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칼더의 움직임 : 서커스, 몬드리안, 예술 [전시]

몬드리안, 서커스, 곡선, 뱀, 과슈, 번짐, 예술
글 입력 2020.02.0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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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 칼더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단어다. 단 하나의 어휘로 칼더의 작품세계를 대표하기에 부족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칼더에게 어울릴 수 없다고 본다. 회화를 포함한 칼더의 작품세계, 그리고 지나온 경험들을 총망라한다면 '움직임'이라는 단어는 칼더를 설명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내게 칼더 작품세계를 마인드맵으로 풀어내라고 해본다면, 중심 단어는 단연 움직임이다. '모빌'은 움직임에서 뻗어 나온 두 번째 단어일 뿐이었다. 이번 전시는 모빌이 아니라 대다수 작이 회화로 구성되었다. 아쉬움 대신, 조명 받지 못했던 회화에 대한 기대감이 몽글몽글 솟아났다.
 
모빌은 움직이지만, 회화는 움직이지 않는다. 추구하고 포착했고 상상했던 '움직임'을 칼더는 어떻게 '회화'에 녹여냈을까? 궁금했다. 모빌로 승화하기 전, 칼더의 작품세계 근간을 이루는 회화다. 기존에 '칼더=모빌'로만 여겨지던 단편적 담론을 깨부술 수 있는 좋은 경험일 테다.
 
 

단선 드로잉과 서커스

 

Installation View, ⓒ K Museum of Contemporary Art, 2019_06.jpg

 

 

움직임을 포착한 단선 드로잉, 칼더가 처음 예술세계에 발을 디딘 작품들이다. 서커스 삽화가로 일하게 된 칼더는 서커스를 2주간 취재하게 된다. 칼더는 화려한 서커스 속, 동물과 곡예사, 광대 등을 드로잉했다. 여기서부터 칼더의 예술세계가 출발됐다. 어느 화가가 그렇듯 칼더의 작품세계도 드로잉부터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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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더의 움직임은 서커스에서 영감을 많이 받은 듯하다. 역동적이며, 자유분방하기도 하고 아슬아슬하기도 하다. 모빌에서 칼더는  자연적 기류에 의한 움직임을 강조했다. 불규칙하게 움직이지만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우연미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아슬아슬하면서도 절묘하게 퍼포먼스를 수행해내는 서커스의 묘미가 그의 작품세계에 그대로 녹아들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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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는 어떨까? 서커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화려한 색감과 곡예사들의 아크로바틱, 어릿광대. 칼더의 회화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회화에서 인물들의 기괴한 몸 꺾임이나 어릿광대의 익살스러운 표정, 화려한 색감은 자주 드러나는 요소다. 특히 자주 등장하는 삼각형과 원은, 그 자체로 서커스 천막과 링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몬드리안의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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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 몬드리안. 칼더의 예술가로서 자취에서 그를 빼놓을 수 없다. 피에트 몬드리안 작품에 영감을 크게 받아 흔히 '모빌'이라고 불리는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어냈고 찬사 받았다. 키네틱 아트-움직이는 예술.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에 의하여 움직임(動)을 나타내는 작품의 총칭-라는 장르 자체를 만들어낸 것이다. 전시에서도 칼더가 받은 충격의 흔적들을 훑을 수 있다. 강렬한 원색에 기하학적 요소, 아주 절절히 몬드리안을 흠모하고 있음을 누가 봐도 알겠다.
 
 

Installation View, ⓒ K Museum of Contemporary Art, 2019_05.jpg

몬드리안의 작업실 재현
 
 
몬드리안의 작업실 방문 이후, 큰 충격을 받았던 칼더는 이내 몬드리안에게 직사각형들을 움직여보자고 제안해본다. 그리고 몬드리안은 이미 자신의 그림은 충분히 빠르다며 거절했다.
 
처음에 몬드리안의 대답이 이해가 안 갔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도통 직사각형들이 움직일 생각을 안 했기 때문이다. 사실 그걸 보고 움직임이 느껴진다고 하기에도 조금 어폐가 있지 않을까? 전시를 본 순간에도 이후까지 죽 그랬다.

그러나 의문이 까끌까끌하게 마음에 남아, 자꾸 몬드리안과 칼더의 작품을 교차로 훑게 되었다. 몇 번을 그렇게 훑어본 후, 황당했다. 아무리 뚫어져라 봐도 움직이지 않았던 직사각형들이 일방향으로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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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직한 검은 선을 따라 한 방향으로 직사각형이 빠르게 이동하는 느낌을 받았다. 범인은 천재를 못 따라간다거나? 내 짧은 식견으로 그 의도를 따라갈 수 없겠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단서는 직각으로 교차되는 검은 이중선과 여백의 하얀색. 무채색과 대비되는 강렬한 세 원색.
 
일단 세 강렬한 원색이 눈에 확 들어온다.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빨강과, 그 빨강과 배합해 재빠르게 움직여 보이는 노랑. 파랑까지 세 원색은 강렬한 힘으로 색채의 상승과 확장 이미지를 꾀어낸다.
 
자칫 이리저리 날뛸 수 있는 세 원색들을 무채색이 제어한다. 모든 색을 반사하며, 아무런 색이 없음을 의미하는 하얀색이 원색 사이를 잡아준다. 세 원색 가장자리를 감싸는 검은 이중선도 그렇다. 뻗어나는 망 형태로 복잡한 망 조직 속에서 색채가 날뛰는 방향을 정해준다. 우아한 세련미, 비례와 조화를 이루어내는 움직임이다. 절제되어 있으며 세련됨 움직임, 몬드리안에 걸맞다. 몬드리안이 빠르다는 자신의 그림은 이 점을 들어 얘기한 것 같다.
 
 

칼더의 움직임

 
반대로 '칼더'가 말하는 움직임이 궁금해졌다. 칼더는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직사각형을 움직여보자고 제안했다. 이는 칼더가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움직임'을 찾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면 칼더의 '움직임'은 어떤 움직임일까? 필자가 짧은 식견으로 비추어볼 때, 칼더는 대놓고 움직이는 걸 움직인다고 표현했을 것이다. 그 움직임이, 고정되어 있는 회화에서 단연 느껴질 정도로 티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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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더의 회화를 관찰해보자. 강렬한 삼색과 검은 선, 여백이 몬드리안의 것과 구별되는 건, 곡선의 등장 때문이다. 곡선으로 움직임을 표방한다. 특히 원과 소라, 물결의 형태가 자주 등장한다. 소라와 물결 형태는 그 자체로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준다. 왜, 정지해있는 이미지에서도 착시의 예에서도 계속해서 움직이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칼더의 회화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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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여러 개를 겹쳐 그려놓고 색을 반전해서 놓아,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처럼 여기게 만들거나, 소라의 형태로 점 하나로 곡선이 모이는 형태를 이용해, 계속해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물결치는 뱀이 자주 등장하는데, 계속해서 좌우로 쏘다니는 동적인 느낌을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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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칼더의 움직임에는 한 가지 특징이 더 있다. 몬드리안이 비례와 조화를 이루는 우아한 세련미를 강조했다면, 칼더는 자유분방하게 두되 그 찰나에서만 느껴지는 우연미를 강조한다. 칼더의 우연미를 포착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과슈화다. 과슈는 물과 고무를 섞어 만든 불투명한 수채물감인데, 과슈화는 그런 물감을 사용한 그림이다.
 
유채화보다 더 빨리 마르며, 붓질할 때보다 마르고 나서 더 밝은 색감으로 변한다는 특징이 있다. 칼더가 추구한 밝은 색감과, 정확히 어떻게 밝아질지 모르는 우연, 빨리 말라서 붓질의 현재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과 같은 효과. 칼더가 과슈화를 이용한 이유를 짐작해본다. 칼더가 '모빌'에서 자연적 기류에 의한 움직임, 우연미를 의도한 것처럼 회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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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처럼, 칼더는 회화에서 물감이 번지는 거나 흘러내리는 기법을 사용했다. 물감이 번지면서 계속 퍼져나가는 생생한 현재의 움직임을 포착한 데서 의의가 있다. 게다가 물감이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건 칼더 나름대로의 움직임과 우연을 강조한 게 아닌가 싶다. 이를 잘 알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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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나라면, 짜증을 내며 작업을 취소했을 것이다. 예술가의 우연은 행위 자체로 낭만적이며, 이런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담은 작품이기에 범인이 넘볼 수 없는 탁월한 수준의 창작을 이뤄내는 것 같다.
 
실은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한 방 얻어맞은 것 같은 생각을 느꼈다는 데서, 몬드리안이 생각하는 '움직임'을 본능적으로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회화로도 조각으로도 표현해낸 걸 수도 있다. 무의식적으로 '움직임'에 이끌려, 심상이 아니라 실제로 움직여보고 싶어 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렇게 안달 내면서 말이다.
 
 

칼더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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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더는 예술은 즐거워야 한다고 말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화려한 색감,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유쾌한 회화. 회화 특징도 그의 가치관으로부터 나온 것 같기도 하다. 우연을 강조한 것도 예술을 감상의 피사체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작품과 공간, 사람, 그 모든 게 하나로 절묘하게 어우러져 한 개인에게 하나의 감상을 주려고 하는 게 아닐까?
 
적어도 칼더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심각한 고민에 빠지진 않아서 즐거웠다. 직관적인 작품은 어려움이 없어 감상하는 내게도 친절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모빌의 창시자답게 그의 작품들은 갓난아이에게 모빌을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즐겁고 유쾌한 경험을 선사해준다.

 

[오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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