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롯이 나에게 남은 여운 [사람]

온전히 나와 마주하고 대화하는 시간
글 입력 2019.10.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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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겁이 많다. 친구의 도전은 응원하지만 스스로의 도전은 고민만 하다가 조용히 접는 일이 많았다. 자기 검열이 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원서를 다운받고 항목들을 본다. 대외활동 경험이나 자격증의 칸이 이만큼 뻥뻥 뚫려 있는 것을 보면 덜컥 겁이 난다. 다들 대외활동을 이미 세 개 이상씩은 했다는 의미인가? 자격증도 세 개 이상은 있으니 칸을 이렇게 많이 만든 거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면 지원해도 뽑히지 않겠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사실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인데 혼자 꿈만 꾸다가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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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 모집 글을 본 것은 올해 2월이었다.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라는 슬로건에 이끌려 지원서를 읽어 보긴 했다. 하지만 지원하지 못했다. 지원하지 않았으니 당연히 뽑히지 않았고, 처음으로 흘려보낸 것에 대한 후회를 했다.

 

사실 나는 남에게 나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작품뿐만 아니라 사소한 주제에 대한 주절거림 같은 글도 공유하기를 꺼린다. 글이라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나의 생각이 담기기 마련인데, 나는 '내' 글에 담긴 '내' 생각을 남들이 아는 것을 두려워했다.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내 신념이 무엇인지 모르길 바랐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글에 대한 평가를 무엇보다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하하 웃으며 매사에 중립을 유지했다. A와 B가 싸우고 있다면 ‘A도 그럴 수 있고, B도 그럴 수 있다'라고 말하며 어느 편에도 서지 않았다. 그땐 그게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A라고 생각한다면 반드시 그와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굳이 나의 의견을 밝혀 혹시 모를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속으로만 생각했다. 나의 머릿속은 항상 시끄럽다.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생각들로 온종일 시끌벅적하다.

 

정 반대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주관을 오롯이 표현하지 않는 것은 바보가 되는 것을 자청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리고 나는 표현하기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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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기 지원을 포기하고, 17기에 지원한 것은 나에게 굉장한 도전이었다. 자발적으로 남에게 나의 생각을 보이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이 좋게 아트인사이트의 가족이 되었다.

 

아트인사이트와 4권의 한 달 다이어리를 채워나갔다. 다이어리를 새로 시작할 때마다 첫 페이지의 달력을 펼쳤다. 그리고 월요일마다 표시를 했다. 오피니언 마감. 하반기에 가장 많이 한 생각을 고르자면 단연 ‘이번 주에는 뭐 쓰지?’를 내세울 수 있다. 매주 쓸 주제는 많았다. 문제는 내가 그 주제를 담을 그릇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생각이 너무나 얄팍하다고 느껴지기도, 너무나 사적이라고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여과 없이 글쓰기를 중단하고 다른 주제를 찾았다.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 활동을 통해 얻은 수확이라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 번째로는 문화예술을 편식하는 습관이 다소 고쳐졌다는 것이다. 처음 에디터가 되었을 때만 해도 나는 영화와 책만을 향유하고 있었다. 가장 접하기 쉬운 것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나에게 가장 친근한 것들이었다.

 

새로운 글을 쓰기 위해 다른 오피니언을 읽기도 했는데 [영화]와 [도서]의 카테고리에 속한 오피니언을 모두 읽고 나서는 다른 카테고리도 기웃거리게 되었다. 가장 자주 읽은 카테고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기타]였지만, 가장 흥미로운 카테고리는 [문화전반]이다. 내가 그냥 스쳐 지나간 것들이나 몰랐던 사건에 대해 쓰인 오피니언을 읽으며 마치 새로운 땅을 밟은 모험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새로운 관점이나 주제로 쓰인 글을 마주할 때면 그동안의 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기쁨은 나의 문화예술의 대한 시야가 조금이나마 넓어진 것이다.

 

두 번째는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이전에 막연하게 ‘좋다’고 생각한 것이 왜 좋은지 조금 더 깊이 고찰하는 과정 속에서 어딘가에 막연하게 방치해 뒀던 나의 생각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내 머리 속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던 생각들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표출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켜진 것들을 다시 끄집어서 내가 은연중에 하던 생각이 무엇인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싫어하는 게 뭔지 알 수 있었다.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로 활동하기 전에는 짧게나마 생각을 끄적이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되짚어 보니 충분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에디터로 지낸 4개월 동안 빠르게 나를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생각을 붙잡을 수 있었다. 글을 기고하는 과정이 내내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온전히 나와 마주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제 나는 나를 밝히고 표현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혹시 에디터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면 일단 도전해 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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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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