더 많은 업무적 기회와 책임이 주어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어쩐 일인지 마음은 더 공허해져만 갔다. 일을 마무리했을 때의 성취감은 순간이었고, 벌써부터 힘에 부친다는 생각만 점점 커져가기 시작했다. 열심히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던가. 돌이켜보니, 뒤늦게 그 말이 맞았음을 느꼈다. 즐기지 못하는 일에 사력을 다하며 쉽게 지쳐가는 나의 모습이 몹시도 어리석어 보였다. 더군다나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도, 악착같이 버틸 이유도 없었다. 아직 20대의 한복판을 건너가고 있는 오늘. 나는 충분히 젊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방향키 대신 모터만을 잡아당겼던 몇 개월의 끝자락. 나는 다시 한 번 내 뱃머리의 방향을 돌려보기로 결심했다. 몇 개월 간 펴지 않았던 일기장을 다시 채워나가기 시작했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기 위해 목록을 작성했다. 글쓰기, 독서, 영화, 음악, 공연, 전시, 사진…… 삶의 생기를 느끼게 해주던 것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그 때, 비로소 행복이 채워지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부터 나는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작정이다. 아직은 내 스스로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덜 열심히 살면서, 틈나는 대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해 볼 것이다. 지금의 이 선택이 결코 후회로 남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나는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디 지금 스스로에게 선물한 인생의 유예기간이 나를 넓은 바다로 인도해주기를. 길을 잃고 길을 찾아가면서, 오늘도 나는 간절히 소망해본다.

 

 

[김현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