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포스터의 아름다움을 알려준 전시 - 툴루즈 로트렉展

글 입력 2020.01.21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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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트렉의 그림을 실물로 처음 봤을 때가 생생하다. 혼자 간 유럽여행, 파리에서 나는 예상과 다른 파리의 쌀쌀한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물론 아름다운 도시라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거리를 걷다 보면 종종 마주치게 되는 집시들, 대로변을 벗어나면 풍기는 불쾌한 냄새, 비싼 물가, 레스토랑에서 눈에 띄게 안 좋은 자리를 안내하는 서버들 등은 나를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르세 미술관은 그렇게 위축되어만 있던 나에게 설렘을 불어넣어 주었다. 평소에 좋아하던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동안 어딘지 모르게 굽어있던 어깨가 조금씩 풀리고, 긴장으로 곱아있던 손이 부드러워지는 듯했다. 사실 가장 기대했던 그림은 고흐의 그림들이었다. 좋아하는 드라마 시리즈인 닥터 후의 고흐 편을 보고 난 후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는 건 내 소원이었으니까. 역시 고흐의 그림들은 내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그렇게 오르세 박물관을 돌아다니다, 나오기 전 아무 기대도 없이 로트렉의 그림을 본 순간, 나는 잔잔한 감동을 넘어선 일종의 충격을 받았다. 그림들이 종종 그러하듯이, 내가 그 전까지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들여봤던 로트렉의 그림과 내 눈앞의 그림이 같은 것이라는 걸 믿을 수 없었다. 내 몸통보다도 작은 화폭 속에서 색채들이 뛰어놀며 그림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연인의 형상에서도 스크린을 통해서 봤을 때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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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그림은 로트렉의 <침대>로 마분지에 유화로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로트렉 전으로 향하는 나는 걱정 반, 설렘 반의 감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전시회에서 전시되는 작품들은 로트렉이 판화를 사용해 그린 포스터가 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 내가 로트렉의 그림을 보고 느꼈던 감동을 다시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반,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그의 예술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렘이 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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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면서 나는 괜한 걱정을 했다는 걸 깨달았다. 유화와 다르게 비교적 단순한 색채와 선들을 사용한 포스터 및 드로잉 작품들에서도 로트렉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수는 적지만 그만큼 더욱 존재감을 뽐내는 색채들과 생동감 있는 선 하나하나가 모여 그림을 이루고 있었고, 그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단지 그림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림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일괄편집_KakaoTalk_20200121_220401678.jpg

 


전시는 로트렉의 그림을 더욱 잘 감상할 수 있게 공간과 구성이 짜여 있었다. 특히 로트렉 포스터의 배경이 되었던 물랑루즈가 떠오르도록 디자인된 티켓과 팜플렛이라던가, 그의 포스터의 밝고 쨍한 색감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전시회 입장 공간, 그의 그림 일부를 함께 배열해 놓은 전시 설명 등 전시회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다.

 

전시회에 같이 간 동행은 그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댄서들을 뮤즈로 삼고, 그들의 그림을 그린 로트렉이 현재의 BJ나 유튜버들을 따라다니던 ‘열혈’팬이나 아이돌들의 사진을 찍는 ‘홈마’ 같다고 했다. 누군가에 대한 애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혼을 쏟아내며, 그로 인해 종종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창작물을 만들기도 한다는 점에서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로트렉은 대상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만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들에서는 날카롭게 번뜩이는 풍자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자신의 아버지를 그린 후 ‘천박해! 천박해! 정말 천박해!’라는 캡션을 단 삽화에서는, 취미생활인 사냥과 승마에 조예가 깊었으며 자신의 아들에게 거는 기대가 엄청났던 로트렉의 아버지와 로트렉의 감정의 골을 언뜻 엿볼 수 있기까지 했다.

 

이번 한가람 미술관 로트렉 전에서는 이처럼 대상에 대한 애정으로, 때로는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무엇보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엿보이는 로트렉의 그림들을 무려 150점이나 볼 수 있었다.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나오자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배가 빵빵해졌을 때처럼 기분 좋은 포만감이 밀려왔다.

 

 

[권묘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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