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툴루즈 로트렉을 아세요? - '툴루즈 로트렉展' [전시]

자기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만들었던 화가, 로트렉을 만나다.
글 입력 2020.01.23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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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展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어느덧 1월의 중반을 달리고 있다. 최근 들어 쌀쌀해진 날씨 탓에 옷을 단단히 걸쳐 입고 밖을 나왔다. 그 길을 따라 툴루즈 로트렉展이 진행되고 있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전 시간에 있는 도슨트의 설명을 듣기 위해 오픈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는데 이미 전시회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툴루즈 로트렉을 아세요?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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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
 
 
툴루즈 로트렉.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2011)'을 본 사람이라면 잠깐 등장했던 로트렉을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마 지금 그를 볼 수 있다면 영화 속 모습과 꽤 닮았을 것이다. 로트렉뿐만 아니라 영화 속에는 현대 미술사에 큰 영향을 주었던 화가들이 등장한다.

실제로 그는 반 고흐, 피카소, 고갱, 드가 등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들이 활동하던 시대에 살았던 화가였다. 현재 우리는 그를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라고 말한다. 로트렉이 없었다면 엔디 워홀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가 남기고 간 작품들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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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루즈 로트렉

(Toulouse-Lautrec, 1864-1901)

 


본래 이름은 앙리 마리 레이몽드 툴루즈 로트렉 몽파(Henri Marie Raymond de Toulouse-Lautrec-Monfa)’, 1864-1901)이다. 알고 있던 이름보다 상당히 긴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놀랐다. 그 시대에 이렇게 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귀족 가문의 출신임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로트렉은 남프랑스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으로 근친혼으로 맺어진 부모님 아래 장남으로 태어났다.

 
지금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로트렉이 살던 시대만 해도 유럽에서는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명목하에 근친혼을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근친혼이 가지는 가장 큰 불행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인데 로트렉도 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로트렉 사실 3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는데 1살도 채 되지 않아 사망했고 로트렉은 선천적으로 허약하고 뼈가 약한 '농축이골증' 희귀병을 앓아야 했다.
 
로트렉의 어린 시절 별명은 ‘작은 보석’이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었음을 설명해준다. 로트렉은 어린 시절 무릎 양쪽 모두 사고로 인해 대퇴골이 부러져 성장이 멈추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때 일어난 두 번의 사고로 인해 그는 후천적 장애를 갖게 되었고 평생 불구인 채로 살아가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로트렉은 집 안에서의 생활을 많이 했는데 주로 어머니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거대한 저택에 살면서 가족, 하인, 가축, 사냥 장면 등을 관찰하며 많은 그림을 그렸다. 전시회에서는 유년 시절에 그렸던 로트렉이 그렸던 동물화 스케치를 감상할 수 있는데 특히,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동물의 모습을 표현한 스케치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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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valier

 

 
로트렉이 그린 동물화에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말이기도 하고 자신은 달릴 수 없었기 때문에 말처럼 달리고 싶은 마음에서 그렸다고 한다. 그것보다도 더 본질적인 이유는 자신의 아버지 알퐁스 로트렉 백작에게 사랑받고 싶은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승마 타는 모습을 그리면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로트렉 아버지는 신체적인 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부모님의 이혼으로 로트렉은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아버지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갈망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 참으로 안타깝게 다가왔다.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 아버지를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로트렉은 아버지의 모습도 그렸다. 특징적인 것은 부드러운 색감으로 어머니를 아름답게 그린 것에 비해 아버지의 모습은 날카롭고 우스꽝스럽게 그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후원자가 되어준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로트렉이 화가가 되는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 반대를 무릎 쓰고 로트렉은 화가가 되었는데 후에 아버지는 그가 사창가에서 화류계 여성들을 그린 것도 모자라 그림에 자신의 이름을 적은 것에 대해 분노하여 가문을 박탈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배경은 로트렉이 아버지를 그린 그림으로서 아버지와의 사이가 어떠했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물랭 루즈에서 변화를 맞이하다.

 

전시회 입구로 들어가면 가장 처음으로 빨강색 커튼을 마주하게 된다. 커튼을 열고 들어가면 강렬한 빨강색 벽지가 펼쳐져 있고, 그 사이를 장식하는 물랭 루즈(Moulin Rouge)를 배경으로 한 작품과 캉캉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보인다.

 

물랭 루즈(Moulin Rouge)하면 나는 가장 먼저 뮤지컬 영화 <물랑 루즈 (Moulin Rouge, 2001)>가 떠오른다. 영화에서도 그랬듯이 화려한 무대 장식과 의상은 산업과 예술과 문화가 번창했던 ‘벨 에포크(1871-1914)’ 시대를 설명해준다. 프랑스 몽마르트에 위치한 ‘물랭 루즈(Moulin Rouge)’는 유명 인사들이 드나드는 최고의 사교장이었다. 개장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의 명소가 될 만큼 당시 이곳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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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elle Lender Dancing The Bolero in Chilperic

 

 
로트렉은 춤을 추지는 못했지만 매일 밤 찾아와 자신의 지정석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였고 그림으로 그렸다. 물랭 루즈를 배경으로 한 그의 작품들은 마치 내가 그 시대에 머물러 있는 착각을 들게 하는데 춤을 추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한편, 물랭 루즈에서 보냈던 시기는 로트렉의 작품세계에 변혁기를 맞는 계기가 된다. 물랭 루즈에서 그는 자신의 뮤즈이자 베프였던 제인 아브릴(Jane Avril, 1868-1943)을 만나기 때문이다. 로트렉은 제인 아브릴을 자신의 포스터에 자주 등장시켰는데 ‘포스터 '마드모아젤 에글랑틴 무용단'(1896) 작품에도 그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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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마드모아젤 에글랑틴 무용단', 1896
 
 
작품 속 제인 아브릴은 4명 중 가장 뒤쪽에 배치해 그렸고 다른 무용수들과 다르게 다리를 높게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이것은 제인 아브릴은 뒤에서 있어도 존재감이 빛나기 때문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뮤즈라면 아름답게 그려내야 하고 앞에 배치하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인데 이 작품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로트렉 다운 발상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 이외에도 전시회를 통해 더욱 다양한 모습의 제인 아브릴을 만나볼 수 있으니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현대 포스터의 선구자이자 아버지

 

이번에는 같은 시대에 살았던 화가에 대해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알폰스 무하(Alphonse Maria Mucha, 1860-1939)다. 로트렉에 영향을 끼친 많은 화가들이 있지만 알폰스 무하를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로트렉과 같은 시대에 포스터를 그렸는데도 자신만의 화풍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알폰스 무하와 툴루즈 로트렉은 4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으며, 두 화가 모두 현대에 이르러서까지 광고, 디자인, 포스터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먼저, 체코의 화가 알폰스 무하는 ‘새로운 미술’ 아르누보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아르누보의 정수’로 알려져 있다. 아르누보는 예술의 감성과 자연의 사실을 표현한 이성과 감성을 혼합을 보여주는 양식을 말하는데 그의 포스터를 보면 ‘이것이 아르누보구나!’라고 알 수 있다. 자연에서 유래된 아름다운 곡선을 모티브로 삼았으며, 특히 그의 작품 <사계(1896년)>에서는 곡선과 여성 그리고 꽃을 활용해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무하 스타일’의 그림체를 볼 수 있다. 또한, 독특한 서체와 자신만의 포스터 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한편,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은 무하와 달리 단순하고 추상적인 디자인으로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의 포스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4가지 이상의 색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강조할 부분만 표현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당시 반 고흐에게도 영향을 주었던 일본의 화가 우키요에에게 영향을 받아 대각선 구도, 과감한 자르기, 배경 생략,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 굵고 진한 선, 사선 문양 등을 활용하여 포스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특징으로 그의 포스터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를 수집해가는 것처럼 그 당시 거리에서 붙여져 있는 그의 포스터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벽에 붙여놓는 다음 날이면 포스터가 모두 사라질 만큼 인기도 대단했다고 한다.
 
알폰스 무하가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프랑스 연극배우 사르 베르나르의 공연 포스터를 그렸듯이 로트렉 또한 당시 유명한 샹송 가수이자 작곡가인 ‘아티스티드 브리앙’의 공연 포스터를 그렸다. 대표적인 포스터 작품 중 하나는 1892년 오픈한 파리의 앙바사되르 카바레에서 공연하는 포스터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표정과 함께 챙 넓은 검정색 모자와 붉은색 스카프 그리고 풍성한 검은색 망토를 걸친 모습을 보여준다. 브리앙은 로트렉에게 자신의 카바레를 위한 포스터 부탁했는데 너무나 만족하였고 그는 20년 동안 그의 공연 때마다 이 포스터를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전시회에는 이 작품 이외에도 많은 포스터들이 있는데 하나의 포스터마다 다양한 에피소드가 있으니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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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Ambassadeurs Aristide Bruant, 1892
 
 
 
인물의 내면을 그린 화가, 로트렉

 

어릴 적 동물 그림에 집중하여 그린 것을 제외하고 그는 ‘인물’을 집중적으로 그렸다고 한다. 특히, 물랭 루즈 한편에서 웨이터, 배우, 서커스 단원 등을 그리면서 인물들의 모습이나 움직임을 관찰하여 그렸다. 로트렉의 작품에 등장하는 모델은 그와 친분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그가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서커스 단원들의 무대 위 화려한 모습뿐만 아니라 무대 뒤편에 가려진 삶과 내면을 그리고자 하였다. 자신의 고통과 애환을 하층민의 삶을 그린 그림에 투영하여 표현하였는데 작품을 보다보면 그가 가지고 있던 고독함 또한 보이는 것 같다.


그는 몽마르트 유곽에서 화류계 여성들과 지내고 함께 생활하기도 했다. 화류계 여성들과 지내면서 여성들이 침대에서 쉬고 있는 모습, 목욕하는 모습, 남자를 기다리는 모습 등 그들의 일상적인  삶을 꾸밈없이 진실 되게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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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es

 

 
로트렉은 대중적인 인기로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던 화가였다. 하지만, 그는 지독한 외로움과 고독함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불규칙한 생활을 일삼았고 과음과 화류계 여성들과의 무분별한 교제를 지냈고 이로 인해 갈수록 건강은 악화되었다. 결국 1899년에는 알코올 중독과 정신착란증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그 시기 그린 그림은 <경마(The Jockey), 1899년>인데 이 그림은 로트렉이 정신병원 생활을 끝내기 위해서 그렸던 그림이라고 한다. 과거에 경마장에 갔던 것을 기억하여 관람객 숫자까지 떠올리며 그렸다고 하는데 이 그림을 그리고 난 후 정신병이 치유되었다고 인정받아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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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Jockey


나는 내 드로잉을 통해 자유를 샀다
"I Bought My Fredom With My Drawings.“


 
증세가 완화되었다고 생각했지만 1901년에 몸의 마비 증상까지 오게 되었고 결국 3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어머니, 내겐 당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은 고통스럽네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한다. 짧지만 강렬했던 인생. 전시회 한 편에 위치한 동시대에 살았던 화가들의 삶의 길이와 비교한 표를 보면 짧은 생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글을 마치며

 

전시회가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주말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았다. 여유 있게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주말보다는 평일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도슨트의 설명을 들을 때는 많은 사람들로 전시장을 가득 채우기도 했다. 이를 참고해서 전시를 관람한다면 좋을 것이다.

 
전시회 관람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오디오 가이드 해설과 도슨트의 설명이 있다. 나는 오전 시간에 맞추어 도슨트의 설명을 들었는데 로트렉의 삶과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도슨트 설명 시간은 오전 10시 반, 오후 1시, 3시 그리고 5시에 있으며, 공휴일에는 진행되지 않는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며, 입장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7시(매표 및 입장 마감 오후 6시까지)까지 이니 참고하길 바란다.
 
자기만의 고유한 작품세계를 가지고 사람들의 내면의 모습들을 담아냈던 화가, 툴루즈 로트렉. 그에 대해서 알고 싶다면 5월 3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전시회를 방문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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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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