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야한 영화의 정치학, 시대를 관통한 야한 영화

글 입력 2020.01.18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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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영화’와 ‘정치학.’

 

사회적 시각으로는 완전히 대치되는 곳에 있을 것 같은 두 단어가 한 책의 제목이 되었다. 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까, 궁금하던 찰나였다. 시각적으로 새빨간 표지와 야한 영화라는 노골적인 제목은 생각의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고정된 몇 가지 이미지를 떠오르게 했다.


내가 그랬듯 대개 ‘성’에 관한 떠오름은 아주 자극적이고 쾌락적이며 단순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관련된 코드가 엿보인다 싶으면 어떠한 과정을 거치기도 전에 급격한 떠오름을 당하기도 한다. 그만큼 성에 관한 이슈는 사람들에게 자극적인 것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와 이면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여지를 주지 않기도 한다. 혹은 오랜 시간 동안 사회적으로 감추어야 할 것으로 여겨져 왔기에 그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지 않기도 했다. 어쨌든 다양한 이유로 성에 관한 정치적 이슈들은 필요한 깊이에 비해 담론화되지 않았고, 사회의 가림막 속에서 제멋대로 왜곡되어 오기도 했다.


자극이라는 이름 아래에 감춰져왔던 에로티시즘은 때로는 금기에 대한 저항으로, 때로는 욕망에 대한 자유로움으로 그려져 왔다. 그래서 새로운 시각에서 사회적 이슈와 굉장히 밀착되어 있었던 ‘야한 영화’들을 찬찬히 둘러보면 여타 장르의 영화들보다도 당시 사회의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그게 그 당시의 왜곡되고 편향된 시각이든, 왜곡된 시각에 대한 저항이든. 성 담론을 바라보는 방식에 관한 옳고 그름은 보는 이들의 몫이지만, 우선 야한 영화를 만들어내는 감독들은 영화 제도의 현실에 맞추어 치밀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가장 솔직한 자신의 생각을 영화로써 표현했을 것이다. 그래서 쾌락적 이미지가 강한 야한 영화는 시대의 역사를 보기 위한 매체로써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편향된 성 의식이 엿보이는 과거의 작품들을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 시대를 보는 매개로서 역할 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다. 중요한 건 매개를 통해 시대를 바라본 뒤에 그 시대상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것은 오로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달려있으니까.


이를 잘 설명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호스티스 영화가 될 것이다.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1980년대 전두환정권기에 들어 정치‧사회적인 재현에 대한 검열은 지속되었지만 성적 재현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에로영화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앞서 언급한 호스티스 영화 류, 술집 작부나 창녀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은 높아진 수위의 성 재현과 나름의 사회적 고발이라는 표제를 달고 극장가를 누볐다. 에로티시즘으로 중무장한 사회고발물이라는 기형적인 사이클이 태동한 것이다.”


문화는 사회상을 반영하고,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한 시각을 전한다. 그러나 주류 사회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검열당해왔고, 특히 호스티스 영화들이 등장했을 때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억압된 사회 속에서 솔직한 비판 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에로티시즘으로써 눈가림한 것이다.


다만, 그 에로티시즘이 여성의 성적 희생 서사로 그려져 왔다는 것은 우리가 분명히 인식하고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임은 틀림없다. 물론 책에서도 언급되듯 지금의 영화들이 과거의 호스티스 영화들처럼 가학적인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정도가 덜어졌을 뿐 영화에서 다뤄지는 남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의 다양성 정도의 차이, 여전히 여성 캐릭터의 외모가 부각된다는 점 등은 사회와 영화에 있어 우리가 분명히 고민해보아야 할 지점이다.


이외에도 <야한 영화의 정치학>에서는 191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성에 관한 영화를 다채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 가령, 시대의 아이콘이 된 영화 <시드와 낸시>를 소개한다. 1970년대 전후 세대가 펑크 음악과 문화로 물들었던 시점, 그 시대의 젊은이들은 ‘Live fast and die young’을 슬로건으로 삼아 펑크 운동을 했다. <시드와 낸시> 또한 그 정신에 맞는 불안한 사랑을 그리고 있고, 그 속에는 시대색이 강렬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외에도 스탠리 큐브릭의 <아이즈 와이드 셧>에서는 영화적 미학이 돋보이는 집단 섹스 장면이 담겨있고 <색, 계>는 혁명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그 선택으로 인한 비극적 결말을 맞이하는 여성을 그리며 그 시대만의 시각을 드러낸다. 그렇게 야한 영화의 연대기를 달리던 이 책은 김보람 감독의 2017년작, <피의 연대기>로 마무리 된다.


20세기의 야한 영화들이 사회상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 살피는 것도 유의미했지만, 무엇보다 여성 캐릭터와 그에 관한 이슈들을 다루는 방식이 변화해온 과정을 보는 것 또한 흥미로웠다. 초반, 여성은 철저히 도구로써 활용되고 특히 과거일수록 그 모습은 참혹하다. 가령, <졸업>에서는 풍족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젊고 의욕적인 여성으로 욕구의 대상이 전환되며 남자 주인공의 변화를 그려낸다. <눈먼 짐승>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인공 여성은 맹인 남성의 예술과 욕망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그렇게 시작되었던 영화가 여성의 월경을 사적인 범위가 아닌 공적 범위로 확장하는 영화가 만들어진 현재로 오기까지 수많은 시간을 거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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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야한 영화’는 즐거움을 위한, 가십거리가 될 만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연대기적으로, 또 깊은 시각으로 바라본 그것들에는 우리가 반드시 인지해야 할 시대상이 있었고, 끊임없이 반성해야 할 여성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동기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쉽게 잘 읽힌다는 것이다. 영화마다의 설명이 간략하고 작가의 분석을 이해할 만큼의 줄거리를 소개하며 각 영화마다의 생각이 간결하지만 명확하다. 나 또한 영화사에 그리 밝지 않은 사람이지만, 이 책은 단숨에 읽어 내려갈 만큼 몰입도와 가독성이 좋았다. 읽고 나면 반드시 영화를 보고 싶게 될 이 책, 많은 이들이 접할 수 있기를 바란다.

 


[김윤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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