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비현실로 현실을 찌르다 -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도서]

글 입력 2020.02.28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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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우리 동네에서 소리가 사라진다면? 말도 안 되는 연착과 배차 간격으로 유명한 경의중앙선에 출퇴근길 혼령들이 잠들어 있다면? 금요일 밤에 자고 일어나보니 또 금요일이라면? 만약 지구상에 용이 살아 숨쉬고 있다면?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심너울 작가의 SF 단편집이다. 단편들 모두 하나 같이 발상이 기발한데, 일상과 동떨어져 있지 않아 더욱 그 색깔이 독특하다. 당장 내일 아침에 일어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건들로 공상과학 소설 한 편을 완성한 이 작가는, 놀랍게도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가 첫 단편집이다.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안타깝게도, 바란 바와 달리 그 경험은 자아 탐색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회한이 많아 이불을 자주 찼더니 레그 레이즈만 잘하는 기묘하고 빈약한 신체를 갖게 되었다. 별개로, 현실의 경계 끝자락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



사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 작가 소개 문구 때문이었다. 단 네 문장 안에 위트가 가득해서 이 작가가 쓴 소설이 굉장히 궁금했다. 평소 SF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었지만 왠지 흥미가 당겨서 표지를 펼치게 되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다 읽고 나서도 어딘가 아쉬워 출판사 PD의 편집 후기까지 꼼꼼히 읽었다. ‘정적’,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신화의 해방자’, ‘최고의 가축’ 총 다섯 개의 단편이 수록된 이 책은 모든 단편이 사소한 위트와 날카로운 통찰, 그리고 통통 튀는 상상력으로 무장해 있다.


 

 

1 정적



특히 ‘정적’은 현 시점의 우리나라를 떠올리게 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외출도, 모임도, 공연도, 심지어 일상생활까지도 마비가 된 현재와 어딘가 흡사했다. 서대문구와 마포구 일대에 소리가 들리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 번지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동네를 떠나기 시작한다.


자연스레 집값을 비롯한 동네의 가치는 폭락하게 되는데, 소설에서 주목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청각장애인이다. 소리가 사라진 동네에서 ‘듣지 못함’은 장애가 되지 못한다. 장애를 장애라고 규정할 필요가 사라진, 어쩌면 진정한 배리어 프리 공간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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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소설은 평소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소재로, 절대 주목하지 않았던 사건과 사람에 초점을 맞추어 특색 있는 전개를 펼친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다음 문장에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자연스럽게 기대가 된다. 심지어 이 단편의 배경은 서대문구. 나 또한 이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기에 매일 같이 드나드는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정적’은 일상과 비(非)일상이 충돌하는 시점에 현실에 가하는 일침이다. 소수자를 소수자로 만드는, 장애를 장애로 가두는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 ‘정적’이었다. 누군가의 유토피아는 누군가의 디스토피아가 되고, 또 누군가의 디스토피아는 누군가의 유토피아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2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



단편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였다. 경의중앙선을 단 한 번이라도 타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고 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곧 도착한다는데요?”

성하리가 풉 하고 웃었다. 밉지는 않았다.

“아니, 경의중앙선 시간표를 믿어요? 이분 정치인들 공약도 믿을 분이네.”

“그럼 언제 오나요?”

“글쎄요...”


- 46쪽



만약 경의중앙선을 꼭 타야 한다면, 적어도 20분 정도는 여유 시간을 가지고 나오는 게 맞다. 내가 경의중앙선을 처음 타던 날 충격을 잊을 수가 없다. 분명히 45분 도착 열차인데 42분에 플랫폼에 도착해 있어 헐레벌떡 뛰어서 탔는데, 출발은 49분에 했다. 고작 4분 차이가 무슨 대수냐고 할 수 있지만 모든 역에서 3~4분씩 밀린다면 도착 시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배차간격도 참으로 여유가 넘쳐서 한 번 열차를 놓치면 적어도 15분에서 20분 정도는 기다려야 차를 탈 수 있다. KTX를 비롯한 고속열차와 기타 열차들을 모두 먼저 보내고서야 출발하는 배려 탓에 승객들은 피가 말리기 일쑤다. 그렇기에 나는 세 번을 환승하는 일이 있어도 경의중앙선만큼은 피하려고 한다.



캡처.JPG

청원까지 존재했다.

 

 

‘경의중앙선에서 마주치다’는 이러한 경의중앙선의 배차간격과 연착 문제에서 출발한 소설이다. 만약 연착의 규모가 몇 분을 넘어 몇 시간 내지는 며칠까지 이어진다면? 그래서 출퇴근길 스트레스가 잔뜩 쌓인 직장인들의 원혼이 역에 깃들어 있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아포칼립스 영화만큼이나 거대한 SF가 되지 않을까. 이런 매력적인 상상력이 소설을 빚어냈다.


이 열차가 2호선처럼 서울 사람들이 많이 타는 노선이었다면 진즉에 개선이 되었을 것이라는 일침도 눈에 띄었다. 이처럼 이 책은 전체적으로 위트 있는 상상력과 일침으로 무장해 있어 모든 단편들이 새로웠던 것 같다.


 

 

3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단편집의 제목이기도 한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금요일만 사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아무런 배경 지식 없이 읽어야 매력을 더 진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는 나의 삶을 가장 많이 생각나게 한 단편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살아있는 것 같지도 않다는 문장이 참으로 씁쓸했다. 7일 중 단 이틀을 살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나 열심히, 빠르게 일상을 헤쳐나가는 것인가, 하는 회의도 들었다. 동시에 우리가 이야기하는 ‘일상’은 결국 죽어있는 5일이라는 것, 결국 우린 일상을 살면서도 사는 것이 아니라는 역설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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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고 버티며, 차라리 의식을 차단한 채 죽음에 가까운 삶을 선택하는 인생이라니. 과연 미래의 내가 이런 삶을 버텨낼 수 있을지 의문도 들었다. 앞의 두 단편보다 월등히 씁쓸했던,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4 신화의 해방자 / 5 최고의 가축



사실 이 세 단편까지만 해도 “이게 SF인가?”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 때문이리라. 우주전쟁, 인공지능, 하다못해 외계인 정도는 나와야 ‘SF스럽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신화의 해방자’와 ‘최고의 가축’에는 용이 등장한다. 이 소설집이 SF소설집은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앞선 단편들에서 내가 매력을 느낀 일상성이 이 단편들에는 희미할까 걱정도 되었지만 다행히 기우였다.


두 단편에는 모두 용이 등장한다. 하지만 세계관만 독특할 뿐, 우리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때 인간의 수호령이었지만, 자본주의는 그다지 호락호락하지 않다. 힘과 마법으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이해관계도 존재하고, 용이 잠들어있던 오랜 세월 동안 인간들은 저마다의 욕심과 야망으로 그물망처럼 사회를 엮어놓았기 때문에 더 이상 절대 우위를 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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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의 홍수에서 헤엄치는 용이든 실험실에서 우연히 등장한 용이든, 소설을 읽다보면 어딘가 묘하게 낯익은 느낌을 받게 된다. 한때 숭배의 대상이던 자연이 인간의 도구로 전락한 역사는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의 역사다. 소설의 제목인 ‘최고의 가축’이 지칭하는 가축이 인간인지 용인지조차도 확실하지 않은 것처럼, 용으로 구체화된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현실 속에서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무 것도 혼자 이룩한 것 없이, 이렇다 할 꿈도 없이 물 흐르는 대로 살던 90년대 생도 낯익다. 실험실에서 용의 조직을 이식 받아 등장한 돌연변이 쥐를 키우는 것만이 인생을 통틀어 자신이 혼자 결정하고 혼자 책임져야 할 일이 되었다. 책임의 대상이 용이라는 것이 낯설 뿐이지, 소설의 구조나 이야기는 생경하지 않다. 꿈도, 개성도 뒷전이 된 채 사회가 인정하는 삶을 살다가 회의에 마주하는 것은 결국은 우리의 이야기이므로.

 

*


바야흐로 장르 소설의 풍년인 2020년이다. 심너울 작가의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역시 한국 SF소설의 지평을 넓힐 작품임에 틀림없다. 심너울 작가의 행보도 기대되고, 이후에 나올 작품들도 꼭 읽어보고 싶다. 현실을 찌르는 위트가 공상과학과 만나면 이렇게나 독특한 색채를 지니게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주었으면.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 안전가옥 쇼-트 01 -


지은이 : 심너울

출판사 : 안전가옥

분야
장르소설
판타지, SF

규격
100X182mm

쪽 수 : 162쪽

발행일
2020년 01월 20일

정가 : 10,000원

ISBN
979-11-90174-67-1





저자 소개

  
심너울
 
서강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안타깝게도, 바란 바와 달리 그 경험은 자아 탐색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회한이 많아 이불을 자주 찼더니 레그 레이즈만 잘하는 기묘하고 빈약한 신체를 갖게 되었다. 별개로, 현실의 경계 끝자락에 걸쳐 있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하는 것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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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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