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 혼자 살기’의 이상과 현실 [사람]

글 입력 2020.01.31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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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늘 갈망했었다. 남들과 같이 있는 것보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는 성향 때문이었다. 이런 나의 성향은, 사춘기를 지나오면서 무엇이든지 공동 생활하는 것을 추구하는 우리 가족의 라이프스타일과 많은 갈등을 빚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때문에 성인이 되어 독립하는 것은 나의 오랜 로망이었다. 가족을 떠나 멋지게 홀로서기 하는 모습은 나와 가족 모두에게 근사한 일이 될 거라고 믿어왔다.
 
마침내 오랜 염원 끝에, 짧은 기간이지만 나는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것도 아주 먼 거리를 가족과 떨어져서, 온전히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은 아주 빠르고, 정신없이 진전되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와 결정으로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꿈꾸던 것이 현실로 거침없이 이루어진 순간, 마냥 기쁠 것 같던 순간이 현실로 다가왔지만 정작 나는 크게 기쁘지 않았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믿기지 않는 마음 반, 복잡한 마음 반이었다.

 
아무리 짧은 기간이지만 한 사람이 혼자만의 공간으로 독립을 하게 된다는 건 수많은 물건과 돈과 시간과 기타 여건을 모두 옮겨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집 안에서 당연하게 썼던 모든 것들 것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옵션’이라는 이름 하에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면, 추가적인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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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부동산 계약을 접하고, 낯선 이름들의 금융 및 주택 관련 용어를 공부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했다. 대학까지 꼬박 16년 간 학교에 다니며 알만한 지식은 거의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영역은 책 속과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이나 윤리, 문학과 같은 분야들이란 정말 말 그대로 ‘낭만적인’ 것일지도 몰랐다.

 
계약이 끝났다면, 그 다음엔 내 공간을 채워 넣는 것이 문제였다. 가족 이사야 늘상 부모님과 이사업체 분들이 알아서 해 주셨으니 잘 체감하지 못했지만, 내 물건들은 새삼 어마어마했다.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과 사야 할 것들 때문에 계약 전보다 머리는 더 복잡해졌다. 게다가 사두었던 것을 나중에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처리할 생각을 하니 저절로 두통이 몰려왔다. 사람 하나 잠시 떠난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구나. 떠나기도 전에 후회부터 할 줄이야, 스스로가 어쩐지 간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부모님, 가족들과 간혹 다툴 때마다 ‘나도 나름 어른’임을 어필했던 나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될 자취 생활 앞에서 스스로가 아직 덜 자란 어른임을 깨달았다. 끝끝내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보려 반평생을 애써 왔지만, 정작 자립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결국 부모님에게 간절히 손을 내밀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자취 준비에 있어서, 부모님 없이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단언컨대 아무것도 없었다.

 
나름 차근차근 인생의 단계를 다져왔다고 스스로에게 응원을 불어넣던 나는, 정작 그렇게도 원하던 독립의 순간을 맞은 지금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중이다. 가족의 빈자리는 새삼 너무나 크고, 홀로 있는 방은 신나는 음악 소리가 감돌 때 비로소 생기가 돈다는 것을, 어리석게도 이제야 깨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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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나눌 그 어떤 사람의 목소리도 존재하지 않지만, 나는 습관처럼 작고 휑한 방을 이따금씩 휘 둘러본다. 창밖에 펼쳐진 잘 정돈된 풍경들을 본다. 두렵고 막막하지만, 이 짧은 독립이 끝나면 나는 또 조금 자라 있을 것 같다. 물론 아직 ‘덜 자란 어른’에서 ‘다 자란 어른’으로 거듭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날들일 것이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비로소 온전하게 주어진 지금, 로망과는 분명히 다른 이 ‘현실의 자취 라이프’를 최대한 즐겨볼 생각이다. 잘 외로울 수 있다면, 그건 다시 말해서 외로움을 잘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일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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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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