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로운 도피처의 발견 - 하이드어웨이 매거진 Vol. 2

글 입력 2019.10.24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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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짐이었던 그룹 프로젝트를 끝낸 뒤 요즘 내 일상은 도망의 연속이다. 주말에는 영화관에 가고, 어릴 때 좋아했던 동화책을 다시 읽기 위해 어린이 도서관을 전전하고, 공부하는 대신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의 짐은 조금도 해소되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다. 중요한 일을 끝낸 뒤 하루 이틀 쉬면 바로 회복되곤 했었는데, 회복한 이후엔 다시 힘내서 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지금 내 상태는 몇 주째 그대로이다.

 

이 답답함이 지속하는 이유는 내가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조별 과제에 책임을 묻기엔 이미 한참 전에 끝난 일이다. 중간고사에 책임을 묻기엔 이번 학기 듣는 수업들 모두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몸도 건강하고, 일상도 평화롭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도망치고 싶다.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평소처럼 무기력하게 집에 도착한 순간, 책상 위에 놓인 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다 더 먼저 처리해야 하는 일도 많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게 잡지를 읽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었다. 결국 나는 다이어리에 적은 계획을 이행하는 대신 침대에 누워 잡지를 펴는 것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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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펼쳐든 하이드어웨이 2호의 주제는 도망이었다. 주제에 걸맞게 잡지 안에는 도망과 관련된 수많은 콘텐츠가 담겨 있었다.

 

 

도망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더 나아가 도망이라는 행위와 사건이 품고 있는 복잡하고 다층적인 결들을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담아보고자 했습니다. 도망의 동기와 양상, 결과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도망’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기존의 고루한 이미지들을 조금이나마 걷어내고 싶었습니다.

 

- p.10

 

 

잡지의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 자기만의 도망을 실천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낯선 해외로 떠났고, 누군가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도망쳤고, 누군가는 숨 가쁜 일상에서 도망쳤다. 양상은 모두 달랐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명확한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 모두 도망치는 자신을 마냥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망친 그들을 바라보는 잡지의 시선 역시 그러했다. 감히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은 채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잡지를 읽으면서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도망에 놀라기도 하고, 내가 겪어봤던 도망에 공감하기도 했다. 전자의 도망은 앞으로 실천하고 싶다는 다짐을 세우게 했고 후자의 도망은 나에게 큰 위안을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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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했던 도망 중 하나가 바로 김도훈 허프포스트코리아 편집장이 쓴 <오늘 밤도 고양이는 도망을 친다>였다. 물건도 떨어뜨리지 않고, 실례도 화장실에서 하고, 몸도 건강하며 게다가 애교까지 많은 이 완벽한 고양이는 잠은 꼭 따로 잔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내 옆에 반려동물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 것이다. 그러나 그의 고양이는 그 행복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인을 사랑하긴 하지만, 침대를 나눌 정도로 사랑하는 것은 아닐 따름이다.

 

매일 밤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고양이에게 서운함을 느끼던 어느 날, 텅 빈 침대에서 그는 사람들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타인이 자신이 영역을 침범하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직업적 관계 도망자’인 자신 역시 고양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문장은 아주 정확했다. 내가 그러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사람도 좋아하고, 관계 맺는 것도 좋아하지만 그 깊이는 대부분 얕았다. 분명 처음에는 신이 나서 다가갔지만, 시간이 흐르면 먼저 상처받기 싫어서 거리를 두는 못된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의 지난 도망들을 후회하기도 했다.

 

 

나는 밤의 고양이처럼 그 친구의 인생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스스로 선택했다. 어른답게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더는 도망자로서 살아가지 않는 방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 p. 28

 

 

관계의 도망자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후회하는 대신 받아들이고 나아가면 된다는 그 말이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서 도망자였는지 모른다. 잡지를 읽는 그 순간에도 이유 모를 답답함과 무기력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는 도망자였다.

 

하이드어웨이 매거진은 그런 내가 찾은 도피처였다. 최근 나는 이미 많은 도피처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모든 것엔 끝이 있었다. 영화관에 들어가면 언젠가는 영화관을 나와야 했고, 책을 펼치면 언젠가는 책을 덮어야 했다. 도피의 순간은 달콤했지만, 그 끝은 항상 씁쓸했다.

 

이 잡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나는 모든 글을 다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하지만 그 뒤에 느껴지는 건 도피가 끝났다는 씁쓸함 대신 새로운 도피처를 발견한 기쁨이었다. 내일 나는 잡지에서 추천해준 도피처인 마포구 토정로의 커피발전소라는 카페에 갈 것이다. 카페는 내게 집보다 더 일상적인 장소지만 그곳만은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그냥 카페가 아니라 도피처니까, 도피의 다른 말은 일탈, 휴식, 설렘이기도 하니까.

 

 


 

 

하이드어웨이 매거진

- Vol.2 The Runaway -



펴낸곳 : 하이드어웨이 클럽


분야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규격

가로 160mm X 세로 220mm


쪽 수 : 144쪽


발행일

2019년 09월 26일


정가 : 14,000원


ISBN

979-11-967057-0-1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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