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누구나 탈 수 있는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누구일까,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글 입력 2019.12.0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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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누구나 탈 수 있는

지하철 안에서 우리는 누구일까

뮤지컬 <지하철 1호선>


 

"11명의 배우, 97명의 배역,

지하철 1호선 안에서 우리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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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안에서 우리는 누구일까.



본 공연은 지하철 1호선에 첫 탑승한 '선녀'로부터 시작된다. 누구보다 이른 시간 서울에 도착해 무엇인지도 모르는 588을 향해 가는 '선녀', 그녀는 연변에서 자신의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잘 알지도 못하는 서울에 와서 지하철 1호선에 올랐다.

 

그녀가 마주한 서울은 차갑고, 그 누구도 그녀에게 살갑지 않다. 싸늘하게 그녀를 대하던 사람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노리는 소매치기, 소매치기에게서 그녀를 도와준 것은 백마 탄 왕자님도, 그녀가 그리워하던 약혼자도 아니고, 가출 청소년이었다.

 

본 공연의 모든 갈등과 역경 속에서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약자이거나,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는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이다. 가출 청소년부터, 약장수, 소매치기, 성매매 여성, 포장마차 주인, 혼혈아, 그리고 주인공인 선녀 역시 외국인이다. 그리고 관객인 나는 그들을 보며, 평소에 내가 만나왔던 지하철 속 사람들에게 내가 던졌던 시선을 떠올렸다.

 

과연, 나는 지하철 속 마주한 사람들을 쉽게 판단하고 피해 가거나, 그들과 시선을 맞추지 않으려 했던 적이 없는가에 대해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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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녀가 지하철 1호선에 올랐을 때,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 것일까. 그녀는 사람을 순수하게 바라봤다. 모두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지만 그녀는 모두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 순수한 마음의 경청은 지하철 1호선에 있는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게 했다. 선녀가 지하철 1호선에 탑승하면서 우리는 그녀의 순수한 시선을 빌려 지하철 1호선을 다시 보게 됐다.

 

나는 모자를 쓰고, 누가 아파하든 간에 나만 괜찮으면 그뿐을 외치던 누군가에 불과했다. 지하철 1호선은 하나의 인간 군상을 제대로 그려내기 위해 순수한 화자를 데려왔고 그녀가 찾아가던 '588'이 집창촌이라는 것 자체로 이 공연이 사회적인 이면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선명해졌다. 개인적으로 살아가며 경계하고자 하는 지점이 하나 있다면 단면으로 그 모습을 다 안다고 판단하지 말자라는 것이다.

 

그렇게 경계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또는 집단을, 공간을 다 안다고 판단 내려버리기도 한다. 나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불법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모두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들이 왜 불법 속에 살아야 했을까를 떠올리지 않았다. 불법은 법을 어긴 것임과 동시에 법의 수호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를 넘어서 그들의 존재가 불법이었다.

 

그런 일종의 불법적인 인물들을 무대 위로 올렸고, 그 97명의 배역들은 이름보다는 별명으로 불렸다. 외적인 특징이나 타인이 붙여준 별명이 그들이 지칭하는 단어였다. 그들은 한 번도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선녀 역시 그 이름을 그녀의 본명이라 할 수 없다. 존재가 불법인 사람들을 별명으로 부른다는 건 그들은 어디에나, 그것도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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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하철 1호선 안에서 누구인가. 누구로 호명될 것인가. '거북목'이나 '콩나물(에어팟)'으로 불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연극의 끝, 그렇게 별명으로 불리던 그들은 서로의 짐을 서로 들어주고, 손을 잡고 같이 퇴장한다. 사회의 배제 속에 있던 그들이 손을 내밀고 잡은 것은 결국 그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원하지 않았던 그들은 결국 서로의 힘이 되어준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하철 1호선 안에서 누가 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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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의 서울, 2019년의 서울



20년 전의 서울을 그리는 작품이다. 심지어 앞서 언급했듯이 지하철 1호선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인간 군상을 그린다. 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를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과거지만 아직도 현재진행적인 부분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계속 지하철이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고, 그 안에서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리고 더욱 개인들은 스마트폰을 보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수많은 작품 속에서 서울은 차갑고, 순수가 배제된 공간으로 그려지는 것이 참 가슴이 아프다. 이렇듯 지하철 1호선의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이지만 본 공연은 그 당시 시대를 안다면 훨씬 좋은 공연이 됐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1998년 3살의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그 시대는 교과서 속에만 존재했다. 그래서 공연 내에서 사용하던 언어나, 유행어, 심지어 588이라는 곳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나는 선녀처럼 몰랐다.

 

선녀가 588에 도착해서야 그 장소를 알았던 것처럼, 나 역시 그 장소로 무대가 변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처럼 잘 모르는 시대에 대한 발견, 또 새로운 공감도 존재하겠지만, 이 공연이 더 잘 전달될 세대는 아무래도 그 시대를 겪은 어른분들이 아닐까 싶었다. 보면서 저 시대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계속 샘솟았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근현대사에 대한 무관심을 떠올리기도 했다.


1998년의 서울을 그리는 본 공연을 보면서 2019년에 개봉한 영화 '기생충'을 떠올렸다. 장르나, 매체의 종류 자체가 전혀 다르지만 단 하나 주인공들이 도시빈민이라는 것은 같겠다. 그리고 그들은 지하철을 애용한다는 점에서 가장 같다. 지하철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나 누군가에게는 냄새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지만, 누군가는 피하고 싶은 곳이 바로 지하철 1호선이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되고, 거친 지하철 노선인 셈이다. 본 공연에 등장하는 '강남 사모님들'과 영화 기생충 속 이선균 배우와 조여정 배우가 맡았던 '대표님 부부'가 묘하게 달라붙는다. 또 영화 '기생충'과의 공통점을 떠올리자면 블랙코미디로서 수작이라는 점이다.


다시 돌아온 지하철 1호선의 탑승 시작은 과거를 겪은 분들에게는 공감을, 잘 몰랐던 세대에게는 새로운 서울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앞으로 미래의 서울은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떠올려본다. 모두가 서로의 시선을 맞추고, 지하철 1호선에서 서로를 응원해주자. 누군가를 배제하기 보다 누군가를 포용하고 안아주는 서울이 되길 바라본다.

 

공연 종료 후, 공연장 앞으로 달려나와 관객들을 배웅해주는 모든 배우분들과 연주자분들의 '감사합니다.'는 그런 서울의 시작이 아닐까.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기간

2019.10.29 (화)-2020.1.4(토)


장소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167석)


시간

평일 7시 30분

토 오후 2시, 6시 30분

일 3시

(월 공연 없음)


러닝타임

170분(쉬는 시간 15분 포함)


관람연령

중학생 이상 관람가


가격

60,000원

(할인 정보는 학전 홈페이지)


원작

폴커 루드비히 (Volker Ludwig)


음악

비르거 하이만 (Birger Heymann)


번안ㆍ연출

김민기


음악감독

정재일


제작

학전


출연

김홍석, 민채원, 황기석, 최정기, 이순형, 홍성희

안소연, 임규한, 이창혁, 정다예, 오주언


연주자

최훈 김현미 이동호 백나영 유현수

윤예지, 박형주, 이세룡, 김지은, 정다운

 



고혜원.jpg

 

 

[고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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