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장벽의 시대 - 분리와 분열의 결정체, '장벽'에 관하여 [도서]

부자와 빈자의 격차, 민주주의의 부재, 다른 정체성에 대한 거부. 장벽은 이들의 가시적인 결정체일 뿐이다.
글 입력 2020.04.1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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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저학년, 타자연습을 비롯한 인터넷 교육이 학교 교육의 일부가 됐던 시절을 거친 나에게 세계화는 익숙한 걸 넘어 당연한 것이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Made in China’라는 문구를 보면 제품에 대한 흥미를 잃곤 했지만, 이제는 ‘Designed by Apple in Califonia’라고 쓰인 아이폰에 ‘Assembled in China’라고 적혀 있어도 품질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인종차별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레이시스트임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되었고, 민족주의는 2차 세계대전에서나 쓰였던 불쾌하고 고루한 개념이 되었다는 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양성의 시대가 도래하였고, 국경을 넘는 것은 완전히 자유로운 일이 되었는가? 답은 ‘아니다.’ 오히려 세계 각국의 경계선에 냉전의 절정기보다 더 많은 장벽이 설치되고 있다. 갈등이 도처에 상처를 남겼지만 이 상처들은 장막 속에 가려져 있던 것뿐이었으며, 장막을 걷어내자 곪은 상처들이 터져 나왔다. 테러, 분쟁, 난민, 빈부격차의 위협은 세계화 시대에 더욱 거세지는 듯하다. 어쩌면, 세계화는 감추어진 걸 드러낼 뿐 아니라 더 많은 상처를 남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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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마샬의 <장벽의 시대>에서는 이러한 상처들이 낳은 결과물인 세계 곳곳의 장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장벽’이란 단어는 장애물, 울타리, 그리고 모든 다양한 분리에 대한 약칭으로 사용된다. 마샬은 중국과 미국, 중동과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에 있는 여덟개의 대표적인 장벽을 통해 분열되어 가는 지구촌을 진단하였다.

 

*

 

책의 첫 장은 중국의 만리장성으로 시작된다. 국경이 아닌 국가 내부에 있는 만리장성이 처음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장벽이 국경과 국경 사이의 갈등을 나타내는 것뿐 아니라, 장벽으로 나뉜 집단 내부의 분열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중국인에게 만리장성은 수천년 동안 나라를 이어왔다는 자부심의 표시겠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마치 중국 내부의 분열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장벽의 남쪽으로는 한족이 거주하는 중국 중심지가, 북쪽 산맥 너머 멀리에는 스텝지대와 몽골사막이, 오른편으로는 만주, 왼편으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가 있다. 이렇게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지역들을 모두 통제해야 하는 중국정부는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핵심지역에서는 정보를 억압한다.


전세계 사람들이 알리바바에서 물건을 구입해주길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내부의 정보가 반출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중국 내에서 ‘천안문’을 검색하면 극도로 필터링 된 검색 결과만을 확인할 수 있고, 페이스북을 이용하려면 우회 프로그램을 사용해야한다. 폭력과 억압이라는 중국의 장벽은 전 세계로부터 그들을 분리하고, 자신조차 분열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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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경계 그린라인을 따라 세워진 장벽은 어떤가. 실제로 장벽 건설 이후에 팔레스타인에서 넘어오는 자살 폭탄테러가 수백 건에서 몇 십 건으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는 이 사실을 충분하게 이용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단순히 팔레스타인 분파가 의도적으로 공격 속도를 늦춘 것과 장벽이 건설된 시기가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렇듯 테러의 위협이 줄어들었다는 데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장벽은 분명히 폭력을 막아주고 있다. 이스라엘 내에서, 그리고 팔레스타인 내의 정치 집단 각각에서 의견 대립이 팽팽할 뿐 아니라 장벽이 무너질 경우의 경계 문제와 난민까지 수많은 난관과 장애물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도 저도 하지못하고 장벽은 견고하게 서있다. 그들에게 장벽이 영원히 존재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확률이 높지만, ‘무시’의 평화가 아닌, 두 국가간 합의를 통한 평화를 추구할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다. 그렇게 그린라인의 장벽은 분열과 차단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렸다.

 

만약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된다 해도 중동의 다른 지역들의 불안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종교적 분열이 가장 크게 두드러지는 지역인 탓이다. 같은 이슬람으로 분류되지만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중동 전체로 퍼져있다. 독재 정권에 반발해 발발했던 시리아 내전은 종교 문제와 맞물려 외국 세력의 대리전의 양상으로 뒤바뀌었고, 이란, 러시아, 영국, 프랑스, 사우디, UAE, 터키, 이스라엘, 터키 등 수많은 세력이 폭력을 자행하였다.

 

아랍이 이토록 분열의 장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팀 마샬은 이 질문에 대해 몇 가지 답변을 소개한다.

 

 

특히, 그들은 그 지역을 정체시키고 있던 ‘세 가지 결점’이라 부르는 것을 강조했다. 첫째, 아랍 세계는 특정한 자유가 부족하기 때문에 과학, 정치적 사고, 비교종교학에서의 세계적 지식을 따라잡지 못했다. 아랍어가 아닌 다른 언어에서 번역된 책은 상대적으로 적고, 그 지역 전체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다. 둘째, 이것과 관련되어 어떤 지식이 이용 가능한지 알리기 위해 통신의 발전을 포용하는 데 실패했다. 셋째, 여성들의 정치와 직업에의 참여가 세계에서 가장 낮았다. - p161

 


이슬람은 스스로 교리가 완벽하다고 닫아버렸기 때문에 정체되었고, 새로운 시대에 유동적인 해석을 할 여지를 남겨놓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중동은 민족적 다양성이 강한 지역인데, 이 덕택에 민주적 기반조차도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아랍 국가들의 엄격한 국가 내부 통제와 국외 세력 확장을 위한 끊임없는 권력 다툼은 국가 시스템을 망쳐놓았고, 이러한 대혼란과 내전을 야기하였다.

 


··· 따라서 정부 기구가 고장 날 때, 많은 사람은 국민국가 이전의 것-종교, 민족, 부족-으로 후퇴한다. 수니파, 시아파, 그리고 많은 부족과 민족이 그들의 물리적, 심리적 장벽 뒤로 물러나고 국민국가가 약화됨에 따라 종교는 그들에게 자존감, 정체성, 확실성을 제공한다.

 

이러한 토대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민족주의 또는 심지어 국민국가도 그 자체로 암적인 것이고 이슬람이 해답이라는 세계관을 구성할 수 있다. 그들은 너무도 높아서 그 뒤에 있는 사람들은 더는 그 너머를 볼 수 없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자기 주위에 세운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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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국경이 가장 희미한 곳인 유럽 대륙도 예외는 아니다. 30년전 유럽은 가장 ‘전형적인’ 장벽, 철의 장막이 존재했던 곳이다. 그리고 그것이 남긴 흉터—동유럽과 서유럽 간 경제적 차이—는 아직까지도 회복되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전후 거듭 성공을 거둬왔지만 2016년 이후로 위기를 맞고 있다. ‘난민’, ‘테러’를 방패삼아 영국이 연합을 탈퇴했고, 거의 대부분의 EU 국가에서 극우민족주의정당이 빠른 속도로 득세하기 시작했다. 테러리스트가 난민으로 위장해 들어올 것이란 공포가 유럽 전역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정치적, 물리적 장벽이 유럽 곳곳에 세워졌다. 그러나 효과가 있을 리 없다. 테러의 대부분은 EU 시민이 자행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

 

책에 등장하는 장벽들은 분명히 평화를 저해하고 긴장을 고조시킨다. 중동과 아프리카를 자유롭게 누비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들은 장벽을 불쾌하고 무너뜨려야 마땅한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세계 평화’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하루빨리 장벽을 해체해버리라고 성토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장벽이 무엇과 무엇을 분리하고 있고, 무엇이 장벽을 새로 쌓아올리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르 펜이 프랑스의 극우민족주의를 촉발시킨 걸까? 트럼프 때문에 전 지구에 민족주의 경향이 다시 대두된 걸까? 그들은 우리 세계의 단면일 뿐이다. 부자와 빈자의 격차, 민주주의의 부재, 다른 정체성에 대한 거부. 장벽은 이들의 가시적인 결정체일 뿐이다.

 

어떤 미래를 꿈꾸면 되는 것일까? 장벽이 아예 사라진 세계라면? 제국주의가 제멋대로 그어놓은아프리카의 직선 국경은 없애고 다시 그려야 하나? 어디까지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갖고 있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은 혹시 민족주의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일까? 민족주의가 희미해진 것처럼, 미래에는 국가도 희미해질까?

 

책을 읽는 동안 상당히 어려운 질문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벽 내부의 균열을 ‘어떻게 적절히’ 다스리고, 장벽 외부의 갈등 역시 ‘어떻게 적절히’ 다루어야 할 지 이 책을 통해 고찰해 보라. 독자들은 기꺼이 자기만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변화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과 인종주의자가 되는 것이 다른 것처럼, 애국심과 민족주의도 마찬가지다. 나는 전자를 부분적으로 ;자신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타인의 조국에 대한 존경’으로 정의하고, 후자를 ‘자신의 조국에 대한 사랑과 타인의 조국에 대한 경멸’로 정의한다. 역사는 우리가 ‘타자’에게 편안함을 느끼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또한 적절하게 관리한다면 우리와 그들을 모두 포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p320



[최예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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