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다시, 상상하던 그 마음으로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글 입력 2020.03.24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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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그림책을 다시 보러가자 말했다.


물론 이젠 엄마가 읽어줄 리 없이 내가 스스로 읽겠지만, 다 큰딸과 다시 그림책을 보게되는 시간이 그에게도 또 다른 특별한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쉬기만해도 바쁜 주말 오전 시간을 엄마는 흔쾌히 내어주었고, 훌쩍 큰 우리 모녀는 아직은 변함 없을 그림책들을 보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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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입장과 동시에 형형색색의 일러스트들이 엄마와 나를 반겼다. 이렇게 동화적인 색채들이 마구 펼쳐진세상을얼마나 오랜만에 마주했던지, 준비할 틈도없이 일러스트의 세상으로 푹 빠지게 되었다.



Q. 어린이를 위해 잘 묘사된 그림책이란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요? 뛰어난 그림책과 단지 괜찮기만 한 그림책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그림책은 당연히 일러스트가 가장 중요합니다. 아주 간단한 문장들을 갖고도 수많은 재미있는 일러스트를 생각해 낼 수 있습니다. 본문 자체를 바꾸지 않고 모든 단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원문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생략)



본격적인 전시 관람 전에, 볼로냐라는 지역에 관한 소개와 더불어 비치되어있는 도록에서 위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모든 단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원문과는 완전히 다른소리를 낼 수 있다”는 일러스트를 기대하며, 발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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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각색의 화려한 색감을 자랑하는 일러스트 가운데, 이렇게도 일러스트를 그려낼 수 있구나 했던 작품이다. 종이와 물감대신 천과 바느질로 이루어진 이 일러스트는 작품의 결부터 왠지 따듯하고 포근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릴 적 내가 줄기차게 손에 갖고 다니던 그림책 역시 천으로 만들어진 책이었다. 그 때의 추억을 상기시켜보며, 실제 손은 아니었지만 눈으로 그림을 살살 어루만져보았다. 역시 익숙하고 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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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수상자, 벤디 베르니치(Vendi Vernic) 의 그림은 특히 눈이 가던 작품들이었다. 그냥 쓰윽 보면 마치 정말 어린 아이가 그린 듯한 터치같지만, 한 작품 한 작품에 담긴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듯 생동감있었다.


그려진 나무 기둥과 가지, 나뭇잎은 실제 나무들이 제각기 다르듯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있었고, 뛰어 다니는 동물들에게서는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그 뿐인가, 사람들 표정도 어찌 그렇게 실제같았던지. 아무런 글도 적혀있지 않았지만 이야기 하나 쯤 술술 나올듯한 그림이었다.


"어느 주말이었어. 평범하고 평온한 날 중에 하루였지. 다니엘은 주말 아침이면 늘 제일 굵은 나무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있어.."

 

 

ⓒNoemi_Vola5.jpg

 

 

"크고 검고 짜증나고 거슬리는 곰이 있습니다. 곰은 모든 사람들의 삶에 들어와 있는 존재입니다. 각자의 마음 속에는 자신만의 곰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그 곰을 상대해야 합니다." 노에미 블라(Noemi Vola)의 <나와 함께 견디다> 속 곰이 뜻하는 건 무엇일까.


정해진 정답이야 없겠지만, 문득 저 곰이 나의 게으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항상 뒤쫓으며 살살 방해하는 곰. "너무 바쁜 거 아니야? 좀 쉬어가야지~"

 

 

 

다시, 상상하던 그 마음으로


 

전시회 관람동안, 쓰여진 글 대신 다른 소리를 낸다는 저 일러스트를 읽고자 노력했다. 역시나 그림보단 글을 주로 상대하는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단순히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또 아니었다.


나의 눈이 아니라, 전시회를 반짝거리는 눈빛으로 활보하는 아이들의 눈으로 봐야 했다. "저건 뭐야?" "엄마, 저기 이상한 괴물이 있어!" 나도 그 아이마냥, 글대신 그림을 읽던 아이의 눈으로 전시를 보고자 했지만 역시 실패했다. 어릴 적 이면 보였을 수도 있던 것들이 되려 어른이 되니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었다.

 

내게 그림책을 읽어주던 엄마의 어려움이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어려움을 겪는 사이 엄마는 어린 아이를 품 곁에 두었던 그때처럼 내게 그림 책 속의 세상을 모두 이야기 해주고 싶은 마음 그대로 그림하나 하나를 꼼꼼히 보는 듯 했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보며 어른의 눈이든 아이의 눈이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림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아닌가 생각했다. 

 

언제부턴가 '현실적으로'라는 말을 참 많이 쓰게 되었다. 그거 현실적으로 가능해? 현실적으로 판단해봐. "현실적"이라는 표현 앞에서 어른이 된 나는 얼마나 작아지고 좁아졌나 생각한다. 굳이 무언가 머리로 이해하지 않아도, 또 말로 정확하게 표현해낼 수 없어도, 그냥 자유롭게 보고 판단하고 상상해버리는 전시장 속 아이들이 나보다 훨씬 커 보였다. 품을 수 있는 세계가 더 넓어보였다.

 

어느 바다가 복잡하고 화려하게 펼쳐진 일러스트를 앞에 두고 멍하니 바라보았던 그 순간, 한 아이도 내 곁에 와 그 그림을 함께 보았다. 파도가 꽤 복잡해보이는 그림이었는데, 저런 파도면 배가 침몰할 법하지 않은가, 어디 떠나기 위험한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무는 도중 옆에 있던 한 아이가 말했다.

 

"아빠, 바다가 디게 커"

 

파도가 복잡해서 위험하고 어쩌고 저시기가 무슨 상관인가. 일단 바다는 크고 바다가 크다면 더 많은 것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나보다 키는 한참 작은 아이었지만 마음이 배로 넓어보였다. 어른이 소용없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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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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