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권력을 부여하는 운명이라는 힘 [공연예술]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보고
글 입력 2019.10.19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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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권력을 잡기 위해 꼭 필요했던 스토리텔링



뮤지컬 <엑스칼리버>를 보면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원탁의 기사들이 자신보다 어린 사내에게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더가 엑스칼리버를 뽑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엑스칼리버를 뽑는 자에게는 '신이 내리신 왕'이라는 운명이 부여되기에 모두가 순순히 무릎을 꿇고 왕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1막까지는 그저 평범한 소년이었던 아더가 왕이 된 것에 어떤 의문도 느끼지 못하고, 몰입하여 극을 감상했다.


하지만 2막부터 아더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칠 정도로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저 사내가 과연 하늘이 내려준 왕이 맞는가?' 라는 의심이 생겨났다. 그리고 결말까지 본 지금, 확신을 갖게 되었다. 뮤지컬 <엑스칼리버>에서 보이는 운명이라는 것은 기득권자가 권력을 얻고 잃지 않기 위해 사용한 스토리텔링이라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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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단군신화나 박혁거세 이야기를 실제 있었던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신화가 생겼던 이유는 무엇이었겠는가 생각하면 답은 금방 나온다. 사실 하늘이 점지해 준 '운명'이라는 것은 있다고 확인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다. 하지만 그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이 되면 엄청난 권력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멀린으로 인해 왕이 될 운명을 부여받게 된 아더가 권력을 갖게 되면서 생긴 비극에 초점을 맞춰 이 뮤지컬을 보았다. 따라서 감상 본문은 '만들어진 운명은 즉 권력이다'라는 포인트에 집중하여 서술하도록 하겠다.

 



기득권을 만들어내는 운명



운명이란 대체 뭘까?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한 건, 2막이 시작되고서부터였다. 양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아더가 흑화 하면서 행하는 실수들은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할 심각한 실수였다. 전투 회의에서, 전력으로도 수적으로도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태에서 평원에서 싸우겠다고 전략을 짜는데 랜슬롯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아더는 자신의 심기에 거슬린다고 가장 충직하고 힘이 될 심복을 죽이려 든다. 이때 아더의 심리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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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검만 있다면 두렵지 않아."

 

- 랜슬롯과 결투 중 아더의 대사

 

 

"검이 없다면 그때도 왕일까."

  

- 아더와 결투중 아더에게 질문하는 랜슬롯

 


랜슬롯은 아더의 한계를 아주 정확하게 집어낸다. 검이 없어도 왕다운 자여야, 모두가 존경하고 왕으로 추대해줄 수 있다. 하지만 아더의 지금 모습은 왕다운 구석이란 없고 검의 힘만 믿은 채 자신만이 옳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랜슬롯의 말에 아더는 신이 날 택했다고 항변한다. 나는 저 말이 자신의 기득권을 수호하는데 아주 편리하고 쉬운 논리라는 생각을 했다. 신의 뜻은 물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그러니 논리로는 그 신의 뜻을 반박할 수 없는 데다가, 신의 뜻을 입은 자는 이미 아주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능력으로 권력을 차지한 것이 아닌, 날 때부터(그의 운명 이야기엔 혈통이 존재한다) 권력을 갖게 된 자가 얼마나 더 쉽게 실수를 저지르는지, 누군가가 지적하여 그 권력을 깨기는 얼마나 더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운명을 등에 업은 자는 어차피 왕이 될 운명이기 때문에, 자기의 행동에 그릇됨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보지를 않는다. 게다가 그런 그의 독단을 견고하게 해주는 건 주변 반응도 한몫한다. 랜슬롯 외에 아더의 뜻에 거슬리는 자는 없으며, 아더가 잘못된 선택을 해도 어차피 그는 신이 내린 왕이니까..라는 태도로 운명에 맡기고 만다. 그러니 아더는 더욱 자신의 잘못을 고찰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운명을 가질 기회조차 못 누리는 이가 있다.


 

아더에게 이런 강력한 권력을 부여해준 캐릭터는 멀린이다. 멀린은 아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정도로 헌신한다. 그러나 그는 아더의 누나인 모르가나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냉담한 태도를 유지한다. 멀린은 아더에겐 아더의 혈통으로 내려오는 분노를 누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를 하는 반면 모르가나에게는 넌 어차피 안 돼 식으로 일관한다. 모르가나도 아더의 누나로 둘은 혈통이 같은 왕족인데도 말이다.

 

멀린은 그저 무조건 아더는 할 수 있을 것이라 격려하는 반면 모르가나에겐 넌 할 수 없다면서 행동에 제약을 두려 한다. 멀린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나는 모르가나 캐릭터가 여성이기 때문에 밖에 설명이 안 된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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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에 여성은 당연히 왕의 자리에서 제외되었다. 모르가나가 '장자'였음에도 불구하고(아더의 누나) 그녀는 여성이기에 애초에 '왕이 될 운명'을 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더가 양아버지 밑에서 구김살 없이 지내는 동안, 모르가나는 멀린 때문에 낯선 땅에 유배되어 있어야 했으며 극의 초반에서는 심지어 색슨족의 포로가 되어 나온다. 그녀가 남자였으면, 그는 바로 황태자였을 것이고 누가 황태자를 그런 식으로 대우를 하겠는가. 이 뮤지컬에서는 운명이란 기득권이 권력을 유지하는데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펜드라곤 왕의 '아들' 이었던 아더에게 엑스칼리버를 뽑을 기회가 가장 먼저 간 것처럼 말이다.

 

 


운명을 믿기보다는, 운명이 가진 힘에 대해 성찰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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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엑스칼리버>는 '운명'이란 무엇인지 계속 질문을 던진다. 나는 그 뮤지컬 <엑스칼리버>에서 운명이 가지는 힘과, 그 힘이 불러오는 악용의 여지, 마지막으로 그 운명이라는 권력을 애초에 가질 수 없는 자에 대해 집중해서 보았다. 이제 내가 질문하고 싶다. 그 운명이라는 낭만적인 이름 아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 권력은 이미 있는 자들에게 주어지고 있지 않는가. 운명이라는 힘은 현실의 불합리함을 유지시키고 정당화를 쉽게 하지 않는가. 나는 운명을 쉽게 믿어버리는 쪽보다는, 지식을 원했던 모르가나처럼 끝없이 의심하는 이가 많아지길 바란다. 지식을 갖고 싶어하고, 비록 왕의 운명이 허락되어있지 않았지만 자신의 운명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했던 모르가나처럼 말이다.


 

[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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