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모르는 사람과 고민을 공유하는 이유 [문화 전반]

유튜브 시대에 고민상담이란
글 입력 2020.01.1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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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디어에서 연예인들의 방송 콘텐츠는 물론이고, V 앱이나 유튜버, 인플루언서 까지 일반인들의 고민을 해결 해주는 콘텐츠가 급증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유튜브, 인스타 라이브를 할 때, 혹은 V live로 팬들과 소통할 때 팬들이 보내는 고민에 자연스럽게 대답하고 소통하는 방식부터 아예 ‘000의 고민 상담소’라는 타이틀을 내건 다음, 각 잡고 팬들의 고민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박성진의 고민상담ᄉ.jpg

V live에서 팬들과 고민상담 라이브를

진행중인 데이식스 성진

 

 

팬들이야 좋아하고 믿는 연예인이 자신의 가치관을 덧붙인 고민상담을 해준다는 것 자체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들과 소통한다는 단순한 덕심을 넘어 꽤 진지한 자신의 고민을, 자신이 믿는 누군가로부터 위안받고 싶어 고민을 말하는 팬들도 많다. 이런 문화는 힙합 유튜브 채널들의 메인 콘텐츠가 되기도 하고, 방송가의 실험적인 소재가 되기도 한다.

 


 

 

래퍼 팔로알토와 더콰이엇, 한국 힙합 탑 레이블의 수장인 이들이 등장하는 [P&Q 국힙상담소 2]에서는 왠지 늘 힙하고 하이 텐션으로 일관해야 할 것 같은 래퍼들이 각자 고민을 그것도 꽤 진지하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그 고민을 들은 두 수장은 고민을 진지하게 이해해주고 각자의 관점을 담은 상담을 해준다.


힙합계의 부처라고 불리는 더콰이엇의 조언은 힙합 팬이든 아니든 현자의 말인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깊이 있을 때가 많다. 이 콘텐츠를 운영하는 사람들이야 어쨌든 좀 더 인기를 얻고자 함도 있겠지만, 보는 사람은 흔하지 않은 래퍼들의 고민을 들을 수 있고 이들 역시 치열하게 각자의 길을 고민하는 사람이란 생각에 위안을 얻을 때가 종종 있다.

 

 

김구라의 공인중재ᄉ.jpg

 

 

방송가도 예외는 없다. MBC 에브리원에서 방영하는 <김구라의 공인중재사>, 넓게는 MBC에서 청년들의 자취방을 구해준다는 설정의 <구해줘 홈즈> 까지. 물론, 고민상담이라는 콘텐츠 자체는 아날로그 시대의 라디오가 등장했을 때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콘텐츠였다.


사연을 보내면 라디오 DJ가 사연을 읽어주고 자신의 짤막한 생각을 덧붙이는 등. 최근엔 좀 더 전문적으로 아예 라디오 속에 상담사나 정신과 전문의를 초청해 심도 있는 상담을 나누기도 한다. 다만, 라디오의 상담뿐만 아니라 다양한 미디어 채널에서 고민을 상담해주는 이들의 소통이 어쩌면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화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새로운 형태의 연결인가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고민-해결 콘텐츠가 급증하고 있는 진짜 이유는 뭘까. 그건, 지금 이 시대가 고민 상담을 적극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일까. 그만큼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얘기일지도 모르고, 현실 속에서 한 번도 마주한 적도 없는 생판 모르던 남에게 고민을 말하는 것이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보다 낫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고민을 말하고, 도움을 주려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조금은 훈훈한 결론을 내려봐도 될까 싶다. 자유롭게 고민을 말하고 도움을 구하는 분위기가 조금은 가볍게 인식되는 것만으로도, 더 깊은 문제로 이어지기 전 자신을 쉬게 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물론 각자의 이야기가 다 다른데 어떻게 나에게 도움이 될까 싶고, 삶의 형태가 점점 더 개별화되어가는 지금, 남의 고민 얘기를 듣는 게 시간 낭비는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들의 고민이나 사연엔 어딘가 모르게 나의 이야기와 맥락이 겹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그 작은 공통점에 자신을 투영해보고 공감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 관점에서 고민상담 콘텐츠가 좀 범람해도 괜찮지 않겠나 싶은 생각도 든다. 다만, 순간의 유행으로 끝나서 언젠가 다시 고민을 속에 담아두고, 자유롭게 꺼내는게 지루한 분위기로 돌아가지만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펭수고민상담.jpg

펭수의 고민상담소

 

 

사실 나는 최근에 빼도 박도 못하지만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갑작스러운 선택을 했다. 그때 이후로 이미 저질러버린 내 선택에 나도 당황해서 어떻게 이번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랐었다. 그동안 살면서 나 이외의 존재에 의해 내 삶이 크게 꼬인 적은 있어도 나 스스로 내 삶을 망친 적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이 그렇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고.

 

그리고 며칠간 그 선택을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를 계속 고민하고 양쪽을 저울질하며 나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 선택을 지인들에게 말해서 조언을 구하기도 민망했고, 가족들에게 말하자니 더욱 걱정만 시킬 것 같은 느낌에 유튜브를 둘러보며 나름의 결론을 내기 위해, 그리고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콘텐츠를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 V live로 했었던 고민 상담소의 내용을 뒤적거리기도 하고 말이다. 어쨌든 살면서 나에겐 처음이라고 느껴지는 이 일에서 나 스스로 내리는 해답과 믿음, 그리고 근거가 필요했나 보다.

 

내가 구독하는 유튜버 중엔, 긍정적인 그녀의 힘으로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치과의사가 있었다. 자기 할 일도 열심히 하고, 자기 관리도 잘하는데, 멘탈까지 멋진 사람. 그리고 자기 얘기나 경험을 소신있게 털어놓을 줄 아는 사람인 것 처럼 보였는데, 최근 유튜브에 올린 고민 상담 영상에서 인스타그램 DM(Direct Message)은 언제든 대답할 수 있으니 고민이 있으면 디엠을 보내라고 말하는 것을 기억했다. 나는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았고, 자신의 선택에 후회의 감정이 들 땐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DM을 보냈다.


그리고 그녀의 답장은 이랬다. 자신의 선택에 후회한 적이 셀 수 없이 많았고, 언제나 확신이 없었지만,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했을 뿐이다, 라고.

 

 

유튜브 크리에이터 사랑Sarang

 

 

이 조언이 나에게 얼마만큼 해답이 되었냐고 물으면 내 삶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보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고민을 말하고 같이 고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그 과정 자체가 주는 위안은 생각보다 나를 안정시키기에 충분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내 얘기를 하는 게 오히려 쉬울 수 있다는 말을 몸소 경험하기도 했고. 어쨌든 이 유튜버와 나 사이에 어떤 끈끈한 유대감이 없더라도 나는 이 사람으로부터 위안을 얻었고, 언제든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을 느꼈다.

 

이 정도면 미디어의 순기능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그리고 고민 콘텐츠로부터 이런 새로운 종류의 위안을 느끼는 이들이 많기에 고민상담 콘텐츠가 지속해서 제작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선 오랫동안 고민 상담 콘텐츠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또 언젠가는 나도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에게 고민 상담을 받는 쪽에서, 고민상담을 해주는 쪽이 되어보고 싶기도 하고.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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