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픔은 성장의 필수 조건이 아니다 [영화]

글 입력 2020.03.11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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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초, 항상 보는 영화가 있다.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이란 작품이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그저 한국 독립 영화계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영화를 봤었다. 그 이후, 영화 ‘파수꾼’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일종의 반성문이 되었다. 반드시 성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 그리고 성장이라는 것이 꼭 아픔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흔히 아픔은 성장을 위한 배경이라고 한다. 아픔 없이 큰 아이를 우린 철부지라고 비하하기도 한다. 또, 마냥 밝기만하다고 그들을 욕하기도 한다. 하지만 꼭 아픔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일까. 그저 아픔 없이 커서는 안 되는 것일까. 영화 ‘파수꾼’을 보며 아픔은 그저 아픔일 뿐이란 것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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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기태(이제훈), 동윤(서준영), 희준(박정민) 세 친구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어느 날, 기태가 죽었다. 기태 죽음의 이유에 대해 알고 싶었던 아버지는 기태의 서랍 속에 있는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친구들을 찾으러 다닌다. 친구들을 만나면서 기태 죽음의 이유를 찾는다.

 


 

# 누가 기태를 죽게 했는가.


 

영화의 초반까지는 기태(이제훈)가 죽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의 곁에는 많은 친구가 있었고 영화 초반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였다. 억울한 것은 그에게 폭력을 당한 희준(박정민)이 아니겠는가. 기태, 동윤, 희준은 좋은 친구 사이였다. 그들의 사이가 왜 이리 틀어졌을까.

 

희준은 보경을 좋아했고, 보경은 기태를 좋아하고 있었다. 희준은 이 사실을 알고서, 그녀를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태는 자신 때문에 희준과 보경의 사이가 틀어지는 게 싫어서 희준이 보경을 좋아하는 걸 말해버린다. 기태의 노력은 희준이 원한 노력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사이는 틀어지게 된다. 기태는 차가워진 희준에게 더 쌀쌀맞았고, 나중에 다시 사과하려고 하지만 그 사과는 희준에게는 너무 가벼운 사과였다. 결국, 희준은 기태에게 말한다. “널 친구로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동윤(서준영)과 기태는 희준보다 더 오래 알던 사이다. 기태의 가정사에 대해서도 희준보다 동윤이 더 많이 알고 있고 그래서 동윤은 가족 이야기를 기태 앞에서 하지 않는다. 동윤은 기태와 희준의 사이가 무너지는 것을 봤다. 그 순간의 잘못은 기태에게 있었기에 동윤은 기태에게 화를 냈다. 하지만 기태는 자신을 보호하려고 동윤의 여자친구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낸다. 결국, 동윤과 기태의 관계도 멀어지게 된다. 기태는 동윤에게 사과하러 가 어디서부터가 문제였는지 묻는다. 그 질문에 동윤은 “너만 없었으면 돼”라고 대답한다.

 


 

# 기태는 왜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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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태, 동윤, 희준 세 명의 끈끈했던 우정이 파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의 시작은 물론 기태였을 것이다. 기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친구들의 아픔을 건드렸다. 하지만 동윤, 희준이 피해자로만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기태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그들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은 누구 입장에서 보냐에 따라 영화를 다르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희태를 원망하고 누군가는 기태, 동윤을 원망한다. 영화 속 기태는 한없이 나약하다. 물론 학교 폭력을 행하면서 외적으로는 강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강한 외면은 그만큼 약한 내면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영화의 초반 기태의 죽음 이후 기태의 방에 들어간 아버지는 책상 속에 사진들을 발견한다. 사진들은 기태의 어린 시절과 자신의 엄마 사진 그리고 동윤, 희준과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자신의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친구들이다.

 

기태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다. 어머니의 부재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왜 기태의 어머니가 부재하는지는 다루지 않는다. 그리고 왜 그것이 유독 기태에게 힘든 것인지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유추해본다면 청소년의 시기 친구들에게 있는 부모님의 손길이 자신에게는 없는 것에 대한 외로움이 아닐까. 영화 속 희준이 가족에 관해 이야기를 하자, 기태는 희준에게 자신은 스스로 일어나서 스스로 밥을 해 먹는다면서 화를 내면서 가족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하는 장면이 있다. 이렇듯 자신의 약한 부분을 가리기 위해 폭력성을 보이는 청소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약한 기태에게 가족을 대신하는 건 바로 친구들이었다. 청소년 시기 성장하는 이들에게 누가 가장 힘이 되는가 의지를 하는가에 대한 설문에 자신의 친구라는 의견이 80%가 넘었다. 청소년 시기의 친구란 벗어날 수 없는, 없어서는 안 되는 불가항력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결국 기태의 죽음 속에서는 그 불가항력인 존재의 부재가 특히나 가족과의 사이가 단절되어있던 그였기에 더욱 컸을 것이다. 기태의 행동을 보면 자신의 보호하거나 친구들을 위한 모습이 전부이다. 그런 기태에게 동윤은 너만 없으면 된다고 하고, 희준은 널 친구로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한다. 결국, 기태는 그렇게 무너져버렸다.

 

이 부분에서 감독은 다소 기태를 보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를 변호할 생각이 없었다면 이 영화를 굳이 영화의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여 영화를 만들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은 기태에게 친구의 의미를 더욱 크게 만들기 위한, 기태의 흔들림에 대한 영화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흔들림에 지지해 줄 어른이든 친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와도 같다.

 


 

# 영화의 연출


 

야구공이 눈에 띈다. 기태에게 야구공은 중요한 의미다. 자신의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와 야구를 하던 추억이 담긴 공이기도 하고, 동윤에게 자신이 야구 수호 선수로 뽑혀서 인터뷰할 거라고 말을 하면서 야구공을 통해 미래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또한, 세 친구의 우정을 보여주는 공이기도 하다. 그 야구공을 쥐고 있는 사람은 추억이 담긴 공을 보면서 세 명의 비극의 원인을 자신으로 지목하게 된다. 기태가 야구공을 쥐고 있을 때는 세 명  의 우정 파괴의 원인을 기태의 측면에서 부각된다. 공이 희준에게 가면 희준에게서 동윤에게 가면 동윤에게서 이 세 친구의 이야기가 비극이 될 수밖에 없던 이유가 나온다. 결국 야구공은 사건 진행에 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결국 그 공을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었던 동윤은 결국 죄책감으로 장례식장에 오지 못한 것이 아닐까.


영화 <파수꾼>은 단순히 플래시백(과거 회상)을 하지 않는다. 다층적 플래시백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현재는 기태의 아버지가 이유를 찾아가는 것이다. 아버지와 대화를 하면서 나오는 영상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와 자신이 말한 것과 상충되어 비극성을 강조한다. 또한, 그 중간중간 회상으로 보이는 그들의 좋은 시간은 이 사건이 주는 비극에 더한다. 청소년은 불안정하다. 그렇기에 그 순간엔 가족보단 친구가 더 소중하고, 별거 아닌 것이 자신의 가장 아픈 부분이 된다. 기태의 가정사같이 말이다.

 

그런 불안정을 보여주기 위해 기본적으로 핸드헬드를 사용한다. 그 이후, 현장감 묘사를 위해 한 장면에서 아웃 포커스와 인 포커스를 반복하여 불안정한 상황을 묘사한다. 그것이 그 청소년기의 시선을 대변하는 것과도 같다. 또한 대화할 때 클로즈업을 사용하는데, 주로 대화를 하면 오버 더 숄더 숏을 많이 이용한다. 대화라는 것을 각인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할 때는 철저하게 클로즈업을 이용한다. 이는 상대방과 자신의 관계 속에서의 대화를 인식하는 것이 아닌 독자적인 자신의 생각 안에서 이 대화가 이어졌다는 것을 앵글을 통해서 다시 확인시켜준다.

 


 

# 파수꾼, 경계하여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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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꾼의 의미는 ‘경계하여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결국에 영화를 보고서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된다. 영화 속 과연 ‘파수꾼’이 존재하는가. 영화 속에 파수꾼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히는 해야 할 사람이 하지 못했고, 누군가의 파수꾼이었던 이들마저 떠나는 영화다. 그 결과 희준은 학교를 잃고, 동윤은 삶을 잃고, 기태는 자신을 잃었다.

 

파수꾼을 두 가지 의미로 생각해보았다. 처음은 파수꾼이 부재함이다. 우리는 흔히 어른들이 청소년의 보호막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영화 속 어른은 아무런 힘이 없다. 선생님은 학교 폭력의 현장에 있었지만, 그 어떤 것도 해결하지 않았다. 또한 학교 폭력으로 희준이 전학을 갔다. 하지만 기태에게 그 어느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서 파수꾼의 역할을 성실하게 하지 않고 있는 어른의 모습이 보인다.

 

다른 어른인 기태의 아버지는 이미 기태가 떠나고서 사건을 파악하려고 한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아버지가 사실을 안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그걸 남아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지 기태가 떠나고 그에게 사실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다. 결국, 이 작품은 자신의 삶과 슬픔에 청소년의 보호막이 돼야 했을 어른의 부재로 생긴 이야기다.

 

파수꾼의 두 번째 의미는 기태의 파수꾼의 부재이다. 어른들이 청소년을 지켜줘야 하는 것은 맞지만 과연 청소년은 자신의 파수꾼이 과연 자신의 선생님, 아버지와 같은 어른이라고 생각했었을까. 기태의 파수꾼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태의 파수꾼은 동윤과 희준이였다.

 

기태와 동윤의 행복했던 대화가 영화가 끝날 때쯤 나온다. 기태는 동윤에게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비참해져도 너만 나 알아주면 돼, 넌 중학교 때도 나 알아줬잖아’라고 말한다. 기태에게 파수꾼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 자신의 옆에 항상 존재하면 자신을 알아주었던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결국 기태는 희준에게 그리고 동윤에게 상처를 주었고, 그 결과 희준과 동윤은 더 이상 기태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결국, 기태는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기태는 자신의 파수꾼을 잃었다. 결국, 영화 <파수꾼> 파수꾼이 부재한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해자는 나쁜 사람, 피해자는 불쌍한 사람. 세상에 그런 기준을 누가 만들었는가. 세상은 이분법적이지 않다.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든 이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본 세상은 이분법적이지 않았어요.” 결국에 이 작품은 누구 한 명의 잘못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기태는 가해자면서 피해자였고, 동윤과 희준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 경계를 넘어서 애초에 그 경계는 있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기준이라는 것이 정확하냐고 질문한다.

 

청소년을 다룰 때 보통 성장 영화로 다룬다. 청소년 때 큰일이 생겼고, 이겨내고 결국 성장했다는 것이 성장 영화의 구조이다. 예로는 <월 플라워>, <빌리 엘리어트>, <플립> 등 앞서 말한 구조이다. 결국에 성장에 초점을 두고서 행복한 결말을 내리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이 영화 <파수꾼>도 청소년이 나오고 그들에게 큰일도 생겼다. 하지만 성장했는가. 세 명 모두 결코 성장하지 않았다. ‘성장하지 않음’ 이 부분이 감독이 이런 비극적인 영화를 만든 이유이다. 청소년 시절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모든 상처를 이겨내는 것이 아니며, 그 상처의 깊이가 어른들과 비교해서 결코 작지 않음을 보여준다. 결국, 영화 <파수꾼>은 윤성현 감독 스스로 기태, 동윤, 희준의 파수꾼이 되어주고 싶어서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이런 방황하는 아이들의 옆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관객을 향한 감독의 부탁이 담긴 장편 영화다.

 

*

 

성장의 조건은 아픔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아픔으로 성장할 수도 있지만 우린 아프지 않고도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청소년의 아물지 않는 상처를 보면서, 관객이 성장하는 영화 ‘파수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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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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