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 시지프 신화 [도서]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인간에게 아주 같은 운명은 없습니다.
글 입력 2020.02.28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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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그 밖의, 세계가 3차원으로 되어있는가, 이성(理性)의 범주가 아홉 가지인가 열두 가지인가 하는 문제는 그다음 일이다.

- p.15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었습니다. 카뮈의 ‘철학적 에세이’로 알려져 있는 이 책은 다양한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다루는 내용은 지극히 철학적입니다.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 용어들을 정의하고 연역적으로 자신의 주장에 이르는 방식의 서술은 철학적 방법론과 유사합니다. 사실 훌륭한 문장력을 자랑하는 카뮈의 희곡과 소설들을 뒤로하고 일견 난해해 보이는 이 에세이를 소개하는 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번쯤 다뤄야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에세이는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한 가지 방법을 알려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기와 불확실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부조리의 감정을 느꼈을 때, 우리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그 선택지들에 어떤 특징이 있고 궁극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시시포스 신화’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카뮈는 이야기합니다. 이 글에서는 ‘부조리’라는 이 낯선 단어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시시포스의 태도에서 어떠한 점을 주목할 수 있는지 함께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1. 부조리


 

카뮈는 『시지프 신화』에서 ‘부조리’라는 감정의 예시를 제시합니다. 어떤 굉장히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이 있는데, 어느 날 이 사람이 마을의 도둑으로 몰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사람들은 이 사람을 의심하고 불신합니다. 이때 이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바로 ‘부조리의 감정’이며, 카뮈는 이 인간을 ‘부조리한 인간’이라고 명명합니다. 부조리의 감정을 느낀 이후, 세상은 이 인간에게 있어서 낯설게 느껴집니다. 매일 마주하던 일상이 불편해지고, 자신이 꿈꿔온 평범한 미래가 한순간에 불투명해집니다.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최근 한 성소수자가 서울 소재 모 여자대학교의 법학과에 합격했으나 학내 반발에 무서움을 느껴 입학을 포기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수험생활을 성실하게 견뎌내고 대학에 합격한 순간 이 학생은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시선으로 인해 한 인간은 부조리의 감정을 느낍니다. 자신이 간직해 온 대학 사회에 대한 믿음은 무너져 내렸을 것이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미래는 말 그대로 불투명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감정은 썩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개인의 노력이 집단이나 사회에 가로막히는 경험은 흔히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카뮈의 시대에는 전쟁의 경험이, 현대에는 전쟁만큼 잔인한 사회가 개인에게 부조리를 선사합니다. 하다못해 학교생활이나 군생활 속에서 느끼는 체제의 부당함이라든가, 일상 속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이 느끼는 차별 등, 거의 모든 경험 속에서 개인은 부조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카뮈는 부조리에 직면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선택을 분류합니다. 우선은 부조리의 상황을 회피할 수 있고 회피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회피한다면? 스스로에게 희망(논리적 비약)을 심어주어 회피할 것인가, 아니면 자살함으로써 회피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회피하지 않는다면? 부조리를 인식한 개인이 부조리의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이러한 이야기를 카뮈는 『시지프 신화』 속에서 나열합니다.

 


 

2. 시시포스 신화


 

카뮈가 지향하고자 하는 태도는 부조리를 회피하지 않고 그 안에 남아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부조리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종교나 형이상학 등 비약에 기대는 방법, 그리고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자살을 선택하는 방법 등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논리 전개는 정교하고 가치있지만 이 내용은 넘어가고 카뮈가 사랑하는 한 일화로 넘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부조리에 대항하는 한 가지 방법을 보여줍니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카뮈의 주장을 요약하고, 이 지점에서 주목할 만한 발상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시지프의 소리 없는 기쁨은 송두리째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때 모든 우상은 침묵한다. (중략) 개인적인 운명은 있어도 인간을 능가하는 운명이란 없다. 혹 있다면 오직 그가 숙명적이기에 경멸해야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단 한 가지 운명이 있을 뿐이다.

- p.182


 

시시포스는 신을 모독한 벌로 평생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일을 반복하는 인물입니다. 온힘을 다해 바위를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이내 바위는 다시 굴러 내려가고, 그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가 다시 바위를 굴린다고 해도 그의 미래가 나아질 가능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운명은 본질적으로 부조리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조리 속에서도 시시포스가 살아갈 수 있는 원천은 매 순간 자신을 둘러싼 부조리를 인식하면서 부조리에 대항하는 자신의 태도를 잃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매 순간 그 자체를 인식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카뮈는 말합니다.

 

부조리와 반항에서 (역설적으로) 자유를 도출하는 이야기는 수많은 독자들에게 하나의 울림을 전달합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에 더해서 한 가지 발상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 표현이 묘합니다. 이 표현을 통해 나를 괴롭히는 ‘부조리’가 순식간에 나의 외부의 것이 아니라 나의 고유한 성질(property)이 된 듯한 느낌입니다.

 

하늘 아래 서로 다른 인간에게 아주 같은 운명은 없습니다. 사회과학적 방법론 하에서 개인의 고난들은 공동체의 이름으로 범주화되고 공론화됩니다. 그런데 운명은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개인에게 작용하고 있으며, 그 고난이 가진 의미는 각각의 인간에게 다릅니다. 자신의 부조리를 오롯이 응시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뿐입니다. 이는 사회나 공동체의 힘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결국 자신의 상황을 스스로 직시하고 이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대항하는 태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세상을 헤쳐 나가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개인의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입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사회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집단적 행동을 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여기서는 개개인이 의기투합하여 집단적인 합의를 형성하고, 정치적, 행정적, 법적 절차를 통해 변화를 이루어냅니다. 이러한 차원의 변화들은 주목을 받습니다. 불합리한 현실은 언론에서 다루어지며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회 구성원들의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개인이 세계의 무게를 견딜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보호망은 개인의 경험들에서부터 비롯된 성격이나 트라우마에까지 개입하며 개인을 보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개인은 항상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자신의 운명을 직시해야합니다. 누구에게나 타인과 구별되는 고유의 운명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스스로에게 남겨진 몫입니다. 늘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현재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며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전자는 행동의 영역, 사회과학의 영역이라면, 후자는 예술의 영역, 인문학의 영역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양자의 조화를 통해 우리가 부조리를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인데, 가끔은 둘 중 한쪽으로만 상황을 편중되게 인식하여 안타까운 사태들이 일어납니다. 사회의 역할, 그리고 개인의 역량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항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운명의 무게에 압도되어 세상을 두려워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실은 절대적이고 거대한 것이 아니라 다룰 수 있는 정도의 크기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한승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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