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α] 책, 술, 사람이 조화로운 공간, 문학살롱 초고

글 입력 2019.11.24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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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술로 사람을 만나는 공간, 

문학살롱 초고

 


지나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보통 내 걸음을 멈추는 것들은 저녁 노을, 강아지, 분위기가 예쁜 가게. 혹 보이지 않는 것도 포함할 수 있다면 구수한 빵 냄새나 잔잔한 재즈 정도이다.

 

그런 의미에서 합정동은 목적지로 한달음에 가기보단 가끔은 멈추기도 하며 빙빙 돌아 천천히 가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동네이다. 지난 5월, 사람 많은 홍대, 상수를 피해 쫓기듯 간 그곳에서 또 길가에 멈칫 서게 만드는 것을 만났다. 입간판에 적힌 시 한 구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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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를_보다 


 

합정역의 큰 도로를 벗어나 조금만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과연 여기가 홍대 근처인가 싶을 정도로 조용한 골목길이 나온다. 한가한 골목을 걷다 책 위에 와인잔이 있는 다소 직관적인 간판을 마주한다면, 그곳이 바로 문학살롱 초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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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살롱 초고는 책과 술로 사람을 만나는 곳이다. 공간의 한 켠에는 책들이 놓인 서가가 있으며 낮에는 카페, 밤에는 바가 된다. 초고의 오픈 멤버들이 모두 작가였던 덕분일까?

 

오픈 멤버들은 책을 읽기에 좋은 공간을 넘어서서 글을 쓰기에도 좋은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곳에서 읽는 책과 만나는 사람들을 영감으로 더 많은 초고가 태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문학살롱 초고’라는 공간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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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문한 초고의 입간판의 안내를 따라 내려간 지하 1층에는 조금 비밀스러운 느낌 풍기는 입구가 있었다. 문을 열면 마주하는 높은 벽과 미로 같은 공간에 2차로 당황하게 되지만 제대로 찾아온 것이니 그럴 필요 없다.

 

마치 어렸을 적 꿈꾸었던 비밀 아지트로 향하는 기분을 느끼며 걷다 보면 초고의 서가에 다다른다. 이런 독특한 공간 디자인은 지상의 공간과는 완전히 차단된 다른 공간으로 들어온 느낌을 선사한다.

 

 

 

#초고를_경험하다


 

 

책:

 

초고는 총 두 개의 서가를 중심으로 북 큐레이션이 진행된다.

 

입구의 측면에 있는 작은 서가는 매주 다른 주제로 책을 바꿔 진열하며, 벽면 전체를 채운 큰 서가는 계절마다 크루들이 선정한 주제에 맞추어 큐레이션이 진행된다고 한다. 공간이 넓지 않아 많은 책을 들이지 못 하는 만큼 아무 책이나 집어도 좋은 책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선정한다.
  

큰 서가의 이번 가을 큐레이션 주제는 <멀고도 가까운>. 사랑하는 정세랑 작가님의 책 <피프티 피플>을 포함한 여러 책들이 서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가을 큐레이션: 멀고도 가까운

 

/
나무가 이파리들을 떠나보내는 계절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쥔 채 살고 있나요.
영영 놓을 수 없는 건 무엇인가요.

멀고도 가까운,
혹은 가깝고도 먼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봅시다.

- 초고의 가을 큐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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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의 책들은 모두 판매 중인 도서들로

구매 후 카페 공간에서 자유롭게 읽을 수 있다.

 

 

술:

 

문학을 아우르는 공간이 되기 위한 노력은 메뉴판에서도 짙게 느껴진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사로잡는 문학 칵테일은 좋아하는 책에 어울리는 칵테일을 직접 만들어 선보이는 초고의 시그니처 메뉴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상단에 위치해 있고 이름도 단순했던 ‘섬’을 시키니 장 그르니에의 책, <섬>과 함께 칵테일이 나왔다.

 

칵테일을 시키면 같은 이름의 책이 함께 나오다니! 책 한 장 넘기며 칵테일 한 모금을 마시니 솔직히 취재보다도 여기에서 이 책을 다 읽고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졌다.

 

아쉽게도 책을 다 읽지 못 해 칵테일이 내용과 잘 어울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섬’ 하면 연상되는 모래사장이나 노을, 달큼하고 상큼한 과일 같은 이미지들과는 참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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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초고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문득 조명이 보랏빛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초고의 크루들 혹은 손님들이 직접 시를 낭송하는 시간이 있다.

 

시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조명이 보랏빛으로 바뀌면 깜짝 시 낭송을 진행한다고 하니 불빛이 바뀐다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시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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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술을 사람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초고의 활동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초고에서는 매달 작가와의 북토크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달 행사는 <구의 증명>, <해가 지는 곳으로> 등의 저작으로 유명하신 최진영 작가가 “여성 서사의 힘: 이제야 우리에게”라는 주제로 함께했다.

 

보통의 북토크가 작가가 독자에게 말을 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초고의 북토크는 사뭇 다르다. 작가가 한 단 올라선 무대도 없고, 휘황찬란한 조명도 없다. 초고의 북토크는 작가와 독자가 함께 둘러 앉아 수평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진다.

 

바깥과는 단절된 공간이 주는 느낌 때문인지 매번 북토크를 진행할 때면 독자분들도, 작가님들도 밖에서는 잘 나누지 못했을 속 깊은 이야기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음 달 북토크는 또 어떤 작가님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 꼭 함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초고를_좋아하다


 

술, 책, 그리고 사람.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조합이기야 하나 무엇이 문학살롱 초고를 속 깊은 이야기도 꺼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을까? 직접 초고에서 시간을 보내며 느낀 점, 그리고 초고와 사랑에 빠진 또 다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추측해보자면 초고만의 ‘일관성’과 ‘고립성’이 큰 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우선, 초고는 ‘문학살롱’이라는 말이 참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과 커피를 파는 카페, 술을 파는 바를 합쳐버린 게 아니라 그 셋이 함께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었다. 공간과 메뉴,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느껴지는 분위기의 일관됨이 삐죽 튀어나온 것 하나 없이 잘 정돈되어 편안한 느낌이었다.
 
또한, 정돈된 일관성이 주는 편안함은 혼란한 바깥으로부터의 차단을 통해 더욱 극대화된다. 지하 1층이라는 위치, 어둡고 미로 같은 입구, 그 끝에 마주하는 큰 서가와 트인 공간, 그리고 자리마다 있는 등불. 이 모든 요소들은 참 고요하고 평화로워 정신없는 바깥 세계의 생활이 꿈이었나 싶을 정도로 그로부터 분리된 기분을 준다.
 
그만큼 들고 있는 책이나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지금 집중하고 싶은 것들에 온전하게 초점을 맞출 수 있어 좋았다는 것이 친구가 초고와 사랑에 빠진 이유였다. 나도 다음 번엔 집중하고 싶은 것들만 한가득 들고 방문해 봐야지.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안전한 아지트 같았던 초고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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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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