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전 정신이 보였던 공연, "사랑의 묘약" - 서울오페라페스티벌 2019 [공연]

글 입력 2019.10.1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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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은 내가 두 번째로 보게 된 오페라 작품이었다. 이전에 유일하게 접했던 작품은 <토스카>였다. <토스카>는 일반적으로 오페라를 떠올렸을 때 그려지는 이미지들과 부합하는, ‘무거운 느낌’이 지배적인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보고 온 <사랑의 묘약>은 비극적이라거나 애절한 정서가 없는 가벼운 느낌의 작품이었다. 보는 동안에도 조금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 들며 ‘내가 정녕 오페라를 보고 온 게 맞는가?’라는 의문이 들기까지 하였다. 이탈리아어로 지어진 노래에, 아리아에, 오케스트라까지 모든 구성이 오페라의 것이 맞았는데도 말이다.

 

 

 

원작 <사랑의 묘약>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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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가이타노 도니체티(Gaetano Donizetti, 1797-1848)가 패러디하여 만든 작품이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비극적인 결말을 그리고 있는 것에 반해 <사랑의 묘약>은 희극성이 강하고 결말도 행복하게 맺어진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는 세속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사랑의 묘약’따위 존재할 수 없는 현실의 세계 말이다. 작품의 제목이 ‘사랑의 묘약’임에도 사실 그런 약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부터가 유쾌한 모순이다.

 

남자 주인공 네모리노는 없는 약도 만들어내서 팔아치우는 약장사 둘카마라에게 껌뻑 속아 평범한 와인을 사랑의 묘약인줄만 알고 사들인다. 이제 곧 아디나가 자신에게 푹 빠질 줄 알고 기세등등하게 으스대는 네모리노의 모습은 관객들로 하여금 실소를 터뜨리게 만든다. 너무나 뻔뻔하게 사기를 치는 약장사와 한심한 남자 주인공의 조합이 이 오페라의 핵심이라고도 볼 수 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 - Una Furtiva Lagrima(남 몰래 흘리는 눈물)

 

 

<사랑의 묘약>의 가장 대표적인 아리아이다. 줄곧 바보스럽고 한심한 모습을 보여주던 네모리노가 무거운 분위기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상당히 독특한 구성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아리아를 두고 대본가와 작곡가 사이의 의견이 충돌했었고, 작곡가의 고집에 따라 삽입된 이 아리아는 초연에는 관객들로부터 싸늘한 반응을 얻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연을 거듭할수록 관객들을 매혹시켜 이제는 이 오페라를 볼 때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


 

1. 자막/대사의 한국어적 변용

 

유튜브를 통해 볼 수 있는 다른 오페라단에 의한 <사랑의 묘약>과 비교해봤을 때, 이번에 본 것은 대본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타의 작품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을 만들고자 했음이 느껴졌다. 비록 내가 오리지널 대본을 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본을 그대로 해석했다면 나타나지 못할 어휘들을 여럿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자막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번역되었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원래의 의미를 해치치 않으면서 한국 사람의 정서에 맞게 변형하여 유쾌함을 선사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던 배우가 갑자기 관객들을 향해 한국말을 던지는 것은 또한 신선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진지하고 비극적인 오페라에서 한국어 애드리브를 선보였다면 혹평을 받았겠지만, 코믹 오페라에서 이정도 기지는 발휘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눈앞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자막들 중에서 선명하게 기억나는 단어가 있는데, 벨코레의 등장 때였는지 둘카마라의 등장 때였는지 기억이 불분명하지만, 화려한 인물의 등장을 보며 마을 사람들이 웅성대는 대사를 ‘비주얼 갑’이라고 번역한 부분이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좋았던 점으로 봐야할지 아쉬웠던 점으로 봐야할지 조금 헷갈린다. 나로서는 정신없이 자막을 따라가던 와중에 갑자기 출현한 요즘 시대의 문체였기 때문에 당황스러운 느낌이 더 컸던 것 같다.

 

 

2. 무대 활용

 

전체적으로 무대가 꽉 찬 느낌이었다. 계단을 둔 복층 구조와 주인공이 앉을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다양한 소품들이 무대에 구비되어 있어 보는 눈이 즐거웠다.

 

조금 아쉬운 점은, 1부가 끝나고 2부가 시작될 때 무대 위에 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2부에서는 벨코레와 아디나의 혼인식이 그려지는데 그것을 나타내는 지표는 아디나의 의상 밖에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긴 식탁이라거나 결혼 현장을 연상시키는 작은 소품이라도 투입되었더라면 작품 속 상황에 몰입이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3. 기타

 

1에서 언급했듯이 작품을 보는 내내 작품에 코믹함을 더하기 위한 노력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네모리노로 등장했던 공연이나 여타의 국내에서 이루어진 공연들의 영상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네모리노가 묘약을 마시기 전에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하는 것이었다. 둘카마라가 네모리노를 제대로 속이기 위해 만들어낸 가짜 동작을 네모리노가 그대로 따라하는 부분은 많은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한 장면이었다. 그것이 이 작품만의 독자적인 아이디어였다면 굉장히 높게 살 만한 연출이 아닌가 싶다.

 

극중 배우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게 묘약을 건네는 연출도 희극적 요소를 더하는 데에 성공적이었다. 무대 안의 배우가 무대 밖과 소통하는 것은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러한 선입견을 깨는 동시에 마찬가지로 관객들에게 재미도 가져다주는 일석이조의 연출이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금 아쉬웠던 부분은 둘카마라와 함께 등장한 일행에 관한 것이다.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댄서의 의상을 입고 여기저기서 춤을 추거나 둘카마라의 무릎에 앉기도 했던 그 여성 캐릭터는 어떤 의도로 작품에 등장시켰는지 조금 의문이 들었다. 단순히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 위함인 것인지, 만약 그렇대도 굳이 둘카마라의 등장씬에서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는지 좀처럼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이라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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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묘약>은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오페라에 입문하는 첫 작품으로도 적합할 것 같은 작품이었다. 특히 코믹 오페라로써 한국적인 변용이나 색다른 연출을 시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크게 보여주었던 공연인 것 같다.

 

 

[박소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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