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고흐를 기억하기 위한 테오의 긴 여정 –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의 삶을 기억하다.
글 입력 2020.01.04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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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4).jpg

 

 

객석의 불이 꺼지고 무대 전체에 고흐의 그림이 비친다. 그림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는 영상은 마치 고흐의 시선을 대변하는 것 같다. 고흐가 걷고, 보고 그렸을 작품의 구석구석을 함께 보며 고흐의 세계로 들어온 관객들은 빈센트 반 고흐의 유작전을 열고자 애쓰는 테오 반 고흐를 만난다. 그리고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편지들을 통해 빈센트 반 고흐의 열정과 고통, 괴로움 등 그의 삶을 함께 느낀다.


 

 

빈센트 반 고흐가 기억되도록



 

한 장 한 장 남아 있는 형의 흔적

한 자 한 자 남아 있는 형의 생각

그가, 여기에 살았었다

기억되도록


- ‘To. 빈센트 반 고흐’

 


테오 반 고흐는 치매를 앓았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꼈고, 형의 기억이 가끔 나질 않아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빈센트 반 고흐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았음을 남기고, 기억되도록 유작전을 열기로 다짐한다.

 

고흐가 죽기 전 밤을 회상하며, ‘어땠을까. 이날 밤의 형은 어땠어?’라고 묻는 테오는 단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때 그의 감정과 기억까지 모두 남기어 ‘빈센트 반 고흐’라는 사람 자체가 기억되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바람과 온도, 달과 별의 하모니

모든 시름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오베르의 밤


- ‘From. 빈센트 반 고흐’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빈센트 반 고흐는 자연과 사람, 삶을 사랑하고 그림을 통해 위로를 전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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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림을 그려야 하는 사람




인생이 아무리 거지 같아도

아무리 가난해도

우린 그저 평범한 인간

평범하게 사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

서로를 위로해 

우린 서로의 고통을 나누어 먹네


- ‘쓰라린 사랑’



고흐는 시엔이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시엔의 배경을 보고 반대하는 동생과 아버지에게 고흐는 시엔과는 서로를 위로하며 서로의 고통을 나누어 먹는다고 설명한다. 이는 고흐가 그림을 대했던 태도와도 같다. 고흐는 자신과 같이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위로하고자 했다.

 

그래서 고흐는 ‘사람을 닮은 그림’, 사람의 영혼을 담는 그림을 그린다. 그의 마음과 감성을 담아 울림을 전하는 그림을 그린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6).jpg

 

 

 

내 꿈이 진 빚



<빈센트 반 고흐>는 고흐의 고통 또한 아주 세세히 보여준다.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자신을 ‘개’라고 칭하며 자책하는 모습, 가난에 시달리며 테오에게 손을 벌리는 것이 미안해 ‘돈이라는 놈’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 희망과 용기조차 모두 사라져가는 것 같아 울부짖는 모습을 보면 위대한 화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 고흐를 보는 것 같다. 누군가의 형으로서 자랑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평범한 사람, 고흐가 보인다.

 

‘내 꿈이 진 빚’이라는 말이 유독 아프다. 꿈 때문에 빚은 자꾸만 쌓여 가고, 그 빚의 무게를 떠안고 고흐는 자신을 자책한다. 희망을 그린다고 자부했던 고흐는 사랑, 온정, 희망도 모두 자신 때문에 사라진다는 극심한 자괴감에 시달리게 된다.

 

경제적인 빚과 마음의 빚을 모두 진 채 신경과민, 알코올 중독을 겪으며 고통스러워하는 고흐를 보면 ‘만약 고흐가 경제적으로 풍족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정말 돈이라는 놈은 무엇일까. 돈이 뭐기에 꿈조차 괴롭게 꾸어야 하는 걸까.


 

언젠가 갚을 날이 올까 

그 돈이라는 놈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갚아야 할

마음이 진 빚 

내 꿈이 진 빚 


- ‘돈이라는 놈’

 

*


마지막으로 가졌던 희망이 사라질까봐 

너무 무서워

희망을 그리던 내 손이 

문드러진 썩은 손이었단 걸

인정해야 하잖아 


- ‘끝나지 않는 고통’

 

*


살아보려 했는데, 살아보려 했는데

세상은 나에게 가질 수 없는 것만을 쥐여 줘 놓고

다 빼앗아 가네, 빼앗아가네

내 무능을 비웃듯 다시 그걸 앗아가네 


- ‘사라지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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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쓰라린 사랑이라도, 미안, 난, 사랑



가난과 고독 때문에 아무리 쓰라려도 고흐에게 그림은 ‘사랑’이었다. 긴 러닝타임 동안 고흐의 삶을 따라 그의 고통에 공감한 후, ‘바람과 온도, 달과 별의 하모니’를 부르는 죽기 직전의 고흐를 다시 마주한다. 이는 자연의 생명력과 총천연색으로 뒤덮인 색채,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을 그려내는 것이야말로 고흐의 사랑이자 절정이었다는 것을 온전히 느끼게 한다.

 

 

아무리 쓰라린 사랑이라도

난, 미안, 난, 사랑


- ‘쓰라린 사랑’

 

*


대자연과 함께

내 터치와 나의 감각이 더해지는

최상의 하모니 

클라이맥스

내 삶의 행복! 내 삶의 절정!


그림으로 인해 행복했었으니 아무래도 좋아

그림으로 인해 꿈을 꾸었으니 아무래도 난 좋아

내 그림을 위해 내 생명을 건다 


좋아, 완벽해


- '내 생명을 걸겠어'

 


고흐는 그림으로 인해 행복했었으니 아무래도 좋다며 마지막 그림을 완성하고 떠난다. ‘좋아, 완벽해’라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떠나는 고흐의 모습은 자신의 인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했다고 말하는 듯해, 더할 나위 없이 후련해 보인다.

 

자신은 떠나지만 그림은 이 세상에 남아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위로할 것이라며 슬퍼하지 말라는 고흐의 가사처럼 관객들은 그를 그림이라는 꿈으로 인해 행복했던 화가로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빈센트 반 고흐_공연사진 (1).jpg

 

 

테오 반 고흐는 아들에게 ‘기억해줘 삼촌을. 빈센트 반 고흐를.’ 라는 말을 남긴다. 고흐를 기억하기 위한 테오의 긴 여정이었던 무대의 막이 내리고, 관객들은 고흐의 고통과 열정, 그의 작품과 삶 자체를 계속해서 기억할 것이다. 테오와 빈센트의 바람처럼.

 


[정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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