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그림에 당신이 담겨있기를 - 제이슨 폴란 [사람]

뉴욕의 모든 사람을 그리고 싶었던 예술가
글 입력 2020.02.0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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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룰 수 없는 꿈을 품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릴 때야 세상의 지도자가 된다거나 하는 원대한 꿈을 적어도 하나 정도는 다들 마음에 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당장 간단한 것 같은 목표도 꾸준히 해내지 못하고 작심삼일이 되어버리는 경험을 반복하게 되며 현실에 삶을 이어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해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원대한 꿈들은 무분별한 것으로 치부되는 게 대다수의 모습일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에는 대다수가 무분별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꿈으로, 이상으로 삼고 그를 이루기 위해 매일매일을 보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현실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것을 꾸준히 해나가며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들을 보면 놀라움과 더불어 그 열정에 존경심이 들기도 한다.


지난 1월 27일, 서른일곱에 결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제이슨 폴란(Jason Polan)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뉴욕에서 활동한 일러스트레이터인 그는 생전에 뉴욕의 모든 사람을 그리고 싶다는 꿈을 가졌고 스스로 불가능인 줄 알면서도 실천에 옮겼다.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미완으로 끝날 꿈을 현실에서 그려냈던 제이슨 폴란과 그의 프로젝트를 소개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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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팅팟(melting pot)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융합 및 동화되는 현상을 일컫는 것으로 이민으로 이루어진 사회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된다. 이민으로 세워졌기에 미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로도 커다란 멜팅팟이라고 할 수 있으나, 미대륙 내에서 멜팅팟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을 선택하라면 대다수의 사람은 뉴욕을 가리킬 것이다. 800개 이상의 다양한 언어가 들려오는 도시, 매일 도시를 찾고 떠나는 관광객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떠올리면 수긍이 간다.

 

이 멜팅팟의 도시에서 본래 미시간 태생인 제이슨 폴란은 예술가로 활동했다. 뉴욕타임스, 뉴욕 매거진 등의 매체에 일러스트를 실었으며 뉴욕 현대 미술관의 모든 작품을 그리는 “뉴욕 현대미술관 카탈로그의 모든 미술 작품“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국을 넘어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전시회를 개최한 폴란의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는 앞서 언급했듯이 뉴욕의 모든 사람을 그리고자 했던 ”에브리 퍼슨 인 뉴욕(Every Person in New York)“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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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모든 사람을 그리려고 하고 있어요. 매일 그림을 그린 후, 블로그에 할 수 있는 한 자주 올리려고 해요.” 그는 스스로 그림을 그리는 장소로 지하철, 박물관, 식당 및 길가의 모퉁이, 공원 벤치 등을 택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끔, 혹시라도 자신이 그림을 그리려는 대상이 알아채거나 불쾌해한다면 즉시 그만둔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었다.

 

2008년부터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시작한 후, 그는 3만 명 이상의 사람들을 드로잉 했다. 어느 날엔 몇 명의 얼굴만을 그리다가도 또 어느 날에는 수백 명을 그리기도 했다.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사람을 빠르게 그려내고 대상이 눈에서 멀어진 후 남겨진 그림에 다른 것은 덧붙이지 않았다. 그래서 폴란의 그림 속 몇몇 사람들은 팔이나 다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아래의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의 타이틀을 제목으로 발간한 책은 뉴욕과 그 안의 사람들의 일상을 담고 있다. 책의 서문에서 폴란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매일 각각의 다양한 특성을 지닌 이들을 그리는 것은 즐거웠으며 이 작업의 결과물을 공유함으로써 독자들이 즐거워하기를 희망한다고. 그리고 이 그림 안에, 책을 읽는 당신이 담겨있기를 바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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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의 예술 활동에 대해 논할 때 미국의 대중적인 패스트푸드 체인인 타코벨을 빼놓을 수는 없다. 자신이 자주 식사하며 그림을 그리는 장소로 택했던 타코벨에서 그는 타코벨 드로잉 클럽(Taco Bell Drawing Club)을 설립했다. 일주일에 한 번 열린 이 클럽에는 폴란의 친구들과 그의 SNS 팔로워들이 참석했으며 폴란과 같은 예술가인 이들도 있으나 미술에 문외한인 이들도 참석했다.

 

“타코벨에서 드로잉을 한다면, 당신도 회원입니다.” 이 간단한 모토로 설립된 클럽은 참가자들이 한데 모여 스케치하며 서로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진행된다. 클럽 내에서 폴란은 특별히 정해진 규칙은 없다고 말했다. 그저 자유로이 그림을 그리는 것, 그뿐이다. 각자의 이유로 클럽을 찾은 사람들, 그들은 또 홀로 온 사람, 가족 단위로 온 이들 등 다양한 모습으로 각자 그리고 싶은 것을 종이에 담아낸다. 타코벨 드로잉 클럽은 지역 사회의 예술, 사교 모임을 넘어 뉴욕이라는 도시가 상징하는 다양성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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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의 Every Person in New York 프로젝트의 마지막 스케치

 

 

폴란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처음에는 정돈되지 않은 선의 이어짐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찰나에 특정 인물을 포착해 종이에 담아내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집중력과 순발력 그리고 그 인물의 특징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표현력이 필요하다. 선이 종이 위에서 형태를 이루기까지 빠른 손놀림과 손보다 더 빠른 속도로 대상에 시선을 던지는 화가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의 드로잉은 짧은 시간에 표출한 열정의 결집체라는 생각이 든다.


뉴욕 매거진의 예술 평론가 제리 솔트(Jerry Saltz)는 폴란의 작품 활동에 대해 사람, 장소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들에 대한 즐거움과 감사에서 비롯된 예술이라고 찬사를 표했다. 2011년 인터뷰에서 폴란이 에브리 퍼슨 인 뉴욕 프로젝트에 관해 “실패할 거 알아요. 모든 사람을 다 그릴 순 없겠지만, 하지만 저는 즐기면서 하고 있어요.”라고 답한 것을 보아 그가 자신의 여정을 그 자체로 즐겼으며 그림의 대상이 된, 자신의 시선이 닿았던 모든 사람과 사물에 감사와 애정을 담았음을 알 수 있다. 이제는 불가능이 없는 곳에서 그가 무한의 예술을 이어가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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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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