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수받아 마땅한 사람들 [영화]

글 입력 2020.03.2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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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상식이 시작된다. 음악, 카메라, 편집 등 수상 끝에 배우 시상식이 시작된다. 수상하는 배우가 나와서 자신의 수상 소감을 말한다. “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카메라 뒤에서 노력해주신 우리 제작진 덕분입니다.” 이 말이 반복된다. 모든 배우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나는 순간 박수를 쳐야 할 방향을 잃는다. 내가 옳은 방향으로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생각한다. 나조차 제작진의 수상이 아닌 오직 배우들의 수상만을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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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동아일보에서 나온 기사다.


“20년 정도 촬영 팀에서 일했다. 이제 좀 경력이 쌓여서 한 작품 하면 1,500만 원 정도 받는다. 문제는 1,500만 원이 연봉이라는 거다. (43·스태프)”


“촬영장 막내라는 게 하는 일은 짐꾼이다. 막내로 들어간 날, 일을 주선해 준 형이 13만 원짜리 유명 메이커 운동화를 선물해줬다. 일 열심히 하라고 주는 건 줄 알았는데 한 달 반 정도 촬영하고 영화가 끝났는데 형이 인건비를 안 주는 거다. 알고 보니 그때 그 운동화가 내 인건비였다. (35·스태프)”

 

세상의 이면을 본다는 영화가, 사회를 고발한다는 영화가, 현대의 문제를 담는다는 영화가, 약자를 위한 영화를 만드는 영화계가 세상을 더 어둡게 만들고,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따라 하고, 강자를 더 강하게 만든다. 우린 올바른 영화계를 보고 있는 것인가.

 

유명한 배우, 감독은 고액의 돈을 받는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직업이 편하다는 말은 아니다. 감독은 창작의 고통과 모든 스텝을 책임져야 한다. 배우들은 연기를 위해서 때론 엄격한 체중 감량 혹은 증가를 해야 한다. 또는 다른 배우들에게 맞기도 한다. 연기란 열정을 스크린 앞에서 불태운다. 또한 스크린 앞에 선다는 이유로 모든 비판, 비평을 감당해야 한다. 그들의 노력, 노고는 당연히 인정한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것은 카메라 뒤에 있다고 그 열정이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감독의 창의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스텝이 필요하다. 그리고 배우의 연기를 담기 위해선 배우들이 낮은 곳으로 갈 때는 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에 갈 때는 더 높은 곳에서 길을 등지고 오직 배우만을 보고 촬영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스텝의 노고를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그저 영화가 만족스러울 때 오직 그 박수와 환호를 감독과 배우에게만 하고 있다. 스텝의 노고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임에도 말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유명한 감독, 배우들에게 더 큰 비용이 가는 것은 영화계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회 측면에서 유명한 이에게 돈을 더 주는 것은 현실이다. 그 현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이 현실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재라는 것이 필요하다. 그 전재는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을 받는 사람들이 적어도 부당한 처사를 받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명한 감독, 배우는 일 년에 한 작품을 촬영한다. 그렇게 진행해도 자신의 경제적인 큰 타격은 오지 않는다. 그만큼 많이 받기 때문이다. 또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광고 등을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그래서 정말 유명한 배우들은 작품 활동이 보이지 않음에도 고급 저택에서 사는 모습을 우린 쉽게 접할 수 있다. 같은 작품을 찍은 스텝은 일 년에 4~5개의 작품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살아갈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예술이란 명목 아래에 모인 이들이 예술을 위해 자신의 생계를 희생해야 한다. 우리는 이 구조가 정당하다고 볼 수 있는가.


영화계는 예술이란 특수성 때문에 고용 문제가 복잡하다. 밤 촬영, 낮 촬영 등이 날씨에 따라 변화하고, 한순간에 수많은 것들이 바뀐다. 배우들은 그 중간에 차 안에서 혹은 숙소 안에서 자신의 촬영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만 스텝은 그 모든 것을 밤을 새워가면서 바꿔야 한다.

 

영화에 대한 열정은 그 영화인이라면 서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카메라 앞이든 뒤든 그저 그 ‘예술’을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촬영함으로 누군가는 분장함으로 예술에 동참한다. 역할이 다르지만 그들의 행위는 예술을 향한다. 그 예술의 행위에 차이를 둬서는 안 된다.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 마땅하게 박수를 받아야 하는 것은 열정 페이로 일하고 있던 바로 제작진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 배우에게만, 감독에게만 그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이런 부당한 현실에 배우들은 제작진에게 자신의 사비로 선물을 사주는 등의 모습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영화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은 투자자, 영화사, 감독, 작가, 배우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중 한 명이라도 제작진의 부당한 고용을 바꿔 달라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선물이 아닌 외침이 필요한 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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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사를 보고서 울분을 참지 못했던 적이 있다. 기생충이란 영화가 나왔을 당시에 쓰인 기사였다. 그 기사의 내용은 기생충의 모든 스텝이 표준 근로 계약서를 체결하여 행복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사의 내용만 보면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일하기 전에 그 계약서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린 언제부터 당연한 것을, 당연한 일을 이행했다고 기뻐하며, 자부하는 사회가 되었는가. 그저 다른 영화에서는 하지 않았던 일을 이 영화에서는 했기에 기뻐해야 하는가. 그저 그들은 자신의 노동을 위한 당연한 근로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전부이다.


한국 영화진흥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에 표준 근로 계약이 22%에 불가했지만 2019년은 74.8%까지 발전했다. 영화계가 점차 공평함을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을 가지고 옳은 일을 했다고 뿌듯할 이유는 없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한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표준 계약서를 체결했다고 뿌듯해하는 것이 아닌 이들이 일하기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표준 계약서는 더 좋은 환경을 위한 거름일 뿐이다.

 

영화는 혼자서 하는 예술이 아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이다. 상업 영화는 그래도 점차 마땅한 길을 향해 가고 있지만, 독립 영화의 예우는 아직도 부족하다. 사회에 우리의 부담함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오히려 부담함을 재생산하는 영화가 된다면 그것은 영화가 아니다. 그저 착취의 근거일 뿐이다.


감독과 배우에게 박수는 보내자. 하지만 그 박수를 조금만 나눠서 그 영화를 위해 노력한 제작진을 향하는 것은 어떤가. 그들의 처우를 계속해서 확인하고, 그들에게도 환호하고, 그들도 마땅히 그 환호를 받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환경 속에서 만든 영화가 진정한 의미의 영화가 될 수 있음을 우린 명심해야 한다.

 

영화계를 비롯한 극장계는 점차 제작진의 노고를 알리려고 하고 있다. 극장에서는 영화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기 전까지는 극장을 나갈 수 없는 에티켓을 형성하고 있다. 독립 영화에서만 주로 시행하는 중이다. 영화계에서는 대표적으로 마블을 떠올릴 수 있다. 일명 쿠키 영상이라고 하여 영화의 맨 뒤 제작진의 이름을 보고서야 나온다. 영화계와 극장계가 점차 관객에게 제작진을 알리고 있다. 관객이 응답할 차례이다. 영화 제작진의 이름을 모두 외우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들의 이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검은 배경에 흰 글씨의 존재들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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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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