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사랑하는 그녀에게

글 입력 2019.10.30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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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그녀가 불쌍했다. "평범"이라는 기준에서 아주 조금, 티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어긋나 있던 그녀는 그 간격을 견디지 못했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그녀가 어떤 어긋남을 가졌는지 아무도 몰랐기에 그녀를 향한 타인의 질타는 없었다. 하지만 스스로 느끼는 간격은 너무도 컸다. 그 크기를 실감하자, 그녀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살고 싶지 않아.", "나는 내가 싫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를 연민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선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가정환경도, 성격도, 외모도, 무엇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관했다. "불쌍한 X" 어쩌면 그 시절 그녀를 비난했던 유일한 사람. 나는 그녀를 불쌍하게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매일 "나는 살아있는 걸까?"를 의심했다. 나는 그런 그녀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를 조롱하고, 헐뜯고, 괴롭히는 것을 일삼았다. 그녀는 생각보다 약했던 탓에 그런 내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맞아, 나는 부족하고 무능력해." 그녀는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으며, 꽤 많이 울었다. 이상하게 나는 그녀가 울 때 희열을 느꼈는데, 아마 그녀가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녀에게 폭력을 가하는 일은 내게 일상이 되었고, 날이 갈수록 그녀는 작아지고 또 작아졌다.

*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해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그녀의 꿈이었다. 내가 그녀를 작아지게 만들수록 그녀의 꿈은 커졌다. "넌 못 해. 안 돼." 그녀를 꾸짖어도 그녀는 듣지 않았다. "나는 괴롭혀도 내 꿈은 건드리지 마." 그녀는 필사적이었다. 나는 너무 커져 버린 그녀의 꿈 앞에 위압감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필사적일 일인가 싶어 그녀를 좌절시키기 위해 각종 방법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의대 수능 성적", "의대 학벌 차별", "의대 학비" 그녀의 꿈은 정신과 의사였고, 나는 그녀가 의대를 진학할 수 없는 이유를 3,000가지쯤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를 "의대를 진학하기 위해 극복할 3,000가지 이유"로 번역했다. 나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꿈을 가진 그녀는 더는 약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가 정신과 의사의 꿈을 꾸었던 이유는, "타인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유달리 타인의 아픔을 잘 발견했다. 그냥 어쩐지 알 것 같았다고 했다. 자꾸만 하나둘 더 많은 아픈 사람들을 발견했다. 단지 그 방법을 몰랐을 뿐, 그녀는 진심으로 그들의 아픔에 다가가고 싶었다. 정신과 의사는 그녀가 처음으로 찾은 목표였다. 자신은 어리고 부족해서, 현재로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그럴 만한" 사람이 되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정신과 의사가 되면 그녀는 세상의 모든 아픔을 마주하고 치료할 수 있을 거라 믿었고,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일이라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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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과 열정이 있다고 모든 일이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꿈을 가진 순간부터 그녀는 새로운 모험 길에 떠난 것이었다. 미친 듯이 공부해도 의대의 문턱은 그녀에게 너무도 높았다. 닿았다 하면 밀려나고, 됐다 싶으면 멀어졌다. 그녀는 이를 물고 유학을 결심했다. 첫 번째 자퇴였다. 반드시 더 넓은 곳에서 더 큰 꿈을 꾸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그녀의 유학길은 "더 큰 세계"가 아닌, "더 큰 현실"로 향하는 문이었다.

그녀는 유학을 통해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타인의 아픔을 치유하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것이라 믿었다. 그건 정말이지 귀여운 생각이었다. 유학을 갔던 곳은 폭력이 난무하는 곳이었다. 폭행, 아동 학대, 성희롱, 차별 등 작은 기숙사 내에는 뉴스에서 볼 법한 문제들이 축소된 형태로 쉬지 않고 발생했다. 한국의 중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직접 마주하기 힘든 진짜 현실이 들이닥치자, 그녀는 환멸과 분노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타의 아픔에 민감한 그녀에게 그곳은 숨 막히는 곳이었고,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좁은 시야로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이제는 자신의 틀을 깰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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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시절, 엄마와의 대화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어떠한 사명감이 들어." 잘은 몰라도 분명히 본인의 역할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녀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불평등, 폭력, 차별, 구조 등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기 위해 여러 정보와 텍스트를 활용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타인의 아픔을 치료하는 건, 의사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픔"에 집착했었기에 그녀는 그것을 치료하는 일에만 큰 가치를 두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진정으로 도달하고 싶던 꿈이 "정신과 의사"가 아닌, "타인을 치유하는 사람"이었다는 본질을 되찾았다.

그녀는 타인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리고 닥치는 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위해 애썼다. 특히 그녀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는데, 유학 중이었던 그녀는 남는 시간을 이용해 글을 쓰는 데 에너지를 쏟았다. 매일매일 글을 쓰며 속에 있는 자신을 토해냈다. 틀을 깨는 일이었다. 또한, 그 과정을 통해 나와 화해의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대화를 했고, 나는 그녀에게 지난날들에 대한 용서를 구했다. 나는 그녀를 미워하던 시절을 후회했다. 하지만 그녀는 웃으며 "그래도 나는 무너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어. 사과해줘서 고마워."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녀는 두 번째 자퇴로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한 후,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입학했다. 그녀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다. 연극부에 들어간 그녀는 공연예술의 매력에 흠뻑 빠졌고, 그곳에서 치유의 현장을 목격했다. 문화예술을 통해 타인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그녀는 공연기획자가 되고 싶었고, 자신이 현재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 찾아봤다. 그렇게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17기 모집 공고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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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도전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그녀는 정말 겁이 없었다. 겁도 없이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가 되었다. 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는, 대학 입학 통보 때만큼 좋았던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던 그녀는,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인생 2막"의 시작을 알렸다.
 
모든 것에 가속도가 붙었다. 시야는 급속도로 확장되고, 그녀의 영역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어졌다.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는다는 것, 예술이 있는 삶을 산다는 것 전부 그녀에게는 두 번 다시 없을 기회들이었다. 그녀는 정말 나에게 매일 이야기했다. "나한테 너무 귀한 기회라, 어떻게든 최선을 다하고 싶어."
 
그녀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활동을 하며 한정된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평소라면 접하기 어려웠을 문화초대를 설레는 마음으로 신청했고, 잘 모르는 분야라면 공부해서 그녀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동시에 '아트인사이트'의 다른 글들을 보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아트인사이트'에 접속했고, '아트인사이트'는 그녀만의 취미 공간이 되었다. 그녀가 무언가에 이토록 열심인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녀는 정말 이 일을 사랑했다. 때로는 기대만큼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꾸짖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고쳐나갔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매일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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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는 그녀의 삶의 순간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주었다. 그녀는 홀로 삼켜내던 글들을 세상에 내보내며 자신을 돌아봤다. "과연 지금까지 겪어온 실패와 좌절, 아픔이 없었다면 이런 글을 써낼 수 있었을까?" 그녀는 그 모든 일을 겪었기에 자신이 현주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여러 과정을 통해 배우고 느껴온 것들을 최대한 '아트인사이트' 오피니언과 리뷰에 녹여 내기 위해 애썼다. 과연 그게 누구에게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이라 확신했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곱씹는 일을 반복했다. 그럴수록 단편적이라 느꼈던 모든 일에 흐름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가 당연히, 혹은 저절로 성취한 것은 없었다. 오히려 더 돌아왔고, 더 넘어졌다. 하지만 단 하나도 후회되는 일은 없다. 그녀는 요즘 이런 말도 한다. "내가 이렇게 크려고 그렇게 아팠나 봐." '아트인사이트'는 그녀가 지금 어디까지 왔고, 어디로 가야 할지 보여주는 지표 역할을 했고, 그래서 더욱 소중했다. '아트인사이트'는 그 자체로 그녀의 인생에 가장 큰 위로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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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요즘 자신이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말한다. 타인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던 그녀는, 현재 글을 통해 누군가를 위로하려 하고 있다. 물론 그녀가 아주 뛰어난 글솜씨를 가졌거나, 엄청난 지식을 가지진 않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꿈을 이루면 그다음엔 어떻게 돼?" 그녀는 나에게 "그럼 그때부터 시작이지."라고 말했다. 그녀는, 꿈을 이룬 순간 그곳은 새로운 시작점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은 현재 완전히 새로운 시작점에 위치해 있으며, 여기까지 오는 길이 험했지만, 앞으로 갈 길은 더 멀고 험할 거라는 말도 했다.

그녀에게 단 하루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그녀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 무너지지 않고 매일을 버텨줘서 정말 고맙다. 나는 그녀를 진작에 껴안아 주지 못했고, 상처도 많이 줬지만, 그녀는 씩씩하게 잘 컸다. 나는 더이상 그녀가 불쌍하지 않다. 그녀가 가진 모든 어긋남은 그녀를 성장시키기 위한 장치와 과정이었고, 그녀는 누구보다 씩씩하게 모든 것을 이겨내었다. 나는 그녀가 자랑스럽고, 그녀의 가능성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버텨낸 하루들이 모여 그녀의 현재를 구성한다. 그렇게 그녀는 '아트인사이트' 에디터가 되었고, 4개월이 흘러 에디터 17기 활동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이곳을 시작점이라 말하는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이 되기 위해 이렇게 돌고 돌아가는 걸까? 나는 그녀의 가장 큰 지지자가 되려 한다. 그리고 매일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줄 것이다.

사랑해, 은희야.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 많았어. 너의 모든 하루에 진심으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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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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