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시의 성찰 [문화 전반]

도시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다
글 입력 2020.03.12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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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팽창한다. 파괴와 동시에 새로움을 파생하는 도시의 곳곳에서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공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대개는 무심하게 펼쳐지는 도시의 풍경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우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물리적 환경이 어떠한 목적과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이다. 매 순간 새롭게 생겨나는 도시 이미지가 우리 삶의 다채로움을 반영하는 듯하지만 그와 동시에 현 사회의 예측 불가능한 혼돈을 더욱 공고히 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도시 생활자로서 우리는 도시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한의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도시를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나'라는 한 개인과 전체 사회와의 관계를 파악하는 연장선상에 있다.


도시의 공간들이 인간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에 자신이 사는 공간에 대한 무관심은 결국 이 사회에 대한 무지를 뜻한다. 우리가 공간을 사유하지 않고, 주변의 환경과 일상을 예민하게 포착하지 못한다면 그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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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tteo Catanese

 

 

오늘날 대도시들은 재건축과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혁신을 일으켜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듯하다. 재건축 아파트 공모작들만 보더라도 대부분 높고 압도적인 형태의 빌딩이 밀집된 첨단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사람들은 하늘로 치솟은 높고 현란한 건물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공허한 이미지에 불과하다. 실제 그곳에 살게 될 거주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전지적 건축 투자자들의 시점에서 조망한 거대 자본주의 부동산업을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우리는 사회와 대중 매체가 주입한 관습에 의해서 주변 공간들을 바라보게 된다. 이에 대한 개별적 해석이나 비판적 대안을 제시할 여유가 바쁜 도시인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도시 생활자들의 공간에 대한 경험과 생각은 지극히 단편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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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xtermm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에서 저자인 승효상 건축가는 도시의 공간들이 피상적 차원으로 전락해버린 현 상황을 지적한다.  현재 서울에 존재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들은 주변을 화려하게 장식해 주지만 그 민낯은 거대한 폭력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미증유의 풍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들은 정서적, 경제적, 환경적 측면에서의 강제적인 희생을 치러내야만 했던 것이다. 실제 시민들의 삶과 일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외따로 세워진 거대 건축물들은 이 땅의 편에 서있지 않다. 그렇게 도시 속 스펙터클은 우리의 삶에 소외와 불안을 안겨주고, 거대한 절망감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도시가 희생을 치른 결과는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잠재되어 있다. 서울에는 반성과 성찰의 장소가, 환대와 위로의 장소가 상실되었다. 우리가 일궈냈던 삶 이면의 깊이와 어둠을 깨끗이 지워버린 것이다. 오늘날 상업 건물의 화려한 조명과 영상적 공간은 산만함을 유포하고 소비자들을 현혹시킨다.


끝없는 욕망을 자극하는 공간으로서, 이 도시는 현대인의 고요한 사색을 방해하는 대중 도취의 장이다.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는 현대 도시의 모습을 '소비 자본주의 인공 낙원'으로 묘사하고 있다. 모든 삶의 방식이 자본주의 원리에 편입된 지금, 우리에게는 도시의 본질을 생각해보는 것이 요원한 일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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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oji Iwata

 

 

그렇다면 도시를 가장 도시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좋은 도시의 가능성은 공공 건축물이나 거대 상업시설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 기반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숙이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깊은 상처와 상실에도 불구하고 이 도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 공간에 머물며 함께 하는 사람들 간의 애정 어린  만남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도시 생활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새롭고 환상적인 공간이 아니다. 건축과 사람, 마을과 주민, 더 나아가 지역과 사회를 잇는 지속 가능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고 감싸주는 여유와 애정이 가득한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공간을 가꾸는 것이 어느 유명 건축가의 능력이 아닌 그곳을 살아내는 평범한 시민들의 연대라는 것을 알 때야 비로소 우리는 도시를 가장 도시답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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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yu Kim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다시 그 건축이 우리를 만든다." (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 윈스턴 처칠이 1943년 폭격으로 폐허가 된 영국 국회의사당을 재건하기로 약속하면서 했던 말이다. '건축'을 '도시'로 바꿔 쓴다면 도시와 인간 삶의 관계를 더욱 명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될 것이다. 이렇듯 도시와 사람은 서로를 거울처럼 비추며 어쩔 수 없이 함께 닮아가며 변화한다.

 

최근에 들어서며 다시금 로컬의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이는 집합적 도시에 담긴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의 소중함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그렇게 도시는 피상적 외연이 아닌 사람과 사람을 매개하는 소통의 장으로 성장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우리는 매일 도시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며 일상을 영위한다. 평범한 보통씨들의 삶이 켜켜이 새롭게 쌓여가기에 도시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무심코 지나치던 도시의 풍경들을 잠시 멈춰 깊이 음미해보는 사색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이다.



[김지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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