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나온 적 없는 시절을 그리워하며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영화]

거기엔 있지만 여기엔 없는 것 – 구스타프와 맨델을 그리워하며
글 입력 2019.11.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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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온 적 없는 세계들에 대한 근원적 노스텔지어“ - 영화평론가 이동진

 


그리움은 보통 지나오거나 떠나간 것들에 대한 것이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있지도 않았던 것을 그리워하게 한다. 어쩌면 그것이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날 우리한테도 있었다는 반증일까. 오늘의 영화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웨스 앤더슨은 특유의 감각적인 기법과 연출, 유머, 색감, 미장센 등을 활용한 미학과 스타일로 유명한 감독이다. 웨스 앤더슨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우리에겐 웨스 앤더슨 스타일이 이미 익숙할 가능성이 크다. 유명 브랜드의 디자인이나 색감, 카페의 인테리어까지 전 세계에 미학적으로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어느 날 길거리를 지나다 ‘어, 웨스 앤더슨이다!’라며 반가운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이호정의 책 <사고싶은 컬러 팔리는 컬러>를 참고하면, 책의 도입부에서 “밀레니얼의 세대의 컬러는 핑크” 라고 말한다.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트렌디한 컬러인 이 핑크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무대배경이 된 호텔 건물 외관의 컬러-텀블러 핑크(tumblr pink), 스칸디 핑크(scandi pink)-에서 시작됐다. 바로 이 장면이다.

 

 

오프닝.jpeg

 

 

웨스 앤더슨의 대표작으로는 문라이즈 킹덤, 판다스틱 MR.폭스, 개들의 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웨스 앤더슨의 팬덤을 두텁게 만들어준 영화이다. 제 87회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 미술상, 의상상, 분장상을 수상했으며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편집상 후보작이었다. 2014년 베를린 영화제의 개막작이자 은곰상(심사위원 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2014년 3월 20일에 개봉했으며, 2018년 10월 11일에 재개봉을 했다. 아래는 공식 예고편과 재개봉 예고편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예고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재개봉 예고편

 

 

나는 정말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싶어진다. 내 부족한 글솜씨가 작품이 담고 있는 가치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할 것을 겁내기 때문이다. 얼마간 두려워하며 이 글을 쓴다.


신형철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은, 그것이 참으로 진실인 한에서, 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인은 함부로 진실을 진술하기보다는 진실이 거주하는 고도의 언어의 구조물을 구축해야한다. 시는 진실이 표현되(면서 훼손되)는 장소가 아니라 은닉되(면서 보존되)는 장소다.” (느낌의 공동체, 문학동네, 신형철, p.17)

 

영화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로저에버트닷컴의 편집장으로 뉴욕타임즈 등에 영화 평론을 연재하고 있는 영화평론가 매트 졸러 세이츠가 웨스 앤더슨과의 대화를 묶은 책 <웨스 앤더슨 컬렉션: 일곱 가지 컬러>에서 웨스 앤더슨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나 글쓰기나 영화 만들기에서, 우리는 그 의미를 컨트롤하지 않습니다. 아니, 컨트롤 하고 싶지 않은 게 제 본능입니다. 벌어질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떤 식으로든 그냥 살아나게 하는 게 더 좋죠. 모든 것이 영화에서 창조되어야 한다고 느끼고 그래서 저는 어떤 주제를 보여주거나 어떤 이론을 설명하려 하기보다 거기서 의미가 그냥 살아나게 놔두고 싶습니다.”


어떤 의미나 가치는 작품 안에서만 살아 존재할 수 있다. 그럼에도 더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접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영화를 소개한다. 어떤 비평가들은 소개글 혹은 분석글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경지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직접 작품과 만날 때만 주어지는 느낌과 감동이 분명히 있다.

 

그러니 만약 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직접 이 영화를 만나보시기를 청해본다.

 

 

 

구스타프와 맨들을 그리워하며


 

글의 도입에서 이 영화는 여기에 있지도 않았던 것을 그리워하게 한다고 적었다. 내가 영화를 보며 그리워하는 것은 ‘구스타프‘와 ’맨델‘이다. 각각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표현되는지 함께 살펴보자.

 

 

1. 액자식 구성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액자식 구성을 가지고 있다.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한 소녀와 소녀가 들고있는 책을 쓴 늙은 작가, 그 작가가 젊은 시절 들었던 제로 무스타파의 이야기를 거쳐야만 우리는 구스타프에 접근할 수 있다. 즉, 구스타프와 함께하던 제로 무스타파가 말년에 호텔에서 만난 작가에게 해준 이야기를 작가가 책으로 썼고, 그 이야기를 소녀가 읽고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설명하기 복잡할만큼 겹겹이 쌓여진 액자구조는 무엇을 뜻할까? 나는 이 장치가 구스타프로 은유되는 것에 접근하기 위해 웨스 앤더슨이 다양한 형식미를 차용하고 있음을 암시한다고 본다.

 

 

2. 구스타브

 

구스타프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그는 일류 컨시어지로 호텔을 관리함과 동시에 나이 지긋한 귀부인들을 상대한다. 예의나 교양을 중요시해 밤마다 설교를 하며, 시도 때도 없이 시를 읊는다. 감옥에 나와서도 향수를 먼저 찾는 그는 때로 바보같고 허영심 있는 인물처럼 그려진다. 영화 속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그의 여자들처럼 불안하고 허영스럽고 천박하고 금발에 외로운” 인물이다.

 

그러면서도 전쟁 때문에 기차에서 군인에게 검문을 받을 때 비자가 없는 제로를 위해 싸워주곤 한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효율성의 가치와는 반대되는 인물이다. 누가 뭐라 하든 본인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와 시를 잃지 않는다. 그런 그는 이제 여기에 없다. 그는 우리가 이제는 잃어버린, 그 시대에 존재했던 낭만의 은유이지 않을까.


“도살장처럼 변해버린 이 잔혹한 세상에도 한 줄기 희망은 있었지. 바로 그가 그 희망이었네”

 

 

3. 아르누보와 벨 에포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구스타프가 있었던 시대를 그리워한다. 서사적으로는 구스타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제로를 통해서 그리워하고 미장센과 형식미를 통해서도 그렇다. 20세기 이후에는 사람의 본질이나 내면(기의)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물질적인 면(기표)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드러난다. 이런 관점에서 자크 라캉은 “패션은 어떤 사람의 전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패션은 가장 쉽게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고, 영화와 같은 매체에서는 인물의 성격이나 특징, 계급, 관심사, 취향 등을 단번에 드러내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서 호텔 유니폼을 통해 통일감을 주고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특징적이다. 또한 백작부인이 입고 있는 이 옷은 의미심장하다. 이 옷은 클림트의 것과 비슷해보인다.

 


클림트.jpg

 

클림트 키스.jpg

Gustav Klimt(1862~1918), The Kiss(Lovers)

Oil in canvas, Gallery Belvedere

 

 

작품에서 증여받은 '반 호이틀의 사과를 든 소년' 들고 도망칠 때 걸어놓는 작품도 에곤 쉴레의 작품이다.

 

 

에곤 쉴레.jpg

 

 

클림트와 에곤 쉴레는 아르누보 스타일의 대표주자이다. 아르누보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새로운 미술이라는 뜻을 가지며,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성행했던 예술 스타일로 20세기 전후(1890~1905)에 전성기를 맞은 예술 스타일이다. 자연물, 꽃, 식물 넝쿨 등이 자주 등장하며 벨 에포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벨 에포크는 ‘아름다운-좋은 시절’을 뜻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파리가 사회, 경제, 기술, 정치적 발전으로 번성했던 시대를 일컫는 회고적 표현으로 1차 세계대전(1914년)이전의 파리를 일컫는다. 좀 더 넓게는 2차 세계대전 발발(1939년) 이전 파리 식의 벨 에포크가 유럽, 미국, 일본 등의 자본주의 발전 국가로 퍼지던 시기까지 포함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벨 에포크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아르누보를 곳곳에 배치함으로써 그 시대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첫 전쟁에서 구스타프가 제로를 변호하는 것에 성공하지만 두 번째 전쟁에서 구스타프가 죽게 되는 장면도 시사적이다. 좋은 시절이 끝남과 동시에 구스타프는 죽는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까. 구스타프가 죽었기 때문에 좋은 시절은 끝났다. 우리는 그가 (낭만이) 그립다.

 

 

4. 성인들을 위한 동화

 

사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유산상속 분쟁에 휘말린 구스타프의 이야기인 만큼 꽤나 잔인하다. 절벽에서 킬러를 떨어뜨려 죽이는 장면이나, 손가락이 잘려 후두둑 떨어지는 장면, 탈옥 중 간수와 5:1로 싸워 모두 죽는 장면 등을 생각해보면 그렇다. 실제로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타이틀을 달고 있다. 하지만 감독의 독특한 연출방식은 이 모든 것들을 특유의 분위기로 표현한다. 미니어처처럼 촬영하는 기법이나, 웃기고 익살스러운 연출을 통해 잔인함을 심각하지 않게 다루고 있다.

 

 

스키장면.jpg

 

 

대표적으로는 스키 장면이 그렇다. 킬러와의 추격씬에서 ‘그런데 잡으면 어떡하죠?’ ‘몰라’라는 대사나, 미니어처 효과로 떨어지는 실제감, 스키 경기를 하는 것처럼 표현되는 연출 방식이 익살스러움을 자아내고 있다. 초반부터 등장하는 호텔의 모습이나 케이블카가 움직이는 모습, 그 외 일부도 미니어처로 촬영됐으며 동화같은 색감을 가지고 있어 이야기상의 잔인함은 반감된다. 이러한 연출이 초반에 언급한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파스텔톤의 색감과 결부되어 ‘성인들을 위한 동화‘라는 별명이 붙여진거 아닐까.

 

 

5. 화면비

 

또한 이 영화가 사용하는 액자식 구성과 회상 구조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특징적인 것 중 하나는 ‘화면비‘이다. 시대에 따라 작품이 사용하는 화면비는 아래와 같다.


현재 - 1.85 : 1

1985년 - 1.85 : 1

1960년 - 2.35 : 1

1930년 – 1.37 : 1 


이 부분이 바로 이 영화의 재미있는 지점 중 하나인데, 각각의 시대를 보여줄 때 그 시대에 주로 사용했던 화면 비율을 사용한다. 단순히 숫자로 0000년도 라고 써두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화면 비율이라는 형식을 결부시켜 그 시대를 설명하는 미학적으로 뛰어난 발상이다. 이동진 평론가님의 의견에 따르면, 단순히 시대를 드러내는 것 뿐 아니라 주제의식과 결부되어 사용되기까지 한다. 영상이 정사각형에 가까워짐에 따라 '세로'를 어떻게 미장센으로 활용하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는 것.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글 끝부분에 첨부한 영상을 참고하기 바란다.

 

 

6. 회화적인 구성과 대칭

 

형식미에 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하나 더 있다. 회화적인 구성과 대칭이다. 사진은 구스타프를 소실점으로 두고 원근법을 표현하고 있다. 원근법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3차원을 2차원 평면에서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회화의 표현 기법이다. 위 사진처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입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화의 입체감을 버리고, 회화를 재매개하는 방식으로 원근법적인 대칭 구도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영화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을 포기하고, 회화적인 구성을 택하는 건 독특한 시도이다. ‘낯설게 하기’라는 개념으로 설명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낮설게 하기는 제동과 지연의 원리로 친숙하고 일상적인 사물이나 관념을 낯설게 하여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표현하는 예술적 기법이다. 러시아의 문학이론가인 빅토르 시클롭스키에 의해 개념화되었고 극작가이자 연극이론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의해 더욱 구체화 되었다.

 

자동화된 지각에 ‘제동’을 걸고 생각을 ‘지연‘시키는 방식으로 그 간극을 메꾸기 위해 주체적으로 사유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뜻한다. 쉽게 말해 기존과 다른 것을 보고 ’이게 뭐지?‘하고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거나 발굴해 낸다는 것이다. 문화콘텐츠에서 다른 콘텐츠 장르의 문법을 재매개하는 방식은 작품의 주제의식과 결부시키거나 낯설게 하기를 실현하는 효과적인 방식 중 하나이다.

 

 

소실점.jpg

 

 

7. 맨들

 

맨들에 대해서도 말해야겠다. 멘들은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케이크집의 이름이다. 이 케이크는 감옥에서 먼저 등장하는데, 맨들을 나눠먹은 친구들이 구스타프를 탈옥 계획에 합류시켜 주게 된다. 게다가 탈옥에 필요한 도구를 맨들을 통해 들여오게 된다. 모든 걸 잘라보고 검열하는 교도소에서 예쁜 장식의 맨들 케이크만은 잘라보지 않아 땅 파는 도구를 들여올 수 있었다. Part5에서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에 몰래 들어와야 했을 때도 맨들 케이크만 있으면 문제가 없다. 맨들은 그 어떤 삭막한 곳에서도 통용되는 사람 사이에 남아있는 정의 은유가 아닐까.

 


맨들.jpg

 

 

‘좋았던 그 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회고하는 벨 에포크와 그에 영향을 받은 아르누보 스타일, 그 시대에 사용하던 화면비를 사용하는 형식미, 그리고 그 시대에 함께 했던 구스타브를 그리워하며 기억하는 회상구조의 액자식 구성. 종합해보면 이 영화는 이런 형식미를 통해 아직 낭만이 살아있던 그 시대에 대한 그리움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곳에서 영화와 함께 그 시대의 낭만과 정을 그리워한다.

 

 

8.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자허 호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맨들의 케이크는 자허 호텔과 자허 호텔에서 판매하는 자허 토르테와 닮았다. 언젠가 비엔나에 있는 자허 호텔에서 맨들과 닮은 토르테를 시켜놓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다시 한 번 볼 날을 기대한다.

 

 

자허 호텔.jpg

 

 

* 이번 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거나 부족했던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이동진 평론가와 김중혁 소설가가 함께한 영화당 114회 영상을 함께 첨부합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태그 김인규.jpg

 

 



[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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