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올 봄의 강나루 [음악]

이번 봄, 김윤아 <봄이 오면> / 이수복 <봄비>
글 입력 2020.03.22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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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우리는 갈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바깥은 더없이 좋아, 나는 계획도 목적지도 없이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랍니다. 그러나 갈 수 없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간만에 찾은 학교는 전부 닫아 있었고, 책이나 반납해야지 하며 찾은 중앙도서관의 캄캄한 속은 아주 처음이라 놀랐습니다. 불 꺼진 중앙도서관이 내게 처음인 때문입니다.

 

젊은이의 불야성마저 눈 감아 잠에 처했습니다. 나는 이 안을 매일 찾던, 이름 모를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후줄근한 츄리닝 차림의 그들. CPA와 행정고시와 LEET와, 봄을 찾느라 한동안 겨울에만 처해있던 그 낯선 쓸쓸함들을 떠올려봅니다. 그들은 전부 어디로 갔을는지요.

 

언제부터 우리 안에 찬찬히 쌓여온, 또한 짜여온 두려운 생각들이 지금, 불길한 연료를 머금어 높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높아만 지고 있습니다. 계절만 낯을 틔워 오고, 우리는 모두 불안한 시절 속에 한동안 처해 있습니다. 인터넷을 켜 곧장 뉴스 탭엘 들어가니, 온통 불길한 이야기들. 여태 짜여온 혼란한 두려움들이 그를 머금으며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버스에는 곱고 온화한 목소리로 우리 사이에 거리를 부탁하는 말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봄을 잃어버린 것에 벌써 무기력해 가고 있었습니다.

 

버스에 앉아 입을 막은 채, 창밖으로 또 헤드셋 위로, 김윤아 씨가 떠올랐습니다. `봄이 오면`이라는 제목의 노래입니다.

 

 

 

 

[봄이 오면]

 

- 김윤아

 

봄이 오면

하얗게 핀 꽃 들녘으로

당신과 나 단둘이

봄 맞으러 가야지

 

바구니엔

앵두와 풀꽃 가득 담아

하얗고 붉은 향기 가득

봄 맞으러 가야지

 

봄이 오면

연둣빛 고운 숲 속으로

어리고 단비 마시러

봄 맞으러 가야지

 

풀 무덤에

새까만 앙금 모두 묻고

마음엔 한껏 꽃피워

봄 맞으러 가야지

 

봄바람 부는 흰 꽃 들녘에 시름을 벗고

다정한 당신을 가만히 안으면

마음엔 온통 봄이 봄이 흐드러지고

들녘은 활짝 피어나네

 

봄이 오면

봄바람 부는 연못으로

당신과 나 단둘이

노 저으러 가야지

 

나룻배에

가는 겨울 오는 봄 싣고

노래하는 당신과 나

봄 맞으러 가야지

 

봄이 오면

 

봄이 오면

 

봄이 오면



그녀의 절절한 목소리가 귀엘 흐르듯 스칩니다. 나는 어딘가 허한 눈길로 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가는 겨울 오는 봄 나룻배에 싣고 봄 맞으러 가야지. 봄 맞으러 가야지. 그러나 이 낭만의 안엔 불길한 예감이 뚜렷합니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나는, 은연중 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앉아서 노래 부르는 저곳은 봄 오기 직전인가 보다. 저기 멀리서, 그녀의 봄을 실은 배는 드디어 어귀를 지나 낯을 비추고 있나 보다.’ 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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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품은 꿈을 양손 가득 안고 나루터를 서성이는 그녀가 창밖으로 환영처럼 그려집니다. 멀리 배는 강어귀에 돌아 나오고 저 안에 봄은 타 있을 것이라. 꾸어왔던 만큼 오래, 기다림은 더디겠습니다. 봄이 오면. 저 봄이 오면. 기다린 만큼 설레고 설레는 만큼 더딜 것입니다.

 

그녀 안에는 아름다운 상상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왜 이토록 절절히 불길한 것일까요. 그녀는 겨울에 너무 지쳐버린 탓인지, 아니면 봄은 다만 이뤄지지 않을, 영원히 닿을 수 없이 아름답기만 할 꿈인 것일지…

 

나는 까닭도 모르게, 그 옛날 고교 문학 시간에 접했던 어떤 시가 떠올랐습니다. 나의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서러운 두 봄은 절로 얽히어 갑니다.

 

 

[봄비]


-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내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고 새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香煙)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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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두 작품의 인상은 조금 다릅니다. 후자에는 더욱 직관적인 슬픔과 그 까닭이 드러나 있고 전자는 그렇지 않지요. 그러나 두 작품 모두, 더없이 서러운 봄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넘겨짚는바, 꼭 같은 이유를 안고 있을 듯합니다.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전자에 멜로디와 가수의 목소리가 덧입힌다는 것에 있겠습니다. 시 <봄비>는 텍스트만으로 존재하는 개체이고 텍스트 안에서 완결되어야 하는 서사, 그러므로 암시에는 그를 위한 내적인 근거가 필요 됩니다.

 

아름다울 봄, 그 앞에서 갖게 되는 외려 설움은 극적이라 강한 울림을 선사합니다. 봄이 고통이 되는 일은 그 풍기는 행복의 예감들에서, 내가 아스라이 정반대로 먼 때뿐. 저 화사한 빛과 나 사이의 거리감이 잊을 수 없이 계속 상기되고, 가진바 그림자가 더욱 환하게 드러나는 때뿐 아닐까 합니다. 이는 우리 보통의 기대와 이해는 아닌지라 설명과 근거가 필요할 것인데, <봄비>에는 그것이 텍스트 내적으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임 앞에 타는 향연이.

 

제목, 봄비입니다.

 

눈을 감아봅니다.

 

지금 비는 오고 있습니다. 서 있는 강나루 앞으로는 하늘빛을 담은 강이 처절히,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이 위로는 마지막 잿빛이 무겁고, 봄비만 언제나처럼 가벼이 새살 대고 있겠습니다. 나는 이 비 곧 그치면, 청록이 노골적으로 타오를 것임을 잘 알아 두렵습니다. 하늘이 개고 장차 부는 동풍에 만물이 복에 겨워 지껄일 것을 벌써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내게도 봄은 축제였던 시절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그를 잊지 못하기에, 나는 만물의 흥겨운 춤사위 앞에 무너질 것을 벌써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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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봄이 오면>은 텍스트 안에 어떠한 근거와 암시도 없습니다. 이 작품의 노골적인 불길함은 그녀의 목소리, 즉 화자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포착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물론, 그 까닭에 대한 아무런 암시가 없기에 분명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다만 우리는 여러 이유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누구에겐 들 아름다울 이 상상, 가사 안에 반어는 없을 것입니다. 내 당신과 봄을 맞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을 이 있으리라곤 생각 못하겠습니다. 분명 봄의 소망은 만인께 아름다운 것일 테니. 그러나 노래하는 이는 왜 슬픈가. 어떤 이유로 저리 노골적으로 슬픔의 예감을 끼치는가. 그것이 아름다운 봄의 기대에 대한 반어 표현이 못 되고서야 남은 이유는, 그 아름다움의 미래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너무 아름다워 슬픈 꿈 말입니다.


그녀에게 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봄을 함께 맞을 당신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줄거리는 보시듯, 당신과 맞을 봄에 대한 상상. `봄이 오고 그 좋은 봄을 당신과 함께하면 얼마나 좋으리.` 얼마나 좋으리. 봄이 오지 않을 리는 만무하고 역시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부재뿐입니다.

 

당신이 어디 ‘서해’에 가 계실지, 혹은 향연으로 타고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찌 되었건 봄은 올 것이고 그 봄의 소망이 떠오름도 이렇듯 당연한 일입니다만, 그러나 당신이 계시지 않는다면… 이 모든 아름다움은 단번에 설움이 되어 우리가 드높아진 만큼의 폭으로 추락하는 것,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일이었잖습니까.

 

당신은 떠나신 것인지 아주 가버린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 가수이자 화자인 김윤아의 목소리에서 느끼는 감정의 색에서는 왜인지, 후자의 예감이 끼칩니다. 까닭을 알 수는 없고 다만, 그렇게 느껴집니다.

 

당신이 만약 멀리 ‘서해’에라도 계신다면, 같은 하늘 아래 어딘가에라도 계신다면, 먼 미래 어디 먼 곳에서 다시 만날 한 끗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을 까닭에 이다지 처연할 일 없을 테니까요. 만나 뵙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이 하늘 끝 어딘가에 계시기만 한다면 재회의 희망으로 나는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혹, 당신은 누군가의 지아비가 되어, 조촐한 상을 앞에 둔 채, 어떤 어린 것의 등을 쓸고 계실런가요. 아무것에도 알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아는 것이라곤 어찌 되었건 봄은 오고, 그를 따라 봄의 소망도 떠오고, 그러나 그 소망은 영영 이룰 수 없어 삿된 아름다움으로 깨어져 버리었다는 것뿐입니다. 이제, 4연에 적힌 ‘무덤’의 주인을 몰래 떠올려 봅니다.

 

간절히도, 깨어진 소망을 나루터에 앉아 부릅니다. 바랐던 만큼 미련하게 부릅니다. 몇 밤 지내면 지금 오는 봄도 다시 배에 실어 띄워 보내겠지만, 영원히 돌아올 봄이라 영원히 슬플 일이겠지요. 아름다움은 그만큼 추락해 아픔이 됩니다.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같이. 아지랑이는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같이. 서러운 그 빛. 풀꽃이 영원히 잠들지 않는 이상, 매해 소생과 함께 봉오리에선 어김없이 당신이 피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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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지금, 이 노래에서 이 시를 떠올렸을는지요. 아마 나는 이번 봄에 많은 것을 기대고 있었을 때문입니다. 그것이 비록 저 이들처럼 사랑은 못되겠지만. 아니, 솔직해보자면 그 안에 사랑 있기도 했습니다만, 내 이번 겨울이 지독했던 따름입니다. 너무 많은 슬픔 들이 있었기에 봄을 붙잡고 지나왔습니다. 봄은 오게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봄만 올 줄 그때는 몰랐습니다.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습니다. 동시에, 잃어버리게 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나는 저들처럼 아프진 않습니다만... 새가 지껄이는 때마다, 햇살이 따스운 만큼 슬프기도 합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인데, 기대는 제 두 날개로 혼자 멀어져 가는 생각이었나 봅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아파하는 사람들과 두려워하는 사람들로 가득하겠지요. 나는 그보다는, 겨우내 처했던 이 동굴에 조금 더 기거해야 함이 벅찹니다. 겨울잠은 봄에의 약속으로 맺은 것이라서 말입니다.

 

내 이번 봄에 그리어둔 꿈은,

임 앞에 타는 아지랑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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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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