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영화의 불편함에 대한 고찰

글 입력 2020.02.21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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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이 개봉했을 당시 영화가 어떻냐는 필자의 질문에 나이가 지긋하신 어느 작가님께서는 ‘이전의 작품들보다 못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이유는 ’불편‘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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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4개의 트로피를 거머쥔 <기생충>의 수상 소식은 한류의 세계화를 환호하는 온갖 미디어의 찬사들로 그 열기가 여전하지만 영화 자체가 ’불편‘하다는 의견 또한 적지 않다. 봉준호가 일으킨 장르영화의 공명, 지나온 여정들을 통해 그 ’불편‘의 역사를 항해해보고자 한다.
 
 
 
장르영화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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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영화란 한 장르에 속하는 일련의 영화로 정의된다. 한 장르에 속하기 위해서는 내용과 형식의 유사성을 가져야하며 그것이 반복되는 선상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배상준의 책 <장르영화>에서는 이러한 장르영화의 속성을 세 가지로 구분 짓고 있다. 시대상의 반영, 문화적 현상, 집단무의식의 발현이 그것이다.
 
그 중 미지근한 ‘불편’을 만들어내는 것은 집단무의식을 발현하는 장르영화의 가장 밑바닥에 위치한 속성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그 사회의 현실에 직면하고 반응하며 때로는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환상적 드라마를 꾸민다. 이 속에는 인간의 존재론적 두려움과 눌러놓은 욕망이 내재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주인공을 응원하고 주인공이 선이길 바란다. 선악의 이분법적 세계관은 우리로 하여금 주인공이 끝까지 살아남길 바라는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식 장르영화 <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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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거슬러 올라가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를 살펴보자. <죠스>의 번안물들이 현재까지 많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죠스>는 <죠스>다. 공포 영화로서의 그 긴장감을 표현한 연출기법들은 조금 낡아보일지 몰라도 여전히 근사해 보이는 이유는, 현실을 탐구하는 스필버그의 시각에서 느껴지는 ‘사회적 두려움’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는 곧 ‘불편’함을 이끌어낸다.
 
여름철 관광지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바닷가 섬마을, 바다 깊숙한 곳에서 나타난 괴물과 같은 상어, 관광수입에 눈이 먼 시장과 해수욕장을 폐쇄해야 한다는 경찰서장의 대립구도, 각기 다른 개성의 브로디 서장과 상어전문가 후퍼, 퀸트가 만들어내는 오묘한 동료애까지. 이 속에는 두려움에 대한 무의식적 반응이 전제되어 있으며 이것이 하나의 장르로써 <죠스>를 바라보게 한다.

 
 
알프레드 히치콕식 장르영화 <이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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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로 가보자. 가장 좋아하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를 꼽으라면 <이창>을 꼽는다. 한국어 표제는 <이창>이지만 원제는 , 즉 뒷 창문이란 뜻이다. 개인적으로 ‘이창’이란 단어가 익숙치 않아서인지 한국어 표제가 조금 아쉽지만 히치콕을 스릴러의 대가로 들어서게 한 데는 큰 역할을 한 <이창>이다.
 
<이창>에도 두려움에서 비롯된 ‘불편’이 낮게 기저하고 있다. 이 두려움은 바로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두려움’이다. 주인공 제프가 사진작가로 나와 카메라를 통해 이웃집 뒷마당 창문을 훔쳐보는 것은 우리의 일상적 환경에서 공포감을 느끼게 하고, 곧 당대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꽤나 적극적으로 타인의 집에 침범하고 관찰하는 주인공 제프와 연인 리사의 움직임 또한 주인공은 당연히 선이라 생각하는 타당성에 의문을 들게 한다. 우리의 미지근한 ‘불편’은 어쩌면 주인공의 존재에서부터 시작할지도 모른다.

 
 
봉준호식 장르영화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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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는 마침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라는 인디 와이어(Indie Wire)의 찬사처럼 봉준호식 장르는 한국영화뿐 아니라 세계영화계에서 주목받았다. 봉준호의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시각은 단순히 한국사회에서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와 이제는 불가피하다고 그저 받아들이게 된 신분에 대한 관습을 응시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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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바퀴벌레를 비롯한 기생충에 대한 존재론적 시각은 그의 영화아카데미 졸업작 <지리멸렬>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리멸렬>은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봉준호 감독의 말에 의하면 결코 ‘주제적, 시사적 의미가 없다’는 단편영화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지식인 남성이 자신의 치부를 들킬 위기에 처하자 책을 던지고 “바퀴벌레가 있어서...”라는 핑계를 대며 상황을 모면한다. 바퀴벌레는 남성이 자신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거짓으로 지어낸 어쩌면 이용당했다고 볼 수도 있는 개체이다.
 
우리가 <기생충>을 보고 ‘불편’을 느끼는 것도 어쩌면 점차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난과 약자의 위치를 이용해(소재화 해) 상업적 이익을 얻으려는 비도덕적 행태에서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거슬러 내려온 ‘두려움’에서 비롯된 ‘불편’들의 연보는 단순히 소재로써의 하위계층의 대상화 측면보다는 인간의 존재론적 두려움에서 파생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다.
 
자리를 지키려는 어느 사람들과 그들을 혼란하게 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게 하는 주인공들에 대한 배신감. 기존의 스릴러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봉준호식 장르의 탄생은 ‘불편’한 와중에 새삼 새로움을 인정하게 하는 장르영화만의 매력이 있음은 분명하다.

 



[순미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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