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지나간 인연들에게 [도서]

글 입력 2020.04.24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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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학동네 편집부

 


새벽 두 시, 생각이 많아지는 시간이다. 매일 새벽 두 시마다 다른 생각을 하지만, 지나간 인연들의 잔상이 특히 떠오른다. 카톡을 열어 숨긴 친구 목록을 확인한다. 연락하는 친구 목록에 뜨는 사람의 몇 배에 해당하는 인원이 죽 뜬다. 거기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한때 손을 잡으면 설레었던 사람, 매일같이 연락하고 일상을 나누었던 사람, 비밀 없이 모든 것을 공유하던 사람. 동그란 프로필 사진 안에서 매일 같이 얼굴을 마주했던 이들이 웃고 있다. 하지만 이젠 휴대폰이라는 창을 통해서 밖에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을 보고 있자면 문득 슬퍼진다. 우리는 그토록 뜨거웠는데 왜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었나. 함께한 시간들이 공중에 흩어지고 서로의 이름은 숨겨지고 말았다. 관계의 상실 후에 오는 공허함에 대한 회의가 크게 느껴졌다. 관계에 대한 고민을 늘 품고 살아가던 와중 작년 여름, 책을 읽다가 눈물을 왈칵 쏟을 뻔했다.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양쪽 모두 떠난 경우도 있었고, 양쪽 모두 남겨지는 경우도 있었으며, 떠남과 남겨짐의 경계가 불분명한 경우도 많았다.


- 최은영, 소설집 『쇼코의 미소』 중

 


사실, 관계라고 하는 게 그렇지 않은가. 명백한 언어로 헤어짐을 나타내기보다는 누굴 탓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멀어짐이 더 많다는 것이. 이 구절은 소설집 『쇼코의 미소』의 단편인 <신짜오, 신짜오>에서 만난 문장이다.


이 소설엔 베트남 전쟁의 아픔을 새기고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집에는 이뿐만 아니라 세월호 사건, 민주화 운동 등 아픈 역사적 사건이 사람들의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그것이 일방적 상실이든 필연적인 헤어짐이든, 인물들은 관계의 균열 속에서 과거엔 몰랐던 것들을 깨닫고 성숙해진다.

 

최근 읽게 된 같은 작가의 책 『내게 무해한 사람』은 관계의 균열을 ‘무해함을 가장한 해함’으로 연결 짓는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의도하지 않은 채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아니면 무해함으로 가장하고 슬쩍 흘리는 말에 공격이 될 만한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무해함을 가장한 해함’이라는 말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기도 하다.

 

소설 속 인물들은 또 다른 인물과 인연을 만들어 가지만, 결국 관계의 상실을 경험하는 인물이다. 사랑, 우정, 가족애, 혹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관계들. 그 관계들은 한때 살아가는 힘을 주었지만 이젠 손가락을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잡을 수 없이 흩어져 버린다.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너희가 내게 줬던 시간과 마음을, 나는 잊을 수 없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거야. 잘 지내.


- 최은영,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중

 

 
단편 <모래로 지은 집>에서 모래가 보낸 편지를 반복해서 읽으며 내게 위로를 건네는 문장이 달라졌다. 처음 읽었을 때는 사람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말에 집중해서 읽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그 뒤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상처들을 모두 이겨내지 않아도 된다는 위로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제목은 ‘내게 무해한 사람’이지만 소설들을 모두 읽고 난 뒤 제목을 곱씹어 보면 ‘내게 무해한 사람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관계의 균열에서 오는 곤란하고 어려운 마음들을 애써 참지 말라고 토닥여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가장 최근에 이 편지를 읽었을 땐 마지막 문장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지나간 인연들에게 받은 소중한 마음과 함께 했던 그때를 직시하고 인정하는 것, 그리고 지나간 인연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것. 어쩌면 시간이 지난 상태에서 과거를 멀리 떨어져서 바라볼 때만 가능할 마음이다.

 

완전무결하지 못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해함’은 관계 속에서 상쇄되기도 한다. 마치 인물들이 관계의 균열을 마주하기 전에 그 관계로 하여금 구원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언젠가 읽었던 다른 소설 속 구절이 떠오른다.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나는 오늘 밤도 지나간 인연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의 지나간 인연들에게 들리지 않을 말을 건넨다. 이미 찢긴 노트처럼 우리의 관계를 다시 이어붙일 수는 없겠지. 우리는 한때 정말 뜨거웠고 애틋했지만 이제 그 감각들은 너와 나 그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우리가 함께 했을 때 네가 나에게 주었던 소중한 마음이 그 당시의 나를 살렸고 나는 아직도 그것에 대해 가끔씩 생각해. 그땐 몰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또렷해지기도 해. 관계를 붙잡을 순 없지만 마음은 간직할게. 정말 고마웠어. 잘 지내.

 

 




* 정세랑, 『피프티 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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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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