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디어 사회에서 우리는_미디어의 장 - 서울대학교 미술관 [전시]

우리 인류의 삶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글 입력 2019.10.21 23:5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우리는 매일 새로운 혁명을 경험합니다.



서울대 미술관 내부는 모던한 느낌이 가장 컸다. 흰 벽지에 탁 트인 공간은 공간을 매우 넓게 보이게 해줬으며 작품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줬다. 무엇보다도 모던하고 단순한 느낌은 '미디어'라는 전시 주제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혁명을 경험합니다. 하여 우리 인류의 삶은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폭과 깊이는 우리를 당황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변화 중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미디어’이고, 그중에서도 단연코 ‘디지털 미디어’입니다. 한편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이미 변화를 거부할 수 없는, 저항할 수 없는, ‘미디어의 장’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미디어로 인한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미디어의 변모로 비롯된 인간 개개인의 신체 및 인지의 변화, 그로 인한 삶의 방식의 변화, 또한 경험 공간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 사회 구조의 변화 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궁극적으로 이번 전시가 주목하는 것은 동시대인 누구나가 함께 모색해야 할 ‘우리 모두의 보다 나은 삶’에 대한 것입니다.

 

이번 전시가 여러분의 삶과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자극과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서울대학교 미술관

 


입장료는 무료였다. 팜플렛을 나눠주는데, 공들인 티가 났던 기존의 전시 팜플렛과는 달리 간단했다. 뭔가 투박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다르게 보면 미래지향적으로 보였다. 작가에 대한 설명과 작품 몇 점 따위의 간단한 정보뿐이었다. 미디어의 장은, 기타 미사여구 없이 작품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진 마이어슨, STAGE DIVE


 


KakaoTalk_20191021_232800074.jpg

진 마이어슨, Stagedive, 2016, 캔버스에 유채


 

미디어의 장이라는 전시 제목 아래, 반겨주는 첫 작품은 진 마이어슨의 작품이다. 캔버스에 유화 물감으로 그린 작품들은 시작부터 나를 압도했다. 미래적인 철골에서부터 미래 등 추상적인 가치마저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작품마다 공통적으로 왜곡이 나타났는데, 이게 자칫 딱딱해 보이며 차가워 보일 수 있는 미래적인 작품에 대해서 굉장히 유연한 느낌을 가미했다. 더해서 기묘한 느낌을 줬는데, 일렁이는 모습이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조성됐다. 미래지향적인 모습과 왜곡에서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인류의 삶, 미디어의 삶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 같았다. 

 

작품은 캔버스 여백 없이 굉장히 꽉 차 있다. 작품 속 세계관을 방대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영화로 치면 주인공을 압도적인 느낌으로 만드는 세계다. 거대한 구조물들이나 오브젝트는 일렁이는 왜곡을 주고 그런 느낌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느낌을 주는데, 아까도 말했듯 여백 없이 꽉 찬 오브젝트 자체가 '주인공', 여기서는 '관람객'을 압도한다. 미디어 사회가 우리 눈앞에 가시화된다면, 한낱 개인으로서 바라보는 시야각을 보여준다.

 


KakaoTalk_20191021_232755777_02.jpg

진 마이어슨, 13 Hours ahead, 2019, 캔버스에 유채

 

 

거대한 미디어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자칫 휩쓸릴 것 같은 불안감에 섣불리 행동할 수 없다. 여기서 작가는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자신의 사연을 녹여냈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을 느낀 모습을 미디어 속 길 잃은 우리 모습에 대입했다.

 


KakaoTalk_20191021_232755777.jpg

 

 

가장 놀랐던 건 디지털 회화인 줄 알았지만 캔버스에 유채라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품을 창작했다는 점이다. 작품을 눈 바로 앞에서 살펴보니 디테일이 장난 아니었다. 나는 유화에서만 볼 수 있는 물감의 느낌을 정말 좋지 못해 사랑하는데, 유화 발림의 디테일이 살아있어 더욱 좋았다. 붓질 하나하나가 어우러져 작품을 완성했다. 선 하나를 죽 그어 표현하는 것보다 왜곡의 잔물결의 디테일을 어떻게 표현했나, 놀라울 정도다.

 

 


이은희 작가, 콘트라스트 오브 유



제일 내 가슴을 찌릿하게 만들었던 작품이다. 디지털 미디어 사회라고 일컬을 만큼 우리 사회는 발전했지만, 차별은 여전했다. 미디어와는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차별이기에 더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미디어를 무척 친숙하게 여기며 그 변화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이은희 작가의 작품은 조건 없는 맹신에 대한 경고를 담는다. 나도 아무런 의심 없이 작품을 감상했고 작품이 뿜어내는 차별을 보자마자 아찔했다. 우리가 느끼지만 미디어에서는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KakaoTalk_20191021_232755777_04.jpg

이은희, 콘트라스트 오브 유, 2017, 2채널 HD 비디오


 

"콘트라스트 오브 유"에서 사진을 찍어 올리니 구글 포토는 흑인을 "고릴라"라고 분류했다. 동양인이 여권 사진을 찍으려고 인터넷에 접수하니, 인터넷 알고리즘이 사진을 4번이나 반려했다. 감지 않은 눈을 자꾸 뜨라고 강요했다. 인공지능은 단순히 얼굴의 정보로 일반인을 범죄자로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KakaoTalk_20191021_232755777_05.jpg

이은희, 콘트라스트 오브 유, 2017, 2채널 HD 비디오


 

이은희 작가는 현대 미디어 사회에서 벌어지는 빈번한 차별을 작품으로 승화했다. 미디어의 발전은 인류의 생활 수준을 놀라울 정도로 윤택하게 만들었다. 알람으로 일어나서 대화를 통화로, 핸드폰으로 식사를 시키고 옷을 주문하고, 잠잘 때 듣는 ASMR까지, 미디어가 일상을 지배하는 수준이다. 미디어는 우리 삶에서 없어서는 안되지만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사용되지는 않았다. 사실 미디어를 꼬집는 것보다 매개로(의사 전달 수단으로) 그런 인프라와 알고리즘을 만든 제작자를 꼬집는 것 같다. 미디어 자체는 잘못이 아니니까.

 

 


정지수, 시리를 위한 미술관 예절


 

1571386716240.jpg

정지수 - 시리를 위한 미술관 예절. 2016. 단채널비디오

 

 

내게 가장 쉽고 재밌었던 작품이다. 자칫 차갑고 무거울 수 있었던 전시의 긴장을 느슨하게 만들어줬던 작품이다. "시리를 위한 미술관 예절"에서 우리는 시리에게 말한다. 미술관에서 지켜야 할 예절들을 말하는데, 시리는 뒤따라오는 부사를 신경 쓰지 않고 동사로만 입력되는 것이나 -please walk softly에서 softly가 오기 전에 Walk를 강조해 성큼성큼 걷는다거나- 부사를 강조하는 등 -softly를 강조해 지나치게 오히려 주변에서 신경 쓰일 정도로 조용하게 걷는다든지-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 시리의 모습을 유머로 풀어낸다. step을 stab으로 잘못 알아들어, 미술관 안에서 사람들을 찌르고 다닌다. 일행과 조용히 얘기하라는, speak quietly를 곡해해서 알아들어, 관람하고 있는 초면에게 조용히 말을 건다.

 

 

KakaoTalk_20191021_232755777_03.jpg

정지수, 네비게이션 다섯대와 운전하기.

2017-on going. 단채널비디오

 

 

게다가 이어지는 작품은 네비게이션 다섯 대와 운전하기, 말 그대로 네비게이션 5대로 운전하는 것이다. 각각 가리키는 방향도 다르고 길도 다르고, 음성도 뒤죽박죽이다. 일종의 코미디처럼 보이는 작품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웃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웃기면서도 이 작품이 전시를 제일 직관적으로 표현한다고 생각했다. 각자 다른 길을 가리키는 네비게이션(미디어)가 저마다 다른 인터페이스와 경고, 음성으로 운전자를 뼈도 못 추리게 만든다. 이 모습이 미디어 사회에서 범람하는 미디어와, 변화에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 '나' 인간 개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미디어 사회에서 우리는



처음에는 미디어를 어떻게 전시로서 표현하는지, 쉽게 예상되지 않았다. 기껏 해봐야 영상 위주의 개념 열거 따위라고 생각했다. 서울대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이 없었더라면 주저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다양한 매체로, 작가가 자기 맛대로 해석한 대로 천차만별의 작품들이 날 반겼다. 추상적인 어휘로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그런 전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전시였다. 일단 볼거리가 많아서 현혹됐다. 

 

전시 제목과 마찬가지로, 작가들은 저마다의 작품 "미디어"를 통해 나에게로 다가왔다. 작품들은 내게 쉽게 다가왔지만 한눈에 작가의 의도를 알아채기 어려웠다. 나는 주제, 갈피를 명확하게 잡지 못한다면 사전에 그 단어를 다시 쳐보는 편이다. 이번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난 후에도 "미디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미디어란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의사나 감정 또는 객관적 정보를 서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수단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뉴 미디어의 등장과 매스미디어의 보급으로 인해 현대사회에서의 미디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인간이 사는 사회 전체를 통괄하고 제어하는 기능까지도 떠맡게 되었다.

 

- 문학비평용어사전

 


진 마이어슨 작품 속에 있다고 생각해보자.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는 미디어들과 그런 세태를 따라가는 사고들-우리가 배웠고 배워야 할 니즘, 해석, 개성 등-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미디어의 사전적 정의가 확대된 것처럼" 말이다. 전시는 이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적응을 준비하기 전에 이미 거부할 수 없는 저항할 수 없는 미디어의 장 한복판에 서 있다. 작금의 사회에서 더 나아가는, 적응하는 법을 당장 동시대인 누구나가 함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참고

서울대학교 미술관 - 미디어의 장

뉴스핌 - 미디어가 우리 상황을 결정한다…서울대미술관 '미디어의 장'

 


 

[오세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