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일상의 공상 :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도서]

글 입력 2020.02.25 12: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기고용.JPG

 


나는 SF나 판타지 장르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사실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쉽게 단정 지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상상력과 견문이 부족한 탓인지 낯선 지명과 낯선 형태의 이름들이 쏟아져 나올 때면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그려내느라 고생을 했고 끝내 그리지 못한 것들을 산더미처럼 남겨둔 채로 책을 덮기도 했다. 또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서술되는 순간 흥미를 잃었다. 말이 안 되는, 100% 실현 불가능한 것들의 연속에 몰입하기란 나에게 쉽지 않았다.

 

 

 

묘한 경계의 단편 SF


 

그러던 중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를 만났다. 도대체 금요일이 뭐 어쨌다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은 옷장 옆 선반 위에 가지런히 올려둔 책을 당장 쥐어 펼치게 만들었다.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첫 장면은 익숙하다. '이런 것도 SF인가'라고 생각하다가도 '아 곧 비현실로 뛰어들려나'라는 생각에 잠자코 책장을 넘겼다.

 

이상한 경계를 마주했다. 분명 이건 비현실적인 이야기임에도 현실적이다. 일어날 수도 있을 것 같은데?라는 묘한 기대감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정신을 차려보면 왼손에는 책의 반이 쥐어져 있다. 익숙한 장소와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이름 석 자가 등장하니 이건 마치 소설이 아니라 누군가의 일기 같기도 하다. 그러니 이 책은 SF와 판타지에 엄청난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는 신세계였다. 책을 읽는 내내 '우와 이거 너무 재미있어', '이 책 너무 마음에 들어'라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이야기 자체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오묘하게 자리한다는 것과 더불어 또 하나의 매력은 단편이라는 것.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장편 소설을 읽다가 중단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지루함이 아닐까 싶다. 결국은 이야기의 끝을 보기 위해 글자들과 고군분투하며 머릿속에 세계 하나를 만들다가 지쳐버린다. 그러니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틈틈이 단편 하나씩을 읽는다고 해도 그 몰입감이 높아 금방 읽어낼 수 있을뿐더러 그 행위를 다섯 번만 반복해도 책 뒷면의 바코드를 만날 수 있다.

 


고통스럽도록 더운 여름날, 서울 마포구와 서대문구 전체가 정적 구역이 된다. 구의 경계를 기점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사회적 혼란이 이어지고 해당 구역을 빠져나가는 이들이 늘어나지만, 신촌 소재의 대학에 다니는 '나'는 월세집 보증금 때문에 본가로 돌아가지 못한다. 단골 카페가 문을 닫아 새로운 카페를 찾아 나선 나는 그야말로 정적에 휩싸인 카페를 발견하고, 이전까지는 만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이들과 교류하게 된다.

 

'땡스 갓, 잇츠 프라이데이' 중  <정적> 줄거리

 

 

 

누군가 혹은 누구나의 이야기


 

있을 법하다는 것은 유사한 형태의 일들이 실존한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관심 바깥의 일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겪고 있는 일들을 그렸다. 직접적인 현상의 서술이 아니다. 비현실적 사건으로 꼼꼼히 포장한 이야기 속에는 현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다섯 개의 이야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정적>. 세계관을 구성하는 가정이 너무나도 견고했다. 빈틈 없이 잘 짜인 상황의 전제가 뒷받침되어 일어나는, 눈에 띄지 않는 현실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흥미롭기도 했고 씁쓸하기도 했다. 이는 내가 경험한 '감정 이입'의 가장 큰 순기능이었다.

 

정적 사태가 일어나도 월세집 보증금 탓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나, 경의중앙선을 타지 못해 좀비 같은 모습이 되어버린 사람들, 주말을 앞둔 금요일부터 일요일 오후까지 일주일 중 단 이틀만 사는 공무원, 용을 만나러 가는 말단 직원, 주변의 기대로 오늘과 내일을 결정하는 이까지. 익숙한 이들의 일상은 비일상이 되어 우리 앞에 놓인다.

 

 


작은 책 그리고 표지


 

책의 내용에 관련된 것은 아니다. 추가적으로 적고 싶은 말은 책의 외관이 참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내용만 알차면 됐지 겉모습이 무슨 소용이냐 물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은 책 표지는 때론 목차와 같아서 그 내용을 먼저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책 표지에 이끌려 책을 구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강렬한 동시에 심플한 컬러 배색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디자인의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그 위에 가지런히 쓰인 제목과 저자명도 정말 깔끔하다. 단편집인 덕분도 있지만 얇고 또 긴 책의 형태는 손에 쥐기에도 편하고 부피가 크지 않아 외출 시에도 가방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 좋았다.

 

책의 내용에 관해서도, 외관상으로도 이래저래 마음을 이끄는 책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손이 닿는 곳에 두고 종종 읽을 것 같다. 또 다섯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오늘과 내일의 일상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이 책을 추천함으로써 일상을 닮은 비일상을, 그들을 향한 응원을 선물하고 싶다.

 




[정두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름
비밀번호
자동등록방지
06965
 
 
 
 

등록번호 : 경기, 아52475   |   E-Mail : artinsight@naver.com
발행인/기사배열책임자 : 박형주   |   청소년보호책임자 : 박형주
Copyright ⓒ 2013-2020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