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진정 맛깔나는 탈놀음, 딴소리 판

글 입력 2019.11.30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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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jpg

 

 

딴소리 판이라는 타이틀을 처음 들었을 때는 뭔가 싶었다. 탈놀이도 아니고, 판소리도 아닌 무엇? 포스터에는 단원들의 뒷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기와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모습이 그 자체로 참 유쾌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보기로 결정했다.

 

처음 접하는 극의 형태에 호기심 반, 설렘 반. 그리고 연극을 보고 나왔을 때에는 아, 이거구나 싶었다. 한 주의 피로가 잔뜩 몰린 금요일에 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정말 맛깔난다. 개인적으로 잘 쓰지 않는 단어인데 무대가 끝나자마자 내 입 밖으로 나온 단어는 바로 맛깔난다는 거였다. 사전의 이 단어가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 이십 몇년 만에 제대로 깨달은 듯 했다.

 

극을 이끄는 연희집단 The 광대에 대한 이야기는 몇번 들어 알고 있었다. 풍물부터 탈춤까지 꽤 다양한 전통 예술의 스펙트럼을 그들의 스타일로 재밌게 재해석해낸다고. 이번 <딴소리 판>에서 극단은 판소리와 탈춤을 합친 형태로 무대를 전개했다. 춘향가를 시작으로 심청가, 적벽가 등 5개의 주제를 다루는데, 메인 시나리오를 설명해나가는 소리꾼에게 개성 있는 광대들이 다가가 기존 판소리의 내용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시작부에서는 마치 소리꾼의 춘향가 무대를 관람하는 것처럼 전개되다가 그 판에 난입한 광대들이 사랑이 아닌 밥을 구걸하면서 이야기의 흐름이 변화한다. 거지왕이 되어 나타난 몽룡이의 행태에 소리꾼은 광대의 지난 이야기를 함께 둘러본다.

 

 

<시놉시스>


1장. 춘향가의 판을 깨다
깽판전문 광대거지들이 춘향가의 한 대목을 부르는 소리꾼의 판에 난입한다. 암행어사가 아니라 아맹거사로 자칭한, 거지 중에 상거지 몽룡이 수절을 지키려던 춘향 앞에 나타나 사랑구걸 대신 밥구걸을 하고, 이에 당황한 춘향은 곡절이나 들어보자고 광대 거지들을 다그친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몽룡이와 광대거지들이 딴소리 판을 펼친다.
 
2장. 심청가의 판을 깨다
전국봉사대회가 벌어진 황궁에 봉사로 위장한 광대거지들이 잔치에 몰려들어 숟가락을 얹는다. 장님행세가 발각되어 쫓겨날 무렵, 심청황후와 심봉사의 눈물겨운 재회가 펼쳐진다. 옆에서 지켜보던 광대거지들이 효도의 부질없음을 논하면서 깽판을 놓는다. 눈뜬 봉사들이 다시 장님으로 돌아가고 거지들은 혼란을 틈타 도망간다.
 
3장. 적벽가의 판을 깨다
적벽대전에서 대패를 한 조조의 군사 앞에 며칠을 굶은 광대거지들이 지나간다. 입대하면 밥을 준다는 이야기에 단번에 조조군이 된 광대거지들은 적장인 제갈공명을 만나게 되고, 대의와 명분을 부르짖는 상대에게 엉망진법을 한수 가르쳐준다.
 
4장. 수궁가의 판을 깨다
수궁의 축성을 축하하는 잔치에 흥을 돋우기 위해 모인 광대거지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대우가 형편없다. 이에 불만을 가진 광대거지들이 앙심을 품는데... 마침, 술병으로 간이 상한 용왕의 상태를 살피는 자리를 꾀어내어 가짜 약을 팔기 시작한다.
 
5장. 흥보가의 판을 깨다
대박을 꿈꾸며 박을 타던 흥보 앞에 나타난 광대거지들. 소원을 이뤄주지는 않고, 듣기만 한다는 말에 흥보는 망연자실해진다.
 
6장. 다시, 춘향가의 판이 시작되다
광대거지들의 딴소리 사연을 다 들은 춘향은 몽룡과의 해후를 택하는 대신 자신의 길을 택하고, 몽룡과 광대거지들 역시 제 갈길로 향한다.

 

 

거지들이 모여 이뤄진 광대패의 지난날은 꽤나 화려하다. 심청가에서는 전국봉사대회에 난입해 효도의 부질없음을 논하고, 젹벽가에서는 대의와 명분이 아닌 생존 의지로 똘똘 뭉쳐 전쟁을 엉망진창으로 타파한다. 바다속으로 들어가 용왕을 만나기도 하는데, 술병이 나 간이 안좋아진 용왕에게 가짜 약으로 사기를 치며, 대박을 꿈꾸는 흥보 앞에서는 소원을 정말 '들어만' 준다.

 

기존 스토리라인을 뒤트는 재치있는 시도도 너무 재밌었지만, 이를 표현하는 흥겨운 춤과 리듬, 관객과 소통하는 모습이 공연을 보는 내내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특히 악기를 들고 사물놀이를 진행하는 파트에서는 쿵짝거리는 멜로디에 신나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흔들어댔다. 맛깔난다라는 단어와 함께 절로 어깨춤이 난다라는 단어도 무슨 말인지 생생하게 깨닫게 됐던 듯.

 

장면의 마지막에 이르러 다시 극의 시작을 알렸던 춘향가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거지가 된 몽룡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리꾼, 겸 춘향이는 그와 다시 만남을 시작하는 대신 자신만의 길을 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연극이었다. 완벽하게 즐거웠다. 처음에는 낯선 구성에 어색하기도 했지만 한국이 흥의 민족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더라. DNA에 각인된 한민족의 흥이 솟아올랐다. 올해 본 공연 중에 가장 짜릿할 정도로 재밌었다.

 

단순히 흥겨운 음악과 재미있는 이야기 뿐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코 가볍게만 볼 수 없는 것은, 거지의 우여곡절한 삶이 우리의 모습과 꼭 빼닮았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아쉽지만. 때로는 다 포기하고 눕고 싶고, 뒹굴고만 싶기도 하고. 그 거지 광대패처럼 모든걸 내려놓고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팍팍한 규칙이나 허례허식에 얽매여 스스로를 조일 필요는 없다는 것.

 

자신만의 길을 찾아 떠나다 보면 언젠가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금 숨을 터놓고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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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집단 The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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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집단 The 광대는 2006년 창단된 연희극 창작단체이다. 풍물, 탈춤, 무속, 남사당놀이 등 한국의 전통 예술을 전공한 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주와 춤, 재담 등 전통 연희의 각 분야에서 최고의 기량을 가진 단원들이 모여 수준 높은 창작 연희를 보여주고 있다.
 
연희집단 The 광대는 단원 개개인이 연희의 명인으로 성장하는 동시에 시대와 함께 가는 예술가로서 광대의 모습을 만들어나가면서,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던 옛 광대들의 예술과 삶의 자취를 기억하며 그 길을 이어가고자 한다.
 
대표작품 - <당골포차>, <도는 놈 뛰는 놈 나는 놈>, <굿모닝 광대굿>, <황금거지>, <홀림낚시>, <자라>, <용용죽겠지>, <걸어산> 등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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