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설리를 떠올리며, 게임이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기 [게임]

인스피레이션 게임과 함께
글 입력 2019.11.0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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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에 앞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더불어 안타까운 사연으로 세상을 등진

모든 분들에게 유감을 표합니다.

 

 

 

게임을 하면서도 설리를 기억하기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p.27) -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설리의 소식을 들으며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는 특정 순간에만 슬픈 존재가 아니라, 대체로 슬픈 존재라던 어떤 글을 떠올린다.  그녀의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길 바란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로, 설리의 소식을 들은 후 We become what we behold를 다시 플레이해볼 기회가 있었다. 난 어쩐지 이 게임을 하며 자꾸만 그녀를 떠올렸다. 그리고 게임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됐다. 이 글을 통해 의미 있는 게임 사례와 관련 연구 자료를 소개함으로써 게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다양한 문화 전반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으면 좋겠다.  

 

두 번째로, 설리를 잃은 아픔이 조금씩 무뎌질 때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의 비극에 대해 둔감하고 너무 쉽게 잊거나 잔인해지곤 한다. 그래서 조금씩 잠잠해지고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하려 할 즈음 다시 함께 이야기를 꺼내며 기억하고 싶었다. 혹시나 고인을 언급하는 일이 실례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We become what we behold는 플레이 시간 5분, 길어야 10분 남짓의 짧은 게임이다. 글을 마저 읽기 전 먼저 플레이해보고 오길 권장한다. 모바일로도 가능하다. 구글에 We become what we behold를 검색하면 무료로 한글버전을 플레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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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기


언젠가 이 게임을 만난 이후로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곤 한다. 간단한 메카닉과 플레이 방식, 그리 뛰어나지 않은 그래픽을 가진 작품이지만 짧은 시간에 게임이 무엇이어야 하고 동시에 게임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의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는 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 책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이상 책‘만’중요하지는 않다. 문학이 절대적으로 여겨졌던 시대에는 사실 문학이외에 다른 콘텐츠가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한 시대였다. 책 뿐만 아니라 영화, 애니, 게임, 유튜브, 음악같은 콘텐츠도 이전에 책이 하던 역할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책이 할 수 없지만 다른 콘텐츠들이 해내는 영역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그런 콘텐츠들의 장르별 특징을 확인하고 트렌드를 함께 읽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게임이 질병이고 폭력성을 촉발시키는 매개체이겠지만 나에게는 언어다. 흔히 어떤 문화는 고급문화로 여겨지지만, 어떤 문화는 저급한 것으로 여겨진다. 게임은 그 중에서도 여전히 부정적인 인식과 함께하는 문화콘텐츠이다. 하지만 게임은 문학이나 연극, 뮤지컬, 음악처럼 사람들에게 감동과 특별한 경험을 줄 뿐 아니라, 하나의 도구이자 언어로써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으며,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지금은 익숙하게 향유하는 영화나 고급문화의 대표격으로 여겨지는 뮤지컬도 사실은 초반에 배척받았던 사실을 아는가? 특정 문화의 고저에 대한 인식은 시대적 산물일 뿐이다. 우리나라에 처음 철도가 생겼을 때도 악마 같은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가질 뿐이다. 칼과 다이너마이트처럼 위험한 도구도 올바른 곳에서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 사용되면 우리 삶은 더 나은 것으로 만들어준다.

 

만약 아직도 게임을 저급한 것이나 나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게임을 경험해보고 제대로 고민해보지 않았을 뿐이며, 게임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임은 단순히 도구이자 언어일 뿐이며,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수많은 일들을 해낼 수 있다. 또한 매년 콘텐츠진흥원에서 발행하는 문화콘텐츠산업백서를 살펴보면 게임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유망한 분야 중 하나이다. 이런 흐름에 맞춰 정부도 게임 산업에 대한 지원을 늘려가고 있는 추세이다. 우리는 더 이상 게임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외면하면 안 된다.

 



인스피레이션 게임


그 중에서도 오늘 살펴볼 게임은 시리어스 게임, 기능성 게임, 인스피레이션 게임 등으로 계열화 되는 게임들이다. 해당 내용은 “문화적 가치 고양을 위한 게임 창작, 유통 생태계 전략 연구,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책임자 이정엽, 2018.3”을 참고했음을 미리 밝혀둔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자료를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서두의 요약문을 일부 요약인용하려고 한다.


‘국내외 게임업계에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문화적 가치를 포현하는 게임이 많아지고 있다. 게임이 단순한 오락적인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다루고 문화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는 매체로 성숙해가고 있다. 게이머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만들어주려는 창작자의 욕구가 커지고, 게이머들의 요구가 다양해짐에 따라 기존에 상업적으로 흥행해온 게임과 다른 게임들이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러한 게임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환하고, 다양성을 확보해 양극화 문제 해소에 기여하고, 다양한 표현과 연출로 미학적 체험을 주는 단계까지 게임 문화를 성숙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


본 논문은 이런 게임을 지칭하는 용어로 ‘인스피레이션 게임’이라는 용어를 제안한다. 그 배경을 요약하면 이렇다. ‘기능성게임(시리어스 게임)‘은 게임의 본질적인 요소로 일컬어지는 재미 이외의 별도의 목적을 가진 게임을 지칭하는 용어이지만 국내에서는 교육용 게임과 의료용 게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고, 게임의 기능적인 측면만 주로 강조되었다. 결국 정치성을 드러내거나 문화적으로 의미있는 메시지 중심의 게임들이 소외되는 결과를 낳게 됐다. 그래서 보다 정확한 표현을 위해 ’인스피레이션 게임이라는‘ 용어를 제안하고 게임 특성에 따라 아래의 그림처럼 사례를 분석한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과 게임 창작 유통 생태게 전략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은 해당 논문을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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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서 성공하는 게임, This war of mine

 

 

이번 글에서는 We become what we behold와 같이 인스피레이션 게임 중 하나라고 분류되는 This war of mine과 함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 게임은 ‘11bit Studio’에서 2014년에 개발 유통한 전쟁 생존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현재 STEAM에서 21,000에 판매되고 있다.

 

This war of mine은 그 이름처럼 우리-민간인의 입장에서의 전쟁을 경험시켜준다. 흔히 전쟁게임은 잘 죽지 않거나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캐릭터로 적을 멋지게 무찌르거나,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의 입장에서 플레이하게 된다. 그런 게임에서 캐릭터의 죽음은 단순한 자원으로 여겨지거나 현실세계과 연관이 없는것으로 여겨진다. 때때로 타 플레이어는 죽는순간 아이템 파밍(떨어졌거나 주인이 없는 아이템을 줍는 행위)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배틀그라운드>가 바로 그렇다. 그러나 이 게임은 '민간인 입장에서의 전쟁 경험'을 통해 캐릭터의 죽음을 다르게 인식하게 하고 독특한 체험을 준다.

 

이 게임은 ‘실패의 수사학‘을 사용한다. 다시 말해 This war of mine은 기본적으로 실패하도록 만들어진 게임이다. 높은 난이도 때문에 공략을 보고 플레이하지 않는 한 대다수의 플레이어가 캐릭터의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게임의 방식이나 난이도를 생각했을 때 플레이어가 오래도록 생존하는 목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쉽게 생존할 수 있는 것은 게임의 취지와 맞지 않아 보이기까지 하다. 생존에 실패하도록 창작자가 유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전쟁의 참혹함‘이라는 주제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게임을 시작하면 이런 메시지가 나온다.


“현대전에선... 당신은 아무 아무 이유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실제로 전쟁에서 민간인이 쓰레기를 뒤지고 이웃집을 도둑질해가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존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수많은 사람이 죽어갈 것이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성을 버려야 할 가능성이 크다.  ‘내 아내를 위한 약이니 제발 그것만은 가져가지 말아주시오’라고 외치는 노인을 무시하거나 흠씬 패버린 후에 약을 훔쳐왔던 경험은 이 게임에서 내가 한 가장 충격적인 경험이다. 전쟁은 어떤 것인가? 참혹한 전쟁 속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가? 남의 물건을 빼앗아서라도 생존할 것 인가?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딸이 옆에서 굶어죽어 가는데도 지켜만 볼 것인가? This war of mine은 게임의 난이도를 의도적으로 높게 설정하고 딜레마를 부여 함으로써 전쟁에서의 생존이라는 표면적 게임 목표를 쉽게 달성하지 못하게 한다. 달성하더라도 그것은 타인의 존엄성을 짓밟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플레이어는 생존하려 노력하는 과정에서의 실패를 통해 여타의 게임과 달리 질문하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 게임에서는 실패가 곧 성공이다.

 



설리와 We become what we behold

 


 

 

다시 이 게임으로 돌아오자. 이해를 돕기 위해 게임 플레이 영상을 첨부한다. 게임의 특성상 직접 플레이할 때 느껴지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꼭 직접 해보시기를 권장한다. 한글 번역도 잘 되어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무언가를 느꼈거나 질문하게 됐다면 여러분이 느낀 것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이유로 미사여구를 덧붙이고 싶지 않았지만 이 게임에서 어떻게 설리에 대한 생각까지 이어졌는지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개인적인 감상을 짧게 남겨둔다.

 

We become what we behold는 황색언론(원시적 본능을 자극하고, 흥미본위의 보도를 함으로써 선정주의적 경향을 띄는 저널리즘)이 되어 군중을 촬영하는 게임으로, 갈등이나 자극적인 내용을 촬영했을 때만 기사가 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기사들이 대중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게 된다. 흔히 언론의 왜곡보도가 어떻게 현실을 뒤바꾸는지를 보여주는 게임으로 인식된다. 좀 더 넓게 바라보면 우리가 언론과 미디어를 통해 어떻게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가에 대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도 있다.

 

이제 언론 뿐 아니라 누구나 기사나 블로그, 댓글 등을 통해 의견을 표출하고 소통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언론으로 표상되는 사진찍는 행위는 결국 플레이어 개개인으로 환원될 여지가 충분하다. 우리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요즘의 나는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남이다. 당신에게 내 슬픔은 너무 쉽게 지겹고, 나도 당신이 지겨웠을거다. 우리는 타인의 슬픔에 무던한 존재이고 이내 지겨워한다. 그렇게 우리가 잔인하다. 어쩌면 우리는 그녀가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감정을 표출하고 쉽게 방관하지는 않았었나.  그 잔인했던 날들에 대한 반성을 오늘도 문화예술(콘텐츠)를 통해 나는 한다.

 

 

[김인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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