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인간이 먹어온 작은 종교 이야기 -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

세상을 홀린 수상한 약들
글 입력 2019.11.02 22:4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것”이라 정한 것을 먹기 시작했다. “이것”을 먹으면 자신의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음에도 소위 믿음이라 할 수 있는 것을 굳게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몸에 넣었다. 그 “믿음”이라는 것은 생존에 맞닿아있었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구원과도 닮아있었다. 그 인간의 믿음이란 것은 “이것”을 통해 아픔에서 벗어나거나 더 오래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었다. 그리고 고통에서 벗어나고, 죽음 앞에서 조금 더 살려는 의지는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런 인간의 믿음이 쌓이고 쌓여 현대에는 더욱 과학적인 의미로 ‘완성된’ “이것”이 지금 우리 몸에 들어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일까. 좋은 의미로만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기엔 알면 알수록 인간의 욕망으로 탄생한 좌충우돌 수백 년의 오디세이를 가진 “이것”



“이것”은 바로 “약”이다.

 


*


“약은 앞으로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

굳이 답을 하자면,

그러길 희망한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 묻는다면

필자는 더 확신에 찬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약은 앞으로도 인간을 계속 매혹할 것인가?

분명 그럴 것이다”


- 본문 중에서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

_박성규



표1.jpg

 

 

[PRESS]

인간이 먹어온 작은 종교 이야기



이 글의 제목에 “종교”라고 말한 주인공이 “약”이란 것이 지금에서는 조금 의아할 수도 있겠다. 현재 우리에게 약은 과학적으로 효과가 증명되어 명확한 효력이 있는 것, 그래서 아플 때마다 찾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대의 약은 무조건 그래야 한다.


하지만 그런 약의 정의는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완성된 것이었다. 리뷰의 주인공을 통해 약의 과거와 뒷모습을 살핀 필자는“약”을 “종교”라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으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무모한 치료 방식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시작하고 이어질 수 있던 역사가 바로 약의 역사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보면 약국에 가지런히 자리 잡은 약만 약이라 부르지 않는다. 뉴스에 불법으로 자주 거론되는 마약도 약이며, 꼭 아프지 않아도 건강을 위해 챙겨 먹는 영양제도 약이다. 더 나아가 꼭 약물이 아니더라도 건강에 좋다며 먹는 자연물이나 음식을 보약이라 부르기도 한다. 생각보다 더 “약”은 우리에게 틀에 정해진 익숙한 느낌을 넘어선, 더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이제는 그 “약”이란 것의 과거부터 살펴보려 한다. 인간과 약 사이에 있었던, 차분하다기에는 어디로 뻗어갈지 예측 불가한 좌충우돌에 더 가까운 기묘한 사건들이 자리한 그 연대기를 말이다. 잠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현대의 약국이라는 거대한 도시에서 눈을 다른 곳으로 옮겨보자. 그 지금의 약이라는 것을 있게 한 역사, 이제는 약이란 세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거나 쫓겨난 약들의 이야기를 담은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 리뷰를 시작한다.

 


***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는 책 제목 그대로다. 여러 의미로 지금은 약국에 없는 약의 이야기를 펼쳐내는 도서다. 필자는 이 책을 이렇게 느꼈다, 의학이 더 발달한 지금 우리가 흔히 찾는 약들이 있는 약국을 하나의 도시로 비유하자면,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는 그 도시를 있게 한 뒷골목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건물 하나하나가 지어진 역사를 알아가는 책이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놓칠 수 없는 포인트가 있는데, 바로 이 거대한 약의 도시를 지은 장본인은 의심할 여지 없이 인간이라는 것이다.



약을 먹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가장 위대한 특징일 것이다

 

- 윌리엄 오슬러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라고 말해도 부족함이 없는 사실, 인간은 약을 먹으려고 한다. 여기서 “왜?”라고 물어본다면 약이란 것에 응축된 인간만의 특징이 나타난다. “약을 왜 먹었지?”에 대한 대답은 어렵지 않고 아주 간단하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사람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아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사람 곁을 떠나지 않는 죽음 앞에서 더 오래 살고 싶은 마음에 약을 먹었다. 저자는 이러한 사람의 마음을 “욕망”이라 표현한다.


 

사람은 태어나 늙어가고 아파하다가 죽는다. 한낱 생물이기에 생로병사는 당연한 자연법칙이겠지만 다른 동물들과 달리 인간은 의문을 갖는다.


어떻게 늙고, 아프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있을까?

건강하게, 영원히 살 순 없을까?


이 문장은 질문인 동시에 욕망의 표현이다. 아픈 사람은 낫기 위해서, 늙은 사람은 더 살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고자 한다. 그 무엇이라도 하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간절한 바람을 투영하는, 일종의 의식(ritual)이 아닐까.

 

- 1부 [욕망, 약을 발명하다] 중에서

 


생존 앞에 질문으로 던져진 인간의 욕망을 중심으로 약의 역사를 따라가면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약”은 훨씬 더 많아진다. 먹어볼 수 있는 모든 것 중, 덜 아프고 더 오래 살 수 있을 거라고 인간이 믿음을 부여한 선택이 그 역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만병통치약을 찾고, 연금술을 진지하게 연구하던 시대가 그 주인공이 되며, 불로장생을 위해 먹던 수은과 응급처치에 사용된 담배 연기, 효과 유무에 상관없이 섭취된 동물의 뼈가 하나의 “약”으로 그 역사에 자리 잡게 된다. 여기에 언급된 것 중에 지금의 우리가 약이라 믿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그때처럼 지금도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마음이 우리에게 남아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즉 그 역사의 중심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이다.


욕망, 그래서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는 어쩌면 더욱 과학에서 한 발짝 물러나 인간적인 약의 모습을 다루고 있는 책이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아픔과 죽음의 두려움을 먹고 태어난 “약”이라는 정체성은 아마 사람이 고통을 감각한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책 속 약의 오디세이는 수천 년 전 고대부터 시작된다.



***

 

 

오늘날이라면 약사나 의사라 약의 성분이나 처방의 원리를 간단하게라도 설명하겠지만 성분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없었던 고대라면 어떨까? 의심쩍어하는 환자를 마주한 고대의 치료사는 쓴 약은 입도 대지 않으려는 아이를 구슬리는 부모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치료사의 입장에선 질병과 증상 그리고 약의 효과에 대한 직관적이며서도 설득력 있는 설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 1장 “세상은 신이 만든 약국이다” 중에서



이성적인 과학이 발달하기 한참 전인 고대에는 “약”이란 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먹었을까. 효과를 증명하는  실험같은 건 상상조차 하기 힘든 시대, 일단 먹어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사실 효과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무엇을 먹고 효과가 생겼는지 확실하게 구분하기도 힘들었을 시절이다. 그리고 직접 먹는 것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당시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것 중 무엇인가를 입에 넣어보기로 정한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이래저래 상상해보면 너무 막연한 상황이지만 어찌 되었든 당시 고대 치료사들은 약을 처방하기 위해 환자에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야 했다. 고대 치료사들은 어떤 근거를 말했을까? 그리고 또 환자는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고 그 치료를 받아들였을까? 책에서는 신의 존재를 가정한 ‘표식자의 원리’, ‘유사성의 원리’가 고대 사람들에게 ‘약이라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전한다. 전자는 신이 아픈 신체 기관과 비슷한 모양을 가진 자연물에 치료할 수 있는 표식을 남겨 놓았다는 믿음의 원리이고, 후자는 질병을 유발한 원인과 닮은 것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직관적인 원리이다. 지금은 믿기 어려운 추측방식이지만 고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꽤나 그럴싸한 것 같기도 하다.

 

 

3.jpg

 

 

기원전 1,500년 전의 이집트 에베르스 파피루스에는 “두통에는 물고기 머리를 섭취하여 치료하고, 눈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돼지의 눈을 섭취하여 치료하고, 눈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돼지의 눈을 섭취하여 치료한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유사성의 원리는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 문화권에서도 사용되었다. 동양 의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열치열이나 이독제독 등의 표현들이 같은 원리에 해당된다.

 

- 1장 “세상은 신이 만든 약국이다” 중에서

 


아무리 과거의 약에 의심쩍은 시선을 보내도 당대 사람들은 그런 약으로도 경험한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약인데도 어떻게 효과가 있었을까? 여기서 약을 향한 사람의 믿음에서 나오는 “플라시보 효과”가 등장한다. 가짜 약이라도 치료될 거라 믿고 복용하면 치료 나타난다는 원리를 가진 효과인데, 과거에 약에 대한 사람의 믿음은 후에 더욱 구체적으로 밝혀진 유의미한 원리가 될 정도로 꽤 명확한 것이었다. 약이라 부르기에는 효과보다 실패가 더 많았음에도 오랜 시간 약의 역사가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람의 믿음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과거에 생존을 두고 가진 믿음인 만큼 약을 두고 일어난 일들은 미적지근하지 않다. 약의 역사를 보다 보면 소름 끼치고 놀랄 수밖에 없는 사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나는 것은 고대 로마 검투사 시합의 뒷이야기였다. 검투사 대결에서 결국 희생된 사람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도 모자라 혈액과 지방이 사람들에게 팔렸다고 한다. 다른 생물도 아니고 사람의 몸이었던 이유는 극한의 경기 후 죽기 직전에 놓인 검투사의 행동이 마치 발작을 일으킨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즉 검투사의 혈액과 지방은 간질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유사성의 원리가 무섭게 작용한 사례였다. 그리고 사람의 지방을 약으로 사용한 역사는 19세기까지 올라간다.

 

 

2.jpg

인간 지방을 보관하던 항아리

 

 

검투사 시합의 전통이 사라진 시대에는 인간의 지방을 어떤 방식으로 얻었을까? 주로 사형수의 시체에서 얻었다. 사형 집행인들은 시체의 살가죽을 벗겨내고 지방을 추출하여 약제로 판매하였다.

 

(…) 인간의 지방이라고 다 같은 지방이 아니었다. 일종의 ‘브랜드’가 있었다. 사형 집행인들은 자신만의 상표를 붙여 판매했다고 한다. 게다가 구매자들마다 선호하는 상품들이 따로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이도 인간의 몸이 사고파는 약품이었던 시대는 이제 끝이 났다.

 

- 3장 “만병통치약 오디세이” 중에서

 


고대에 약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눈에는 식물은 식물이 아니라 가능성이었고, 금속도 그저 금속물이 아니라 불로장생을 품은 우상이었다. 다른 의미로 자연에, 아니 약에 홀린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약의 역사는 생각보다 더 더디게 과학의 영역에 입장했다. 합리적 의학의 시작이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히포크라테스의 의학도 여전히 많은 희생을 면치 못했으며 이 이후에는 과학이 아닌 연금술로 넘어갔다.


이런 과거를 살펴보자니 약의 시작은 인간이 더 나은 조건의 생존에 대한 욕망에 메인 채 남긴 희생과 실수의 역사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과거도 그 이면을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실패의 경험과 남겨진 기록에 기반하여 시작된 히포크라테스의 의학, 그 후 연금술에서 진지하게 연구하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약이 있게 된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종교와 닮은 믿음에만 의지한 과거의 약은 옳은 결과보다 잘못된 결과가 대부분이었지만 약학의 기반에 함께 놓여있는 유의미한 역사라는 두 얼굴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과학적 성취가 증명하듯, 수많은 시행착오가 새로운 발견을 탄생시킨다. 심지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욕망과 정령들이 혼재된 연금술이라는 이상한 학문이 근현대 의약학을 탄생시켰다니, 이것이야말로 연금술사들이 이룩한 최고의 ‘연금술’이 아닐까?

 

- 2장 “연금술, 매혹과 욕망의 학문” 중에서

 



***


후에 과학이 발전하며 자연물의 화학 구조를 직접 바꿀 수 있게 된 인간은 원하는 효과를 찾아가며 약을 합성해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자연물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와 동일한 화학 구조를 구성함으로써 인공적으로 자연 약물과 효과가 같은 약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합리적인 연구와 실험 아래서 “약”다운 약을 만들 수 있게 되면서 약은 이제 자연에서의 발견을 넘어서 인간의 기술에서도 탄생하게 되었다.

 


1.jpg

[프로작]

프로작은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를 사용했다.

"더럽게 나쁜 기분을

표백제처럼 깨끗이 없애준다."

"더 행복한 삶! 근심걱정은 싹!"

 

 

그리고 세상도 바뀌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약과 자본주의라니, 뭔가 어색한 조합인 것 같지만 제약회사도 돈을 벌어야 했을 테니 약의 존재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롭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 좋은 약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약이 “좋은” 약이었고, 그래서 제약회사는 오랜 기간 많은 약을 팔기 위해 적정선을 두고 약을 만들기 시작했다. 더 좋은 효과를 위한 약을 만들어 병을 금방 치료하기보다는, 더 많은 약을 팔기 위해 효과에 상한선을 둔 것이다. “신약”은 대부분 우리가 생각하는 “신약”까지의 것이 아니었다.

 

 

2003년, 빅파마인 BMS, 애보트, 일라이 릴리는 새로운 항생제과 관련된 모든 연구를 중단했다. 좋은 항생제일수록 단기간의 복용을 통해 완치가 이루어져, 장기적인 이윤 창출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신약 개발은 거의 일생동안 약을 복용해야 하는 만성질환 위주로 이루어진다.

개발되고 있는 신약들은 정말로 안전하고 우수할까? 대다수 신약의 경우, 기존 약들의 약효와 비교하여 별다른 이점이 없는 경우가 꽤나 있었기 때문에 신약의 효능에 대해 의심쩍어 하는 사람이 많다. 기존의 약들과 비교하여 효능이 월등히 좋은 약을 혁신신약이라 부르는데, 이 혁신신약은 개발되는 신약 중에 14% 정도에 불과하다.

 

- 2장 “연금술과의 이별, 근현대 약학” 중에서

 


또한 약의 개발로 인해 새로운 병이 탄생하기도 했다는 저자의 이야기는 약에 대한 단순한 논리들에 대해 다시 질문하게 한다. 약을 팔려면, 약이 효과를 발휘할 병이 있어야 한다. 제약회사는 그래서 약을 팔기 위해 병을 세상에 알려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있었다. 옛날보다 “질병”이 더 많아지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원인에 약도 하나의 역할을 하고 있던 것이다.

 

 

약의 역사는 오늘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어떤 증상에 대한 약에 대한 반응은 새로운 질병을 발견하고 정의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일단 이렇게 새로운 질병으로 확정되면 그 질병의 유병률이 급격히 증가하게 되고, 제약회사는 새롭게 발견된 질병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정말 신기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치료제가 개발되면 유병률이 낮아지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인데, 일단 새로운 질병이 치료제와 같이 홍보가 이루어지고 나면 관련 질환을 호소하는 환자의 수가 늘어난다.

 

- 5장 “약으로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중에서

 


정신의학은 겉으로 더 뚜렷한 것이 없기 때문에 더 조작되기 쉽다고 한다. 약을 위해 병을 만들어지는 것, 기존에 있던 증상이 병으로 된다는 것, 또 병처럼 조작이 된다는 것, 약은 점점 더 시작과 그 끝을 파악하기 어려운 질문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울증은 정말 질병일까?”

 

 

바로 위 인용된 내용과 함께 예시로 나온 질병은 우울증이었다. 우울증은 질병일까, 슬픔을 느끼는 정상적인 인간의 심리가 아닐까? 차분하게 생각해야 할 질문이다. 책의 맥락을 보면 이 질문은 우울증이 병이 아니라며 가볍게 지나치려는 시도도 아니며, 우울증이 정상적인 상태라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필자는 이 질문이 우울증을 다시 정의하려는 무모한 시도에 향한 것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사람의 태도에 향한 것이라 생각했다. “약”이 사람의 태도로 그 위치가 정해지듯, 지금 사회에서 “질병”도 사람의 태도로 대해지는 위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일어나는 마음의 병인 만큼 우울증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에게 있던 병이었을 테지만 과거의 우울증과 지금의 우울증이 온전히 같다고 생각하려니 어딘가 걸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이질감은 아마 지금 우울증이란 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것을 치료하고 이겨내려는 태도와 행동과 같이 그 병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태도, 현대에선 약과 질병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저자는 정말로 우리가 너무나 많은 것을 성급하게 질병화 하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지금의 그런 태도를 가진 사회는 정말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할 때가 왔다고 말한다. 약과 질병 사이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서로가 그리고 사회가 어떻게 질병을 대하고 있는지 질문해본다면 지금의 사회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19세기 말,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사회가 경제적인 불황을 겪으면, 자살률도 그에 상응하여 높아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자살은 단순히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요인들과 함께 설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아픈 세상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 고통을 각각의 질병으로 규정하여 ‘개인적인 문제’로 치환한다. 그러면서 ‘환자’에게 이런저런 약을 복용하라며 개인적인 처방만을 제시한다. 이 또한 너무 우울한 풍경이다.

 

- 5장 “약으로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까?” 중에서

 



***

 

“약이 약속한 욕망 그리고 그 욕망이 만든 약들”

 

 

4.jpg

 

 

약의 역사는 묘하다. 전혀 효과가 없었음에도 오랜 시간 약의 지위를 잃지 않았던 약이 있는 한편, 복용하는 이들이 바라는 그 욕망을 이뤄주는 약임에도 유해하다는 이유로 약의 지위를 박탈당한 약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무해하고 이로운 것’만 약이라 할 수 있을까? 좋은 약과 나쁜 약을 가르는 우리들의 막연하면서도 딱딱한 기준은 문제가 없는걸까? 우리는 무엇으로 약을 규정하고 있는걸까?

 

- 2부 [약, 욕망의 도구가 되다] 중에서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는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오늘날 “진정한 치료를 위한 약”에 이르렀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지 않다. 제목 그대로다. 이제는 더이상 약국에 존재하지 않는 약 이야기, 현재도 존재하지만 여러 의미로 약국에 존재할 수 없는 약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앞서 비유한 것처럼 “약”이라는 인간의 욕망 위에 오랫동안 존재하고 있던 도시에 함께 도사리고 있는 그 뒷골목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나쁜 것이라며, 별거 아니라며 아무도 입에 담지 않아 알 수 없었던 약의 뒷이야기를 세세히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은 약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문화사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설명도 함께 담고 있는 도서다. 과학에 초점을 맞춘 독자에겐 문화사라는 살을, 문화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 읽는 독자들에겐 과학이라는 뼈대를 함께 선사하는 도서인 셈이다. 어느 시선을 택해도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약의 오디세이를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리뷰글은 책을 읽는 순간 약을 대하는 사람에게 시선이 간 독자의 리뷰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약의 역사에서 주인공은 “약”뿐만이 될 수 없다 생각했다. 정해진 기준 없이 오로지 인간의 주관적인 믿음을 통해 시간에 따라 약의 자리가 바뀌면서 그 역사 이어졌기 때문이다. 효과가 없어도 사람들이 있다고 믿으면 그 약은 수천 년간 그 자리를 지켜왔으며 치료보다 희생이 많아도 그 치료법에 대한 믿음이 보편적이면 계속 이뤄졌고 그렇게 역사는 이어졌다. 그래서 역사라 하면 일목요연한 기다란 막대 형상이 떠오르는 것과 달리 약의 역사는 중구난방 뻗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달려 나가 손에 움켜쥐는 모습의 역사에 가까웠다. 현대 약국이라는 거대한 도시 아래에는 개미집처럼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다른 길로 뻗어 나가고 기묘한 모습을 드러내는 다른 의미의 도시가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다.

 

 

5.jpg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는 약국에 없는 약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약에 대한 새로운 통찰의 기회를 주고 있다. 약국의 안과 밖을 정의하는 기준, 좋은 약과 나쁜 약의 기준은 무엇이며 옳은 약과 옳지 못한 약의 기준은 무엇인지 다시금 살펴볼 수 있는 성찰의 근거를 역사 이야기를 통해 마련하고 있다. 과거를 지나 현대에 이르면서 더 복잡해진 약과 질병, 그리고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일들을 책과 함께 알아가면 그것의 목적과 정체성은 과연 어떤 것인지 다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합리적인 과학의 영역에 들어왔어도 여전히 약은 인간 곁에 있는 작은 종교와 같다. 먹으면, 원하는 바를 데려와 주니까. 무엇보다 그렇게 믿고 먹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인간은 지금까지 약 덕분에 더 행복한 삶을 살아왔을까? 인간은 앞으로도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는 약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보다 약과 질병의 여러 모습과 모순들 사이에서 그 약들을 선택하고, 만들며, 몸에 담고 있는 사람인 자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질문을 남겨야 할 것이다.

 

 


 

 

[도서 정보]


 

가짜 약부터 신종 마약까지

세상을 홀린 수상한 약들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

 

표지입체-약이야기.jpg

 

지은이

박성규

 

출판사

MID(엠아이디)

 

면수

336페이지

 

정가

16,000원

 

분야

교양 세계사 /

의학이야기

 

발행일

2019년 10월 10일

 

 

약국에 없는 약 이야기 상세이미지.jpg

상세보기-약이야기.jpg

 

 


 

 

오예찬_PRESS.jpg

 

 



[오예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아트인사이트 (ART insight)
E-Mail : artinsight@naver.com    |    등록번호 : 경기 자 60044
Copyright ⓒ 2013-2019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