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여성의 몸과 성을 기억하다, "야한 영화의 정치학" [도서]

영화로 보는 성의 현대사
글 입력 2020.01.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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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은 '야한' 거라고?



‘야하다’라는 단어에 숨겨져 있는 함의를 파악해보자. 이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천하게 아리땁다’, ‘깊숙하지 못하고 되바라진다’인데, 마치 점잖은 것과는 거리가 멀고 그 자체로 천박하다는 뉘앙스이다. 가령 “김 감독의 이번 영화는 너무 야했다.”라는 예문에서 두 가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 (대상이) 성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는 힘이 있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대상이) 점잖지 못하고 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1] 이러나저러나 ‘야하다’라는 형용사는 어떤 대상을 필연적으로 수식하게 되고, 무언가를 대상화한 채 판단하는 기능을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더군다나 ‘너무’라는 부사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면서 한층 부정적인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도록 한다.

 

품격 없이 거칠고 상스럽거나 지나쳐서 오히려 천박해 보인다는 시선. 그리고 불온과 퇴폐로 낙인을 찍는 듯한 뉘앙스를 담아 사용하는 순간, 그 누가 편견 없이 대상을 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 ‘언어의 감수성’이 제로에 가까운 단어로 통용되어 왔던 것은 아닐까. 언어뿐만 아니라 세상은 성애적인 것(the erotic)을 아주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으로 치부해왔다. 다시 말해 “전통적으로 성은 공적인 것이 아니라 사적인 것으로, 정치적이기보다는 심리적인 것으로, 역사적이기보다는 개별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라는 것이다.[2] 왜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주유신에 따르면 성은 격렬한 도덕적 분노와 혼란을 초래하는데, 이것은 성이 그 본성상 천하기 때문이 아니라 ‘강렬한 감정들의 요체’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강렬한 감정은 성을 광대무변한 욕구와 욕망의 진동벨트로 만들어버리기도 한다.[3] 고정된 실체가 아니기에 타고난 본능인지, 인간의 심연으로부터 발현되는 욕망인지를 쉽게 규정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정의할 수 없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성애적인 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못하게 한 건 아닐까.

 

비로소 19세기 말 성과학과 정신분석학이 대두되면서 성은 고정불변한 자연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이자 '담론의 산물'이 되었다. 더욱이 근대적 주체가 갖는 자아의 핵심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정의하고, 평가하고, 배열하는 양상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성을 억압의 수단으로, 다른 누군가는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집단 간의 투쟁을 부추겼다.


이처럼 성은 역사적으로 볼 때 억압, 정치, 그리고 권력에 대해서 '중립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는데, 이 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을 도서 『야한 영화의 정치학』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자 김효정은 영화를 통해 191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성의 현대사를 조명했다. 아울러 검열로 인해 박해받았던 영화 혹은 장르들, 예를 들어 '에로영화'의 범주에서 성적 재현 혹은 담론을 규제하는 다양한 기제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야한 영화’ 혹은 에로틱 하위 장르들은 당대의 지배 담론과의 충돌 혹은 대항으로 잉태된 문화적 산물임과 동시에 억압이 생산의 근거로 가능했음을 예시하는 사료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영화 속 섹스는 때로는 저항과 혁명의 기제로, 자유의 암시로, 그리고 삶과 죽음의 메타포로 쓰이며 성적 엑스타시의 재현 수단을 초월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 김효정, 『야한 영화의 정치학』, 카모마일북스, 2019, 8쪽.

 

 

 

여성과 검열, 그리고 호스티스 영화



'검열'이라는 단어는 이 책의 주요 키워드가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저자의 연구적 관심사인 동시에 영화사가 금기의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헐리우드의 프리코드 영화들(pre-code movies)이 대중의 성적 욕망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자진제작코드(Hollywood production code) 제정 이후의 성 재현은 어떻게 교묘하게 진화하는지, 이 과정에서 영화인들이 아닌 종교 단체가 헐리우드에 얼마나 많은 권력을 행사하는지, 한국의 경우 1960~1970년대 독재정권 하의 혹독한 영화검열 시스템에서 영화들은 금기를 그려내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등을 캐릭터의 설정, 영화 속 메타포, 연출 분석과 같은 '영화 읽기'를 통해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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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



이중 필자는 1970년대 한국 호스티스 영화 독해를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위 포스터는 시골 처녀의 도시 수난기를 다루는, 이른바 '호스티스 장르' 영화의 효시적 작품 <영자의 전성시대>다. 1975년 개봉 당시 단일극장에서만 36만 명 이상을 동원하고 잡지, 텔레비전에서 '영자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 시기는 텔레비전이 보급되고 박정희의 유신정권 아래 영화검열이 대폭 강화되면서 극장가가 엄청난 불황을 겪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데도 호스티스 영화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성행했는데, 저자는 10여 년 동안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를 시의성으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었다.

 

 

급격히 추진되던 산업화 과정에서 많은 시골 처녀, 청년들이 도시의 인력으로 동원되었다. 이 시기에 많은 수의 여성들이 노동현장에서의 성폭력과 각종 사기 범죄의 희생자로 추락하게 된다.

 

- 김효정, 『야한 영화의 정치학』, 카모마일북스, 2019, 85쪽.

 


호스티스 영화는 보통 노동계층 여성이 산업화시대에 감내해야 했던 성 · 노동 착취를 그려내고 있는데, 당시 영화검열은 하층, 노동계급의 재현을 집중적으로 규제했기 때문에 성인물의 외형을 따르지 않았더라면 검열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본다. 즉, 호스티스 영화들이 아니었다면 하층민 중에서도 가장 아래의 계급인, 시골 출신의 '타락한' 성 노동자들을 주인공 그려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호스티스 영화들은 "농촌인구의 도시 유입, 산업화의 병폐, 노동현장에서의 인권 문제 등 한국사회를 관통하는 이슈들을 어느 정도 투영했던 문화적 지표로 볼 수 있다."[4]

 

아울러 강간이나 성 노동이라는 문제적 접근을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상업화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남성을 강간의 가해자 혹은 소비하는 주체로 설정하여 그들의 성적 욕망이 능동적이고 극대화되어 표현되는 반면, 여성은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서의 육체로만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호스티스에 등장하는 섹스 장면들은 아름답기는커녕 보는 이로 하여금 고통스러워진다. 대부분이 여주인공의 강간, 매춘 혹은 목적을 가진 섹스로 재현되기 때문에 폭력적이고 일방적이라는 공통된 양상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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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자의 전성시대>(1975)

 

 

 

호스티스 영화 포스터의 성적 코드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 포스터는 여성의 희생을 강조하는 문구들과 수반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시대에 아래와 같은 카피라인을 사용한다면 대부분의 관객이 영화를 보러 가지 않을뿐더러 문제적 문구로 이슈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 같다. 문장을 하나씩 뜯어보면 여성은 남성에게 버려지는 존재지만 '미소'나 '사랑'으로 친절하게 응대하는 성녀의 양상을 볼 수 있다.

 


“꽃이 나비에게 꿀을 바치듯, 최수희는 사랑만을 주었다. 누가 그녀를 아프게 하는가. 남성이여, 당신은 죄가 많다!”


“아··· 아파요. 꺾지 마세요. 그냥 보기만 하세요. 향내만 맡으세요.”


“우리가 만난 여자, 우리가 사랑한 여자, 우리가 버린 여자, 영자”


- 김효정, 『야한 영화의 정치학』, 카모마일북스, 2019, 107쪽.

 

 

저자는 "결과적으로 남성의 죄의식은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그녀만의 착하고 선한 천성으로 그들의 '죄'는 사함을 받게 된다"(p.109)라고 했다. 이러한 '베풂'의 양상은 영화 <꽃띠 여자>(1978)의 카피라인에서 현저히 드러난다. "나는 신이 한 남자를 위해 36-24-36의 몸을 주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애인 면회 꼬박꼬박 가는 여자" 등으로 보아 여성은 남성이 '빼앗아야 할 행운'으로, 남성이 그녀를 어떻게 대하든 늘 사랑으로 품어주는 존재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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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꽃순이를 아시나요>(1977)

 


특히 극장에서 성행했던 호스티스 영화들의 카피라인에는 성적으로 과장된 단어와 이미지들이 빠지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여자 주인공의 반라의 모습과 유혹하는 듯한 포즈가 한가운데 배치되고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아이콘들(조개, 장미)과 '꺾다', '아픈', '버리다' 등의 가학적인 수사들이 측면에 배치되곤 했다. 이처럼 "단순화된 이미지들은 성적으로 '고농축'된 이미지들로서 보는 이의 시선을 가두는데 효과적인 역할을 했을 것"(p.108)이라고 한다. 이러한 성 묘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남성에게 익숙한 언어와 심볼을 사용함으로 남성적 관객성을 형성하고, 남성을 주체화하고 여성을 대상화하는 이분법적 논리를 설파한다는 것"(p.109)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포스터의 경향이 호스티스 영화에만 쓰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980년대에 에로영화 붐이 일면서 소위 성애영화뿐 아니라 멜로영화나 혹은 야하지도 않은 공포물들까지 여성 캐릭터의 몸에 코멘트를 붙이는 식의 광고카피를 관습적으로 차용하고 발전시켜 자극적이고 가학적으로 영화 포스터를 장식했다는 점이다.

 

*

 

 

(중략) 무엇보다 ‘여성의 몸 · 성’을 기억하고 제자리를 찾아주자는 뜻이었다. 여성의 (벗은) 몸은 정상적인 인간적 관계에서의 자리가 아닌, 카메라 앞의 (남성) 감독의 시선, 그리고 그의 배후에 수많은 남성적 시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도식화되었다. 지난 한 세기 넘게 스크린에서 그녀들의 몸 · 성은 소비되고, 풍자되고, 전시되었으며 때로는 조롱과 욕망의 대상으로, 때로는 혁명과 진보의 전신全身으로 변이를 멈추지 않았다.

 

- 김효정, 『야한 영화의 정치학』, 카모마일북스, 2019, 237쪽.

 

 

191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영화로 보는 성의 현대사를 통해 여성이 어떻게 소비되어 왔는지, 조롱과 욕망의 대상이자 정치적 도구로 이용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은 궁극적으로 여성의 몸과 성의 역사이자, 인간의, 혹은 가부장 중심의 문명(Patriarchal Civilzation)이 그것들을 어떻게 이용했는지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일련의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동시에 저자만의 시선으로 영화사를 바라본다.

 

그 시선은 로라 멀비(Laura Mulvey)가 말했듯이 헐리우드 여성 스타를 남성 '응시(gaze)'의 대상으로 분석하는 것도 아니었고,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이미지로서의 여성'[5], 즉 매혹적이며, 아름답고, 전시되며, 성적 특성으로 결합된 대상으로서 여성을 바라본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조금 더 나은 역사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의 구체적인 방법론 내지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어떤 성급한 판단을 내리지 않은 채 따뜻한 시선으로 각각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책의 집필 다음 걸음이 묵시록 이후의 여성, 더 정확하게는 언제나 인류의 반이었던 여성을 공동주연으로 재위치하는 일이라는 점은 기대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참고자료 

[1]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야하다”, 2020.01.24.

[2] 주유신, 「한국 영화의 성적 재현에 대한 연구: 세기 전환기의 텍스트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4, 6쪽.

[3] 제프리 윅스, 『섹슈얼리티: 성의 정치』 (서동진, 채규형 역, 현실문화연구, 1994), 13쪽.

[4] 김효정, 『야한 영화의 정치학』, 카모마일북스, 2019, 86쪽.

[5] 윤난지 역, <모더니즘 이후, 미술의 화두, Laura Mulvey, Visual Pleasure and Narrative Cinema>, 2004, p.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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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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