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사로 바라보기 : 스물다섯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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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입력 2020.02.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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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로 바라보기 : 스물다섯

스물다섯, "      "

Opinion 민현


 

 

#1 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다섯은 스물하나에서 시작한다. 철없던 스물한 살에 자우림의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스물다섯이 되면 이 노래를 다시 들어봐야지, 하고 너무나도 매력적인 제목과 기타선율에 사로잡혔다. 데뷔 20년이 넘은 전설적인 밴드 자우림이 쓴 이 곡은 자신의 어린 날을 회상하는 촉촉한 노래지만, 21살부터 25살의 나에게는 일종의 계시였다. "스물다섯이 되면 뭔가 엄청나게 와닿는 바가 있으리라.." 하면서 너무나도 듣고싶었던 이 노래를 25세가 될 때까지 일부러 자주 재생하지 않았다. 이 노래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역시 긴 세월의 힘을 담고 있는 가사였다. 가성과 진성을 넘나 들며 맛을 너무도 잘 살린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해”와 같은 가사와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하지만 내 마음을 찌른 킬링포인트는 이 부분이었다. 참으로 잘 쓴 가사가 아닌가 싶다. 내가 '사무치게 안다'는 표현을 진심으로 느껴본 적이 있을까? ‘사무치다’라는 말처럼 가슴에 깊이 새기는 말이 있을까. 25세를 넘긴 지금도 아직 사무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이거 하나는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언젠가 ‘사무치게 알’ 때가 되면 나의 20대는 끝나고 어쩌면 30대도 거의 끝나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때가 되면 꽃은 이미 시들어버릴 것이라는 것도. 지금은 이 꽃이 아름다운지 유심히 봐도 알 수 없지만, 나중에 ‘그때 참 아름다웠지..’라고 느끼고 싶었다. 스물다섯에 대한 기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2 스물다섯, "반환점"


20대의 반환점을 돌았다. 매년 한 해를 정리하는 노래를 만들지만 올해는 참 입에 붙지 않았다. 한 학기의 휴학, 한국을 떠나있던 100일부터, 오랜만에 시작한 사랑까지 3분짜리 노래로 요약하기란 정말 쉽지 않은 해였다. 그래서 묵은 해를 넘기고 나서도 천천히 생각해봤다, 나에게 25가 무슨의미가 있을지, 그리고 어떤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을지. 이 기록이 끝나면 또 다시 스물 여섯을 향해 가야하기 때문에 스물다섯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다만 어서 빨리 쓰고 스물다섯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보내주기 싫은 마음이 두달간 마음을 어지럽혔다. 결국 반환점을 조금 늦게 돌아 이 기록을 쓰며, 이 에세이가 내게는 빛나는 20대를 추억할 기록으로 남았으면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겐 자신의 스물 다섯을 회상하거나 상상하는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스물다섯은 생각이 너무나 많았다. 20대의 반환점에 서서 20대가 끝나가는 걸 아쉬워했다. 반환점을 돌면 레이스도 곧 끝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하지만 인생은 목표가 있는 완주라기보다는 계속해서 반환점을 돌고 돌아 언젠가 지쳐 쓰러질 레이스가 아닌가. 다시 0으로 돌아가도 서른 마흔의 레이스가 계속 펼쳐질 것이었다. 레이스와 반환점 등등 거창하게 생각하기에는 앞으로 남은 인생은 너무 길었다. 지금은 조금 쉬어갈 때가 아닌가, 아니면 앞으로 달려갈 레이스를 위해 준비를 해야할 때인가. 세상을 보는 내 눈을 차갑고 현실적으로 만든 건 스물다섯이라는 나이일까, 아니면 세상일까. 아니면 결국 돈인가.


변한 건 없어 세상은 그대로

결국 돈이라고 말하는 XX들도

변한 건 없어 세상의 식대로

얼른 나이 먹고 천천히 뛰어야지

 

변한 건 없어 세상의 평가도

보여준 게 없으면 그냥 보이는 대로

변한 건 없어 세상은 멋대로

늘어가는 건 나이와 내 책임뿐

 


#3 스물다섯, "떠나자"


잠시 앉아 하늘을 쳐다보니 어쩔 땐 간절하기도 했던 것들이 지금은 그저그런 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다. 스물다섯 스물하나처럼 뭔가 또 느끼는 바가 있겠지, 하는 불확실한 계시를 믿으며 한국에서 엄청나게 먼 곳에 가서 살면서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면 뭔가 달라질 것 같았다. 그리고 ‘유럽 여행’은 일종의 신념이었다. 본적도 없지만 들리는 얘기만 많은 신과 같은 존재.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건 없었다. 그리고 스물다섯까지 쌓아온 나는, 그리고 이렇게 단단해진 나는 노래나 이국적인 풍경과 사람들 등으로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더 확고해졌다. 아마 내가 변하지 않기 위해 적응했던 걸 나는 변했다고 착각했을 수도. 여행에서 끄적인 노트에는 내 고민의 흔적이 긁혀있다.


수평선을 날아가는 저 비행기처럼

나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

기나긴 여행으로 날갯죽지가 아파

가로등에 앉아 잠깐 쉬겠지

 


#4 스물다섯, "스물여섯"


그래도 절대 후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때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값진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중요한 건 앞으로 오게 될 계시같은 게 아니라 현재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고 뭘 느낄 수 있고 누구를 사랑할 수 있는지와 같은 것들. 인생의 거창한 목표와 같이 중요해 보이는 건 아니지만 사소한 것들, 그리고 사소할수록 오히려 중요한 것들에 지금부터라도 집중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스물다섯까지의 내 기록이 흘러온 한 해를 완료형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면 스물여섯부터는 과정으로서의 기록을 진행형으로 쓰고싶었다.


그리고 아직도 쓰기에 목말라 있는 나에게 다른 쓸 것이 생겼다. 글이나 가사를 끄적이곤 했던 내 노트에 어울리지 않을 표가 생겼다. 크게 세 종류, 해야 할 것, 하고 싶은 것, 지금 당장 해야 할 것.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건 이제 확고하게 알 수 있었다. 그래 25살까지는 내가 뭘 잘하고 뭘 좋아하는 지 찾는 시간에 가까웠다. 미래를 위한 현재,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에 집중해야 할 때다. 남은 레이스를 끝날 때까지 필요한 것들과, 그 레이스에 지쳐 잠깐 쉬어갈 때 나를 위로할 사람과 노래, 그리고 그들에 대한 책임감. 아직 꽃이 사무치게 아름다운 이 때에 아름답게 질 때를 준비하자. 다가올 날에는 조금 더 무게감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25


수평선을 날아가는 저 비행기처럼

나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


기나긴 여행으로 날갯죽지가 아파

가로등에 앉아 잠깐 쉬겠지


그래도 여기엔 없어

기다림, 후회, 미련

그래도 여기엔 있어

빛나는 별, 웃음과 여유


너를 잊지 못해 아팠던 기억은

노을 빛을 보며 그리는 추억이 되고

아파 울던 눈물 자국은

조금은 멋진 상처로 남아


저만치 걸어오는 여유로운 여행자처럼

나도 터벅터벅 걸음을 옮겨


걷다가 마음에 드는 강가에 누워

그리움에 사무칠 미래를 생각하겠지


그래도 여기엔 없더라

쫓김, 바쁨, 우울함

그래도 여기엔 있더라

늦잠, 내려둠, 웃음


너를 잊지 못해 아팠던 기억은

노을 빛을 보며 그리는 추억이 되고

아파 울던 눈물 자국은

조금은 멋진 상처로 남아


-


아무 것도 찾지 않기 위해

떠났지만 돌아올 때를 위해

하나씩 남겨두고 

꼭 다음에 다시 와야지

 

다시 돌아간 난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다시 돌아가면 난

너를 찾을 수 있을까

 

수평선을 날아가는 저 비행기처럼

나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떠나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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