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가 그들에게 권력을 주었나 [TV/드라마]

엔터테인먼트 속 남성 카르텔을 인지하고, 감시자가 되어야 할 필요성
글 입력 2020.01.2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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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썬 게이트가 밝혀지기 전,

그는 승츠비라는 캐릭터로 사랑받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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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승리의 두 번째 구속 영장 신청이 기각되었다.

 

상습도박·외국환거래법 위반·성매매처벌법 위반 등 7개 혐의를 가진 가수 승리의 두 번째 구속 영장 신청이 기각된 것을 보고 나는 그가 권력을 가지게 된 경로를 고민하게 되었다.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예능에서 승리가 대중에게 ‘승츠비’라는 캐릭터로 호감을 얻게 된 배경에 집중하게 되었다. 필자는 학창 시절의 많은 추억을 빅뱅과 함께했을 정도로, 빅뱅의 팬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버닝썬 게이트가 밝혀지기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승츠비’라는 캐릭터로 여러 예능에 출연했으며 활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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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의 승리라는 인물이 유능한 젊은 사업가 이미지를 얻게 된 건, MBC <라디오스타>나 <나 혼자 산다>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 <라디오 스타>에서 사업가인 승리가 화려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클럽에서 열었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산타걸들을 배경으로 세워두고 당당히 서 있는 승리의 사진을 보며 MC들은 감탄을 내뱉었고 그에게 “승츠비”라는 캐릭터가 부여됐다. 그 뒤 승리는 유능하고 야망 있는 사업가 캐릭터로서 여러 예능에 나와 대중에게 꾸준히 얼굴을 비쳤다.

 

그 당시의 나는 빅뱅의 팬이었기에, 그런 예능들을 보면서 승리가 이제야 빛을 보는구나라고 그저 기쁘게 생각했다. 하지만 팬이었던 내가 승리에게 굉장히 실망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방송 <짠내투어>에서 승리가 출연진 중에 가장 어린 세정에게 가장 호감인 남성에게 술을 따라 달라고 요구한 내용이 나오면서였다. 어린 여성 멤버에게 성희롱이 될 수 있는 발언을 카메라 앞에서 할 수 있다면, 승리의 평소 가치관이 어떻다는 것일까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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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짠내투어 징계 소식 뉴스에 달린 댓글들

 

 

이 일로 <짠내투어>는 방심위에서 징계를 받았음에도 언론에서 승리의 언행은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다. 승리는 예능에서 막말을 적절히 섞으며 분위기를 띄우는 분위기 메이커 캐릭터로 잡혀 있었다. 그래서 대중들은 저 정도 제안은 분위기를 띄우는 차원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논리로 너그럽게 그의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다. 짠내투어 징계 이후에도 승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러 예능에서 나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지탄을 받아야 할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예능이 그 연예인을 어떤 캐릭터로 만드냐에 따라 대중들을 관대하게 만들 수 있음을 확인했다. 승리 외에도 그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바로 1박 2일의 정준영이다.

 

 

 

당신들에겐 보고 싶은 막내였을지 모르겠지만


 

2016년, 정준영이 불법 촬영 혐의로 1박 2일에 출연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1박 2일은 정준영의 영상 편지를 방송에 내보냈고 ‘그리운 막내’ 식으로 자막을 띄움으로써 정준영의 복귀를 바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상파 예능에서 애틋한 분위기를 깔고 형제애를 강조하는 연출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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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1박 2일 제작진과 출연진이 정준영을 용서하지 않고, 방송에도 하차시켰다면, 최소한 그의 범행이 지금까지 계속되는 건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악마의 편집이라는 말이 존재하듯이, 방송은 어떻게 연출하고 편집하느냐에 따라 대중에게 방송사가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만 전달하게 된다. 대중은 방송에서 보여준 ‘캐릭터’를 믿을 수밖에 없다. 애초에 우리가 그를 보는 유일한 수단이 방송이며, 카메라가 꺼진 뒤의 그의 모습은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1박 2일 제작진은 불법 촬영물 혐의를 가진 정준영을, 대중들이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도록 연출했다.

 

1박 2일의 출연진 전체도 남성이고, PD를 포함한 방송사의 결정권자들 대다수도 남성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그 카르텔 안에선 불법 촬영물 혐의를 받은 것은 그들에겐 그를 하차시킬 충분한 명분이 될 수 없는 것이었을까. 정준영이 1박 2일 프로그램에 무사히 복귀한 이후부터 승리 단톡방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최초로 사건을 보도했던 기자와 사건 피해자는 수많은 2차 가해에 시달려야 했다. 이 일에 1박 2일의 제작진이 책임이 완전히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남성 카르텔이 견고할수록, 여성이 설 수 있는 자리는 줄어든다


 

<무한도전>에서 식스맨을 방영할 때, 한 멤버가 유독 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출연진 모두 남성인 그 자리에서 한 명의 개그우먼이 남장을 한 채 거기에 서 있으니 위화감을 느꼈다. 잠깐 TV를 켰을 때 무한도전에서 남장한 개그우먼이 나오는 걸 보고 그때의 나는 부끄럽게도 이런 생각을 했다.

 

‘저 사람은 왜 저기에 껴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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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무한도전의 주요 출연진 모두 남성인 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기에 개그우먼이 출연진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 것이었다. 개그우먼이 식스‘맨’에 지원하기 위해서 남장을 해야 했던 것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현실을 엿볼 수 있다. 남성 카르텔이 견고하면 여성은 게스트로는 방송에 쉽게 출연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메인 MC라는 파이를 가져올 기회는 훨씬 적게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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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저 : 네이버 포스트 MBC 예능 연구소 [무한도전] 시리즈

 


식스맨을 뽑는 자리뿐만 아니라, 무한도전의 못.친.소 특집만 보아도 게스트 섭외가 메인 출연진들의 인맥 중 남성들로 채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방극장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았던 무한도전에 출연하는 기회가 예능인들에게 얼마나 큰 기회인지 모두 알 것이다. 그러나 그 파이는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 예능인들의 남성 지인이라면 더 쉽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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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저 : 네이버 포스트 MBC 예능 연구소 [무한도전] 시리즈

 


못친소에 출연한 다양한 남성 연예인들은 자신의 캐릭터와 매력을 뽐낼 수 있었다. 대중들은 그 기회로 그들의 캐릭터를 알게 되고, 정을 주게 된다. 대중의 반응을 얻게 되면 남성 연예인은 그때 구축한 캐릭터로 좀 더 수월하게 또 다른 방송에서도 출연하게 되고, 대중들은 그가 출연하는 것에 익숙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여성 예능인에겐 이런 매력을 보여줄 기회 자체가 남성 예능인에 비해 적다. 이럴수록 남성 연대는 더욱 공고해지고 여성 예능인들이 설 자리는 잃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남성 카르텔이 공고한 예능계에서 여성 엔터테이너들을 향한 검열은 더욱 심해진다. 가수 아이린은 예능에서 웃지 않는다고, 배우 김유정은 시사회에서 짝다리를 짚었다는 이유로 대중들의 뭇매를 맞았다. 이혼 사실을 발표한 구혜선은 방송 <미운 우리 새끼>에서 통편집을 당했다. 하지만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김건모에 대해서 제작진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높은 비중으로 김건모를 방송에 내보냈다. 미우새에서 김건모가 주요한 출연진이고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성범죄의 심각성을 안다면 내릴 수 없는 처사였다.

 

 

 

새로운 미래 예능을 만드는 우리의 책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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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라디오스타 들어오게 된 게 여러분들 댓글 덕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여러분들이 재밌다, 웃기다 해주셔가지고… (중략) 여러분들 댓글 덕분에 제가 라디오스타에도 들어가고 이 자리에도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댓글에 선한 영향력 너무너무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2020년도에도 제 2의 안영미, 제3의 안영미가 나올 수 있게 여러분들 선한 영향력 정말 부탁드립니다.”


 

라디오스타에서 큰 모험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입을 뗀 개그우먼 안영미는 자신이 라디오스타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대중들의 반응 덕이었다고 말한다. 2019년 MBC 연예 대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이, 개그우먼의 활약은 빛났다. 하지만 김숙, 장도연 등 연예계 생활 몇십 년 동안 처음으로 시상식에서 상을 받았다고 하는 고백이 있을 정도로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여성 예능인들에게 불리한 필드였던 것이 사실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속에서 여성 개인에게만 더 뛰어나라고 요구할 수 없다. 개그우먼 안영미가 라디오스타에서 MC를 맡게 된 것이 시청자들의 반응 덕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앞으로 제2의 안영미 제3의 안영미가 나오기 위해서는 여성 예능인에 대한 지지와 응원이 필요하다.

 


<나의 아저씨>는 결과적으로 시청률이 잘 나왔고 시상식 후보에도 많이 올랐지만, 중간에 제작발표회를 한 번 더 하는 이례적인 사건이 있었다. 나이 든 남성과 어린 여성의 만남이라는 부분에 대한 비판이 계속 나왔기 때문에 제작진이 해명해야겠다고 생각한 거다. (중략) 여성들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면서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만드는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해명하게끔 만들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책 <여자들은 같이 미래로 간다(저자 : 윤이나, 황효진)>에서 인용한 대로 끊임없이 목소리를 내고, 잘못된 것을 지적해야만 불평등한 엔터테인먼트 문화를 바꿀 수 있다.  대중들이 불법 촬영 범죄의 심각성을 알고 비판의 목소리를 이어나갔다면, 1박 2일 제작진들은 정준영에 대한 온정적인 연출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작년 12월 EBS에서 미성년자인 채연을 상대로 성인 남성 개그맨 최영수와 박동근이 폭행과 성희롱, 욕설을 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초반에 보니하니 제작팀은 "매일 생방송을 진행하며 출연자들끼리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어제는 심한 장난으로 이어졌다"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가해자의 행위를 제작진은 ‘심한 장난’정도로만 인지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비판이 뒤따르자 프로그램 출연자 선정 과정에 대한 전면 재검토, 프로그램 관계자 징계, 제작 시스템 정비 등이 이루어졌다.

 

이 글을 쓰기 위해서 무한도전 자료 조사를 하다가 우연히 <무한도전 : 미래 예능 연구소 편> 때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나는 사진 속 출연진들 모두 남성인 것을 보며 ‘미래 예능에서조차도 여성 예능인의 자리는 없을까?’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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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저 : 네이버 포스트 MBC 예능 연구소 [무한도전] 시리즈

 


하지만 2019 MBC 연예 대상에서 수상을 한 여러 여성 엔터테이너들이 생각났다. 그뿐 아니라 수상한 그들이 감사한 사람들의 이름을 언급할 때 나왔던 여성 동료들과, 여성 네트워킹에서 지주 역할을 하는 선배들의 이름이 나오는 걸 보며 판은 바뀌고 있다 희망을 느꼈다. 이렇게 새로운 판을 짜고 주도하는 힘은 앞에서 말했듯이 대중들의 반응에서 나온다. 달라진 판에서 우리의 책임은, 더 이상의 새로운 승츠비, 4차원 막내, 배트맨이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 출처 : 윤이나 · 황효진 저자, 단행본 여자들은 같이 미래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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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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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  
  • kamelo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1 0
    • 댓글 닫기댓글 (1)
  •  
  • 햇빛바다
    • 2020.01.22 22: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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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고
    • kamelo안녕하세요 kamelo님 시간내어 피드백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글을 쓸 때 큰 힘이 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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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NNN
    • 미디어 매체가 재생산-고착화하는 남성 중심의 젠더 권력을 지적한 글이군요. 유명 예능 프로와 '버닝썬 게이트' 사건 등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은 예를 들어 내용을 전개한 점이 친절하게 느껴지네요. 필자의 주관적 감상과 사회 문제에 대한 사유가 맞물린 지점 덕에 이 글의 메시지가 더욱 생생하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유익한 오피니언,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셔서 좋은 글을 많이 남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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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빛바다
    • 2020.01.25 22: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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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NNN안녕하세요 SONNN님 시간을 들여 이렇게 세세한 피드백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글의 메시지가 생생하게 잘 와닿았다면 글을 쓰는 에디터의 입장으로서 이보다 기쁜 일이 없네요. 힘이 되는 피드백 남겨주셔서 감사드리고, SONNN님의 말씀대로 더 좋은 글을 쓰도록 항상 노력하는 에디터가 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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