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19년의 막을 내리며 듣고 싶은 '이 넘버' [공연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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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올해의 끝이 다가왔다. 떠나는 2019년을 붙잡고 싶은 사람도, 어서 새해를 맞이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싱숭생숭한 연말에 더 생각나는 뮤지컬 넘버 세 곡을 골라봤다.
뮤지컬 <렌트>의 “Seasons of Love”
52만 5600분의 귀한 시간들 우리들 눈앞에 놓인 수많은 날. 52만 5600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재요 일 년의 시간. 날짜로 계절로 매일 밤 마신 커피로 만남과 이별의 시간들로 그 52만 5600분의 귀한 시간들 어떻게 말해요 산다는 것을. 그것은 사랑, 그것은 사랑, 그것은 사랑. 사랑으로 느껴봐요.
“Seasons of Love”는 뮤지컬을 잘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넘버다. 화음이 아름답고 가사와 멜로디가 따뜻해서 결혼식 축가로도 많이 쓰인다. 특히 뮤지컬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단체 곡 ‘0순위’다. 뮤지컬 <렌트>를 못 봐서 정확히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 넘버인지도 모르지만, 이 넘버가 주는 따뜻함이 좋아서 자주 찾아 듣는다.
특히 연말이면 생각이 많이 난다. “Seasons of Love”는 일 년을 분으로 환산하면 52만 5600분인데, 그 시간을 어떻게 잴 수 있을지에 대한 곡이다. 소중한 일 년이라는 시간을 사랑으로 채우고, 사랑하며 살자는 이야기다.
요즘 이 넘버를 들으면서 나의 일 년은 무엇으로 잴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일 년 동안 본 공연들로, 여행한 나라들로, 만났던 사람들로. 또 2019년을 사랑으로 채웠는지,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는 한 해를 살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2020년 여름, 뮤지컬 <렌트>가 무려 9년 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어폰으로만 듣던 이 넘버를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니 벌써부터 설렌다. 새해의 절반이 지나갔을 그때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뮤지컬 <마틸다>의 “When I Grow Up”
어른이 되면 한없이 높디높은 나무에도
쭉쭉 뻗은 가지도 쉽게 닿겠지 어른이 되면
어른이 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맴돌던
어려운 질문도 풀릴 거야 내가 어른이 되면
뮤지컬 <마틸다>보다 “When I Grow Up”이라는 넘버를 먼저 알게 되었다. 뮤지컬 배우들이 한 콘서트에서 이 넘버를 부르는 영상을 보고 푹 빠졌다.
그 뒤로 프레스콜과 커튼콜 영상을 찾아보다가 지난 5월 드디어 영국에서 뮤지컬 <마틸다>를 봤다. 아이들이 “When I Grow Up”을 부르며 그네를 타는 장면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가사와 멜로디는 귀엽지만 듣는 사람을, 특히 어른들을 울컥하게 만드는 넘버다.
어른이 된 지금은 나이 드는 게 싫지만, 어렸을 땐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는 게 즐거웠고 새해가 기다려졌다. "When I Grow Up"의 가사처럼 어른이 되면 뭐든 할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음이 나지만, 떡국을 많이 먹어서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원치 않는 한 살을 먹어야 하는 새해가 다가오면, “When I Grow Up”이 생각나고 어렸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뮤지컬 <킹키부츠>의 “Raise You Up / Just Be"
네가 힘들 때 곁에 있을게
삶이 지칠 때 힘이 돼줄게
인생 꼬일 때 항상 네 곁에 함께
연말은 생각과 고민이 많아지는 시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가올 새해가 기대되고 시끌벅적한 연말 분위기 때문에 설레기도 한다. “Raise You Up / Just Be”는 이 마음을 모두 감싸줄 완벽한 ‘연말 넘버’다.
이 곡은 뮤지컬 <킹키부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만큼, 흥의 정점을 찍는다. 듣고 있으면 몸이 저절로 들썩들썩 움직이게 된다. 경쾌한 비트와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에, 공연에서는 안무까지 더해지니 흥이 안 오를 수가 없다.
단순히 신나기만 한 노래는 아니다.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응원과 격려, 위로로 꽉 찬 넘버다. 2019년 계획 중 지킨 게 거의 없어서, 너무 힘든 한 해였어서 속상하다면 이 노래를 들어보자. 삶이 지칠 때도, 인생 꼬일 때도 힘이 되어주겠다는 롤라와 찰리의 노래를 들으면 정말 내 편이 생긴 것 같고 없던 힘도 솟는 기분이다.
아쉽게도 올해 연말에는 <킹키부츠>와 함께할 수 없지만, 내년 8월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고 하니 2020년을 기다릴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다.
2019년의 막을 내리며
'2020'이라는 숫자가 아직 어색하다. 적어도 1월 동안은 2019년이라고 썼다가 2020년으로 고치길 몇 번을 반복할 것 같다. 설레면서도 걱정되고, 괜히 울적하면서도 기대되는 복잡미묘한 연말, 이 넘버들을 들으며 올해의 막을 내려보자.
[채호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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