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21년 전 서울의 사람들, 지하철 1호선

글 입력 2019.11.2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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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천안에서 신도림까지 왔다 갔다 했던 적이 있다. 비몽사몽한 채로 전철에 올라서 책 읽다가 졸고 잠결에 전철 타고 가는 꿈을 꾸고... 그렇게 도떼기시장 같은 신도림에 내리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을 본 것만으로도 기운이 빠진다. 사람들은 거무죽죽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전철에 실려 간다. 잡상인과 노인과 짐을 한 보따리 들고 타는 외국인들. 희끄무레한 조명 아래 저마다 지친 삶의 비밀을 품고 있어 보인다.

 

1호선의 이 기묘한 풍경을 공연으로 만들어 낸 작품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 1994년 초연 이후 숱한 기록을 세우며 한국 공연계의 전설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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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독일 그립스(GRIPS) 극단 폴커 루드비히의 이 원작으로, 연출가 김민기가 한국 정서에 맞게 번안, 각색하였다. 2008년 잠시 운행을 중단하기까지 4,000회가량 공연했으며 독일, 중국, 일본, 홍콩 등 해외 공연 및 지방 공연을 통해 71만 명이 넘는 관객들을 만났다.

 

이 작품을 거쳐 간 배우, 연주자만 267명에 이르며, 김윤석, 설경구,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배해선, 방은진 등 현재까지 왕성히 활동 중인 많은 배우가 <지하철 1호선>을 거쳐갔다.

 

 

[크기변환]2019_지하철1호선_공연사진1.jpg

 

 

미리 녹음해준 반주 테이프에 맞춰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던 공연계의 일반적인 형태가 아닌, 한국 뮤지컬 최초로 라이브 연주를 선보이며 배우와 연주자 포함 16명에 이르는 출연진이 등장하는데, 이는 소극장 뮤지컬의 시발점이 되었다.

 

연출가 김민기는 당시 한국 뮤지컬에 흔하지 않던 레뷰(Revue) 형식의 작품을 한국 뮤지컬로 각색하였는데, 레뷰(Revue)란 특별한 줄거리나 플롯 없이 음악에 치중해 시사, 풍자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형식의 뮤지컬을 말한다.

 

원작자 폴커 루드비히는 한국 <지하철 1호선>을 관람한 이유 "전 세계 20여 개 도시에서 공연되고 있는 '지하철 1호선(Line 1)' 중 가장 감명 깊게 본 공연", "원작을 뛰어넘는 감동"이라 평하며 1,000회 이후 저작권료를 면제해주었다.

 

지난 6월에는 그립스(GRIPS) 극단의 개관 50주년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독일 투어를 했으며, 그리스, 이집트, 인도 등 외국 공연팀 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폐막작으로 <지하철 1호선>을 선정했다.

 

 

[크기변환]2019_지하철1호선_공연사진7.jpg

 

 

이런 대단한 작품이다 보니 그 내용이 궁금해진다. 해당 공연의 줄거리는 이렇다.

 

 

<시놉시스> 

 

1998년 11월 서울, 연변에서 만난 '제비'를 찾기 위해 이른 아침 서울역에 도착한 '선녀' 하지만 청량리행 지하철 1호선에서 만난 서울 사람들은 냉담하고, 서울의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곰보할매'의 포장마차에서 '빨강바지'를 만난 '선녀'는 그녀가 '제비'와 함께 연변에 왔던 그의 이모였음을 떠올리고 '제비'의 행방을 묻지만, 그의 실체를 알고 절망한다.

 

청량리 588의 늙은 창녀 '걸레'는 실의에 빠진 '선녀'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고, 자신이 짝사랑하는 '안경'을 찾아 지하철에서 내린다.

 

그리고 얼마 후 급정거한 열차 안으로 누군가의 사고 소식이 들려오는데...

 

 

연변이란 단어가 오랜만이다. 해외 작품들로 범람하는 공연계다 보니 '제비', '빨강바지' 등의 이름이 오히려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이들이 부를 노래가 궁금하고 벌써 좋아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작품 소개는 서너 줄로 우리가 보게 될 작품이 무엇을 그려낼지 설명한다.

 

 

서울의 중심을 관통하는 '지하철 1호선' 열차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시민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고단하고 애달픈 삶을 위로하고 이해하며 삶에 대한 찬사를 보내는 작품이다. 김민기 특유의 서정적인 연출을 통해 1990년대 서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입체적인 캐릭터, 몰입감 높은 스토리를 더해 탄탄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지하철 1호선>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서울의 모습을 밀도 있게 무대 위로 옮겨낸 '1998년, 서울의 풍속화' 같은 작품이다.

 

- 공연 기획 노트 中

 

 

서울역은 현재 번쩍거리는 기차역 건물로 바뀌었다. 기차역은 캐리어를 든 사람들과 하얀 피부의 외국인들이 오가지만 전철역은 여전히 불쾌한 냄새가 나고 나이 든 노숙자들이 배회한다. 21년 전 서울의 풍속화, 그게 얼마나 오래된 걸까?

 

나는 한국 여관의 담배 냄새 찌든 벽지나 전깃줄 늘어선 골목의 감성에 매력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한다. 사창가와 인신매매, 매 맞는 아내들 투성이인 시대에서 비켜나 참 다행이다. 사는 게 얼마나 녹록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 시대의 사랑, 우정, 소주로 털어 넘기는 애환과 고독.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 같은 작품에 맥을 못 추고 빠져들고 만다. 그 시대에는 지금은 찾을 수 없는 진지함, 의지 가지 할 데 없어 굳건한 정신 같은 게 있다. 서로 속고 속이는 지저분한 도시의 야생성이 느껴질 때가 제일 좋은 건 왜일까?

 

<지하철 1호선>의 인간 군상은 분명 21년 전의 것일 테지만, 나는 지금도 1호선 전철을 타면 그 모든 군상을 다시 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사창가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볼 수 없고 (수원역!) 빈곤하게 근근이 살아가는 삶은 스마트폰 바깥에 아직도 많으니까.

 

가난은 모두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순조롭게 변화하는데 혼자만 과거에 남아 살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1998년 서울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을 보니, 아직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고달픈 군상들이 떠올라 말이 길어졌다.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을 품는 전철은 온갖 이야기가 가득하다.

 

<지하철 1호선>이 보여줄 그들의 드라마가 궁금해 가슴이 설렌다.






지하철 1호선
- 원작을 뛰어넘는 감동 -


일자 : 2019.10.29 ~ 2020.01.04

시간

화~금 19시 30분

토 14시, 18시 30분

일 15시

 

*

월 공연없음

12/25 (수) 14시, 18시 30분


장소 :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티켓가격

전석 60,000원

 
기획/제작
학전

관람연령
만 13세 이상

공연시간
170분
(인터미션 : 15분)



 

 



[김나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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